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 먹는 대마법사 198화
198. 누구시라고(3)
똑똑똑.
새롭게 출범한 SG 환경재단은 더 위자드 컴퍼니로부터 정확히 100m 떨어진 빌딩에 입주했다. 그곳의 단장으로 취임한 김상돈 교수는 환경에 대한 중차대한 사명감을 갖고 있던 중, 용산 오염을 정화한 상혁에게 완전히 매료되어 마법이란 비밀을 듣고 상혁이 만든 환경재단의 책임자로 취임했다.
“백상혁입니다.”
벌컥!
문이 벌컥하고 열렸다. 그러고는 김상돈 교수가 거의 버선발로 뛰쳐나오듯 상혁의 손을 붙잡고는 반갑게 그를 안으로 직접 안내했다.
“왜 이제야 오셨습니까.”
“죄송합니다. 미국에서의 일이 길어지는 바람에.”
“농담입니다. 맨해튼대학교와 자매결연, 그리고 유수의 IB 리그 대학교와 한꺼번에 자매결연을 맺으셨다면서요. 그것 때문에 교수계가 한동안 꽤 시끄러웠습니다. 허헛.”
하버드, 스탠포드, 콜롬비아 등 세계의 석학들을 배출했고 그 석학들을 교수진으로 두고 있는 손꼽히는 최고 명문대에서 알아서 계약서를 들고 한국대학교를 찾았다.
그것 역시 자신을 ‘친구’라 부르는 헤르츨의 작은 선물 중 하나였기에 상혁은 빙긋 웃었다.
“운이 좋았습니다.”
이게 전부 미국에서 7서클에 오른 덕분에 가능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김상돈 교수는 상혁을 자신의 집무실을 거쳐 더 안쪽으로 안내했다.
“용산 캠퍼스에 관련 학과를 신설하고 연구소를 갖추기까지 시간이 걸릴 것 같아 임시로 이 안쪽에서 정화 연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어쩐지. 교수님께서 연구 일선에 나서실 줄은 몰랐습니다.”
“어허헛. 전 환경학자로 평생을 살아왔습니다. 솔직히 책상 앞에 앉아 서류만 보는 것보다는 랩과 현장을 돌아다니는 게 편한 사람입니다.”
홍채 인식과 지문 인식을 거쳐 두터운 문이 열리자 대학 연구실을 옮겨 놓은 것 같은 공간이 드러났다.
상혁은 이 공간에서 김상돈이 홀로 연구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혼자 하고 계신 겁니까?”
“예. 그 마법이란 거, 다른 사람에게 설명할 근거가 필요하니까요. 이미 설명하지 못할 게 너무 많지 않습니까?”
“과학적 근거를 찾으시려는 것이군요.”
“예. 그래야 그 비밀을 더 지킬 수 있을 테니까요.”
김상돈은 나름의 노력을 하고 있었다. 상혁의 마법은 지구의 환경위기를 해결할 수 있는 결정적인 수단이지만, 문제는 그게 다수의 사람들에게 이해시킬 수 없는 개념이라는 것 때문이다.
과학으로 설명할 수 없다면 비과학적인 미신이나 종교로 나아가야 한다. 그런 신비는 당장 눈앞의 문제는 해결할 수 있을지 몰라도 멀리 보면 자칫 더 큰 위기를 초래할 수 있었다.
‘그렇게 해서는 안 돼. 백상혁 씨는 지구의 보물이니까.’
김상돈은 그런 사명감에서 상혁의 신비에 과학적 근거와 토대를 마련하고자 홀로 고군분투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그의 순수한 열정과 사명감에 상혁은 환하게 웃었다. 자신이 사람을 잘못 보지 않았다는 안도감이 들었다.
“그래서 성과는 있습니까?”
“아직. 그 마나라는 것을 일단 밝혀내는 게 최우선이라 주고 가선 용왕으로 여러 실험을 하고 있습니다만.”
김상돈은 랩 안에 설치된 거대한 수조와 그 안에 든 용왕을 보며 감탄을 금치 못했다.
“저 작은 마도구 하나가 어마어마한 양의 오염을 정화한다는 걸 실제로 두 눈으로 보고 나니 감탄을 금치 못하겠더군요. 그리고 말씀하신 제석천도 마찬가지입니다.”
김상돈의 두 눈에서 작은 열기가 피어올랐다. 그의 과학자적인 호기심과 환경학자로서의 사명감을 상혁이 주고 간 용왕과 제석천이 제대로 건드렸기 때문이다.
참고로 제석천은 상혁이 구기동 저택의 지붕 위에 만든 공기 여과기였다. 전기집진식 필터 방식을 마법적으로 풀어내 오염물질을 끌어모은 뒤 상혁이 마나로 재사용할 수 있도록 만들어 주는 것에 제석천이란 이름을 붙였다.
하늘의 신과 바다의 신.
김상돈은 연신 입에서 침을 튀기면서 용왕과 제석천이 얼마나 대단한지 설명하는 데 여념이 없었다.
