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 먹는 대마법사 212화
212. 도와주십쇼(2)
김지예를 한국대학교 용산 캠퍼스에 설립된 대학병원의 총책임자로 미끼를 놓아 덥석 잡아 버린 상혁은 팔짱을 낀 채 고열에 신음하고 있는 백도현을 물끄러미 쳐다봤다.
“만약 아버지, 어머니가 살아계셨다면.”
백도현보다 대여섯 살 많은 정도의 나이일 것이다. 애초에 백성철과 백성운의 나이 차이가 그 정도로 많이 났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당신과 내 관계가 달라졌을까?”
그랬다면 자신은 아무것도 모른 채 자랐을 것이고, 백도현을 형이라 부르면서 따랐을지 모른다. 하지만 백성철의 욕심이 그 모든 것을 망쳤고 백도현의 인생 역시 망가뜨렸다.
“참 기구해. 아마 백성철은 제 손으로 피붙이를 다 죽여야만 그 광기에서 벗어날지도 몰라.”
자신의 동생을 처리하라고 지시를 내린 것이 바로 백성철이다. 그런 백성철이 10년이 지나 자신의 아들을 죽이라고 명령을 내렸고 백도현은 오늘 죽다 살았다.
“프리지아의 왕이었던 미다스는 손에 닿는 모든 것을 황금으로 만들 수 있는 능력을 가졌지만 그 욕심 때문에 소중한 것을 모두 잃고 자신의 목숨마저도 잃고 말았지. 백성철이 꼭 그 짝이야.”
백성철은 SG회장이라는 권력에 눈이 멀어 있었다. 물론 그건 백성철의 아들인 백이현과 백도현도 다르지 않았다. 상혁은 자신이 미다스라고 꿈에도 생각하지 않을 백성철을 떠올리면서 피식 웃었다.
“뭐.”
상혁은 끙끙거리며 식은땀을 흘리는 백도현을 보며 팔짱을 풀었다.
“알아서들 잘하겠지. 어차피 SG그룹이 무너지는 건 기정사실이나 마찬가지니까. 내가 그렇게 만들 거고.”
상혁은 백도현을 마지막으로 눈에 담았다. 상혁이 그를 보는 건 이번이 마지막일 것이다. 그렇게 상혁이 몸을 돌려 바깥으로 나갔다.
탁.
그리고 문이 닫힌 순간, 끙끙거리던 백도현의 눈이 슬며시 열렸다. 복잡한 눈빛을 담은 백도현은 어두운 병원 천장을 보다가 다시 슬며시 눈을 감았다.
* * *
“누님. 안 가셨어요?”
상혁이 응급실 뒷문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던 백정연을 보고는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상혁이 모는 차를 한 번 탔다가 링거까지 맞았던 백정연이다.
“누구 때문에 갈 수가 있어야지. 겨우 기운을 차리고 보니까 벌써 이 시간이던데.”
“에이, 누님이 멀미에 너무 약하시네.”
“야! 그게 멀미야? 너 앞으로 운전할 생각은 꿈도 꾸지 마.”
“왜요. 재밌기만 한데.”
자동차를 모는 건 마법과는 전혀 다른 희열을 느낄 수 있게끔 해 준다. 말로도 느낄 수 없는 속도감을 만끽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지구로 돌아와 가장 마음에 드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자동차였다.
“재밌으려고 차를 타니? 그러다 사람이라도 치어 봐. 뉴스에 동네방네 얼굴 팔릴 텐데.”
“사고 안 내면 되죠.”
상혁은 자신 있었다. 사고를 내더라도 한 사람도 다치지 않게 할 수 있는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그걸 모르는 백정연은 상혁을 쥐어박으려는 것처럼 팔을 들었다.
“요게! 어디서 누나한테 말대꾸를!”
“어어, 그만…….”
“안 멈추면 뭐!”
“누님. 왜 이렇게 거칠어지셨어요?”
