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 먹는 대마법사 214화
214. 도와주십쇼(4)
[상혁아. 더 위자드의 회장님과는 언제쯤…….]
“아, 그거. 조금만 더 기다리세요, 형님.”
[바쁘신 모양이지? 그래. 그럴 법도 하지. 기다리마.]
“예.”
백이현은 하루에 한 번씩 상혁에게 전화해 조심스레 더 위자드의 회장과의 만남에 대해서 물었다. 상혁이 한 번 자리를 잡아 보겠다고 했기 때문에 기대감이 역력했다.
“백이현 주변으로 세력이 제법 결집한 모양인데?”
“예. 비서실에서 나오는 소리로는 임원 중 상당수가 백이현 사장 쪽으로 붙었다고 합니다. 백정연 사장이 호텔&리조트를 분리하여 독립한 후로는 그런 경향이 더욱 심해지고 있습니다.”
“회장님이 신뢰를 많이 잃으신 모양이야.”
“예, 아무래도.”
백정연이 회장직에서 물러서자마자 미국에서 SG그룹을 콕 집어 나눠 주던 것들이 똑 떨어졌다. 물론 그건 상혁의 작품이었다.
백이현과 백성철.
둘 사이의 갈등과 대립을 유도하여 스스로 내부에서부터 무너지게 하기 위함이었다.
‘여기에 숨겨진 백도현이라는 비수가 콱 박히면.’
SG그룹은 정말 끝이 어딘지를 모르고 추락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걸 상혁이 백성철이 보는 앞에서 하나씩, 밀알을 추수하듯 그리 쓸어 담을 것이다.
어쨌거나 백이현은 더 위자드라는 뒷배가 절실했다. 더 위자드란 뒷배를 보고 백이현에게 줄을 댄 이들이 만약 그게 거짓이었다는 것을 알면 언제 떠날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상혁이 할 일은 이제 팝콘과 함께 강 건너 불구경만 하면 된다. 이창엽에게 몇 가지를 더 지시하고 내보낸 상혁은 김상돈 교수에게 전화를 걸었다.
“교수님.”
[이사장님! 드디어 전화를 주셨군요!]
“목소리가 들뜨신 것을 보니 좋은 일이 있으신 모양입니다.”
[있다마다요! 요새 이사장님 덕분에 제가 10년은 회춘한 것 같습니다. 하하핫.]
김상돈 교수는 과도한 업무량에도 불구하고 요새 젊어진 것 같다며 재잘댔다. 그런 김상돈의 일상을 조금 들어 주고 있자 김상돈의 들뜬 목소리가 절로 가라앉았다.
이제 본론을 꺼낼 시간이라는 소리다.
“러시아와 일본입니까?”
[예, 역시 이사장님 눈을 속일 수가 없군요.]
“용왕과 제석천을 달라고 합디까?”
[예, 하지만 중요한 문제가 있습니다.]
“방사능 때문에 그러시는 거겠죠.”
상혁은 김상돈 교수의 우려를 정확히 알고 있었다. 지금껏 용왕과 제석천은 방사능의 일부는 성공적으로 정화를 했지만, 원전 심부 정도의 강한 농도의 방사능에는 그 성능을 한 번도 시험해 본 적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런 상혁은 답을 알고 있었다.
“불가능합니다.”
[불가능…… 이요?]
“예, 특히 일본 후쿠시마 원전 같은 경우에는 더더욱 불가능합니다. 사실 체르노빌의 잔여 방사능도 결코 적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것도 불확실합니다.”
사상 최악의 원전 사고로 일컬어지는 체르노빌은 1980년대에 사고가 났다. 거의 40년이 지난 지금도 원전 사고로 인한 피해 복구는 회복되지 않았고, 원전 인근 30km 반경은 사람이 살 수 없는 도시가 되어 인근 인구 5만 명 규모였던 프리파티는 무인 도시가 됐다.
40년 전에 일어난 원전의 후유증도 그럴진대, 2012년에 일어난 후쿠시마 원전 사고는 오죽할까.
