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 먹는 대마법사 192화
192. 참고로 난 욕심쟁이(2)
짐 제피렐리의 두 눈에 핏발이 가득했다. 그 눈빛에서 형용할 수 없는 분노와 절망이 동시에 느껴졌다. 상혁은 그런 짐의 눈을 피하지 않은 채 피식 웃으며 손을 거둬들였다.
콰우우우!!
제피렐리 가문의 자금과 기술력을 자랑하기 위해 지은 인공섬 위의 저택이 갈기갈기 찢어지듯이 이제는 그 형태도 알아볼 수 없을 정도가 됐다.
사방에 흩날리는 흙먼지를 미풍을 불러일으켜 비껴가게 한 상혁이 손가락으로 이제 주춧돌밖에 남지 않은 저택을 가리켰다.
“저게 네 바벨탑이겠지?”
성경 속에서 고대의 인간은 신에게 닿기 위해 바벨탑을 짓다가 하늘의 분노를 사 바벨탑이 무너지고, 더 이상 언어가 통하지 않고 뿔뿔이 흩어지게 되었다고 한다.
바벨탑은 신에게 도전하기 위한 인간의 그릇된 욕망의 상징이다.
상혁은 이 인공섬과 저택이 딱 그 짝이라는 것을 한 번에 눈치챘다.
“바벨탑을 지은 인간은 신의 분노를 피하지 못했지. 그리고 넌 누구의 분노를 피하지 못했을까.”
상혁이 손가락으로 자기 자신을 가리켰다.
“어이쿠, 바로 나네? 내 분노를 피하지 못했어.”
바벨탑은 신의 분노를 피하지 못했고 제피렐리는 대마법사의 분노를 피하지 못했다. 그러나 거기서 배울 수 있는 교훈은 똑같았다.
“그러니까 개길 사람을 보고 개겼어야지.”
인간이 신에게 도전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아마 신은 그런 인간에게 누차 기회를 줬을 것이다. 그 기회를 무시한 것은 인간이고, 그 무시와 만용의 대가를 치른 것이다.
제피렐리 역시 마찬가지.
상혁은 분명 제피렐리에게 그들이 저지른 일을 만회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으나 전쟁을 선택한 것은 바로 제피렐리 가문이다.
“넌 가주니까 자존심이 있어서 그랬다고 쳐. 하지만 네 그 알량한 자존심으로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은 어떻겠어. 응?”
미국 전역에 있는 제피렐리 가문의 사업체가 불과 24시간 만에 깡그리 무너지고 불타올랐다. 물론 제피렐리 가문은 꿍꿍이가 있는 가문인 만큼 상혁이 모르고 지나친 것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미 제피렐리는 만회할 수 없는 피해를 입었다.
“욕심부리지 않고 절반만 내놨으면 끝나는 일이었을 텐데 말이야.”
상혁은 짐을 보면서 어깨를 으쓱했다. 어쩔 수 없었다는 표정까지 짓는 상혁은 완벽하게 짐을 농락했다.
“넌 대체 뭐지?”
그런 상혁에게 짐이 물었다. 상혁은 그것도 모르냐는 듯 콧방귀를 뀌었다.
“백상혁. 마법사.”
“마법…… 하, 하하하. 그딴 게 진짜로 있었다고?”
짐은 자포자기한 사람처럼 웃었다. 마법이라니. 하지만 상혁이 보인 신위는 마법이 아니라면 다른 것으로 설명할 수 없는 것이기도 했다.
“그렇군. 마법이었어. 그걸 몰랐으니 당할 수밖에.”
짐은 헛웃음을 지었다. 자신과 자신의 선조가 수백 년에 걸쳐 지어 올린 가문이다. 하지만 그 가문이 전혀 예상치 못한 특이점 하나에 멸문하게 되다니.
“우린, 본보기인가.”
“아마도. 그리고 네가 하나 착각하는 게 있어.”
상혁이 히죽 웃었다. 마법을 사용하지 않는 상혁은 그저 20대의 청년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동양인 하나가 제피렐리 가문에 궤멸적인 타격을 입힐 줄이야.
“안다고 해서 뭐 달라질 것 같아?”
짐이 벙 찐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상혁의 말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지금껏 그들이 알고 있던 모든 상식을 뒤엎고 불과 24시간 만에 상혁은 미국 전역의 제피렐리 사업체를 궤멸시켰기 때문이다.
심지어 알래스카에 있던 곳까지.
“애초에 대적할 수 없었다는 소리인가.”
“이 세상에는 꼭 관을 제 눈으로 봐야 실감이 나는 사람도 있는 모양이더라고.”
상혁이 어깨를 으쓱했다. 그때 짐의 눈빛이 변했다.
“백상혁, 나와 손을 잡자. 제피렐리와 손을 잡자.”
짐의 목소리가 절박해졌다. 이대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수 없다는 절박함 때문이다. 하지만 상혁은 심드렁한 표정을 지었다.
“인제 와서?”