상혁이 냉큼 뒤로 물러섰다. 백정연의 사정거리에서 빠져나온 것이다. 백정연은 그런 상혁을 보고 한숨을 내쉬더니 팔을 내렸다.
“뭐, 생각해 보니까 못 한 말이 있더라.”
“못 한 말이요?”
“고맙다 상혁아.”
상혁이 멈칫했다. 백정연의 표정이 갑자기 진지해졌기 때문이다.
“뭐가요?”
“그냥. 네가 어떻게 도현이를 데리고 왔는지는 묻지 않을게. 넌 비밀이 많은 아이니까.”
“뭐…….”
“그래도 도현이는 내 동생이니까. 도현이가 살아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거든.”
백정연이 상혁을 보면서 부드럽게 웃었다. 상혁은 그런 백정연과 왠지 눈을 마주칠 수 없어 시선을 돌린 채 볼을 긁적였다.
“대단한 거 아니에요.”
“아버지지?”
“네?”
백정연도 백성철의 핏줄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녀도 백성철의 권력에 대한 광기 어린 집착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도현이를 아버지가 노리고 있지?”
백정연은 재차 상혁에게 물었다. 그리고 그건 상혁이 대답하기에 껄끄럽기 그지없는 질문이었다. 백이현이나 백도현 형제라면 모를까 백정연은 우호적인 아군이라고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대답 안 해도 돼. 짐작은 하고 있었으니까. 사실 나도 알고 있거든. 그 밑에서 자라온 내가 가장 잘 알아.”
백정연의 목소리는 서글펐다. 남들이 보기에는 남 부럽지 않은 집안에서 자라왔다고 생각하지만 그 집안에는 사실 가장 중요한 것이 존재하지 않았다.
부성애, 모성애, 화목한 가정 등등.
백정연은 씩씩한 표정을 지었다.
“가자. 태워다 줄게.”
“집으로요?”
“응. 넌 운전하면 안 되겠더라.”
“무사고 운전인데.”
“스무 살짜리가 무사고라고 해 봤자지.”
백정연이 피식 웃으면서 차를 퉁퉁 두들겼다. 상혁은 씩 웃은 다음에 어쩔 수 없다는 듯 조수석에 탔다.
“저 한 번만 믿어 보시라니까요? 사고 안 낼 자신이…….”
“됐고. 운전 벨트나 매.”
부아아앙!!
차가 출발했다.
* * *
“아빠, 저…….”
“들어가 있어.”
“아, 진짜 아빠! 죄송하다고 몇 번이나 말해야 돼요!”
리창위는 허리에 손을 딱 얹고 자신을 째려보는 유영의 얼굴을 보면서 슬그머니 웃음이 새어 나올 뻔했지만 꾹 참았다.
‘훈육할 때는 따끔하게.’
유영은 분명 잘못을 저질렀다. 그리고 그에 합당한 벌을 받고 있었다. 리창위가 유명한 팔불출이라는 것은 당내에 공공연하게 알려진 사실이지만 그래서 엄할 때는 더 엄해야만 했다.
그러지 않는다면 딸에게 너무 오냐오냐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래도 안 돼.”
“아빠!”
“네가 그곳에서 잘못됐으면 몇 사람이 피해를 볼 것 같더냐?”
“우으.”
유영은 주석의 딸이다. 리창위는 유영에게 이 사실을 몇 번이고 주지시켜 주었지만 18살에 불과한 유영이 어른스럽다고 해도 아이의 치기를 완전히 벗을 수는 없었다.
“132명이다.”
“배, 백 명이요?”
“그래. 네가 잘못되면 네가 그리 아끼는 상웨이 소교부터 시작해 그 아래, 그 위로 총 백 명이 옷을 벗어야 한다.”
“그, 그 사람들의 잘못이 아니잖아요.”
리창위는 씁쓸하게 웃었다. 세상만사가 그렇게 흑백이 분명하게 공과 과를 구분할 수 있다면 훨씬 더 편할 것이다. 하지만 이 세상은 그리 녹록치 않았다.
