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 먹는 대마법사 193화
193. 참고로 난 욕심쟁이(3)
끔뻑.
상혁은 푹신한 오리털 이불에 안긴 채 쥐 죽은 듯이 무려 48시간을 내리 잤다. 그러고는 느지막이 눈만 뜬 채 침대 위에서 천장을 보고 12시간째 가만히 누워만 있었다.
“좋다.”
그간 너무 바쁘게 살았던 모양이다. 지금처럼 아무것도 안 하고 있는 이 순간이 그렇게 좋을 수 없었다.
“무리하긴 했지.”
7서클에 오르며 8서클의 마나량을 뛰어넘는 마나 고리를 만들었지만 그럼에도 380여 번의 텔레포트와 380여 번의 고서클 마법은 무리일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이 정도면 양반이다.
상혁이 규격 외의 괴물이 되었으니 그게 홀로 가능했던 것이지 그게 아닌 평범한 7서클이었다면 족히 일주일은 더 걸렸을 일이었기 때문이다.
“과학과 마법의 접목 덕이지.”
상혁의 눈에 이채가 맴돌았다. 7서클에 오르고 공간 마법인 텔레포트가 사용할 수 있게 된 순간 상혁은 아이러니하게도 과학의 위대함을 몸소 느꼈다.
“이 작은 스마트폰 하나면 내가 못 갈 곳이 없다는 뜻이지.”
손바닥만 한 스마트폰. 그 안에 담긴 가능성은 마법과 접목하면 무한대에 가까울 정도로 확장됐다.
당장 스마트폰의 내장된 지도로 상혁은 앉아서 원하는 곳의 좌표를 구하고 스카이뷰와 로드뷰로 해당 지역을 미리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공간 이동의 제약이 거의 사라진 셈이지.”
텔레포트를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건 도착지의 좌표다. 그런데 이 좌표란 것이 가나안에서는 생소한 개념이고, 7서클 이상의 공간 이동 마법사만이 깨닫고 있는 개념이라 좌표를 구하는 것이 지극히 어려웠다.
또한 귀족은 텔레포트 마법의 위험성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자기가 확보하고 있는 좌표가 일종의 지적재산권을 형성하기도 했다.
“좌표를 구하는 마법도 귀찮고.”
해당 장소의 좌표는 마법사가 그곳에서 직접 5서클의 좌표 마법을 펼쳐서만 얻을 수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가나안은 텔레포트 마법을 사용하는 데 있어 여러 제약이 걸려 있던 셈이었다.
“하지만 지구는 아니지.”
그러나 지구는 아니었다. 이 스마트폰은 침대에 앉아서 지구 위를 도는 위성이 시시각각 파악해서 보내 주는 영상까지 전송받아 확인할 수 있을 정도다.
상혁은 경외심을 느꼈다.
인간의 과학이 쌓아 올린 이 거대한 상아탑이, 마법과 만나는 순간 무한대로 확장할 수 있는 가능성을 품고 있음을 깨닫고는 순수히 경탄했기 때문이다.
고대의 그리스 과학자부터 시작해 현대의 물리학자들까지.
그들이 연구하여 지금까지 쌓아 올린 과학의 개념과 결과물은 가히 경탄이 절로 나올 정도였다.
“과학을 공부해 볼 필요가 있겠어.”
오죽하면 마법을 이 세상의 진리라 여겼던 대마법사의 생각을 바꿨을까. 상혁은 간질거리는 이 학구열에 기분 좋게 웃었다.
“세상이 달라 보이는군.”
나아갈 길을 얻은 대마법사는 안도했다. 복수란 불안한 동아줄 하나를 쥐고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던 상혁은 드디어 방향을 찾은 기분이었다.
마법과 과학의 결합.
복수가 끝난다면 그 누구도 도전해 보지 못한 미지의 분야인 그곳에 자기 자신을 쏟아부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은 인생이 될 것 같았다.
