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 먹는 대마법사 182화
182. 지구 유일인데 세계 최강이다(2)
마법은 어려운 학문이다.
서클이 높아질수록, 마나가 늘어날수록 세상의 흐름에 간섭할 수 있는 힘이 생기는데, 그 힘을 실제로 사용하기 위해서는 재능과 노력이 필요했다.
노력하는 천재.
그게 바로 마법사들인 것이다.
그들은 원시 인류가 최초로 불을 피우기 위해 마른 나뭇가지를 가져다가 며칠씩 비벼서 가까스로 불씨를 만든 것처럼 그들은 모든 것을 무에서부터 시작해 지금의 유를 이루어 냈다.
그렇게 해서 완성된 것이 바로 마법.
마법은 자연의 흐름을 뒤틀어 마나를 이용해 인위적인 흐름을 만들어 내는 행위다.
그 때문에 5서클 이하의 마법들은 대부분 자연 현상을 그대로 빌려오거나 인간 개인에게만 적용되는 마법들이 대부분이다.
불, 물, 대지, 바람 네 가지 원소를 이용한 원소 마법과 정신 마법.
그리고 마법사는 6서클에 올라서면서부터 다른 개념의 마법을 깨닫고 사용하기 시작한다.
영혼과 공간이 바로 그 대표적인 예이다.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자연을 답습하고 복사하는 것에서 벗어나 공간과 영혼의 개념을 인지하고 그것을 마법으로 펼쳐 내는 것을 목표로 마법의 또 다른 학문이 발달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지금.
상혁은 마나가 희박한 지구에서는 절대로 펼칠 수 없을 것이라 생각했던 마법을 펼치고는 스스로 놀랄 수밖에 없었다.
“격리 마법이 되네?”
상혁은 얼굴 가득 함박웃음을 지었다. 상혁의 마나안에 흐름이 뒤틀려 만들어진 균열이 눈에 들어왔다. 그 균열은 육안으로 보이지 않지만 상혁에게는 또렷하게 느껴졌다.
격리, 혹은 아이솔레이션이라 부르는 마법.
이 마법은 대개 마법사들이 대규모 마법 실험을 할 때나, 마스터처럼 초인의 반열에 올라선 이들이 힘을 쏟을 수 있게 해 주는 고위급 공간 마법이다.
효과는 간단했다.
“공간 격리.”
실존하는 공간 위에 또 다른 공간을 뒤집어씌워 실존하는 공간에 영향이 끼치지 않게끔 하는 새로운 공간을 만들어 내는 것.
이 격리가 바로 6서클에서 펼칠 수 있는 공간 마법의 꽃이자 차후 7서클, 8서클을 거쳐 비로소 빛을 발하는 모든 공간 마법의 꽃이 되는 마법이다.
7서클의 가짜 현실.
8서클의 차원 박리.
절대 마법이라 칭해지는 이 두 가지 마법을 펼치기 위해서는 6서클의 격리 마법을 마스터하는 것이 필수였다.
그러나 소위 말하는 이 ‘공간’이란 것은 인간이 이해하기에 아득한 개념이기에 실질적으로 펼칠 수 있는 마법사는 고금을 통틀어 딱 한 명밖에 없었다.
‘그게 바로 나지.’
씨익
상혁은 균열을 보면서 히죽 웃었다. 물론 이 격리 마법은 아이언 포레스트의 풍부한 마나, 다시 말하지만 끔찍할 정도의 방사능 오염 때문에 가능한 수준이다.
그게 아니라면 제아무리 7서클을 뛰어넘는 여섯 개의 마나 고리를 가진 상혁이라고 할지라도 격리 마법을 펼치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하지만 상혁이 지금 여섯 개의 고리를 만든 것처럼 일곱 개의 고리를 완성시킨다면?
‘충분히 가능하지.’
상혁이 벼린 마나실은 서클이 올라갈수록 기하급수적으로 많아진다. 달리 말하면 7서클에서 오른 뒤 8서클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의 마나가 필요하다는 뜻이 된다.
그러나 상혁은 가능성을 보았다.
‘지구의 오염은 심각한 정도니까. 지구의 모든 오염원을 내가 선점할 수 있다면 충분히 가능할지도.’
