쓰레기 먹는 대마법사 219화
219. 버선발(4)
키이잉-!
상혁의 귓가에 자신의 고리가 맹렬하게 회전하면서 내는 것 같은 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고리가 소리를 낼 리 없으니, 이건 헬파이어의 소리였다.
“음?”
하늘을 수놓는 백색 화염, 상혁은 그것을 본 순간 헬파이어를 떠올렸지만 문득 깨달았다.
이곳은 지구이며, 드래곤이 존재하지 않는 이상 인간에게는 허락되지 않은 뜬금없는 헬파이어가 튀어나올 리 없다는 것을 말이다.
“백린!”
하늘에서 백색 화염이 꼬리를 길게 늘어뜨리며 떨어져 내리는 것을 본 유영이 소리쳤다.
치지지직!!
백린이 배리어 위로 떨어졌다. 그러자 놀랍게도 배리어가 타들어 가는 듯한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상혁이 눈을 가늘게 좁혀 뜨고 백린을 살펴보기 위해 배리어 뒤에 손을 얹었다.
“조심하세요!”
치지지직!!
백린이 태우고 있는 배리어의 마나 구조를 헐겁게 하자 백린이 상혁의 손에 옮겨붙었다. 고온을 내며 타들어 가는 백린을 본 상혁의 눈가가 움찔거렸다.
‘마나.’
백린에서 마나가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렇다는 건 이 백린 자체가 유독 물질이라는 뜻이다.
파앗-!
백린의 마나를 빨아들이자 백린의 불길이 꺼졌다. 마치 성냥이 꺼지듯 팍 하고 꺼지는 백린에 유영이 뒤에서 입을 틀어막았지만 상혁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깜짝 놀랐네.”
헬파이어인 줄 알았다. 하지만 그냥 화염이었다.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불과는 조금 다른,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백색 화염이었지만 불은 불이었다.
“워, 원래 자연 연소가 안 되는 불이 백린인데…….”
“뭐 이건 불량품인가 보지. 안 그래?”
상혁이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마호메드를 보고는 히죽 웃었다. 그러자 마호메드가 공포에 젖은 눈으로 툭 떨궜다. 상혁에게 완전히 심적으로 제압이 당한 상태라, 백린을 그냥 없애는 상혁을 보자 완전히 전의를 잃어버린 것이다.
키이잉!
급하게 끌어올린 고리의 회전이 끝났다. 폭죽이 터진 것처럼 하늘에서 하얀 꼬리를 늘어뜨린 백색 화염이 무수히 떨어지고 있었다.
“아, 안 돼!”
유영이 소리쳤다. 상혁은 백색 화염이 이글거리며 떨어지는 것을 보며 손을 펼쳤다. 저걸 그대로 뒀다가는 텐진항이 불바다가 될 것은 자명해 보였기 때문이다.
“아이스.”
쩌저적!!
대기 중에 얼음 결정이 맺히기 시작했다. 냉기 마법의 근간이 되는 가장 기초 마법으로 대기 중의 얼음 결정을 맺는 간단한 마법이다.
하지만 그 마법이 7서클 마법사인 상혁의 손에서 펼쳐진 순간 거의 기후를 조종하는 수준의 마법이 된다. 유영은 주변의 온도가 급속도로 떨어지는 것을 느끼며 입에서는 허연 입김이 숨결에 새어 나왔다.
딱딱딱.
광범위하게 펼쳐진 아이스 마법이 주변의 온도 자체를 떨어뜨려 버린 것이다. 상혁이 대기 중에 맺힌 얼음 결정을 움직였다.
“템페스트.”
콰우우우우!
거대한 괴물이 하늘에서 내지르는 비명 같은 소리가 울려 퍼졌다. 얼마나 그 소리가 컸던 것인지 폭발로 인해 난장판이 된 현장을 덮어 버릴 정도의 바람이 불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이내 그 바람은 폭풍이 되었다.
6서클의 폭풍 마법.
상혁이 일으킨 폭풍이 주변의 얼음 결정을 빨아들였다. 상혁이 시전한 아이스 마법은 주변의 온도를 삽시간에 떨어뜨릴 정도의 냉기를 품고 있었다.
그리고 그 냉기를 고스란히 빨아들인 폭풍은 얼음 폭풍이 되었다.
쩌저적!
컨테이너 박스 위로 서리가 맺히고 고드름이 생겨났다. 얼음 폭풍은 부두에 설치된 크레인의 표면에 얼음 결정을 맺었고 폭풍 속에서 일어난 얼음 알갱이들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극저온의 폭풍.
간단한 마법 조합식이지만 그렇다고 하여 누구나 사용할 수는 없는 냉기 폭풍이 휘몰아치며 하늘에서 떨어지는 백색 화염을 대신 맞았다.
치이이익!!
화염 마법의 상극은 얼음이나 물이 아니라 진공 상태다. 화염 마법이 펼쳐진 순간 그 주변을 진공 상태로 만들어 버리면 화염이 타오를 수 있는 에너지를 잃은 화염 마법은 그대로 꺼져 버리게 된다.
그렇기에 원소의 상극인 얼음과 냉기가 주효한 것이다.