“지구에 있는 하천과 여러 유해 물질로 오염된 공기는 이 용왕과 제석천을 충분히 공급할 수 있다면 10년 내 10퍼센트 수준까지 오염도가 떨어질 수 있다는 게 제 결론입니다. 시뮬레이션을 한 번 돌려보면…….”
그냥 가만히 내버려 뒀다가는 그의 말이 끝날 것 같지 않았기 때문에 상혁은 김상돈의 말을 끊을 수밖에 없었다.
“진정하시구요. 하지만 마나에 대한 건 증명이 불가능하다, 라는 말씀이시죠?”
“예. 그 부분만 해결이 된다면 이건 노벨상을 30년 동안 받아도 이상하지 않을 성과입니다만. 일단은 용왕과 제석천을 각 정부에 도입하도록 설득하는 작업 자체가 쉽지 않을 것 같아서 고민입니다.”
이미 눈으로 보이는 성과는 해결이 됐다. 러시아의 문제를 해결하며 용왕이 가진 정화 능력이 각국의 지도부에 입증이 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건 결과를 분석하니 그랬다는 뜻이고, 진짜 용왕이 어떠한 능력을 지녔는지를 입증을 해야 하는 것이 관건이다.
그런 절차가 없이는 각국 정부가 바보도 아니고 제대로 원리가 과학적으로 입증도 안 된 용왕을 공식적으로 도입할 리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상혁은 그런 김상돈 교수를 보며 빙긋 웃었다.
“교수님은 이걸로 돈을 버는 게 목표가 아니시죠?”
“예? 물론입니다. 애초에 돈을 좇았다면 환경학자를 하지 않았겠지요.”
그가 허허 하고 웃었다.
“그럼 그 문제는 걱정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예? 혹시 마나를 과학적으로 증명한 곳이 있습니까?”
“아니요.”
상혁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김상돈 교수는 알쏭달쏭한 표정을 지었다. 그의 의구심 어린 시선에 상혁이 씩 웃으며 말했다.
“과학적인 원리를 입증하지 않아도 도입할 수 있다면 해결되는 문제이지 않습니까?”
“예? 그렇게 되면 이사장님께서 마법사라는 게 문제가 될 수도 있습니다.”
신비.
그 신비를 감추지 않으면 결국 그 신비를 노리는 이들의 표적이 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노리는 이들은 십중팔구 국가권력이 될 가능성이 높았다.
“괜찮습니다. 애초에 마나라는 걸 숨길 생각도 없었으니까요.”
상혁은 태연하게 대답했다. 김상돈 교수의 속도 모르면서 말이다. 김상돈 교수가 다시 상혁에게 말하려고 했지만 상혁이 한 발 더 빨랐다.
“괜찮은 ‘친구’도 구했고. 어차피 걱정하시는 일은 일어날 수가 없으니까요. 보여 드리죠. 걱정하실 필요가 없다는 걸.”
상혁이 핸드폰을 들었다. 그러고는 태평양의 텅 빈 공해의 좌표를 구했다. 그러고는 김상돈에게 손을 내밀었다.
“가시죠.”
번쩍!!
상혁과 김상돈이 텔레포트를 이용해 연구실에서 사라졌다. 그리고 30분 뒤 다시 상혁과 김상돈이 연구실에 모습을 드러냈다.
“어떻습니까?”
“…….”
상혁은 머리카락 하나 흐트러진 것이 없이 정돈된 반면 김상돈 교수는 쓰고 있는 안경이 삐뚤어지고 머리가 쥐 파먹은 것처럼 까치집을 이루고 있었다.
방금 김상돈은 마법사가 일으킬 수 있는 재해를 확인하고 왔다.
아무것도 없이 망망대해만 펼쳐져 있는 태평양의 너른 바다 위로 폭풍이 몰아치고, 해일이 일어나며 불의 비가 내리는 것을 처음 본 것이다.
그러자 김상돈은 비로소 깨달았다.
“후우. 이해했습니다. 마나를 설명할 필요가 없다는 사실. 그걸 받아들이지 못하는 나라만 손해를 보게 되겠군요.”
“그렇습니다. 참고로 미국은 아무런 일언반구 없이 받아들일 겁니다.”
“말씀하신 그 ‘친구’ 때문입니까?”
상혁은 아무 말 하지 않은 채 그저 빙긋 웃어 보였다. 김상돈은 그 미소를 보고 허허 웃더니 눈을 반짝하고 빛냈다.
“뭐, 그게 중요한 게 아니겠지요. 그럼 전 그때 이사장님께 도움이 되도록 용왕과 제석천의 정화 결과에 대해서 논문을 작성하도록 하겠습니다.”
“예.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이거.”
상혁이 큼지막한 다이아몬드가 박힌 새로운 정화 도구를 꺼내 놓았다. 지금까지 상혁이 만들어 낸 마도구는 수질 오염과 대기 오염을 부작용 없이 거의 완벽하게 해냈다.
김상돈의 눈이 반짝거리며 빛났다.
“방사능 오염을 개선해 주는 마도구입니다“
“방사능! 정말입니까?”
“네“
상혁이 7서클에 올라서게 된 계기는 아이언 포레스트의 방사능 덕분이다. 그 경험을 바탕으로 상혁은 방사능 정화 마도구를 만들어 냈다.
