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 먹는 대마법사 216화
216. 버선발(1)
촤라락!
구기동의 좁은 골목이 기자들의 카메라가 내뿜는 매캐한 연기로 가득 찼다. 난데없이 거의 백여 대에 달하는 카메라와 핸드폰이 터진 탓에 사방에서 아우성이 터져 나왔지만 그사이 상혁은 리창위를 자신의 저택 안으로 들였다.
턱.
“집이 누추한지라. 주석님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들어오실 수 없을 것 같은데.”
리창위의 뒤를 따라 들어오려던 특근국 경호실장이 인상을 팍 쓰면서 상혁을 쳐다봤다. 하지만 상혁은 그의 콧바람에도 눈썹 하나 깜짝하지 않고는 손짓했다.
“나가세요.”
“주석의 경호는 우리가 책임집니다.”
“여긴 내 집이고요.”
“뭐요? 이런 누추한 곳에 주석을 모신 것도 말이 안 되는 일인데 최소한의 경호도…….”
“주석님.”
상혁은 굳이 경호실장과 길게 말을 섞지 않았다. 지금 애가 탄 것은 자신이 아니라 리창위다. 칼자루를 쥔 것이 누구인지 경호실장은 자존심 때문에라도 애써 외면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차오위!!”
“각하! 저흰 각하의 안전을 책임질 의무가 있는…….”
“말 이상하게 하시네. 누가 주석 각하의 안전을 배제하랍니까? 집 밖으로 지키세요. 괜히 남의 집 들쑤실 생각 하시지 마시고.”
상혁은 불룩한 경호실장의 가슴께를 보면서 턱짓했다.
“거기 총도 있으시네. 밖에서 누군가 들어오지 못하게 밖에서 경호하세요.”
“…….”
으득.
경호실장이 상혁을 잡아먹을 것처럼 노려보았다. 하지만 상혁은 태연히 귀를 후비다가 경호실장이 안 나가고 버티자 인상을 팍 찌푸렸다.
“애초에 초대도 안 한 손님을 맞이해 준 것도 고마워해야 할 판인데. 이제는 숫제 쳐들어온 사람이 인상을 쓰고 집주인의 말을 듣지 않으면.”
상혁이 경호실장의 살벌한 기세에도 꿈쩍도 하지 않고는 그의 앞에 얼굴을 들이밀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응?”
“당신…….”
“에이 씨. 몰라. 나 바빠. 주석 각하. 나 바빠서 오늘은 안 되겠네요. 안 그래도 바빠 죽겠는데 별 삼류 건달 같은 놈을 데려와서.”
팍.
상혁은 경호실장의 가슴팍을 밀었다. 경호실장은 버티려고 했지만 그대로 뒤로 몇 발자국 밀렸다. 경호실장의 눈이 커졌다.
‘힘으로 날 밀었다고?’
경호실장은 190이 넘는 거구에 각종 무술과 실전으로 단련된 특근국 최고의 에이스다. 반면 상혁은 딱 봐도 비리비리했는데 그런 상혁의 힘에 자신이 세 발이나 밀린 것이다.
경호실장의 얼굴이 수치로 인해 붉어졌다.
덜컹.
“백상혁 씨!”
그때 리창위가 달려 나와 상혁의 손을 덥썩 붙잡았다. 상혁은 문을 열려다 말고 고개를 돌려 리창위를 쳐다봤다.
“이렇게 그냥 가시면 어떻게 합니까. 저를 좀 도와주십시오. 예?”
“그러니까요. 주석 각하는 여기 이렇게 도움을 부탁할 자세가 돼 있는데.”
상혁이 경호실장을 물끄러미 쳐다봤다.
“여기 고압적으로 버티고 있는 경호실장이란 분은 전혀 그러신 것 같지 않아서 제 기분이 별로네요.”
“차오위!!”
“……예. 각하. 물러나 있겠습니다.”
빠드득.