“일본 쪽에서 방사능 오염수를 태평양으로 방류한다고 했다가 국제사회에 된통 얻어맞았죠?”
[예, 그러나 유지 비용 등의 문제로 인해 곧 강행할 것으로 판단됩니다.]
“그러면 우리나라에도 피해가 오겠구요.”
[그 때문에 용왕을 일본에 판매하는 구상을 하고 있었습니다만.]
상혁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일본에서 원전 오염수를 방류하려는 이유는 동일본 대지진 당시 일어난 쓰나미로 인해 후쿠시마 원전 네 개 중 세 개가 물에 잠기며 냉각수 운용이 중단되면서 노심 융용이 일어나 방사능 누출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문제는 아직까지도 노심 융용, 멜트다운이 진행되고 있기 때문인데 그를 위해서는 지속적으로 냉각수를 집어넣어 온도를 낮춰 줘야 한다는 것이 있었다.
그렇게 원전의 노심 온도를 낮추는 데 쓰인 냉각수의 보관이 사회적인 비용과 산업적인 비용이 지나치게 많이 든다는 것이 일본이 방류를 결정하려는 중요한 요인 중 하나였다.
[사실 일본의 주장에는 무리가 많습니다. 애당초 최초에 침수가 일어났을 때 바닷물을 이용해서라도 멜트다운을 막으려고 했다면 큰 문제가 일어나지 않았을 테지만, 해수로 인해 원자로가 망가지면 막대한 손실이 일어난다는 것을 우려한 도쿄전력에서 결국 이 사태를 일으켰으니까요.]
후쿠시마 원전 사고는 인재였다. 대지진으로 인한 쓰나미와 그로 인한 침수는 자연재해지만 일본에게는 그 사고를 막을 충분한 기회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 기회를 날려 버리고는 냉각수 보관 비용과 후처리 비용이 많이 든다면서 그걸 희석해서 태평양에 방류한다고 했으니 국제사회에서 얻어맞을 수밖에.
하지만 일본은 그러더라도 방류를 강행한다는 방침을 고수하고 있었다.
김상돈은 체르노빌과 후쿠시마는 엄연히 다르다고 설명했다.
[사실 후쿠시마의 방사능 누출은 체르노빌에 비해 10퍼센트 정도 수준입니다. 체르노빌이 정상화되기까지는 최대 일만 년까지도 걸리겠지만 후쿠시마는 다행히 그 정도는 아니니까요.]
체르노빌로 인해 애먼 피해는 인접국인 벨라루스가 받았다. 만약 후쿠시마에서 체르노빌 수준의 피해가 발생했다면 그 피해는 역시 인접국은 대한민국까지 닿았을 것이다.
[그래도 여전히 위험한 건 마찬가집니다. 사실 일본 정부가 숨기고 있는 게 너무 많아요. 후쿠시마의 방사능 유출량이 걱정할 수준이 아니라고 하지만 그게 아니라는 민간 보고가 속속들이 나오고 있고요. 인근 지역의 갑상선암의 비율이 유의미하게 늘어나고 있는 것도 한몫하고 있습니다.]
체르노빌은 먼 러시아에서 일어난 일이다. 하지만 후쿠시마는 바로 대한민국의 이웃 국가인 일본에서 벌어진 일이다.
[만약 일본에서 원전 오염수를 무단으로 방류한다면 필연적으로 대한민국까지 그 여파가 밀어닥칠 겁니다. 일본에서야 그게 유의미한 변화를 일으키지 않을 것이라고 하지만…… 누가 압니까. 자연에 대해서 과학이 분석한 건 채 20퍼센트도 되지 않으니까요.]
방사능이 생태계에, 더 나아가서는 환경 시스템에 어떠한 변화를 일으킬지 아무도 알 수 없다는 것이 문제다.
만약 문제가 일어난다면 그 피해는 직접적인 인접국이나 다름없는 대한민국과 러시아, 중국 등에 영향을 끼칠 것이기 때문에 각 정부에서 나서 어떻게든 막으려 하지만 일본이 하겠다고 하면 강제할 수단은 없었다.
