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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 먹는 대마법사-199화 (198/249)

쓰레기 먹는 대마법사 199화

199. 누구시라고(4)

“움직였습니다.”

김태양이 긴장이 역력한 표정으로 상혁 앞에 섰다. 상혁은 그 말에 눈을 반짝이고는 김태양에게 말했다.

“몇 주 동안 관찰한 거죠?”

“거의 4주가량 됩니다.”

“그러면 웬만한 건 다 꿰고 있다고 봐야겠네요.”

“예.”

백성철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정확히는 백성철 밑의 김대엽이 움직였다고 봐야 한다. 혹시나 모를 상황을 대비해 모든 책임은 백성철이 아니라 김대엽이 져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상혁은 이미 예전부터 백성철이 백도현의 생사 여부를 알았고, 그를 추적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렇게 유도한 것이 바로 상혁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요?”

“중국 쪽에서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오, 중국.”

김태양이 흠, 하고 헛기침을 했다. 그것 때문에 전 국정원 출신의 요원 중 중국 경험이 있는 요원들이 중국으로 총출동을 해야만 했다.

“정말 중국과 모종의 관계가 있었던 모양이네요?”

“예. 김대엽 비서실장이 중국 대사관에 은밀히 다녀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중국 대사라. 공산당과 연을 맺은 모양이군요.”

상혁은 로스차일드에서 알아낸 정보가 거의 정확한 정보임을 확인했다. 그게 아니고서는 지극히 배타적인 공산당에서 김대엽을 만나줄 리 없었기 때문이다.

‘그룹 회장에 오르기 위해 회사 기밀을 유출하고, 그 대가로 동생을 죽인 걸로도 모자랐던 모양이군.’

상혁은 분노를 차갑게 묵혔다. 대신 상혁은 일호를 불렀다.

“부르셨습니까, 마스터.”

일호가 나타났다. 김태양은 일호를 보고는 뒤로한 발자국 물러섰다. 상혁이 가장 신뢰하는 것이 일호임을 잘 알고 있었고, 무엇보다 일호는 지금껏 김태양이 보아 온 다양한 인간들 중 가장 다재다능한 인간이었다.

“중국의 주석궁을 흔들어.”

“예, 마스터.”

상혁의 말에 일호는 말을 덧붙이지 않았다. 김태양만 눈이 휘둥그레 해져서는 둘 사이에 오가는 대화를 따라잡지 못했을 뿐이다.

하지만 일호가 일언반구 왜냐고 묻지도 않고 나가자 김태양은 입을 뻐끔거리다가 꾹 다물었다.

‘생각이 있으시겠지.’

중국이 섣불리 SG그룹의 일에 개입하려는 것을 막기 위한 방도가 있을 것이다, 라고 김태양은 생각하기로 했다. 애초에 상혁이 생각하고 행동하는 건 무언가 상식의 궤도를 넘어선 경우가 자주 있어 왔기 때문이다.

‘조금 더 거침없어진 느낌.’

그리고 그게 저번 미국 방문 후 더욱 거침이 없어진 것 같았다. 그러나 그게 김태양에게 나쁠 것은 없었다. 여기저기 눈치 봐야 했던 국정원 시절과는 달리 상혁의 밑에서는 다른 곳 눈치 볼 필요 없이 상혁이 하라는 것만 가차 없이 해 버리면 그만이었기 때문이다.

그로 인해 벌어질 일은 전부 다 상혁이 알아서 책임을 졌다.

‘보상도 확실하고.’

그러니 마음이 편하게 일을 할 수밖에. 그때 상혁이 김태양에게 말했다.

“더블아이는 그 사람들 찾아봐.”

“사람들이라고 하시면…….”

“백도현의 사람들. 박정철이나 그 아래 사람들.”

백도현이 죽었다는 소식이 나면서 백도현을 따랐던 이들은 사실상 공중에 붕 뜬 상태다. 그리고 박정철은 아예 숨어 버렸다. 백도현이라는 방파제가 사라지자 자신에게까지 불똥이 튈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예. 만약 찾아내면.”

