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 먹는 대마법사 207화
207. 위즈니랜드의 마법사(2)
번쩍-!
상혁의 주변으로 마나가 휘몰아쳤다. 복잡한 수인이 상혁의 마나 안에 비쳤지만 금세 연기가 되어 허공으로 흩어졌다.
“상하이인가?”
휘오오오오-!
상혁의 발밑으로 바람이 크게 휘몰아쳤다. 그도 그럴 것이 상혁이 모습을 드러낸 곳은 땅 위가 아니라 지상으로부터 468m 위, 거대한 구슬 위로 솟은 뾰족한 송신탑 위였기 때문이다.
동방명주.
상하이의 랜드마크인 동방명주의 송신탑 위에 상혁이 공간이동 마법으로 단번에 서울을 넘어 상하이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아찔하구만.”
빙긋.
아찔하다고 하면서 태연하게 웃은 상혁의 모습이 허공에서 지워졌다. 투명 마법으로 간단히 자신의 모습을 감춰 혹시나 모를 귀찮은 상황에 대처한 상혁이 비행 마법을 이용해 천천히 하강했다.
빠앙-! 빠앙-!
부르르릉!
바다에 인접한 중국 제2의 도시인 상하이는 북경만큼이나 크고 사람이 많았다. 그 때문에 상혁은 벌써부터 숨이 턱하고 막히는 듯한 심한 교통체증이 일어난 곳을 크게 돌아서는 인적이 드문 건물과 건물 사이의 골목길에 착지했다.
“돌아갈 마나는 충분하고.”
상혁은 고리를 휘감고 있는 웅혼한 마나를 진정시키며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서울과 상하이의 약 900km나 되는 거리를 1분도 되지 않는 시간에 건너뛴 상혁의 마나 고리가 웅웅거리며 옅게 공명했다.
“진짜 드래곤이라도 된 기분이야.”
900km를 공간이동 마법, 텔레포트 마법으로 뛰어넘는다는 건 말도 안 되는 마나량을 필요로 한다. 대부분 공간이동을 사용할 수 있게 되는 7서클 마법사의 경우, 길어야 100km 정도를 텔레포트 하면 마나 서클의 마나를 70퍼센트가량 소모하는 것이 보통이었다.
축복받은 친화력을 가지고 태어났다거나, 대단히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나 어릴 때부터 밥 먹듯이 마나에 좋은 영약을 먹었다고 해도 200km면 많이 간 축에 속한다.
하지만 900km를 한 번에 이동할 수 있는 7서클 마법사는 없다. 8서클 마법사가 된다고 해도 그 정도 거리면 보유한 마나의 절반 이상을 쏟아부어야만 가능한 거리다.
“30퍼센트 정도 소모했나?”
하지만 무려 1억 개의 마나 실을 엮어 완성한 상혁의 마나 고리는 서울에서 상하이까지 바다를 한 번에 건너뛰었음에도 고작 30퍼센트 정도의 마나가 빠져나간 것이 전부다.
즉, 이 똑같은 짓을 왕복하고도 한 번 더 편도로 할 수 있다는 것.
7서클 마법사의 평균 마나량의 30배.
상혁은 정말 마나의 조종이라 불리는 드래곤이 된 듯한 기분을 느끼며 히죽 웃었다. 그때 상혁의 핸드폰이 지잉하고 울렸다. 일호에게서 온 전화였다.
“위즈니랜드?”
일호에게서 백도현이 위즈니랜드로 향했다는 말을 듣고 상혁은 잠시 할 말을 잃었다. 하필이면 위즈니랜드라니, 하지만 이내 다시 생각하자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잘 숨었네.”
[예. 하지만 문제는 더 이상 제가 추적할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왜. 사람이 많아서?”
[구조물이 많고 현재 위즈니랜드에만 4만 7천여 명에 달하는 방문객이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습니다.]
“그러면 직접 발로 뛰어야 한다는 소리네?”
상혁은 역시 이 세상에 쉬운 일은 없다며 입맛을 쩝 하고 다셨다. 상혁이 직접 중국까지 날아온 이유는 간단했다.
