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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 먹는 대마법사-203화 (202/249)

쓰레기 먹는 대마법사 203화

203. 더 위자드를 찾아라(3)

정부에서만 더 위자드를 만나고자 움직인 것이 아니었다. 특히 더 위자드가 SG건설에 15조를 투자했다는 뉴스가 뜨자마자 대기업들도 더 위자드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던 것이다.

2위 천명그룹.

자동차와 IT 쪽으로 강세를 보이고 있는 천명그룹이 특히나 더 위자드의 행보에 관심을 가졌다.

오죽하면 회장 주재로 임원총회의가 열릴 정도였기 때문이다.

“오셨습니까, 사장님.”

“예. 앉으시죠.”

드르륵.

천명그룹에서 앞 글자를 따서 만든 CM, 씨엠 자동차의 사장인 천용재가 나타나자 임원들이 우르르 일어나 고개를 꾸벅 숙였다.

그는 천명그룹의 회장인 천병관의 장남으로 전통의 제조업과 미래 산업의 중간 포지션에 있는 자동차인 씨엠 자동차를 맡고 있었다.

천용재는 자리에 앉은 뒤 반 정도밖에 차지 않은 자리를 보고는 혀를 쯧하고 찼다.

“수연이는 아직 안 왔습니까?”

“예? 하하하하. 뭐…….”

“하긴, 그 관종이 하는 짓이야 늘 똑같죠.”

천용재는 한심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에게는 거의 15살 차이가 나는 여동생이 하나 있었다. 그 여동생은 천용재의 가장 큰 라이벌이었다. 그리고 그 여동생은 죽는 한이 있더라도 누군가에게 지는 것을 용납하지 못했다.

어딜 가든 자신이 주인공이어야만 했다. 그래서 지금처럼 이런 유치한 짓을 벌였다는 걸 천용재는 잘 알았다.

달칵.

잠시 후 문이 열리더니 천수연이 여왕처럼 들어왔고 그 뒤를 나머지 절반의 임원이 우르르 뒤따랐다. 그렇게 들어온 천수연이 자리에 앉자 임원들이 그녀를 뒤따라 자리에 착석했다.

“어머. 일찍 왔네, 오빠?”

“여긴 집이 아닙니다, 천 사장님.”

“오빠를 오빠라 부르지 뭘, 딱딱하게.”

천수연이 싱긋 눈웃음을 지어 보이며 천용재를 살살 긁었다. 천용재는 그런 천수연과 영혼부터 단 하나도 맞지 않는다는 것을 절실하게 느꼈다.

“어쨌거나, 원하면 그렇게 불러드리죠. 천 사장님.”

“예, 감사합니다.”

“별말씀을. 그나저나 얼굴이 많이 상하셨네요. 중국에 까였다더니 그것 때문인가 봐요?”

“천 사장님, 말 가려 하세요.”

천수연이 날린 잽에 천용재가 얼굴을 딱딱하게 굳혔다. 최근 중국에 공장을 지으려다가 공산당에 까인 것 때문에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런데 그 아픈 곳을 천수연이 냅다 찔렀기 때문이다.

“미안요. 난 위로해 주려고 한 건데.”

“날 위로해 줄 시간이 없을 텐데요. 씨엠 때문에 천 사장님도 기자 앞에서 허리 좀 숙이시던데. 그래서 Z포털이나 따라잡을 수 있겠어요?”

꿈틀.

천용재의 반격에 이번에는 천수연의 눈초리가 꿈틀거렸다. 얼마 전 천수연은 씨엠의 포털 사이트에서 외부 해커에 의한 개인정보 유출 건 때문에 대국민 사과를 해야만 했다. 수년째 공고한 1위를 수성하고 있는 Z포털을 넘기 위해 공을 들였던 것이 수포로 돌아갔기 때문에 씨엠의 손해가 이만저만 아니었던 것이다.

1:1.

임원진들은 날카로운 공방을 주고받는 천용재와 천수연을 보면서 조용히 입만 다문 채 열심히 두 사장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었다.