“일 시켜야지. 누구 마음대로 숨어. 비밀을 가진 자가 쉽게 살 수 있는 세상은 어디에도 없어.”

“대령하겠습니다.”

“좋아.”

상혁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정장을 챙겨입었다. 그때 김태양이 상혁에게 말했다.

“그럼 백도현은 그대로 둡니까?”

“왜. 중국 애들 손에 넘어갈 것 같아서?”

“아닙니다. 마스터께서 계시면 접근도 못 할 테니깐요. 그래도 혹시 모르니 골렘이라도 대기시켜 놓으시는 것이…….”

골렘은 제피렐리 가문의 산하에 있던 세 경호회사의 알짜배기들만 모아와서 만든 더 위자드 코퍼레이션의 경호회사다.

한국에 입국하면서 미국에서 들고 다녔던 살벌한 무기들은 거의 반납을 해야 했지만 김태양은 그들의 비밀을 알고 있었다.

“평택에 가는 시간이 더 오래 걸려.”

로스차일드의 입김을 통해 그들이 사용할 수 있는 중화기를 평택 기지에 따로 준비해 놓았다. 그렇기 때문에 여차하면 그곳에 가서 전장을 여러 번 넘나든 인간병기들을 대한민국 땅에 언제든 풀어 놓을 수 있었다.

그들을 이용하면 중국의 움직임을 사단에 차단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상혁은 그들을 사용할 생각이 없었다.

“골렘은 더 위자드와 내가 지정한 인물을 보호하는 데에만 쓸 예정이야.”

“아, 예. 그렇게 알고 있도록 하겠습니다.”

상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나가 봐. 나도 SG건설 쪽에 들어가 봐야 하니까.”

“백이현 사장을 만나러 가십니까?”

“한번 보자고 하는데. 무슨 이야기 하는지는 들어 봐야지.”

상혁이 히죽 웃었다. 로스차일드를 등에 업었다는 소문으로 최근 바닥까지 떨어진 자신의 위신을 다시 세우고 있는 백이현이다.

가서 무슨 말을 할지 아주 기대가 됐다.

“재밌을 것 같아.”

* * *

“내게 온 마지막 기회다.”

백이현이 눈을 반짝였다. 주총회장에서 그가 보였던 추태로 백이현의 평판은 바닥이었다. 거기에 라먼 헤르텔, 삼합회의 위장기업이 백이현에 대한 지지를 철회하면서 백이현의 세력은 왕창 쪼그라들었다.

오죽하면 아무런 기반도 없던 백정연이 임시 회장직을 하는데 백이현이 단 한 번도 태클을 걸 수 없었을 정도다.

하지만 갑자기 미국 쪽에서 먼저 계약하자고 다가온 덕분에 SG건설의 최대 실적을 기록했고 그 때문에 그가 전혀 예상치 못한 소문이 찌라시를 통해 퍼져 나가고 있었다.

“철저하게 준비하겠습니다.”

“좋아. 더 위자드 코퍼레이션은?”

“한국 지부장이 들어오기로 했습니다.”

“어디 출신도 모르는 놈들이 기어들어 온 것인지. 그래도 그놈들이 쥐고 있는 주식이 꼭 필요해.”

“명심하겠습니다.”

유원태가 깍듯하게 고개를 숙였다. 백도현 사건으로 인해 백이현이 은밀히 물밑에서 지원하던 황제파가 박살이 나고 조철왕이 감옥에 갔다.

삼합회와 이어졌던 끈이 끊어지고 황제파까지 잃은 백이현은 마지막 모험을 목전에 두고 있었다.

“상혁이는?”

“곧 들어오실 예정이십니다.”

“하. 내가 이제는 동생에게까지 머리를 숙여야 하다니.”

백이현이 씩씩거렸다. 그는 아직도 밤마다 주총의 악몽을 꾸며 깜짝 놀라 깨어나곤 했다. 모든 판이 깔렸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갑자기 일어난 악몽 같은 비극에 백이현은 어깨를 부르르 떨었다.

“하지만 결국 참고 기다리다 보면 기회가 오는 법이야. 결국 살아남는 놈이 이기는 법이고. 마지막 패가 뒤집히기 전까지는 아무도 어떻게 될지 모르는 일이잖아.”