“도망쳤다는 건, 백도현도 알고 눈치를 챘다는 소리겠네.”
[위즈니랜드까지 백도현을 추적한 바에 따르면, 그렇습니다.]
“대단한 집안이야. 아비가 아들을 죽이려고 하질 않나. 아들은 아비 자리를 노려서 아비가 검찰에 잡혀들어간 사이에 모종의 음모를 꾸미질 않나.”
대체 권력이 무엇이길래, SG그룹의 회장이 무엇이길래.
저들이 저러는지 상혁은 당최 이해할 수 없었다. 하긴, 상혁은 가나안에 있을 때부터 권력자들의 그런 탐욕을 이해할 수 없었다.
“제 동생에 이어 아들까지. 천벌받을 양반이야, 그 양반도.”
상혁이 나지막이 읊조렸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상혁에게 나쁠 것은 하나도 없었다. 백도현도 제 아비가 자신을 죽이려 든다는 것을 알고 있으니 살기 위해 발버둥을 칠 것이기 때문이다.
원래 내부자에게 뒤통수를 맞는 것이 더 아플 수밖에 없는 법이다.
상혁은 제 뒤통수를 슥 만졌다. 따지고 보면 가나안에서 상혁도 그 내부자에게 시원하게 뒤통수를 맞고 죽을 뻔했었기 때문이다.
그때의 기억이 떠오르자 괜히 뒤통수가 아픈 기분이다.
“가야지 그럼.”
상혁이 대로변으로 나왔다. 그러고는 손을 뻗어 택시를 잡았다. 택시가 바로 앞에 서자 상혁은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셨다.
“위즈니랜드로 한 번에 갈 수 있었으면 좋았을 것을. 아깝네.”
상혁을 태운 택시가 출발했다.
* * *
상혁은 얼마 지나지 않아 위즈니랜드에 도착했다. 상혁이 굳이 상하이까지 오면서 위즈니랜드로 오지 않은 이유는 간단했다.
“사람이 있으면 큰일 나니까.”
위즈니랜드 주변으로는 고층 건물이 없었다. 위즈니랜드는 아시아에서도 손꼽힐 정도의 규모를 자랑하는 테마파크이기 때문이었기 때문이다.
공간이동을 하려는 자리에 혹시나 사람이 있기라도 하면 큰일 난다. 공간이동을 하려는 곳의 사람을 이물질로 받아들인 마나의 배열이 흐트러지면서 마나가 폭주, 공간이동의 범주 안에 끼어든 사람과 공간이동을 한 마법사까지 폭사해 버리게 되는 것이다.
그건 제아무리 8서클, 아니 전설 속의 9서클 마법사라고 해도 피해 갈 수 없었다.
그 때문에 실제로 가나안에서는 고위 마법사를 암살할 때 그런 방법을 종종 쓰기는 한다. 물론 대부분의 마법사란 족속들은 완벽한 안전이 구비되지 않으면 공간이동을 사용하지 않지만 그 완벽한 안전을 뚫는다면 100퍼센트 확률로 마법사를 격살할 수 있는 가장 손쉬운 방법이기 때문이다.
“동방명주야 송신탑 위에 사람이 있을 리 없으니 가능했지만, 여긴 아니지.”
공간이동에 성공하더라도 주변에 보는 눈이 너무 많았다. 상혁은 사방에 깔린 인파를 보며 혀를 내둘렀다.
와글와글.
웅성웅성.
들어가기 위해 표를 사야 하는 매표소 줄이 거의 500m 가까이 늘어서 있었다. 더 기가 막힌 건 그런 줄이 한두 개가 아니라 거의 열 개에 달한다는 점이다.
“표를 사려고 기다리는 사람만 3천 명이라니.”
그러니 안에 4만 7천 명이나 되는 사람이 있다는 게 이해가 됐다. 과연 중국다운 머릿수라고밖에 할 수 없는 광경에 상혁은 혀를 내둘렀다.
슥.
