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 먹는 대마법사 206화
206. 위즈니랜드의 마법사(1)
중국의 오랜 숙원 사업은 과거의 영광을 되찾는 것이다.
대중화(大中華).
과거 세계가 중국과 그 지배자인 천자를 위주로 돌아갔던, 그 시기로 돌아가고자 하는 것이 중국의 오랜 꿈이다. 그로 인해 중국은 21세기 이후 경제력이 가파르게 성장하며 세계 최강대국의 자리를 수십 년째 고수한 미국과 서서히 대립각을 세우며 존재감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미국과 서구에 의해 정립된 질서를 중국을 중심으로 하여 다시 정립해야 한다는 의미에서 나온 일대일로 등 굵직한 국가사업을 주도하며 미국의 질서에서 벗어나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하고 있는 중국은 미국의 입장에서도 강력한 경쟁자였기에 쉬이 경시할 수 없었다.
15억의 인구, 거대한 땅덩어리.
중국의 잠재력은 미국도 인정하고 있는바, 미국은 일찍부터 한국과 일본을 동원하여 중국을 견제하고자 노력하곤 했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 현재까지 이르자 점차 중국의 발전으로 인해 미국의 영향력은 서서히 줄어가고 있었고, 그로 인해 중국은 점점 더 목소리를 크게 내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럼에도 절대적으로 변하지 않는 사실이 있었다.
아직 중국의 국력은 미국의 그것을 넘기에는 한참 모자라다는 것.
세계 2위의 경제 대국으로 발돋움하였다고는 하나 그건 중국이 가진 15억이라는 인구가 떠받치는 노동력을 기반하여 산출된 결과일 뿐, 질적으로는 미국과 크나큰 차이가 있었다.
또한 군사력 역시 중국이 가파르게 따라잡는 중이라고는 하나 여전히 현대과학의 정수는 미국의 군사력을 떠받치고 있었기에 미국과 중국 사이에 전쟁이 난다면 높은 확률로 미국이 승리하게 될 것이 자명했다.
그에 중국은 한편으로는 미국과 아시아의 여러 문제를 놓고 대립각을 세우면서도 다른 곳으로 눈길을 돌렸다.
그 대상은 중국과 바로 인접 지역에 위치한 한국.
5,000만밖에 되지 않는 인구에, 중국의 한 개 성보다도 작은 땅덩어리임에도 불구하고 그 작은 나라가 가진 강력한 국력의 비밀을 궁금해하던 중국은 그것이 기술력에 있다는 것을 20세기 초반에 깨닫는다.
중국 입장에서는 자신처럼 거대한 인구를 가진 나라에, 경제의 상당수가 수출에 의존하는 한국은 작지만 살이 꽉꽉 들어찬 아주 먹음직스러운 먹이었다.
그러니 군침을 흘리며 달려들 수밖에.
중국은 어마어마한 자본을 동원하여 한국의 기술력을 빼내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했다. 한국 정부는 기술 유출을 막기 위해 안간힘을 썼지만 국가라고 해서 개인의 변심을 모두 막을 수는 없었다.
그중 중국이 가장 관심을 가진 분야는 바로 반도체 분야였다.
반도체 기술은 대한민국의 SG전자가 전 세계적으로 비교해도 견줄 곳이 몇 없는 독보적인 기술을 보유하고 있었고, SG전자를 글로벌 기업으로 만들어 주는데 가장 큰 캐시카우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반도체는 현대의 거의 모든 분야에서 필요로 하는 것이기 때문에 중국은 SG전자를 벤치마킹하여 국가 단위 사업으로 반도체 굴기에 나서며 국가에서 키워 낸 인재들을 총동원하여 반도체 개발에 착수하지만, SG전자의 아성을 넘지 못했다.
그렇게 되자 공산당도 오기가 생겼다.
반드시 저 소국을 넘어, 전 세계에 중국 이름이 박힌 반도체를 보급하겠다는 ‘100년반도체대계’를 세워 한편으로는 국가 단위의 개발을 추진하고, 다른 한쪽으로는 산업의 기밀을 캐내기 위한 인력을 동원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그때 공산당은 의외의 인물의 손을 잡게 된다.
백성철.
치열한 후계자 경쟁 끝에 갓 회장에 오는지 몇 년 되지 않았던 백성철이 먼저 중국에게 손을 내민 것이다.
최신 반도체 기술은 줄 수 없지만 약간 다운그레이드된 반도체 기술을 넘기는 대신, 중국에게 손을 더럽혀 달라 부탁한 것이다.
중국은 흔쾌히 백성철의 손을 잡았다. 그리고 백성운을 처리하고, 그 집안을 풍비박산 냈다. 그리고 SG전자의 기술을 전수받은 중국은 금세 SG전자를 넘을 수 있을 것이라 호언장담하며 개발에 박차를 가했지만 SG전자는 외계인을 납치해 놓고 기술을 빼내는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중국과 격차를 벌리며 지금까지 반도체 생산 쪽으로는 압도적인 점유율을 자랑했다.