“우리 가문의 전력은 그게 다가 아니야. 물론 궤멸적인 타격을 입은 것 맞아. 하지만 아직도 여력이 남아 있으니까. 거기에 네 마법이 더해진다면, 우린 세계를 정복할 수 있어.”
부잣집은 망해도 삼 년은 간다고 했다. 그렇다면 수많은 사업체를 거느린 가문은 오죽하겠는가.
아마 짐의 말대로 상혁이 있다면 제피렐리 가문은 거의 궤멸당한 상태에서 새로운 가문을 세울 수 있을지도 모른다.
“원탁이건, 프리메이슨이건 전부 밀어 버리고 새로운 역사를 써 내려갈 수 있어. 어때 백상혁.”
짐이 광기가 버무려진 미소를 지으며 상혁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상혁은 그런 짐을 빤히 쳐다보다가 흥, 하고 콧방귀를 뀌었다.
“에이, 재미없네. 다들 생각하는 게 거기서 거기란 말이지.”
“뭐?”
세상을 정복할 수 있다는데 저런 반응이라니. 짐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짓고 상혁을 쳐다봤다. 상혁은 그런 그를 향해 검지를 까딱였다.
“그렇게 평생을 권력 놀음만을 했으면서 아직도 권력을 그리 몰라?”
상혁이 히죽 웃었다.
“권력은 자기 자식과도 나누는 게 아니야.”
“그 뜻은 네가 모든 걸 먹겠다는 뜻인가?”
짐이 떨리는 눈으로 상혁을 쳐다봤다. 그 역시도 그리 생각하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살아남기 위해 짐은 어떤 것이든 다 할 수 있었다.
“아니. 난 딱 절반만 먹으면 돼.”
그게 상혁이 정해 둔 선이다. 이곳은 가나안이 아닌 지구다. 그렇기에 상혁은 굳이 바득바득 가나안처럼 자신을 건드린 놈들의 모든 것을 먹어치울 생각이 없었다.
큰 덩어리 정도는 남겨 둬야 귀찮은 일이 없다는 걸 가나안에서 깨닫기도 했고.
“미친. 제피렐리의 절반이 어느 정도인 줄 알고…….”
“너뿐만이 아니야.”
상혁이 그를 보면서 손가락으로 하늘 위를 가리켰다. 저 하늘 위에는 육안으로는 보이지 않는 위성 수십 개가 이곳을 보고 있을 것이다.
“네 친구들 것도 반씩 먹을 생각이거든.”
“쉽지 않을 거다.”
“아니, 쉬워. 네가 어떻게 되는지 봤잖아. 그러니까 됐어. 설령 마법을 믿지 못해도 상관없지. 그 때문에 날아간 네가 좋은 본보기가 될 테니까.”
원탁의 절반.
짐은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상혁은 자신의 예상을 훌쩍 뛰어넘고 있었다. 게다가 그 정도의 힘을 가졌으면서도 권력 따위에는 별반 관심도 있어 보이지 않았다.
그저 건드리지만 않으면 될 뿐.
마치 저 하늘 위에서 웅크린 채 고고하게 세상을 내려다보는 신처럼. 바벨탑으로 건드리지만 않았더라면 영원한 번영을 누렸을 성경 속 고대인들처럼.
“일단 제피렐리의 절반부터 잘 먹을게.”
“내가 직접 내준다면? 그게 더 깔끔하고 쉬울 텐데.”
짐은 마지막 희망에 목숨을 걸었다. 하지만 상혁은 고개를 가만히 가로저었다.
“그래서는 안 돼. 그리고 생각보다 유능한 친구들이 있더라고.”
“로스차일드.”
“빙고.”
상혁은 빙긋 웃었다. 짐은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수백 년을 내려온 제피렐리의 역사가 정말 자신의 대에서 끊긴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신 부탁 하나를 들어주지. 서비스야. 마수걸이니까.”
상혁이 짐에게 말했다. 그러자 짐의 눈에서 희망이 꺼졌다. 어떤 수를 쓰더라도 가문이 끝났다는 것을 이제야 받아들인 것이다.
“애초에 상대해서는 안 됐군.”
“유감이야. 그걸 이제야 알아채서.”
그는 좋은 본보기가 되어 줄 것이다. 자신과 공생이 아니라 전쟁을 선포한 제피렐리는 그 자랑스러운 로키드마틴이나 PMC를 한 번 써 보지도 못하고 24시간 만에 380여 개의 공장과 회사를 잃었으니 말이다.
이제 미국 최대의 군수 기업인 로키드마틴은 없다.
짐이 상혁에게 말했다.
“프랑스 보르도에 끝내주는 포도밭이 있어.”
“그래?”
“거기서 나오는 포도주가 끝내주거든.”
“짚어.”
상혁이 태블릿을 켜 그곳의 정확한 위치를 짚도록 손으로 가리켰다. 그리고 짐은 순순히 그곳을 손으로 짚었다. 상혁은 스카이뷰와 도로 뷰로 그곳의 좌표와 실제 모습을 머릿속에 입력한 뒤 손가락을 튕겼다.