리창위의 일갈에 차오위는 결국 버티지 못했다. 만약 상혁이 정말 이 자리를 박차고 나가기라도 한다면 리창위의 분노는 모두 그에게로 쏟아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경호실장은 여전히 회의적이었다.
‘한국의 재벌이 대체 무엇을 할 수 있다고 주석께서 저렇게 저자세로 나오신다는 말인가!’
주석의 금지옥엽인 유영이 납치된 중차대한 위기에 주석은 공안이나 국가안전부가 아니라 갑자기 한국행을 결정했다.
자신을 딸을 무사히 구출하는데 한국의 웬 재벌 하나가 반드시 결정적인 도움이 될 것이라면서 참모들과 비서진의 모든 의견을 묵살하고 한국행 비행기에 올랐던 것이다.
그 때문에 다들 리창위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나 황제가 그러자고 하는데, 신하인 그들이 할 수 있는 건 알겠다며 고개를 숙이는 것밖에 없었을 뿐이다.
‘만일 각하의 딸을 구해 내지 못한다면 특근국의 이름을 걸고 주석을 기만한 그 빵즈 놈을 찢어 주마.’
으득.
차오위는 분노를 삼키고는 문을 닫고 나갔다. 대문 밖으로 신경질적인 중국어 몇 마디라 울려 퍼지자 멀리서 고장 난 핸드폰과 카메라를 든 채로 어쩔 줄 몰라 하던 기자들의 아우성이 아스라이 멀어졌다.
기자들을 물린 것이다.
“자. 이제 안으로 드실까요?”
“예? 예.”
리창위는 안절부절못했다. 그가 가장 아끼는 딸의 목숨이 경각에 달렸기 때문이다. 그 때문인지 리창위는 자리에 엉덩이를 붙이자마자 그가 넙죽 고개를 숙였다.
“유, 유영이에게서 들었습니다. 상 소교에서도 들었고요. 신비한 능력을 사용하신다 들었습니다.”
“마법입니다.”
파지직!
상혁이 물잔을 내려놓은 곳에서 냉기가 일어나며 테이블을 쩌적하고 얼렸다. 하지만 잠시 후 테이블이 언제 얼었냐는 듯 열기가 일어나며 얼음을 녹였고 녹은 얼음은 물이 되어 바닥에 떨어지기 전에 바람에 실려 허공으로 날아올랐다.
“뭐, 이런 거죠.”
“허.”
리창위는 급한 상황임에도 눈앞에서 마법을 보자 놀랄 수밖에 없었다. 딸의 말을 그냥 허튼소리라고 듣고 넘겼었던 그가 딸이 구출이 실패한 순간 상혁을 떠올린 건 어찌 보면 우연이나 마찬가지인 일이었다.
“제발.”
상혁의 마법을 눈앞에서 확인한 리창위는 더욱 몸이 달았다. 그는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고는 간절한 표정으로 상혁을 쳐다봤다.
“제 딸을 구해 주십시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지금 그는 중국의 황제가 아니라 그저 한 딸아이의 아버지일 뿐이었다. 중국의 국력을 앞세워 새로운 신중화를 꿈꾸며 주변국의 원망을 한 몸에 받는 그 철혈 통치자가 맞는가 싶을 정도로 리창위는 간절했다.
“그리 값싸지 않을 겁니다.”
“어떤 것이든 그 값을 치르겠습니다. 제 딸만 무사할 수 있다면.”
“주석의 위치가 흔들릴 만한 걸 제가 부탁한다면요? 예를 들면.”
상혁이 리창위의 진심을 보겠다는 듯 눈을 번뜩였다. 상혁과 눈이 마주친 순간 리창위는 가슴이 서늘해졌다. 상혁의 투명한 두 눈이 자신의 속을 꿰뚫어 보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리창위는 기꺼이 마음을 열었다.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딸의 안위였다.
“금한령의 해제. 그리고 중국에서 한국의 역사와 문화를 공식적으로 인정해 주라는 그런 것 말입니다.”