“배고픈데.”
배 속에 있는 장기가 밥을 달라고 아우성을 쳤다. 하루 내내 제피렐리를 쳐부수고 다녔고, 그 뒤로 이틀을 내리 잤으며 지난 12시간을 아무것도 하지 않고 깨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애당초 마나를 소비한다는 것 자체가 인체의 에너지가 동반되는 것이기 때문에 마법사들치고 대식가가 없었다.
“프론트죠?”
상혁은 거침없이 호텔 내 내선을 통해 룸서비스를 시켰다.
[총 서른세 개 메뉴입니다. 정말 주문하시겠습니까?]
“예.”
[정말요?]
“예.”
[잘못시키셨다고 하여 환불은 불가능합니다. 그래도 시키시겠습니까?]
상혁이 혼자 서른세 개가 넘는 메뉴를 시키자 호텔리어가 몇 번이고 주문을 재확인하느라 작은 소동이 있었던 것은 잊자.
상혁은 주문하고는 화장실로 들어갔다. 그리고 가운을 벗고 적당히 따끈한 온도의 물을 틀었다.
쏴아아아아-!
“크으. 이거지.”
줄줄줄.
상혁의 몸을 타고 뜨거운 물이 흘렀다. 생각해 보니 상혁은 자신이 샤워한 지가 벌써 몇 개월이 지났다는 것을 깨달았다.
전부 다 마법으로 해결한 것이다.
하지만 간만에 몸에 물줄기를 맞자 상혁은 기분 좋은 나른함이 몰려드는 것을 느꼈다. 마법으로는 절대로 느낄 수 없는 기분이기에 상혁은 지금, 이 순간을 만끽했다.
“이루고자 하는 목표가 생겨난 것만으로도 사람이 이리 여유로워질 수 있다니. 역시 사람은 재밌어.”
상혁은 거품을 가득 짜 머리를 문지르면서 기분 좋게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복수의 길은 확실하고 목표가 뚜렷했지만, 여러모로 사람의 정신을 갉아먹는다. 복수란 것 자체가 분노에 기반한 마이너스적인 감정이기에 사람의 정신을 지치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복수만 보며 살던 사람은 괴물이 되곤 한다.
내면의 복수란 괴물을 들여다보다 자신의 정신도 그에 오염되어 괴물이 되고 마는 것이다.
때문에 균형이 중요한 법이다.
그리고 상혁은 7서클에 오르며 과학에 경탄을 느끼면서 그 균형을 찾았다.
마법과 과학의 결합.
과연 끝이란 것이 있을지 모를 그 미지의 학문에 강한 흥미를 느낀 순간 상혁은 아슬아슬한 복수의 외줄 타기에서 안정적인 또 다른 발판을 찾은 셈이다.
그것만으로도 상혁은 여유로워졌다.
바짝 당겨진 활의 시위는 언젠가 늘어나며 늘어진다. 그건 사람도 마찬가지다. 사람은 기계가 아니기 때문에 하나의 감정으로만 살 수 없다.
그 여유가 상혁으로 하여금 몇 개월 만에 온수 샤워를 하게 만든 것이다.
슥슥슥.
상혁은 샴푸까지 듬뿍 짜서는 머리에 문질렀다. 그렇게 구석구석 씻은 상혁은 가운을 대충 두르고 나와서는 젖은 머리를 털었다.
마법으로 처리하면 간단하다.
하지만 굳이 그래야 할까?
‘마법은 유용하지만, 만능은 아니니까.’
상혁의 두 눈이 반개했다. 과학을 보며 경탄에 젖은 상혁은 자신이 반백 년 동안 갈고닦은 마법을 원초적인 개념부터 다시 접근하기 시작했다.
마나의 근원과 삼라만상의 진리와 서클의 원리 등 모든 것이 상혁의 머릿속에서 분해되고 다시 조립되기 시작했다.
깨달음.