번쩍-!!
짐의 눈이 커졌다. 주변의 풍경이 빛에 휩싸이는가 싶더니 어느새 그가 포도밭에 서 있었기 때문이다.
주렁주렁 씨알 굵은 포도가 맺힌 것을 보며 짐의 손이 잘게 떨렸다. 그리고 그때 땅이 쩌억 갈라지더니 지하에 묻혀 있던 저장고에서 오크통 하나가 균열을 비집고 나와 짐의 앞에 내려앉았다.
“한 잔?”
뽕-!
상혁은 손가락으로 오크통에 구멍을 뚫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나오는 포도주를 가리키며 짐에게 말했다.
짐이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먼저 가서 아쉽네. 하지만 좋은 경험이었어. 마법이라니.”
“너무 애석해하지는 말고.”
“노리치는…….”
짐은 상혁에게 자신이 아는 가주들의 특징을 하나씩 설명했다. 상혁은 그에게서 꽤 쓸모 있는 정보 몇 가지를 들은 뒤 고개를 끄덕였다.
“나에게 이걸 말해 주는 이유는?”
“다들 나와 똑같은 놈들이거든. 같은 편이어도 언제나 진심으로 같은 동료가 되진 않았으니까. 나 혼자 가면 억울하잖아. 그니까 제대로 뜯어먹으라고.”
“흐흐. 혼자 죽지는 않겠다. 걱정 마. 참고로 난 욕심이 아주 많거든.”
짐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손바닥을 오목하게 만들어 포도주를 그 안에 담고 한입에 들이켰다. 그러고는 홀가분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려 상혁을 쳐다봤다.
“됐다.”
“그래. 그럼.”
상혁이 손으로 짐의 이마를 덮었다. 그리고 짐이 의식하지 못할 새, 상혁의 손에서 뿜어져 나온 쇼크 마법이 짐의 뇌를 뒤덮었다.
고통을 느끼지 못할 정도로 부드럽고 신속하게.
상혁은 짐을 포도밭에 내려놓은 뒤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포도밭이 갈라지면서 마치 짐의 몸을 받아 들 듯 짐의 모습이 그 사이로 사라졌다.
뚝!
오크통에서 줄줄 새던 와인이 뚝 끊겼다. 마법을 막은 것이다. 상혁은 포도주를 듬뿍 머금은 포도밭의 흙을 발끝으로 몇 번 헤집은 뒤 허리에 손을 올렸다.
“오늘은 좀 잘 수 있으려나?”
* * *
헤르츨 로스차일드의 눈이 커졌다.
제피렐리 가문의 가주가 죽고 사업체가 전부 궤멸적인 타격을 입었다. 그 소식에 그는 재빨리 사람을 움직여 남은 제피렐리 가문의 흔적을 수습했고 정말 24시간 만에 제피렐리 가문이 완벽하게 멸문했음을 확인했다.
물론 제피렐리 가문의 가주를 제외한 다른 핏줄들은 살아남아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가주가 죽었다는 소식도 알지 못해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상상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신이시여.”
헤르츨은 자신도 모르게 신을 찾았다. 아니, 그는 신을 찾는 주소가 잘못됐다고 생각했다. 신은 바로 자신과 같은 공기를 마시며 살아 있었기 때문이다.
200년간 이어져 온 원탁과 프리메이슨의 구도에 균열이 일어난 것이다.
그리고 이건 절호의 기회였다.
“하늘이 내려 주신 기회다. 이 기회를 놓친다면 로스차일드의 가주라고 할 수 없지.”
원탁은 사실상 로스차일드를 견제하기 위해 생겨난 세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로스차일드는 축적한 엄청난 부를 바탕으로 사실상 한 개 가문이 견제할 수 있을 만한 세력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원탁의 기둥 하나가 무너졌다.
그렇다는 것 지금까지 웅크린 채 기회를 보고 있던 로스차일드가 본격적으로 기지개를 켤 시간이 왔다는 뜻이다.
“절반.”
헤르츨은 상혁이 강조한 절반을 잊지 않았다. 그리고 결심했다. 자신은 제피렐리 같은 결과를 맞이하지 않겠다고 말이다.
“원탁의 절반을 위자드에게 넘겨주고, 우리는 미국의 패권을 잡는다.”
원탁의 절반을 넘겨준다고 해도 미국의 패권을 잡을 수 있다면 로스차일드에게 있어서는 오히려 남는 장사다.
그렇기 때문에 헤르츨은 원탁의 절반을 아까워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본보기가 된 제피렐리.
상혁의 노림수가 정확하게 통했다는 뜻이다.
그러나 그런 생각을 한 것은 비단 로스차일드뿐만이 아니었다.
절반.
“아니, 70퍼센트를 드리겠습니다. 대신 저희 가문을 지켜 주십시오.”
로스차일드보다 한발 먼저 움직인 이가 상혁을 찾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