“그건…….”
“그리고 중국 내 여러 법령을 선진국 수준으로 끌어올려서, 중국에서 한국의 저작권을 도둑질해 가던 것을 멈추고, 한국 내 산업스파이의 활동을 멈춘 뒤 북한에 대한 지원을 끊으라고 제가 요구한다면요?”
그건 전부 다 공산당의 정책 과업이다. 중국은 신중화를 위해 다양한 방식으로 주변국을 압박했다.
목소리가 크다는 걸 내세워 다른 국가의 문화와 역사가 자신들의 것이라 주장하고, 미국의 방어 시스템인 싸드를 도입한 한국을 경제적으로 압박하는 등.
중국은 자국의 목소리와 영향력을 아시아권 내에서 크게 하기 위해 다양한 방식으로 주변국을 도발하며 그들의 반응을 살피고 있었다.
“그걸 원하십니까?”
“그럴 수도 있다는 것이지요.”
리창위가 한국에 왔다는 건 숨길 수 없다. 이 소식은 벌써 당의 고위 관료들도 전부 알고 있을 것이다. 리창위가 절대 권력의 기틀을 마련했다고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의 경쟁자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리창위가 한국에 다녀간 뒤 상혁의 말대로 국가의 정책 과업을 포기하거나 방향을 튼다면, 그의 정치생명이 위태로워질 수 있었다.
“…….”
“딸을 구하면 뭐든 할 수 있다고 하더니.”
상혁이 말을 끌다가 입꼬리를 휙하고 끌어 올렸다.
“말뿐이었습니까?”
동생인 백성운을 죽이고 아들인 백도현을 죽이려고 한 백성철과 중국 주석인 리창위는 얼마나 다를까.
일개 기업이 아니라 절대 황권을 구축한 리창위가 더 잃을 것이 많았다. 상혁은 ‘만약에’를 들먹이며 리창위가 어떤 결정을 내릴지 지그시 그를 쳐다봤다.
1분, 5분, 10분…….
침묵은 길어졌다. 그러나 상혁은 그를 재촉하지 않았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것이 딸이라고 해도 막상 선택의 기로에 놓이면 그처럼 생각이 많아지는 게 당연했다.
그렇게 30분이 지났다.
달그락.
빈 물잔이 세 잔 정도 리필이 되는 동안 리창위는 입을 열지 않았다. 그러나 상혁은 그가 곧 입을 열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복잡하던 리창위의 눈빛이 다시 맑아졌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전 마법사입니다. 그냥 이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말로만 대답한다면 후회하실 겁니다. 사람의 말은 생각보다 더 큰 영혼이 담기는 법이니까요.”
상혁은 리창위에게 겁을 주었다. 마법을 보여 주었기 때문에 리창위는 상혁의 으름장에 침을 꿀꺽 삼켰지만 더 이상 고민하지 않았다.
“무엇이든 들어드리겠습니다. 그게 설령 제 정치생명을 위협하는 한이 있더라도.”
“그 말. 꼭 지키셔야 할 겁니다.”
1서클이나 2서클에서 빌빌거리던 때는 엄두도 내지 못하고 마나로 그냥 야료를 부려 김태양이나 조진만 등에게 사기를 쳤지만, 지금의 상혁은 7서클이다. 그리고 대마법사의 반열에 도달한 상혁은 말에 영혼과 의지를 담을 수 있었다.
언령.
그리고 그 언령을 통해 계약을 맺어 서로의 영혼에 새길 수 있었다. 상혁은 신비한 마나를 전신에 휘감은 채 그 마나를 홀린 듯 쳐다보고 있는 리창위에게 말했다.
“지금 당신의 약속과 당신의 딸을 지켜 주겠다는 내 약속은 영혼에 새겨지는 계약이자 세계가 그것을 보증하는바.”
“흡!”
쑤우욱!