불현듯 깨달음을 얻은 상혁의 머리 위로 모락거리며 마나가 뿜어져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그 마나가 일렁이더니 상혁의 주변으로 주변의 마나가 몰려들기 시작했다.
정확히는 오염된 공기, 방금 상혁이 샤워하고 나온 오염된 물속의 마나, 벽과 전자기기 안에 들어 있는 유해 한 물질이 마나가 되어 상혁에게로 빨려들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뿜어져 나온 마나는 상혁의 머리 위에서 꾸물거리며 커다란 원을 그리기 시작했다.
멀리서 보면 상혁이 그렇게 만들어진 원을 머리에 쓰고 있는 듯한 모습이었다. 그리고 머리 위에서 만들어진 고리가 상혁의 정수리와 이어지면서 그 마나가 상혁의 정수리를 타고 심장의 고리에 닿더니 하나로 이어졌다.
띵동-!!
그때 룸서비스가 도착했다며 초인종이 울렸다. 그리고 깊게 침잠해 있던 상혁의 정신이 수면 위로 부상했다.
“아!!”
화아악-!!
상혁의 주변에 모여들었던 마나가 허공으로 사라졌다. 상혁은 자신이 깨달음의 순간에 있었음을 떠올리고는 두 눈을 크게 떴다.
그리고 상혁은 또렷하게 느낄 수 있었다.
“체외마나? 여덟 번째 고리가 체외마나로 만들어진다고?”
자신의 머리 위에 떠 있는 여덟 번째의 고리를 말이다. 물론 그 고리는 완성된 고리가 아니었다. 하지만 7서클을 넘어 8서클에 한 걸음 내디뎠다는 확실한 증거이기도 했다.
단지 상혁이 놀란 것은 고리가 체외에 형성되었다는 점과, 자신이 이르렀던 8서클과는 다르다는 점이었다.
“나도 8서클에 어떻게 올랐는지, 그 순간을 기억하진 못하니까.”
그저 마법을 사용하다가 마법에 대한 깨달음을 얻었다. 상혁이 얻은 깨달음은 1서클과 8서클의 마법이 다르지 않다는 것.
모든 마법이 일렬로 유기적으로 구성이 된 마법이란 것이었는데 그것으로 상혁은 8서클에 올랐지만 그 순간을 기억하진 못했다.
그저 갑자기, 어느 순간 그릇에 가득 찬 물이 넘치듯 7서클에서 8서클로 올라간 강렬한 순간의 느낌만이 어렴풋이 남아 있을 뿐이다.
‘무언가 잡힐 것 같았는데.’
띵동- 띵동-!
초인종 소리가 연달아 울려 퍼졌다. 재촉하는 것이다. 상혁은 지금이 때가 아니었음에 아쉬움을 삼켰지만 고개를 가로저었다.
“실마리를 잡은 게 어디냐.”
체외마나.
그것 역시 심장에 고리를 마나의 실을 엮어 만든 것처럼 상혁이 이론으로만 정립해 놓았던 것 중 하나였다.
마법사의 고리가 꼭 체내에만 있어야 할 필요가 있느냐며, 현대의 보조배터리 같은 개념으로 체외마나의 이론을 고안해 냈던 것.
물론 보조배터리의 존재를 모르는 가나안의 사람들은 상혁의 이런 발상이 지나치게 진보적이라는 이유로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게 가능한 거였어.”
과학과 마법의 결합을 보고 경탄을 느끼며 얻은 깨달음 때문에 전혀 예상치도 못한 실마리를 잡은 셈이다.
여덟 번째 고리의 첫 번째 단초가 된 체외마나 고리를 거꾸로 되짚어 나간다면 8서클의 깨달음에 더 가까이 갈 수 있을 것이다.
띵동-!
초인종이 한 번 더 울렸다. 상혁은 이크, 하면서 자리에서 일어섰다. 너무 오래 바깥에 기다리게 해 두었기 때문이다.
달칵.