“꽤 아프네요, 천 사장님.”

“내가 천 사장님께 가르쳐드린 거라.”

“하, 됐어요. 여기서 누가 잘났니 하면서 주고받아봤자 둘 다 손해잖아요. 휴전하죠.”

먼저 뒤로 물러선 것은 천수연이다. 천수연이 씨엠을 맡은 뒤 특유의 젊은 감각으로 씨엠의 체질을 개선하며 호실적을 낸 것은 맞았다.

그리고 스타성이 있는 그녀답게 다른 대기업의 로열패밀리들과는 달리 적극적으로 미디어를 이용해 대중들과 스킨쉽을 하며 그녀의 인지도를 높인 것까지는 좋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녀보다 10년은 먼저 천명그룹에 들어와 자신의 자리를 다진 천용재를 넘을 수는 없다.

그렇기 때문에 웬만하면 늘 천수연이 뒤로 한발 물러서곤 했다. 어차피 대개 가만히 있는 천용재를 먼저 자극한 것이 천수연이기에 그런 일이 되풀이되곤 했다.

어쨌거나 두 사장이 휴전하자 분위기가 부드럽게 풀렸다. 그제야 임원진들이 서로서로 인사도 하고, 자그맣게 이야기를 나누는 소리가 깔렸다.

천수연은 핸드폰을 한 번 확인한 뒤 무뚝뚝하게 앉은 천용재에게 말했다.

“오빠, 계속 그렇게 꽁해 있을 거야?”

오빠라고 부른다는 것 자체가 지금은 사장이 아니라 동생이라는 뜻이다. 천수연의 말에 천용재의 눈 끝이 약간 풀렸다.

“꽁해 있는 거 아니다.”

“에이, 거짓말. 내가 오빠 표정을 모를까.”

“그럼 적당히 해. 우리가 경쟁 관계인 건 맞지만 협력 관계이기도 하니까.”

“어구구. 우리 오빠가 나에 대한 의가 상할 뻔해쪄요?”

천용재는 고개를 휙 돌렸다. 천수연은 키득거리며 웃었다. 천용재와 천수연의 관계는 이렇게 모호했다. 차기 천명그룹 회장을 두고 경쟁하는 관계이기도 하면서 사적으로 오빠와 동생 관계가 그리 나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엄밀히 말하면 나이 차이가 열다섯이나 났기 때문에 거의 어린 천수연을 천용재가 업어 키운 격이다.

그렇기 때문에 천수연이 천용재에게 덤비는 건 경쟁자인 오빠가 아니라 아빠에게 어리광을 피우는 느낌이 날 때도 있었다.

그러니 방금처럼 그런 날 선 말을 주고받으면서도 상황이 끝나면 지금처럼 스르르 풀리는 것이기도 했고 말이다.

“됐다. 내가 너랑 무슨 이야기를 더할까.”

천용재는 혀를 끌끌 찼다. 천수연의 저 통통 튀는 성격 때문에 그녀는 사람들에게 호불호가 갈렸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늦둥이로 태어난 천수연을 아버지인 천병관이 끔찍이도 아낀다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제가 주인공이 아니면 못 견디는 것이겠지.’

어릴 때부터 단 한 번도 혼난 적이 없으니 그럴 만했다. 그때 천수연이 손가락을 살랑거리며 말했다.

“오빠는 혹시 아는 거 있어?”

목적어가 빠진 말이었지만 천용재는 알아들었다. 지금 한국 재계의 초미의 관심사에 대한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알았다면 벌써 움직였겠지.”

“하긴. 나도 그랬을 거 같으니까. 대체 누굴까?”

“글쎄다…….”

588조의 투자금을 굴리는 세계 최대의 투자법인인 더 위자드 코퍼레이션. 그 어디에서도 낌새조차 보이지 않던 회사가 떡하니 나타난 다음 미국 시총 10위에 들었다.