상혁의 몸에서 일어난 마나가 리창위의 콧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자신의 코를 파고드는 낯선 마나에 리창위가 잠시 흠칫했지만 이미 마나는 리창위의 영혼 안에 단단히 자리 잡았다.
“계약은 완료되었습니다.”
상혁이 그렇게 말한 순간 리창위가 참았던 숨을 내뱉었다. 상혁은 놀란 기색을 숨기지 못한 채 숨을 몰아쉬고 있는 리창위에게 말했다.
“각하의 딸이 있는 곳이 어딥니까?”
“비, 비서실장을 통해 지역과 납치범에 대한 자료를 구해 왔으니 일단 브리핑을…….”
벙 쪄있던 리창위지만 딸이 언급되자 정신을 퍼뜩 차렸다. 이미 그는 상혁이 곧바로 움직일 수 있도록 브리핑 준비까지 마쳐 놓은 모양이다.
“됐습니다.”
“예?”
“대충 들었습니다. 24시간.”
“그걸 어떻게…….”
“미국.”
상혁은 그렇게만 말했다. 그 순간 리창위의 어깨가 움찔했다. 상혁의 그 한마디에서 리창위는 많은 것을 눈치챘다.
상혁이 미국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으며, 상혁이 마법사란 것을 미국에서도 알고 있다는 것. 그리고 미국은 이미 리창위의 딸이 납치되었다는 것도 알고 있다는 것까지.
‘그렇게 노력했거늘. 아직도 미국을 따라가기에는 먼 것인가.’
자본의 규모에서는 미국에 밀리지 않았다. 하지만 그 기술 격차는 따라잡을 수가 없었다. 리창위가 새삼 격차를 느끼며 침묵하는 사이 상혁이 말했다.
“어서요. 한시가 아깝습니다.”
“알겠습니다. 그럼 이동은 저희가 준비한 전용기나 한국 정부에 전투기를…….”
한시가 필요한 일이다. 그 때문에 리창위는 마지막에는 한국 정부의 전투기를 빌려 중국 상공을 통과시키는 것까지도 생각하고 있었다.
물론 이 일이 끝나면 그에 대한 후폭풍은 오롯이 그가 견뎌야 할 테지만 딸만 무사하다면 그 모든 것을 리창위는 감당할 수 있었다.
그의 절절한 부성애에 상혁은 그저 빙긋 웃었다.
“위치만 알려 주십쇼. 정확히는 좌표도 필요합니다. 위성사진도 있으면 좋고.”
“예?”
“마법에 대해 주석 각하가 이해하는 건 천분의 일도 안 됩니다. 그러니 그렇게 아세요.”
“…….”
리창위는 혼란스러운 표정을 지었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기댈 수 있는 건 이제 상혁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리창위는 밖에 대기하고 있는 비서실장을 호출해 공안과 국가안전부의 실시간 추적기록을 상혁에게 공유했다.
“텐진.”
“텐진항을 통해 빠져나갈 생각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그럼.”
좌표와 위성사진으로 해당 지역에 공간이동을 할 만한 곳을 머릿속으로 그린 상혁이 적합한 장소를 찾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따님과 해후나 준비하고 계시죠. 많이 놀랐을 테니까. 아, 여기 계셔도 무방합니다.”
스팟!
상혁의 마지막 말은 소리만 남았다. 리창위는 두 눈을 크게 뜨고 있었음에도 상혁이 지워지듯 사라지자 크게 놀랐지만, 이내 그의 눈에 희망이 깃들었다.
마법사.
마법사라면 자신의 딸을 무사히 구출해 올 수 있다는 희망을 품은 것이다.
하지만 바로 그때 날아온 비보가 리창위를 흔들었다.
“뭐? 텐진항에 테러 예고?”
“예. IS에서 지금 공식 채널로 그렇게 공표했다고 합니다. 어떻게 할까요, 각하.”
“국가안전부! 이 새끼들은 대체 뭐 하는 새끼들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