당연히 상혁은 500m나 되는 줄을 기다리지 않았다. 투명 마법으로 간단히 줄을 넘은 상혁은 사람이 그나마 드문 곳에서 환영 마법을 풀고 투명 마법을 풀었다.
“인식장애.”
인식장애 마법까지 걸어 주변 사람들이 자신을 기억하지 못하게 만든 상혁은 근처 안내소에서 위즈니랜드의 지도를 확인하고는 잠시 할 말을 잃었다.
“일호.”
[예, 마스터.]
“이 정도로 크다고는 한 적이 없는 것 같은데?”
[분명 말씀을 드렸습니다. 마스터. 2016년도에 개장한 위즈니랜드는 390만 제곱미터의 부지에…….]
390만 제곱미터.
약 120만 평.
“미친…….”
[참고로 390만 제곱미터는 서울 중구의 40퍼센트가량 되는 면적으로 상당히 큰 부지에 속합니다. 마스터.]
“나도 알아. 그러니까 이러는 거지.”
상혁의 머리가 아파지기 시작했다. 말이 120만 평이지 이 넓은 땅에 백도현이 숨은 걸 대체 어느 세월에 찾아낸단 말인가.
“아니, 가능은 하겠지. 근데 귀찮아서 그렇지.”
파리나 새 같은 곤충과 동물을 잡아다가 패밀리어를 걸면 된다. 그러면 상혁은 이 자리에서 가만히 이 넓은 땅을 다 둘러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도 생명체여서, 고작 파리와 새로 390만 평을 다 둘러본다면 얼마나 걸릴지 알 수 없었다.
“기각. 패밀리어가 잘못됐다가는 부작용이 너무 크니까.”
게다가 패밀리어는 잘못 쓰면 마법사 하나를 골로 가게 만들기에 딱 좋은 마법이다. 패밀리어를 건 대상에게 문제가 생기는 순간 마법사에게도 큰 타격이 오기 때문이다.
차라리 아예 1서클이나 2서클에 불과한 수준이라면 상혁이 충격을 완화하거나 흘려 낼 수 있지만 패밀리어는 서클이 높으면 높을수록 부작용이 큰 마법 중 하나였다.
그러니 7서클인 지금 그 마법을 잘못 사용하면 기껏 쌓아 올린 공든 탑이 무너질 수도 있었다.
“CCTV는?”
[위성사진으로 위즈니랜드를 훑어본 결과 대략 3천 개 정도 설치되어 있습니다.]
“미쳤네. 그럼 실시간으로는 못 잡는다고 봐야겠고.”
CCTV가 300대도 아니고 3,000대다. 그 정도 수준이라면 주요 구역으로 정해 놓은 곳을 제외하고는 위즈니랜드에서도 상시적으로 모니터링하고 있을 수는 없을 것이다.
“결국 그냥 발로 뛰어야 된다고?”
[감지 마법을 적극 활용하시는 걸 권장합니다. 그리고 서두르시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왜?”
[공안 쪽에서 5분 전 출동 전화를 받고 공안 100여 명이 위즈니랜드 쪽으로 움직였습니다.]
“공안?”
상혁의 눈이 날카로워졌다 공산 국가인 중국에서 공안의 권력은 민간인에게는 무소불위다. 그런 공안이 한두 명도 아니고 100명이나 움직였다.
“백도현을 놓친 놈들이 공안을 동원한 건가?”
[그런 것으로 사료됩니다. 하지만 국가안전부의 정보는 접근하기 힘들어 그들의 동선을 파악하는 데는 실패하였습니다. 죄송합니다, 마스터.]
“아냐. 충분히 네 할 일을 다 했다.”
일호의 재능은 천부적이다. 그게 일호의 영혼이 한 단계 진화하는 기적을 맞이하면서 일어난 결과인지는 모르겠지만, 인간이 아닌 서번트가 학습 능력을 보유하게 되며 일호는 단기간에 웬만한 전문 해커들을 뛰어넘는 실력을 갖추게 된 것이다.