“맞는 말씀이십니다.”

유원태가 맞장구를 쳤다. 백이현이 욕심 가득한 눈으로 창밖을 쳐다봤다.

“로스차일드에 대한 소문의 진위가 드러나지 않도록 단속 철저하게 해.”

“예.”

“그리고 다시 돌아서려고 하는 주주나 임원들에게는 정중하게 대해 주고. 나중에 배신자들을 쳐 내는 한이 있더라도 내가 다시 실권을 잡아야 해.”

“예, 맡겨 주십시오.”

백이현이 입가에 비열한 미소를 머금었다.

“정연이에게 상처를 주고 싶진 않았는데. 내 자리에 버티고 앉아서 내려올 생각을 안 하니 어쩔 수 없지. 오빠로서 마음이 매우 아파.”

“바로 움직이도록 하겠습니다.”

“그래. 여자가 SG그룹 같은 대기업 총수직을 하는 건 여러모로 어려울 수밖에 없지. 동생이 상심이 클 거야. 선물이라도 준비해 둬야겠어.”

백이현은 백정연의 비밀을 쥐고 있었다. 백정연을 흔들기 위해서는 백정연 개인사를 들춰 외부에서 시끄럽게 만들어 백정연의 공고한 지위를 흔드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었다.

“백정연이 10년 전에 연애하던 남자가 SG그룹의 반도체 기밀을 캐내서 중국에 넘기려고 했던 산업 스파이다. 백정연은 사랑에 눈이 멀어 회사의 기밀을 넘기려고 했던 그런 전적이 있는 여자다.”

여자란 것과 SG그룹의 총수라는 것. 이 두 가지는 백정연에게 있어 치명적인 비수가 되어 돌아갈 것이다.

여자로 사는 건 대한민국에서 여러모로 불리한 점이 많았다. 특히 권력을 쥘수록 그랬는데 한국의 잣대가 여성에게는 더욱 엄격하고 치명적이기 때문이다.

백이현이 노리는 것도 바로 그 지점이다.

백정연을 ‘여자’란 프레임에 가둬 두고, 사랑이란 것을 들이밀어 백정연의 개인사를 들춰 SG그룹 총수로서의 자질을 의심받을 수 있도록 흔들겠다는 것이다.

“착수하겠습니다.”

“좋아.”

그때 비서실에서 전화가 들어왔다. 상혁이 들어왔다는 연락이다. 백이현이 얼른 자리에서 일어났다.

“한국대학교 쪽에 간 주식이 몇 퍼센트지?”

“4.9퍼센트입니다.”

“더 위자드까지 합치면 최소 10퍼센트는 확보군.”

SG그룹의 산하인 한국대학교도 법인의 이름으로 SG그룹의 주식을 보유하고 있었다. SG그룹의 이사장을 대대로 오너 일가의 최측근이나 오너 일가 중 한 명이 맡아 왔기 때문이다.

백성철이 전 이사장인 최만금을 경계하면서도 그를 내치지 못했던 것 중에 하나가 바로 그 때문이다. SG그룹의 주식 4.9퍼센트는 결정적인 캐스팅 보트 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에 회장과 의견이 엇나가도 회장이 함부로 이사장을 내칠 수 없게 만드는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하지만 역대 이사장 중에서는 그렇다고 하여 이걸 악용하거나 남용한 사람은 없다. 법인이기 때문에 이사장이 원한다고 하여 무조건 권한 행사를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고작 4.9퍼센트로 SG란 대기업의 회장과 맞설 수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백이현은 상혁을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여 한국대학교가 보유하고 있는 주식을 제 거수기로 사용할 생각이었다.

“어차피 내 편을 들기로 했던 상혁이니까. 조금만 잘 대해 주면 헤벌쭉하면서 내 손을 잡을 거다.”

백이현은 확신했다. 상혁이 자신의 라인이라 굳게 믿었기 때문이다.

“하. 어쩌다 보니 도현이에서 정연이로 내 경쟁자가 바뀐 거지.”