588조라면 SG그룹이나 천명그룹을 합친 것과 거의 비슷한 수준의 덩치다. 그곳의 회장이 누구인지, 어디 소유인지에 대해서는 미국이나 한국이나 다들 추측만 할 뿐 정확한 정체를 아는 사람이 없었다.

“미국 국부펀드라는 소리도 있던데. 진짤까?”

“그러면 국부펀드라고 밝혔겠지.”

“그러면 일루미나티나 이런 거 아니야?”

안 그래도 미국 쪽에서 로스차일드와 연관되었다는 소리가 비밀리에 흘러나왔다. 월가에 나온 찌라시였지만 그렇게 나온 가십 중 맞는 경우도 있었다는 점에서 그냥 흘려보낼 말은 아니었다.

더 위자드 뒤에 로스차일드가 있다.

588조, 달러로 따지면 무려 4,500억 달러의 회사가 만들어지는데 정부에서 그것을 모를 리 없다. 하지만 정부에서 잠잠했다는 건 미리 누군가 약을 쳐놨다는 뜻이고 그럴 만한 영향력이 있는 곳은 로스차일드밖에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거의 정확했지만 그 추측을 사실로 만들어 줄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모르겠다.”

“아우, 진짜 궁금하네. 회장은 미국인? 아니면 유대인? 대체 누굴까?”

“누구건 간에 확실한 건 하나 있지.”

“뭔데?”

천용재가 눈을 빛냈다.

“588조, 아니 그중에 16조는 썼나? 남은 562조를 어떻게, 누가 투자받느냐에 따라 미래가 바뀔 수도 있다는 거.”

“그래서 아버지가 회의도 소집하신 거지?”

“뭘 모른 척을 하고 그래.”

천용재는 순진무구한 표정을 짓고 있는 천수연을 보며 말했다.

“네가 부탁드렸다면서.”

“어머? 그걸 어떻게 알았어, 오빠?”

“나도 귀가 있으니까.”

천수연이 씩 웃었다. 개구쟁이 같은 웃음이었다. 천용재는 그런 천수연을 보며 말했다.

“딱 우리에게 필요한 회사야.”

“투자가 필요하니까?”

“응, 그것도 큰 투자가.”

천용재는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이다. 사업을 하는 사람이 리스크 없이 간다는 건 말도 안 된다.

“지분 달라고 할 텐데.”

“줄 거야 난.”

“오빠?”

천수연의 눈이 커졌다. 지분은 로열패밀리의 전부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는 미래의 향방을 가를 수 있는 가장 중요한 무기다.

“그러니까 너도 결정해야 할 거야.”

천용재는 자신의 생에 있어 마지막일지도 모르는 거대한 모험을 단행하기로 했다. 그의 나이도 40대 후반이 접어들었으니 마지막으로 몸을 던질 수 있는 기회다.

올 오어 나띵(All or Nothing).

“뭘?”

“자동차 지분을 걸고 테크의 지분을 가져올 생각이니까 난.”

천수연이 잠시 할 말을 잃은 듯 입을 뻐끔거렸다. 설마 천용재의 다짐이 그 정도일 줄은 몰랐다는 표정이었다.

“미쳤어.”

“미친 짓은 너가 더 잘하잖아.”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지분을 걸면서까지 그래야 해?”

벌컥!

천용재는 답을 하지 않았다. 그에 천수연이 다시 캐물으려는 찰나 문이 열리더니 머리가 하얗게 센 천병관이 들어왔다. 묵직한 기세를 풍기는 그는 아무 말 없이 들어와 자리에 앉았다.

“총회의. 시작하지. 오늘의 안건은 간단하니까. 더 위자드 코퍼레이션.”

천병관이 양쪽에 앉은 천용재와 천수연을 차례대로 쳐다보면서 말했다.

“그곳의 투자를 받아 씨엠 테크를 만들까 하는데. 주 사업은 씨엠 자동차와 씨엠에서 개발하던 자율주행과 AI를 통합하여 새로운 시장을 미리 선점하는 것이고. 어떻게 생각들 하나?”