그리고 공산당 주석이 우두머리로 있는 태자당을 백성철이 15년 만에 다시 찾은 것은 중국에게 있어 또 다른 기회로 여겨질 수밖에 없었다.
“쫓아! 못 잡아 오면 다들 모가지 날아갈 줄 알아!!”
상하이 시청 503호실을 쓰고 있어 ‘503호실’이라 더 자주 불리기도 하는 국가안전부 상하이 지부에서 노성이 터져 나왔다.
이번 일의 실질적인 실무자이면서 책임자이기도 한 찐웨이청 경감이 거세게 소리를 지르자 그 아래 계급인 경독과 경사들이 어깨를 파르르 떨었다.
“이 일은 부부장께서 직접 시키신 일이야. 그런데 놓쳐? 그것도 일반인을? 이 소식이 알려진다면 너희 중 몇이나 목이 날아갈 것 같으니? 나까지 포함해서 말이야!”
찐웨이청이 씩씩거렸다. 그러자 잔뜩 기가 눌린 경독 하나가 억눌린 목소리로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걱정 마십시오. 곧바로 경원들을 모두 풀어 상하이를 이 잡듯이 뒤지고 있습니다. 그러니 금방 잡을 수 있을 겁니다.”
“말만 하지 말고! 내가 이런 것까지 신경 써야겠어? 빵쯔 하나 붙잡아 놓는 것 하나 못 했다는 게 윗선에 알려지면 모두 끝장이야! 알아?”
국가안전부는 한국으로 따지면 국정원이요. 미국으로 치면 CIA다. 그들에게는 상관의 명이 곧 하늘의 명이나 다름없었다. 수직관계가 대단히 엄격하고 성과에 예민했기에 임무 하나 실패로 수백 명이 옷을 벗는 건 흔히 벌어지는 일이었다.
그리고 개중에 민감한 정보를 많이 알고 있다거나, 이 자가 국가안전부에서 나간 뒤 입을 열면 나라가 곤란해질 것 싶으면 쥐도 새도 모르게 시체도 남기지 못하고 사라지는 경우가 허다했기 때문에 찐웨이청은 신경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었다.
“제기랄. 하필이면!”
소국에서 탈출시킨 빵즈는 윗선에서도 관심을 가지고 있던 인사였다. 국가안전부 부부장이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뜻은 사실 명령이 그보다 더 윗선에서 내려왔다는 소리이기 때문에 아주 작은 실수도 용납될 수 없었다.
이번 일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하여 내년쯤 2급 경감으로의 승진을 노리고 있던 찐웨이청에게는 빵즈가 도망갔다는 소리가 마치 청천벽력일 수밖에 없었다.
“무조건 잡아야 돼. 팔다리가 없어도 돼. 살아만 있으면 되니까. 알았어?”
“예, 경감님.”
그때 경원 하나가 후다닥 뛰어들어왔다. 진노한 기색의 찐웨이청을 보고 흠칫했지만 경독 하나가 손짓을 하자 쪼르르 달려와 무언가를 경독의 귀에 속삭였다.
“경감님. 찾았습니다.”
“찾았다? 어디에?”
“빵즈가 위즈니랜드로 숨었다고 합니다.”
“뭐??”
찐웨이청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당장 공안을 파견해 위즈니랜드의 영업을 중지시키고 안에 있는 고객들을 내보내며 한 명씩 검사하다 보면 나오지 않겠습니까? 제깟 놈이 날개가 달린 것이 아니라면 말입니다.”
“이 새끼!”
빠악-!
“악! 겨, 경감님!”
“너, 누구 목 달아나게 할 일 있어?”
“예?”
찐웨이청은 세상 물정 모르는 경독의 말에 기함하면서 그의 정강이를 걷어찼다. 원래였다면 국가안전부는 사람들을 다 내쫓는 일을 아무렇지도 않게 했을 것이다.
하지만 찐웨이청이 이렇게 기겁하는 데는 이유가 있었다.
“오늘 그곳에 누가 와 계신지 몰라서 그래? 무려 주석 각하의 금지옥엽이신 유영 아가씨께서 그곳에 오셨단 말이다.”
“예에에엣!?”
중국의 주석.
최근 당대회를 통해 거의 황제와도 같은 권력을 부여하여 신시대의 황제로 군림하고 있는 주석의 금지옥엽이 위즈니랜드에 있다니.
“젠장. 이건 당에서도 기밀이다. 쓸데없는 파리들이 꼬이지 않기 위해 북경 1호실에서 은밀히 상하이 수뇌부에게만 알린 일이란 말이다.”
하지만 하필이면 빵즈가 위즈니랜드로 향하다니. 그곳을 공안이 들이닥쳐 들쑤시는 순간 자신은 끝장이다.
“무조건. 무조건 아가씨에게 들키는 일이 없어야 해. 알았어? 그 새대가리 같은 머리에 똑똑히 새겨넣으라는 말이다!”