기본적으로 방류를 하느냐 마느냐는 일본의 내정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전 용왕이 방류되는 방사능 정도는 정화해 줄 수 있다고 생각해서 논의를 드리려고 했습니다만.]
이미 정화 마도구, 용왕은 러시아 인근 해역의 방사능을 정화하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그건 아주 미량이었을 뿐이다.
“일본이 자기네들이 약속한 대로 그렇게 할 거라 보십니까?”
[솔직히. 장담할 수 없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래서 더 용왕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일본은 냉각수를 방류하면서 그 안의 방사능 수치가 거의 영향을 끼치지 않을 정도의 조치를 취해서 방류하겠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그걸 곧이곧대로 믿는 나라는 그 어디에도 없었다.
자국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전쟁도 불사하는 것이 민족주의란 것인데 나라의 비용을 줄이기 위해 오염수를 방류한다는 일본 정부에서 야료를 부리지 않을 것이란 보장이 없었기 때문이다.
김상돈 교수의 목적은 세계의 급속도로 멸망에 다다르고 있는 환경 위기 시계를 막아 세우고, 더 나아가서는 그것을 되돌리는 것.
스스로가 환경학자로서 김상돈 교수는 확신하고 있었다.
이렇게 계속 가다가는 인류가 멸망해 버릴 것이라고. 다른 그 무엇도 아닌 인류 스스로에 의해서.
“일본과 자리를 만들어 주세요.”
[예? 그럼.]
“제가 해결하겠습니다. 아, 물론 비공식으로요. 보증은…….”
상혁은 히죽 웃었다. 이런 귀찮은 일이 일어날 때를 대비하여 만든 친구가 있었기 때문이다.
“미국 쪽에서 해 줄 거라고 하세요.”
[미국…… 예, 이사장님이 무슨 방법을 쓰려고 하시는지 모르겠지만 부탁드립니다.]
김상돈은 상혁이 마법사란 것을 알고 있다. 김상돈에게 상혁은 멸망으로 치닫고 있는 이 위기에서 수렁에 빠진 인류를 구원해 줄 구원자였다.
[이 지구를요.]
그때 상혁의 눈이 커졌다.
[퀘스트 : 시간의 역행
내용 : 일본의 오염수 방류 문제를 해결하라.
보상 : 환경 위기 시계 30분 역행, 잊힌 신의 흔적]
퀘스트.
토양을 정화하고 인체 실험의 희생자들을 구한 이후로 눈을 씻고 찾아봐도 더 이상 나오지 않던 퀘스트가 나왔기 때문이다.
“예, 그러겠습니다. 그럼.”
상혁은 서둘러 김상돈과의 통화를 종료했다. 퀘스트의 보상을 확인한 상혁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지구, 그러니까 이 세계의 의지는 상혁에게 퀘스트 형식으로 해야 할 일을 알려 주고 그 보상을 주었다.
지금까지는 그 보상은 마나이거나, 마나석 같은 것들이었는데 이번 보상은 그 이전과는 확연하게 궤를 달리했다.
“일본의 오염수 방류가 확실히 문제를 일으킨다는 소리네.”
방사능과 그것이 자연에 미칠 영향은 수많은 과학자들의 시뮬레이션과 모델링만 있을 뿐, 무슨 일이 정확하게 일어날지 제대로 된 결과를 예측한 사람은 없었다.
아직 자연 그 자체에 대한 과학의 분석이 현저히 떨어지기 때문이기도 하고, 방사능이 그 자연에 미칠 영향을 분석할 역량 역시 현대의 과학 기술로는 부족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문제를 해결하면 환경 위기 시계가 30분 정도 역행한다고 하니, 확실히 일본의 오염수 방류가 환경에 중대한 영향을 끼친다는 소리다.
“어차피 막을 생각이었고. 식탁 위에 올라오는 재료를 의심하면서 먹는 일은 없으면 하니까.”