천병관이 내민 주제에 임원 중 몇은 장고에 빠지기도, 몇은 기다렸다는 듯 눈을 반짝였다. 갈수록 심화되는 기술 경쟁에 자체 기술 개발의 필요성과 미지의 시장을 개척해야 한다는 필요성을 모두가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칫 잘못하다가는 그냥 고꾸라질 수도 있었다. 그렇기에 각 임원의 성향에 따라 다양한 의견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것 하나만큼은 모두가 같았다.

더 위자드 코퍼레이션을 잡아야 한다면, 그들이 투자한다면 그걸 받는 건 다른 회사가 아니라 바로 천명그룹이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 * *

정부와 재계에서 상혁을 찾기 위해 나섰다.

하지만 그들이 찾는다고 해서 떡하고 나올 상혁이 아니다. 상혁은 정부와 재계에서 자신을 찾는다는 소식을 이미 박상원을 통해 여러 번 들었지만 깔끔하게 모두 무시해 버렸다.

“나를 찾아낸다면 모를까. 그러기 전에는 별로 만나볼 생각 없습니다.”

[그러면 전부 제 선에서 처리합니까? 좀 거세서…….]

“이 기회에 그냥 한국지부장이 아니라 더 위자드의 부회장 정도 되시는 게 어떠실지.”

[예?]

상혁의 말에 박상원이 황당하다는 듯 대답했다. 만약 지부장이란 것 때문에 찾아오는 사람들과 직접 담판을 짓기가 어렵다면 그 직급을 올려 주면 될 일이다.

“그거 좋네요. 왜 그 생각을 못 했지?”

[회, 회장님!]

“오늘부터 부회장 하세요. 모든 전권 드릴 테니까. 그럼 바빠서 끊습니다.”

[잠깐만요! 회장…….]

뚝.

상혁은 박상원의 전화를 끊었다. 그러고는 로스차일드 쪽에 연락해 더 위자드의 내부 직급을 그리 바꿔 달라고 부탁한 후 기지개를 쭉 켰다.

“뭐, 언젠가는 찾아내겠지.”

상혁이 더 위자드의 회장이라는 것이 언제까지나 비밀로 유지될 것이라고는 기대하지 않았다. 어차피 이 세상에 영원한 비밀이란 없었기 때문이다.

무슨 비밀 회사나 페이퍼 컴퍼니도 아니고, 상혁은 자신이 더 위자드의 회장이라는 걸 언제까지고 숨길 생각도 없었다.

그러나 적어도 지금은 아니다. 열심히 자신의 정체를 추측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자신을 찾을 시간 정도는 줄 생각이었다.

“누님.”

“상혁아.”

그 사이 상혁은 백씨 일가의 본가, 백성철의 자택에 도착했다. 그 입구에서 백정연을 만났는데 그녀는 꽤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백성철.

그가 드디어 검찰에서 나왔기 때문에 집안의 가장 큰 어른을 만나러 상혁과 백정연이 본가에 도착한 것이다.

“후우.”

“누님, 왜 그렇게 긴장했어요? 그룹 때문에?”

“응. 얼떨결에 내가 회장을 하긴 했는데…….”

임시회장. 그것도 전혀 회장 후보군에 들지 않았던 백정연이 임시회장에 올랐고 심지어 제법 잘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그것과 백성철을 만나는 것은 전혀 별개의 일이다. 상혁은 긴장한 백정연을 보며 빙긋 웃었다.

“걱정 마요. 칭찬을 받았으면 받았지 욕먹을 일은 없으니까. 누님은 호텔이나 리조트를 어떻게 하면 잘 받을까만 생각하세요.”

“알았어.”

백정연의 두 눈이 침착해졌다. 어차피 백정연은 그녀가 원했던 것만 받아 내면 된다. 그녀가 원한 것은 그룹 전체가 아니라 그녀의 손길이 곳곳에 닿은 호텔&리조트뿐이다.

회장직을 받은 것도 독립하기 위함이었다.

“내가 도와줄게요.”

“어떻게?”

“다 방법이 있어요.”

상혁이 히죽하고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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