* * *
“후욱, 후욱.”
백도현은 천천히 호흡을 조절하면서 지친 몸을 기댔다.
‘하. 백도현. 갈 데까지 갔구나.’
백도현은 남루한 자신의 행색을 내려다보며 자조했다. 평생을 이태리 장인이 만든 것이 아니면 입지 않았던 그다. 하지만 지금 백도현은 대충 도주로 근처의 빨랫줄에 걸려 있던 옷을 손에 잡히는 대로 주워 입은 상태였다.
그 채로 어울리지도 않는 모자를 쓰고 있어 꽤 우스꽝스러운 모양새였지만 이곳이 위즈니랜드라는 것이 천만다행이었다.
“튀진 않네.”
인형탈이 여기저기 돌아다니고 있었고 형형색색의 장식들이 도처에 있었으며 그 사이를 딱 봐도 수천이 넘는 인파가 몰려다니고 있었기 때문에 백도현이 행색이 눈에 띄진 않았기 때문이다.
제아무리 국가안전부라고 해도 수천, 수만의 인파 속에 숨은 자신을 쫓는 것은 어려울 것이다. 백도현은 심호흡을 하고는 어깨를 쭉 폈다.
“이제 어떻게 한다.”
일단 도망치기는 했다. 우연에 우연이 겹쳐 도주에 성공했지만 이제부터가 문제다. 지나가다가 공안에게라도 걸리는 순간 그대로 끝장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백도현은 의지를 꺾지 않았다.
“죽더라도 그냥 죽어 드릴 순 없지요, 아버지.”
백도현은 자신이 살 확률이 지극히 적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자신은 그들에게 백성철과 거래를 할 도구에 불과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신의 아버지는 아들을 구하기 위해 저들의 요구를 들어줄 인물이 아니다.
‘아버지라면 저들을 이용해 나를 확보한 후, 일부러 요구를 들어주지 않아서 저들로 하여금 날 죽게 만들 사람이니까.’
중국이 원하는 것은 뻔하다. SG전자의 사장으로 각국의 사정에 훤하던 백도현이 가장 경계를 기울인 건 중국의 산업스파이다.
그만큼 중국은 SG전자의 반도체 기술에 관심이 많았는데, 백성철이라면 그걸 미끼로 자신을 이들에게 팔았을 것이다. 그러고는?
‘주지 않으면 그만이니까.’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면 중국은 백도현을 죽일 것이다. 그렇게 되면 백성철은 자신이 나서지 않고도 코를 풀게 되는 셈이다. 중국이 그런 세세한 사연까지 알고 있을 리 없기 때문이다.
[속죄하라.]
“할 겁니다. 그런데 하려면 일단 살아야 해요.”
그때 백도현의 머릿속에서 사죄하라는 울림이 터져 나왔다. 백도현은 더 이상 그 소리에 괴로워하지 않았다. 백도현이 이리 살려고 발버둥을 치는 것도 자신이 아무것도 밝히지 않은 채 죽는다면 백성철의 만행을 세상에 알릴 사람이 없어지기 때문이다.
‘내가 살아야 할 목적은 아버지의 폭주를 막는 것이다.’
그것이 자신이 속죄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백도현은 땀이 살짝 식자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중국의 안면인식 기술이라면 머지않아 나를 포착할 수 있겠지.’
중국은 인권이 없는 나라다. 초상권이나 여타 인권 문제로 인해 타국에서는 기술이 있어도 적용할 수 없는 것들을 중국은 거침없이 현장에 적용했다.
그 때문에 중국의 안면인식 기술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수천, 수만 인파가 운집한 이 위즈니랜드에서도 정확히 백도현의 안면을 인식해서 추출할 수 있을 만큼.
그러니 그 전에 변장해야 한다.
마침 이곳에는 변장할 것들이 많았다.
끼익.
백도현은 인형 탈을 쓴 이들이 들어가는 곳을 미리 관찰한 후, 사람이 없을 때 은밀히 그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고는 그 안에서 위즈니랜드의 세계관에 존재하는 수백 개의 캐릭터 중 하나를 골라 그것을 뒤집어썼다.
‘정아가 와 보고 싶어 했는데.’
그 탈을 보니 자신의 딸인 정아가 생각났다. 하지만 다시는 보지 못할 딸이다. 다시 봐서도 안 된다. 자신은 마지막에 만행을 폭로하기 전까지 죽은 사람으로 있어야 한다.
‘후우. 가자.’
백도현은 개 모양의 인형 탈을 뒤집어썼다. 위즈니랜드 세계관에서 세 번째로 인기가 많은 레옹이란 캐릭터였다.
깜찍한 개 탈을 뒤집어쓴 백도현이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그때, 누군가 다가와 백도현의 팔짱을 착 끼면서 소리쳤다.
“꺄악! 레옹이잖아? 나 레옹 진짜 좋아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