“공격에 방어는 최선이 아니지.”
백색 화염은 헬파이어가 아니다. 지옥의 화염은 말 그대로 존재하는 모든 것을 녹여 버린다. 심지어 헬파이어는 진공 상태도 무시한 채 고고하게 피어오른다.
애초에 헬파이어의 불과 자연의 불은 그 존재 자체가 근본적으로 다르기 때문에 직접적인 비교 대상이 될 수 없었다.
헬파이어는 이 세상의 모든 것을 태운다.
마나와 산소, 오러 같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도 제 먹잇감으로 삼아 모조리 불태워 버린다. 그 때문에 헬파이어는 인간에게는 허락되지 않은 9서클의 영역에 존재하고 있었다.
헬파이어를 막을 수 있는 건 같은 9서클의 마법뿐.
가나안 사서에는 그에 관한 기록이 적혀 있었는데, 오천 년도 더 전, 마계의 마왕과 천계의 천왕이 가나안에서 전쟁을 벌였을 때 마왕이 꺼내 들고 온 지옥불의 불똥 하나를 놓쳤다가 대륙의 10퍼센트가 불탄 적이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었다.
한 번 붙으면 꺼지지 않는 불.
그게 바로 헬파이어였다.
그런데, 유영이 백린이라 부른 백색 화염은 헬파이어에 비할 바가 아니었지만 충분히 그 자체만으로도 재앙에 가까운 결과를 불러일으킨다는 것을 상혁은 깨달았다.
끄아악!
으악!
하늘에서 긴 꼬리를 만들어 내며 떨어지던 대부분의 백색 화염은 상혁이 시전한 냉기 폭풍에 의해 상당수가 그대로 빨려 들어가 사라졌다.
하지만 폭발은 상혁이 상상한 것 이상이었고, 냉기 폭풍이 미처 잡지 못했던 초반의 백린이 주변에 떨어지며 불이 붙어 버린 것이다.
“꺼지지 않는 불?”
바닷가 바로 옆에서 붙은 백린은 꺼지지 않았다. 불을 끄기 위해 발로 밟으면 오히려 그 발에 불이 붙는 수준으로 퍼지기 시작한 것이다.
게다가 그뿐만이 아니었다.
“가스! 가스!”
“방독면!!”
부두를 포위했다가 그대로 폭발에 휩쓸린 경찰과 군인들이 목을 움켜쥐고 콜록거렸다. 거기에 백린까지 덮쳤고, 폭발로 인한 피해가 그들에게까지 번지며 피해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도와주세요!”
이 상황에서 믿을 수 있는 건 상혁밖에 없다. 유영이 상혁을 향해 바짓자락이라도 붙잡을 기세로 그렇게 소리쳤다. 상혁은 인상을 살짝 찌푸렸다.
‘막지 못했다.’
7서클에 오른 후 상혁은 자신을 곤란하게 만들 수 있는 일은 없을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마법이 존재하지 않는 한, 적어도 이 지구에서는 상혁을 상대할 수 있는 수단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핵이나, 대륙간 탄도미사일 정도가 날아온다면 모를까.
물론 그것도 공간이동으로 빠져나가면 그만이니 상혁은 자신이 마음만 먹는다면 이 지구에 군림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내가 모든 것을 조율할 수는 없는 법이니까.’
상혁이 제아무리 대마법사라고는 하지만 상혁은 개인일 뿐이다. 상혁이 혼자 모든 것을 조율할 수는 없다. 이곳의 테러가 상혁의 통제 범위를 벗어나 무수히 많은 피해를 냈듯이 말이다.
만약 이런 일이 상혁을 노리고 벌어진다면?
‘나는 괜찮다. 하지만 나를 제외한 모두는 괜찮지 않을 것이다.’
상혁은 마법사이기에 괴짜이지, 홀로 사는 괴물이 아니다. 상혁도 그 근간은 인간이다. 그리고 인간은 사회적인 동물이다.
그렇기에 이런 일이 벌어진다면, 그래서 상혁의 통제 범위를 벗어난다면 상혁이야 멀쩡하겠지만 그 주변은 그렇지 않을 것이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나는 고립되겠지. 아니면 복수에 미친 살귀가 되거나.’
가나안에도 그런 이들이 있었다. 누구도 거스를 수 없는, 대륙에서 손꼽히는 강자이나 그렇게 강하다는 것이 때로는 불행할 수도 있다는 것을 말이다.
아무리 강해도 주변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들을 통제할 수는 없다. 그 때문에 개인은 강해도 그 개인만 강할 뿐이지 그 주변은 아니다.
그리고 꼭 피해는 그 주변에 치명적인 법이다.
“제발, 도와주세요.”
유영이 한 번 더 간절하게 외쳤다. 텐진항은 지금 전쟁을 방불케 할 정도로 사방에 사람이 쓰러져 있었고 불타오르고 있었으며 유독 가스와 유해 물질이 흘러나와 주변을 오염시키고 있었다.
상혁의 마나안이 푸르스름하게 빛났다.
“도와달라고?”
“네…… 당신이라면 할 수 있잖아요.”