세계의 의지가 직접 나설 정도로 지구의 위기는 코앞에 도달해 있었다. 그저 사람들이 모를 뿐이다. 그러나 세계는 기적적으로 상혁이라는 존재를 만난 것이다.
지구 유일의 마법사, 그러나 고금 최강이던 그 대마법사를 말이다.
‘만일 8서클에 도달하게 된다면.’
상혁이 보유한 마나량은 동급의 마법사를 한 백 명쯤 데리고 와야 할 정도다. 그리고 상혁이 알기로 그 정도 수준의 마나를 보유한 생명체는 딱 하나뿐.
‘드래곤!’
최강의 생명체, 질서의 조율자, 신의 대리인.
신은 직접적으로 인간계에 영향을 끼칠 수 없어 자신의 뜻을 대리할 수 있는 대리인을 만들었고, 그것이 바로 드래곤이다.
바로 그 드래곤이 보유한 정도의 마나를 보유하게 될 것이다.
‘만약 내가 9서클에 도달하게 된다면.’
그리고 8서클을 벗어나 9서클에 도달하게 된다면.
‘10억 개의 마나실을 뛰어넘어 100억 개의 마나실을 이루게 된다면.’
삼라만상의 근원, 진리의 근원.
그 근원을 들여다볼 수 있는 자격을 갖게 될지도 모른다. 그 어떠한 마법사도 마법의 역사에서 이룬 적은 없지만 드래곤에 의해 구전으로 내려오는 신화가 있었으니까.
‘진리의 대도서관, 아카식.’
그곳은 드래곤이 일만 년의 생을 마친 뒤 돌아간다는 진리의 보고이자 세상의 모든 삼라만상이 기록된 말 그대로 기록의 보고다.
마법사들이 바라 마지않는 모든 것의 이상이 있는 곳이며 활자에 중독된 모든 존재들이 이 우주의 기원부터 멸망까지 읽어도 줄어들지 않는 모든 차원과 모든 우주의 기록들이 모이는 곳.
그곳에 들어갈 자격을 얻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상혁의 심장이 기분 좋게 박동했다. 길이 보인다는 건 마법사에게 있어 긍정적인 일이다. 물론 상혁의 살아생전에 그 목적을 이루지 못할지도 모른다.
“할 수 있는 데까지 하는 거지.”
상혁은 피식 웃었다. 칠십 인생을 살아본 결과 인생은 언제나 자신이 목표로 한 곳에 도달하지 못한다는 것을 그는 잘 알고 있었다.
그저 그곳에 조금이라도 더 가까이 닿기 위해 발버둥을 치다 가는 것이 바로 인생이다. 상혁은 화물칸의 문이 열리고 그 사이로 방호복을 갑옷처럼 받쳐 입은 보안요원이 모습을 드러내는 것을 보며 가볍게 웃었다.
“일단은 눈앞에 있는 일부터.”
당장 눈앞에 할 일이 산적해 있는데 너무 먼 미래를 바라볼 필요는 없다. 그저 그곳까지 가는 길이 있다는 것, 그것을 알아낸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저벅
상혁이 그들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왓더퍽!!]
갑작스레 방호복 하나 입지 않은 매끄러운 맨살의 상혁이 나타나자 보안요원이 그가 겪어 온 사선의 경험의 빛이 바랠 정도로 놀라며 엉덩방아를 찧었다.
탁, 탁
상혁은 방사능을 막아 낼 수 있을 정도로 튼튼하기 그지없는 차폐 장치에 넣어 둔 보급품을 손바닥으로 탁탁 내려치면서 환하게 웃었다.
“아이언 포레스트란 곳에 관광 왔는데, 가이드해 주실 분?”
* * *
지구의 하늘은 광대하다.
아니, 사실을 모르고 살아가는 이들에게 하늘은 넓디넓은 곳일 뿐이다. 그러나 기실 그 안을 보면 복잡하게 항공로들이 여기저기 깔려 있어 거미줄 못지않은 복잡한 항로가 그어져 있었다.
그러면 그보다 더 위, 우주는 어떨까?
우주는 그보다 더 광대하다. 인류가 살아가는 태양계는 우주 전체와 비교했을 때 자그마한 티끌에 지나지 않는다. 태양계보다도 큰 행성이 있을 수 있었고 무엇보다도 우주의 끝에 무엇이 있는지도 알아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구에 한정한다면 하늘 위의 우주는 과연 우주만큼 광대할까?