백성철이 검찰에서 나오고 있지 않았다. 백정연이 기록한 실적이 주주들의 단단한 신임을 사고 있었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알아서 계약을 싸 들고 와서 내놓으며 유례없는 실적을 기록하고 있었기에 SG그룹의 주식은 국민주로 등극하여 무수히 많은 주주들을 양산하고 있었다.

이런 가운데 백정연을 밀어내고 회장이 된다?

자칫 실적이 줄어들어 주가가 떨어진다면 그 순간 주주들의 원망을 사게 될 것이다. 그 리스크를 백성철이 감당할 리 없다.

“난 아버지와는 달라.”

하지만 백이현은 이때 백정연을 치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잠시 후 상혁이 사장실에 나타났다.

“상혁아.”

“형님. 오랜만에 뵙습니다. 얼굴이 많이 상하셨습니다.”

“원래 기업인에게는 이런저런 일이 일어나곤 하는 법이지.”

“여기 선물입니다. 얼마 전 미국 출장을 다녀오는 길에 샀습니다.”

상혁이 포도주 한 병을 내밀었다. 제피렐리 소유의 프랑스 와인 밭에서 난 라벨이 없는 포도주다. 그리고 로스차일드는 그 와인 밭을 더 위자드에 양도했다.

“라벨이 없구나?”

“상업적으로 팔 이유가 없는 와인이라서 그렇습니다.”

“오.”

그리고 백이현도 라벨이 안 붙은 와인이 특별한 와인이란 것을 알고 있었다. 외부에 유통하기 위해 생산한 와인이 아니라는 뜻이기 때문이다.

재벌일수록 특별한 것에 목을 맨다. 누구나 구할 수 있는 유통되는 와인이 아니라 특별하게 만들어진 와인이 더 구미를 당기게 하는 법이다.

“귀한 선물 고맙구나.”

“별말씀을.”

상혁이 그렇게 말하면서 웃었다. 백이현은 상혁이 역시 자신의 라인이구나, 하고 생각하며 상혁을 자리로 안내했다.

“앉거라. 미국에서 좋은 성과를 올렸다면서?”

미국 유수의 IB 리그 대학과 자매결연을 맺었다. 심지어 미국이 아니라 영국, 프랑스, 독일의 유명 대학에서도 한국대학교에 오퍼를 넣었다.

아시아의 대학이 그렇게 많은 서구권의 대학과 결연을 맺은 사례는 없었다. 그것도 일방적으로 한국대학교에만 유리한 결연이었다.

“대단한 성과라고 뉴스에서 극찬하더구나. 거의 무료로 결연 대학에 유학을 갈 수 있는 길이 한국대학교에 열렸다지?”

“운이 좋았습니다.”

“운. 그거참 중요하지.”

백이현은 상혁에게 주식에 대해서 언제 이야기를 꺼내야 하나 간을 보았다. 그런데 그때 비서가 백이현의 귀에 속삭였다.

“더 위자드 한국지부장이 들어왔습니다.”

“뭐?”

백이현이 상혁의 눈치를 슬쩍 봤다. 상혁은 그런 그에게 부드럽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중요한 손님이신 것 같은데, 먼저 뵙고 오세요, 형님. 전 시간이 좀 있습니다.”

“그래도 되겠니?”

“예.”

백이현이 상혁에게 고맙다고 세 번쯤 연거푸 말한 뒤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상혁은 홀로 남았다. 혼자 남겨진 상혁은 피식 웃으며 다리를 꼬았다.

“어차피 다시 들어오실 텐데요.”

그리고 잠시 후.

상혁이 장담하듯 말한 대로 밖에서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리더니 문이 열리고 백이현과 더 위자드의 한국지부장이 들어왔다.

저벅, 저벅.

“반갑습니다 백상혁 님. 전 더 위자드 한국지부장인 박성원이라고 합니다.”

박성원.

상혁에게 구원을 받았던 그가 더 위자드의 한국지부장이 되어 두 눈에 반가움을 한가득 담은 채 상혁에게 고개를 꾸벅 숙였다.

그리고 그런 상혁의 눈에 뒤에서 놀란 표정을 감추지 못한 채 경악하고 있는 백이현의 얼굴이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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