“내가? 부두가 이 모양 이 꼴이 되는 것도 못 막았는데?”
상혁의 냉기 폭풍이 하늘에서 떨어진 백린을 모두 잡아먹고는 사라졌다. 자욱한 수증기가 피어올랐지만 여전히 사방에서는 백린으로 인한 불꽃이 타오르고 있었다.
“봐 봐.”
“당신이 막았기 때문에 이 정도로 끝난 거잖아요. 그러니까 도와주세요. 저 사람들, 더 큰 피해가 나지 않게 제발요.”
상혁이 피식 웃었다. 사방에서 쓰러지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었다. 단순 백린 때문이 아니었다. 백린이 동반한 강력한 독성 때문이다.
백린이 산소와 결합하며 일어나는 불꽃은 엄청난 독성을 띤다. 백린에 노출되기만 해도 사람의 피부는 고목처럼 쪼그라들며 모든 수분을 빼앗긴다.
그리고 컨테이너를 실은 바지선이 2차 폭발하면서 아예 부두 한쪽이 무너져 내렸다. 그 때문에 안에 있던 화학물질이 백린과 반응하면서 2차 독성 물질 누출이 일어나고 있었고 그로 인해 지독한 악취까지 사방에 번졌다.
“여기서 민간인들이 사는 곳이 가까워요. 더 시간을 끌다가는 죄 없는 민간인들까지 희생될 거예요. 그러니까 제발 부탁드려요. 도와주세요.”
유영은 상혁에게 읍소하듯 말했다. 텐진항으로부터 민간주택까지는 눈으로 보일 정도로 가까운 거리다. 이곳의 피해를 막지 못한다면 금세 텐진 전체가 죽음의 도시처럼 되어 버릴 것이다.
“제발.”
“너.”
상혁의 한쪽 눈이 푸르스름하게 빛을 발했다. 유영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마나안이다. 상혁은 입술을 삐뚜름하게 늘어뜨리고는 그녀에게 말했다.
“네 아비나 너나 내게 빚을 진 거다.”
“제 이름을 걸고, 목숨을 걸고 반드시 이 빚을 갚을게요.”
“나는 말보다 행동으로 보여 주는 걸 좋아해.”
“네?”
상혁이 유영의 뒤에 전신이 마비된 채 눈만 굴리고 있는 마호메드를 턱짓으로 가리켰다.
“내가 이 자리에서 일어날 때까지, 넌 누가 오더라도 이 옆에서 날 지켜. 설령 네 아비가 오던, 할아비가 오든 간에 내 옆을 지켜.”
“네. 지킬게요.”
“네 말을 믿는다.”
상혁은 목소리에 의지를 싣고 마나를 실어 말했다.
“네 약속을.”
약속은 언령이다. 마법사가 의지를 실어 말한 언령이다. 유영은 굳건한 눈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상혁은 그 자리에서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더블.’
상혁의 한계는 쿼드러플 캐스팅이다. 그중 더블 캐스팅으로 유독 물질을 막기 위한 배리어를 유지하기 위한 그리드와 마호메드에게 시전한 마비 마법이 한 자리씩을 차지했다.
그렇다면 남은 건 둘.
‘유독 물질이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차단하고.’
쿠궁!!
상혁이 손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런 상혁의 손끝에는 마나가 맺혀 있었다. 상혁의 마나가 마법을 써 내려가기 시작하자 마법사의 의지가 공간에 반영되기 시작했다.
공기.
그냥 있으면 그 존재조차도 때론 잊곤 하는 공기가 무거워진 것이다. 유영은 그걸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숨 쉬기에 버거울 정도로 무거워진 건 아니다.
5서클의 마법인 벽 마법의 변형.
공기로 벽을 둘러 유독 물질이 빠져나간 것을 막았다. 원래 이 마법은 주로 암살용으로 쓰이는 마법이었다.
독연을 퍼뜨리고 공기로 된 벽을 쳐 독연이 빠져나가지 않도록 하는 마법.
그와 비슷한 필요에 의해서였지만 결과는 달랐다.
후우우웅!!
상혁은 공기 벽으로 둥그런 돔 형태를 만들어 부두 전체를 감쌌다. 그러고는 그가 손가락을 까닥이자 그 내부에 있던 공기 기류가 뒤틀리며 사방에서 강풍이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아래로, 위로, 좌로, 우로.
강풍을 맞는 사람들은 방향을 가늠할 수 없도록 사방에서 몰아쳐 오는 바람에 눈을 질끈 감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그 사이 상혁의 마나안에서 푸르스름한 빛이 새어 나왔다. 바람 마법을 이용해 상혁이 돔 안의 독성 물질을 위로 밀어 올려 돔의 상층부에 갇히도록 만들었기 때문이다.
상혁은 그 독성 물질을 바람을 이용해 응축시켰다. 모으고, 또 모으고. 그러자 넓게 퍼져 있을 때는 눈에 보이지 않던 독성 물질이 서서히 색을 띠기 시작했다.
그리고.
스으으읍!!
상혁의 콧속으로 응축된 독성 물질이 그대로 빨려 들어갔다.
“악!!”
그걸 지켜보던 유영의 입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