아니었다.
냉전 시절부터 경쟁적으로 시작된 우주 진출은 현대에 와서 어지간한 국가라면 모두 뛰어드는 레드 오션이 됐다. 심지어 몇몇 사기업까지 우주를 눈여겨보고 뛰어들면서 지구와 가까운 우주에는 새카맣다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많은 위성이 깔렸다.
통신, 정찰, 감시 등등 다양한 목적으로 띄운 위성들은 기술력과 자금력을 자랑하는 상징이다. 그런데 그중 30퍼센트에 달하는 위성이 미국 상공, 정확히는 네바다 위로 집결하기 시작했다.
그 노골적인 움직임은 무시하려고 해도 무시할 수 없는 조직적인 행동이었다.
그러나 그에 대해 공식적으로 문제를 제기할 간 큰 이도 없었다. 수만 개의 위성 중 무려 30퍼센트에 달하는 위성을 움직일 정도라면 그 세력이 거대할 것임은 볼 필요도 없었고, 무엇보다 다른 곳에 그 행동을 노출시키면서까지 움직였다는 건 칼을 제대로 갈았다는 소리였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그 눈먼 칼의 첫 번째 희생자가 되고 싶지 않은 이상 함부로 나설 수는 없었다.
그건 프리메이슨 역시 마찬가지였다.
[원탁이 미친 겁니까? 이건 미국 안보에 심각한 위해를 저지르는 행위입니다. 강력하게 규탄하여 막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누가요. 노리치 가문에서 총대를 메시겠습니까?]
[다 같이 목소리를 내기 위해 우리가 뭉친 것이 아닙니까!]
[좋지요. 하지만 눈깔이 돌아간 원탁이 전쟁이라도 선포하면 어쩌시려구요.]
고성이 이리저리 오고 갔다. 미 국방성에서 전투 병력의 효과적인 전투 훈련을 위해 만들어 낸 메타 버스였다. 거의 현실과 비슷한 그래픽을 구동할 수 있는 메타 버스가 오늘의 회의장이었다.
프리메이슨의 각 가주들은 워낙 스케줄이 바빠 한곳에 모일 수 있는 물리적인 시간이 없었기 때문이다.
파월 국장은 미국을 암중에서 손에 쥐었다 폈다 하는 존재들의 말싸움에 이리저리 눈치를 살피는 데 여념이 없었다.
‘내가 이곳에 입성할 줄이야.’
파월 국장은 긴장되지만 기대된다는 눈빛으로 프리메이슨의 각 가주를 관찰했다. 메타 버스이기에 얼굴이 드러나진 않지만 사람의 개성은 다양한 곳에서 드러나는 법이다.
제스처, 말투 등등.
그런데 그때 말싸움을 벌이고 있던 노리치 가문의 가주와 포든 가문의 입을 단박에 다물게 하는 인물이 존재감을 드러냈다.
[두 분, 거기까지만 하시지요.]
로스차일드 가문.
그곳의 가주가 입을 열자 노리치와 포든 가문의 가주가 입을 다물었다. 그를 보며 파월 국장이 눈을 반짝였다.
‘미국을 지키는 붉은 방패.’
로스차일드 가문.
독일어로 ‘붉은 방패’를 뜻하는 ‘춤 로텐 실트‘(zum rothen Schild)‘를 영어식으로 바꾼 이름으로 미국에 대해서 관심이 있다면 모를 수가 없는 가문이다.
그들의 영향력은 정치, 금융, 석유, 금, 레저, 와인 등 광범위한 분야에 펼쳐져 있었다.
원탁의 가문들이 동등한 관계라면 프리메이슨의 관계는 단 하나의 가문, 바로 로스차일드가 그 수장의 노릇을 하고 있었다.
[확실히 원탁의 행동은 선을 넘었지요.]
로스차일드 가문의 수장, 헤르츨 로스차일드가 입을 열었다. 그러자 그들의 행동에 강경하게 대처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노리치 가주의 표정이 밝아졌다.
[그러나 원탁과의 전쟁은 결국 미국의 힘을 깎아 먹는 일. 섣불리 움직이기도 그렇습니다.]