“이건, 혁신적인 발명품입니다“
“이름은 알아서 붙여 주세요. 아마 러시아나 일본 쪽에서 관심이 많을 겁니다“
체르노빌과 후쿠시마.
아직 지우지 못한 러시아와 일본의 상처가 저것 하나면 아물 것이다. 그러자 김상돈 교수가 생각이 났다는 듯 손뼉을 짝 치면서 말했다.
“퀴리 부인. 어떻습니까?”
방사능을 발견한 과학자의 이름이다. 상혁은 재밌다는 듯 피식 웃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하세요.”
* * *
“회장님.”
박성철이 희미하게 웃었다. 자신을 회장이라 부르는 자신의 오랜 친우이자 비서실장인 김대엽 때문이다.
“회장이라니. 이미 정연이가 회장 노릇을 잘하고 있다고 하던데.”
“어차피 회장님께서 돌아오시면 돌아설 여론입니다. 회장님께서 쌓아 올린 SG그룹이니까요.”
“그렇게 말해 주니 말이라도 고마워.”
박성철의 머리는 길게 자라 있었다. 사실 이미 한참 전에 박성철은 나가려고 마음먹었다면 검찰에서 나갈 수 있었다.
하지만 백이현이 헛발질을 하고, 주주들이 백정연을 임시회장으로 세웠다는 소리를 들은 백성철은 섣부르게 움직이는 것보다 이 안에서 바깥의 동향을 관찰하는 것에 주안점을 두었다.
그러나 지금 백성철의 관심은 SG그룹이 아니라 다른 곳으로 향해 있었다.
“정확한 위치를 찾아냈습니다.”
“어디?”
“인천항 인근 공해상에 접안하지 않고 체류비만 내면서 떠 있는 컨테이너선이 있었습니다.”
“등잔 밑이 어두웠군.”
“죄송합니다.”
백성철은 자신의 차남인 백도현이 죽은 것이 아니라 누군가에 의해 구류되고 있다는 것을 안 후 백도현을 찾기 위해 백방으로 수소문했다.
“우리 일가에 대한 전방위적인 공세야. 도현이를 두고 무슨 수작을 부릴지 알 수 없으니 찾거나, 못 찾는다면 죽이거나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해야 돼.”
백성철의 두 눈이 냉철해졌다. 그는 최악의 상황에는 자신의 아들을 죽여야 한다고 말하고 있었다. 김대엽은 그 말에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이현이나 정연이에게 접근한 사람은?”
김대엽은 여전히 명색이긴 하지만 그래도 비서실장이었다. 그리고 그를 따르는 비서들이 많았기 때문에 회사 내에서 그의 영향력은 여전했다.
비록 백정연이 임시회장을 맡은 뒤 그룹 전체의 매출이 급격히 올라가며 주가가 연일 상한가를 치자 주주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고 있었다고 해도 김대엽의 자리는 견고했다.
“미국 쪽에서 이현이에게 사람을 보냈다는 소문이 돌고 있습니다.”
“왜?”
“건설 관련하여 미국 쪽에서 계약이 성사되었는데, 계약을 맡긴 기업들이 전부 한 가문의 소속이기 때문입니다.”
“로스차일드?”
“예.”
백성철 회장의 얼굴이 진지해졌다. 로스차일드가 정말 백이현에게 손을 보태준 것이라면 경영권이 흔들릴 수 있었다.
“로스차일드 쪽에서 특별히 우리 그룹 주식을 매입하거나 그런 움직임은?”
“최근 공시 직전까지 주식을 매입한 쪽에서 손바뀜이 있었습니다.”
“로스차일드?”
“아니요. 개인에서 더 위자드 코퍼레이션이라는 회사로 바뀌었습니다. 최근 새롭게 창설된 회사로 자본금만 588조가 넘는 회사입니다.”
백성철이 턱을 쓰다듬었다. 그도 귀가 있기에 들어서 알고는 있었다. 그런데 그쪽으로 5퍼센트에 가까운 주식이 넘어갔다는 것이 무언가 께름칙했다.
“더 위자드가 로스차일드 계열일 확률은?”
“미국 내 소문이 돌긴 도는데, 더 확실해지면 보고드리겠습니다.”
“그렇게 하고.”
백성철이 김대엽에게 말했다.
“태자당 쪽에 연락을 넣어. 확실하게 일 처리 해 달라고.”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국내는 믿을 수 있는 사람이 없어. 그러니까 확실하게 해야돼. 공해상에서 무슨 일이 벌어져도 뉴스에 나지 않도록 언론 통제도 철저하게 하고.”
“예, 회장님.”
백성철의 주름진 눈가가 떨렸다. 하지만 이내 백성철은 두 눈을 질끈 감았다.
‘회사를 위해서다. 어떤 희생이 있더라도 내 전부인 그룹만큼은 지켜야 돼.’
“한 놈 정도는 생포하도록. 그 배후를 알아내야 하니.”
“예, 회장님.”
백성철 회장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소식은 김대엽이 검찰을 나가자마자 어딘가로 전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