상혁은 얼른 문을 열었다. 그리고 미안하다고 말할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카트 손잡이를 쥔 사람이 얼굴이 낯익었다.
“파월 국장님? 로렌스 씨?”
“미스터 백! 식사 중에 잠시 대화 좀 할 수 있을까요?”
파월의 표정이 볼만했다. 상혁을 꽤 오래 기다린 모양이었다. 상혁은 고개를 빼꼼 내밀어 저 뒤에 어쩔 줄 모른 체 서 있는 호텔리어를 보고는 파월을 쳐다봤다.
“저분 팁이나 두둑이 주세요.”
꼬르륵!
음식을 보니 배가 사정없이 고파왔다. 밥을 먹는 동안 무슨 말을 하는지 들어 보는 건 어려울 것이 없었다.
그러자 파월이 살았다는 표정으로 카트를 쭉 밀고 들어왔다. 그리고 파월과 로렌스는 손수 상혁이 먹을 수 있도록 음식을 차려 주기까지 했다.
쪼르륵.
“얼른 드세요. 큰일 하시는 분이 이렇게 오래 안 드시다간 몸이 축납니다.”
파월은 와인잔에 와인까지 따라 주면서 극진했다. 상혁이 차려진 진수성찬 앞에 포크와 나이프를 들고 앉았다.
“잘 먹겠습니다.”
상혁은 음식을 입에 넣는 순간 전투적으로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을 쓸어 넣기 시작했다. 그 속도가 신속하고 음식을 포크와 나이프를 이용해 입에 집어넣는 동작이 정확했기에 빠른 속도로 접시가 비워져 나갔다.
파월과 로렌스는 그런 상혁을 보고 침을 꿀꺽 삼킨 채 조심스레 의자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았다.
달그락 달그락.
상혁의 입안으로 음식들이 문자 그대로 빨려 들어갔다. 파월은 상혁이 먹는 것을 보며 질린다는 표정을 지을 뻔한 것을 가까스로 참아 냈다.
‘잘 보여야 한다. 가주님께서 직접 오시고 싶어 하셨지만 못 오신 걸 안타까워하시면서 날 보내셨으니까. 난 가주님 대신이다.’
파월은 상혁에 대한 경외감을 숨겼다. 그는 프리메이슨의 사람이기에 상혁의 편만 들 수 없었기 때문이다.
상혁은 마지막 접시를 끌어당겼다. 놀랍게도 이전의 서른두 개의 메뉴를 먹는 동안 마지막 접시의 음식이 식지 않았다.
푹.
쭉-!
상혁이 스테이크에 포크를 꽂자 육즙이 쭉 뿜어져 나왔다. 상혁은 손바닥 두 개만 한 스테이크를 순식간에 먹어치우고는 입가를 냅킨으로 닦았다.
이 많은 음식이 어디로 사라지는지 신비함마저 들 정도.
상혁은 입가를 냅킨으로 닦아낸 뒤 시계를 흘낏 확인했다.
“5분 드리죠. 그리고 말씀하시기 전에.”
상혁이 파월과 로렌스에게 발언 기회를 주었다. 하지만 파월과 로렌스는 상혁이 뒤에 덧붙인 말에 벌리려던 입을 다시 다물 수밖에 없었다.
“노리치와 고먼, 포든, 글레이저가 먼저 찾아왔다는 것만 말씀드리죠.”
살아남기 위한 자들의 신속함을 로스차일드는 간과했다. 상혁이 빙긋 웃으며 파월과 로렌스를 번갈아 가며 쳐다봤다.
“참고로, 절반이 아니라 가진 것의 70퍼센트를 내놓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니 프리메이슨은 더 많은 걸 내어 놓아야 할 겁니다. 그래야 균형의 추가 맞을 테니까요.”
기나긴 원탁과 프리메이슨의 전쟁을 종결지을 수 있는 칼자루는 외부인인 상혁의 손에 들려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