“네가 그걸 이해하기엔 아직 어리지. 하지만 어른들의 일이 원래 그렇단다.”
“그러면 그 사람이라도 찾아줘요.”
“백상혁. 한국인 말이냐? SG의 그 백상혁?”
“네.”
“유영아.”
안 그래도 상웨이에게도 같은 보고를 받아 리창위가 직접 사람을 시켜 알아보았다. 하지만 그 시간대에 백상혁은 중국에 있을 수가 없었다.
“백상혁이 중국에 온 흔적이 없단다. 출입국 사무소에서 기록이 없어. 그 당시 백상혁은 한국에 있었단다.”
“하지만 분명히 그 사람이었어요.”
“마법사, 그 말을 또 하고 싶은 것이냐?”
“그 사람이 그랬다니까요!”
위즈니랜드의 마법사. 두 개는 붙여 놓아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조합이다. 하지만 그 마법사가 자꾸만 사실이라고 하는 유영의 말은 믿을 수 없었다.
“그래. 백번 양보해서 그 사람이 마법사라고 하자. 그 사람이 상해에 와서 자기 형을 구해 갔다고?”
“상웨이 언니의 말이 맞다면요. 분명히 그런 말을 했어요.”
“영아, 됐다. 그만 나가 봐야 한다.”
“아빠! 제 말 못 믿죠?”
유영이 답답한 마음에 자신의 가슴을 쿵쿵 두드렸다. 그녀의 말을 다른 사람은 쉬이 믿어 주지 않았다. 그런 그들을 이해하지 못 하는 건 아니지만, 답답한 건 그녀도 어쩔 수 없었다.
“그래. 한 번 찾아보마.”
“꼭이요!”
“그래.”
리창위는 유영을 간신히 진정시킨 다음 현관문을 닫았다. 현관문을 닫고 고개를 돌린 순간 리창위는 유영에게서 보인 것과는 전혀 다른 사람으로 변했다.
“중남해에 도착하면 국가안전부장 마중 나오라고 해.”
“예, 각하.”
리창위의 얼굴에 서렸던 웃음기가 사라졌다. 웃음기가 사라진 리창위의 얼굴은 철혈의 군주 그 자체였다.
15억 중국 인민을 이끄는 중국의 주석, 리창위를 아는 사람이라면 이런 모습이 익숙할 것이다.
옛 황실 원림이자 자금성의 서쪽에 위치한 중남해는 중국의 최고위관급 집무실의 소재지이다. 동시에 전, 현직 국가수반의 가족들이 기거하는 곳이기도 했다.
그곳의 근정전에 도착한 리창위는 그 앞에 군기가 바짝 선 채 도열해 있는 국가안전부장, 총경감 펑후가 바짝 긴장한 얼굴을 한 채 경례를 올렸다.
잠시 후, 주변을 물린 리창위가 펑후를 향해 손가락을 까닥였다.
“서 있지 말고 앉으시오.”
“감사합니다, 각하!”
펑후는 앉으라고 해서 조심스레 앉았지만 가시방석 위에 앉은 듯한 느낌이었다. 며칠 전 있었던 일을 그가 보고받지 않았을 리 없었기 때문이다.
리유영.
무려 주석의 딸이 연루된 일이다. 그곳에 상해 503호실의 전투부대가 투입되었고 심지어 임무에서 실패했다.
그리고 그건 주석에게도 보고된 적이 없이 추진된 일이다.
“전후 사정은 알아 왔습니까?”
근정전에서 집무를 보는 리창위는 현대의 황제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한마디라면 중국 내에서 이뤄지지 않는 일이 없었다.
국가안전부가 숨기고자 했던 것도 리창위의 입에서 가져오라는 말이 나온 순간 끝이다.
“예.”
“그럼 설명해 보세요. 백도현의 도주는 무엇이며, 백도현이 도주한 곳에 백상혁이 나타났다는 게 무엇을 뜻하는지.”