하지만 그게 만능인 것은 아니었다.
특히 중국은 북한과 러시아와 함께 전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사이버 정보전이 가능한 국가다. 그렇기 때문에 일호의 능력이 출중하다고는 하나 결국 종이 한 장 차이이기 때문에 아차 하는 순간 지금처럼 장님이 되는 건 어렵지 않은 일이다.
[마스터. 헤르츨 님에게 연락해 보시는 건 어떻겠습니까?]
“헤르츨?”
일호의 의견에 상혁은 잠시 고민하다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위즈니랜드가 프리메이슨의 대기업인 건 맞지. 도움을 줄 수 있을 거야. 하지만.”
위즈니랜드의 모기업인 위즈니는 세계에서 가장 큰 공룡급의 미디어 그룹이다. 전 세계를 휩쓸고 있는 가장 강력한 IP 중 상당수가 위즈니에 속해 있었다.
이 위즈니랜드 역시 그중 하나다. 그리고 위즈니의 실질적인 주인은 바로 프리메이슨이다. 그러니 프리메이슨의 맹주인 로스차일드의 조력이라면 불필요한 시간을 줄여 줄 것이다.
그러나 그들에게 손을 내밀어서는 안 된다.
“그쪽에서 주는 만큼 나도 줘야 한다는 걸 잊지 마. 그들과 난 비즈니스 파트너지 친구가 아니니까.”
친구라 부른다고 해서 반드시 친구인 건 아니다. 헤르츨이 상혁을 친구라 부르는 건 상혁의 마법이 욕심이 나기 때문이다.
“이 정도도 못 하면 마법사란 이름이 아깝지.”
[제 생각이 짧았습니다, 마스터.]
로스차일드의 조력을 받는 건 기각이다. 대신 상혁은 고개를 좌우로 뚜둑 꺾었다.
“이보다 더 힘든 것도 해 봤잖아.”
언제부터 자신이 일호의 조력으로 살아왔단 말인가. 상혁은 오랜만에 한 번 땀 좀 내 보기로 결심하고는 두 눈을 지그시 감은 채 마나를 끌어 올렸다.
“마나 디텍트.”
파아아앗-!!
감지 마법이 발동하며 상혁 주변으로 마나의 파동이 뿜어져 나갔다. 마나 디텍트는 말 그대로 마나를 감지하는 마법이다.
즉, 마나가 없는 이 지구에서는 아무런 쓸모가 없는 마법이란 뜻이지만 만약 상대가 마나를 품고 있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걸려라. 걸려라.”
백도현은 마나를 품고 있었다. 상혁이 직접 백도현에게 암시를 걸었기 때문이다. 그가 평생 속죄를 하길 바라며 건 암시이지만 어쨌거나 마법은 마법이다.
즉, 여기 390만 제곱미터가 되는 거대한 위즈니랜드에 마나를 품고 있는 건 백도현 딱 한 명뿐이라는 것.
사아아아-!!
상혁을 주변으로 마나가 파문을 그리며 퍼져 나갔다. 7서클 마법사의 감지 마법은 꽤 넓은 반경을 뒤덮는다. 그러나 이건 공간이동 마법처럼 마나가 많다고 하여 무한하게 넓은 범위를 커버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지끈.
“여기까지.”
감지 마법은 말 그대로 일정 반경 내를 무작위로 감지해 내는 마법이기 때문에 상혁의 뇌가 감당 가능한 만큼의 정보만 처리할 수 있었다.
아무런 소득 없이 두통만을 얻은 상혁이지만 표정은 그리 어둡지 않았다.
“시작이 반이잖아.”
이 세상 모든 일이든 시작이 반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제 390만 제곱미터인 이 위즈니랜드를 적당히 쪼개 빠르게 이동하며 감지 마법을 펼치면 된다.
“블링크.”
번쩍.
환영 마법을 자신이 있던 자리에 세워둬 갑자기 사라진 것처럼 보이지 않게 조치를 취한 상혁이 블링크 마법을 이용해 위즈니랜드를 빠르게 누비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