그러자 이번에는 포든 가주의 얼굴이 밝아졌다.
흰 소, 검은 소처럼 양쪽의 편을 다 들어 준 로스차일드 가주가 고개를 돌려 누군가를 찾았다. 그 순간 파월은 자신이 나서야 할 때임을 직감했다.
’그가 원한 일이다.’
파월의 심장이 입 밖으로 나올 것처럼 두근거렸다. 지금껏 그가 말로만 들어왔던 프리메이슨의 가주들 앞에 나서는 시간이었기 때문에 손발이 저리고 심장이 떨렸지만 안간힘을 쓰며 참아 냈다.
“국무부의 파월 국장입니다.”
[우리에게 보여 줄 것이 있다고요.]
“예, 그렇습니다.”
가주가 아닌 그가 프리메이슨의 가주 회의에 참석하게 된 것은 파월이 모든 것을 보았고,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유일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건 상혁의 허락 때문에 가능한 일이기도 했다.
상혁은 더 이상 자신의 존재를 숨기지 않기로 다짐했기 때문이다.
“그날의 진실입니다.”
[그날이라. 어디 한번 말해 보세요.]
파월은 침을 꿀꺽 삼켰다. 스캇 고먼, 윌리엄 글레이저, 그리고 안드레아스 타이클레의 죽음.
마치 동반 자살을 한 것처럼 나란히 각자의 머리에 구멍을 낸 셋의 이야기와 파월이 본 모든 것이 파월의 입을 통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파월의 말이 끝났다.
“……여기까지입니다.”
그러자 록펠러 가문의 가주가 벌떡 일어서면서 파월을 향해 삿대질했다.
[로스차일드 가주의 얼굴을 봐서 끝까지 들어 주기는 하였다만, 어디서 말도 되지 않는 것을. 여러분, 저 말을 믿으십니까?]
파월은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이럴 것 같았다. 하지만 이는 진실이었다. 동시에 상혁의 신위를 직접 본 파월은 그 상대가 아무리 프리메이슨의 가주들 앞이라도 거짓말을 할 수가 없었다.
가주들이 가진 힘보다 상혁의 불가사의한 그 마법이 파월에게는 더 직접적인 위협으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파월은 자신의 본능을 믿었다. 둘 중에 어딘가에 붙어야만 한다면 그건 프리메이슨이 아니라 바로 상혁이다. 파월은 자신의 짐승적인 본능이 이 자리에까지 자신을 올려놓았다고 굳게 믿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록펠러 가주의 선동으로 인해 가주들이 웅성거리려는 순간 파월의 머리 위로 스크린이 생겨나더니 그곳에서 영상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저, 저거. 바로 저것입니다!!”
그 안에는 파월이 말한 모든 것이 전부 다 녹화되어 있었다. 시점은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는데 파월은 그것이 위성에서 실시간으로 찍힌 영상임을 깨달았다.
그리고 파월의 고개가 한 사람에게로 돌아갔다.
로스차일드 가주.
그만이 파월의 말에 동요하지 않았고, 거짓이라 손가락질도 하지 않았으며 무엇보다 이 중에서 저 위성 영상을 구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자였다.
그리고 파월의 말은 진실이 되었다.
눈앞에서 보인 증거에 파월에게 손가락질했던 록펠러 가주는 벙어리가 되었다. 로스차일드 가주는 손가락을 딱 튕긴 뒤 깍지를 끼며 가주들에게 말했다.
[일단 파월 국장님의 말이 거짓은 아니라는 게 확인된 셈이군요. 그래도 결정에 시간이 필요하시다 하는 가주님들은 이걸 보시지요.]
딱!
또 다른 영상이 켜졌다. 그건 실시간으로 보이는 네바다주, 51구역 내의 상공을 비추고 있는 위성이었다.
로스차일드 가주가 작게 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수만 대의 위성이 움직이는데 그 안에 한둘쯤 제 걸 끼워 넣는 건 그리 어렵지 않더군요. 그러니까 모두, 함께 영상을 보는 동안 머릿속으로 생각들을 정리하시죠.]
그와 동시에 아이언 포레스트의 전경이 손에 잡힐 것처럼 눈앞에 확대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