바다는 생명의 근원이요, 보고다. 지상 위의 생명체 자체가 바닷속의 생명체로부터 시작이 됐을 것이라는 진화론만 봐도 알 수 있었다.
그런데 그 바다 자체가 오염이 되는 순간 바닷속뿐만 아니라 인류는 지상 위도 걱정을 해야만 할 것이다.
입에 들어오는 식재료가 혹여나 방사능에 오염되어 자신의 몸에 어떠한 영향을 끼칠지 모르는 두려움을 경험하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상혁이 주목한 것은 바로 그다음이었다.
“잊힌 신의 흔적?”
두 번째 보상이 난데없이 신의 흔적이란 것이 떡하니 나타났기 때문이다. 상혁은 인상을 살짝 찌푸리고는 고개를 갸웃했다.
“이 지구에도 신이 있었다고?”
잊혔다는 것 자체가 과거에는 신이 있었다는 증거다. 그리고 그 신의 흔적이 있다는 소리고. 상혁은 왜 세계의 의지가 갑자기 이걸 보상으로 꺼내 들었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마법사에게 신의 흔적을 보여 줘서 뭐 어쩌라는 건데?”
마법사는 신을 부정하는 존재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신의 존재를 인정하기는 해도 신에게서 일방적으로 받기만 하려는 신관들을 혐오하는 것이었다.
신에게 빌린 힘으로 기적을 발휘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마법사는 마나에 대한 탐구와 자연에 대한 치열한 분석과 연구를 통해 신의 힘을 빌리지 않고 기적을 일으킨다.
그런 마법사에게 신의 흔적이라.
“뭐, 몇몇 괴짜들은 신에 대해서 궁금해하기는 했지. 하지만 난 아닌데.”
지구에 신이 있었다는 사실 자체가 놀라웠다. 그러나 사실 이상한 건 아니었다. 지구 정도 되는 이 거대한 세계에, 인류라는 고등한 지성체가 탄생한 것을 보면 분명히 자연 외적인 무언가가 개입한 것이다.
신.
“하지만 왜 잊혔을까.”
고대부터 예수, 부처, 알라 등 인류는 다양한 신을 상상했고 그를 믿어 왔다. 심지어 종교 때문에 전쟁을 일으킬 정도이니 인류의 믿음이 부족해서는 아닐 것이다.
그런 신이 잊혔다는 것은 한 가지다.
“스스로가 잊히기를 바랐다면 또 모를 일이지.”
상혁은 신의 존재를 부정하지 않았다. 지구에서도 마법을 쓸 수 있고, 초아 같은 정령이 있는 것을 보면 신도 있을 법했기 때문이다.
상혁이 관심 있는 것은 세계의 의지가 원하는 것이다.
“잊힌 신의 흔적을 주는 걸 보면. 그게 지구를 살리는 데 도움이 된다는 뜻이겠지.”
세계의 의지, 즉 지구는 자신이 살기 위해 상혁이란 대리자를 찾아내 상혁에게 시련을 내려 주면서 지구가 자정할 수 없는 부분을 맡겼다.
그렇다면 그 신의 흔적이란 것도 결국은 지구 스스로가 살기 위해 필요한 부분 중 하나일 것이라는 뜻이다.
그러자 상혁의 표정이 묘하게 뒤틀렸다. 상혁의 자존심이 상했다.
“7서클 마법사인 이 몸으로는 부족하다고?”
지구의 뜻은 곧 상혁이 지금 수준으로는 부족하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상혁이 하늘을 올려다보면서 따지듯 중얼거렸다.
“확, 이거고 저거고 다 안 해 버리고 나 내키는 대로 살아 버린다?”
꾸르릉!!
맑은 하늘에 날벼락이 쳤다. 상혁은 콧바람을 흥하고 뱉어 낸 뒤 중얼거렸다.
“도와주십쇼, 하고 찾아와서 빌어도 모자랄 판인데.”
하지만 상혁은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그가 하늘을 올려다보며 세계의 의지에게 투덜거리고 있을 때, 간절한 누군가 상혁에게 도와달라고 하기 위해 비행기를 타고 입국했다는 것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