“그 전에 각하.”
펑후는 리창위를 만나기 전에 자신의 목을 보전하기 위해 국가안전부가 보유한 모든 자원을 총동원하여 굵직한 먹잇감을 물어 왔다.
펑후는 그걸 리창위 앞에서 꺼내 놓으며 제발 이게 리창위에게 효과가 있기를 바라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프리메이슨과 관련된 일입니다. 원탁이 무너지는 데 일조한 인물이 하나 있는데, 프리메이슨, 아니 로스차일드가 그자를 극빈하게 대접했다고 합니다.”
“그자?”
“예. 한 명입니다.”
“원탁을 무너뜨리는데 손을 보탠 사람이 있다?”
그게 말이 되냐는 리창위의 말에 펑후는 침을 꿀꺽 삼켰다. 맨 처음 이 사실을 알아낸 펑후도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었다.
이것을 보기 전까지는 말이다.
“제피렐리 가문의 블랙스컬에 잠입했던 국가안전부 요원이 찍은 사진입니다.”
중국은 이미 미국 내에 일만 명에 달하는 스파이를 잠입시켰다. 그중에는 CIA나 국무부 같은 곳에서 일하는 이들도 있었다.
그리고 당연히, 중국은 원탁에도 스파이를 잠입시켜 놓았고 이파리의 잎맥처럼 뻗은 정보망에 이 사진 한 장이 걸린 것이다.
“헤르츨 로스차일드?”
“예. 로스차일드가의 가주입니다. 그리고.”
그 사진 속에는 로스차일드가의 가주인 헤르츨이 보였다. 그는 거의 사진을 찍히지 않는 것으로 유명했는데 펑후의 손에 그 희귀한 사진 한 장이 들려 있었다.
“이자는…….”
“이자가.”
펑후는 침을 꿀꺽 삼켰다.
“원탁을 무너뜨린 남자입니다.”
“말이 바뀌었군요? 조금 전에는 손을 보탰다고 하더니만.”
“이 남자가 더 위자드 코퍼레이션의 회장입니다.”
“이 사람. 동양인 아닙니까?”
사진 속 남자는 분명 동양인이었다. 펑후의 입에서 나온 말에 리창위의 눈이 커졌다. 베일에 싸인 더 위자드 코퍼레이션의 회장이 동양인이라니.
“더 위자드의 회장이 원탁을 무너뜨렸다는 겁니까?”
“예. 제피렐리 가문이 보유하고 블랙스컬이 경비를 섰던 서버실에서 저희 요원이 구한 로그 기록인데.”
펑후는 다음 장으로 넘겼다. 그곳에는 복잡한 기록이 쭉 나열되어 있었는데 리창위는 그걸 알아보지 못했기에 어서 설명하라며 손짓했다.
“제피렐리 가문 소속의 사업에 380여 개가 하룻밤에 초토화되었지만 미국 내에서는 언론 통제로 발표가 나지 않았지 않습니까?”
“프리메이슨이 공격했다고 아는데요.”
“예. 그렇게 알려져 있지만 알고 보니.”
펑후가 후, 하고 한숨을 내쉰 다음 리창위에게 말했다.
“그걸 한 게 조금 전 사진 속의 남자라고 합니다. 더 위자드의 회장.”
“뭐요?”
그 순간 리창위의 머릿속에 유영이 한 말이 스쳐 지나갔다.
‘위즈니랜드의 마법사.’
그건 말 그대로 마법 같은 초능을 쓰지 않는다면 물리적으로 말이 안 되는 일이다. 하지만 펑후의 이어진 말은 리창위를 완벽하게 혼돈 속으로 빠뜨렸다.
“더 위자드의 회장. 로스차일드가 말하는 그 자. 그리고 이번 백도현 도주 사건의 핵심 인물.”
“설마.”
“다 같은 인물입니다. SG그룹의 백상혁. 저희 국가안전부가 내린 결론은 바로 그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