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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 먹는 대마법사-180화 (179/249)

쓰레기 먹는 대마법사 180화

180. 천벌(5)

“51구역 섹터 내 미 정부가 아이언 포레스트라 부르는 곳이 있고, 그곳에서 심각한 오염이 관찰되었다, 라는 것이군요.”

“예, 그렇습니다.”

노스턴 장관은 그저 20대의 평범한 아시안 청년으로밖에 보이지 않는 상혁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래도 되는 건가?’

미국의 특급 기밀에 속하는 사실을 한국인 청년에게 알려 주는 것이 과연 맞느냐 하는 의문이 들었지만 이미 말이 나왔으니.

한 가지 걸리는 점이라면 상혁을 직접 만나 자신의 앞에 데려온 파월의 표정이 걸렸다.

‘마치 유령이라도 본 듯한 얼굴이었으니까.’

노스턴 장관은 고개를 두어 번 내저었다. 지금은 당사자를 앞에 두고 다른 생각을 할 때가 아니다. 노스턴 장관은 상혁이 깊숙이 등받이에 몸을 파묻는 것을 보며 물었다.

“어떻습니까. 하실 수 있겠습니까?”

상혁은 용왕의 개발자이거나 아니면 적어도 그 개발자와 긴밀한 협력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이다. 노스턴이 그리 묻자 상혁은 고개를 갸웃했다.

“파월 국장에게서 아무것도 듣지 못하셨습니까?”

“예? 그렇습니다만.”

잠시 당황한 노스턴이지만 찰나의 당황을 금세 회복했다. 하지만 같은 배를 타기로 한 파월이 자신에게 숨기는 것이 있다는 사실에 그의 눈썹이 찌푸려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51구역. 제가 들여보내 달라고 한 겁니다. 그저 국무부와 제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것이지요. 그러니 그런 질문을 하시기 전에.”

상혁은 자신의 손목을 톡톡 두드렸다.

할 수 있느냐, 없느냐 그걸 묻는 건 시간 낭비라는 노골적인 바디랭귀지다. 상혁이 노스턴 장관에게 말했다.

“어떻게 하면 저를 그 누구의 눈에도 띄지 않고 51구역 안으로 들여보낼 방법을 강구하세요.”

* * *

“파월 국장. 대체 제게 팩에 대해 무엇을 숨기고 계시는 겁니까?”

그날 저녁, 노스턴 장관은 파월을 호출했다. 파월은 노스턴 국장이 팩, 상혁에 대해서 묻자 얼굴을 딱딱하게 굳혔다.

“무엇이 궁금하십니까.”

“팩의 목표가 51구역이었다는 것. 그걸 왜 빼놓은 겁니까?”

파월은 자신이 경황이 없어 그 사실을 보고에서 누락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변명의 여지가 없는 자신의 실수이기에 파월은 깔끔하게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보고 과정에 누락이 된 모양입니다.”

“고의는 아니란 말입니까?”

“이미 장관님은 저희와 같은 배를 타셨습니다. 장관님이 한 번 쓰고 버릴 패도 아닌데, 그런 걸 숨길까요.”

노스턴 장관은 고개를 모로 꺾었다. 그도 그리 생각했기 때문에 파월을 매섭게 몰아붙이지 못했다.

대체 무엇이, 저 프리메이슨의 나팔수 노릇을 하는 파월이 중요한 정보를 누락시킬 정도로 혼란스럽게 만든 것일까.

“팩을 이용해 글레이저와 제피렐리를 상잔하게 만들겠다고 하셨지요? 어떻게 돼가고 있습니까?”

“그건…….”

윌리엄 글레이저와 안드레아스 타이클레가 죽었다. 상혁은 그들이 마치 서로 총격전을 일으켜 양패구상한 것처럼 마법으로 조종했다.

그 사실을 파월은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상혁은 숨길 의도가 없어 보였지만 이걸 어떻게 보고해야 할지 파월도 갈피를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파월 국장.”

“실팹니다. 아니, 아예 모든 계획을 처음부터 다시 짜야 할 것 같습니다.”

“어째서요?”

노스턴 장관의 눈이 커졌다. 파월은 숨을 깊이 들이마시고 노스턴에게 말했다.

“어젯밤, 스캇 고먼, 안드레아스 타이클레, 윌리엄 글레이저가 사망했습니다.”

“뭐요?”

벌떡.

노스턴 장관이 놀라 자신도 모르게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내 그는 낮은 신음을 흘리며 다시 털썩 자리에 주저앉았다.

“원탁의 직계와 주요 간부군요. 어째서요?”

“총격전을 벌였습니다.”

“총격전이요?”

원탁과 프리메이슨이라면 모를까 그 셋은 전부 다 원탁 소속이다. 원탁 내부에서 심각한 분란이 일어났다는 첩보도 없는데 그 셋이 총격전을 벌여 사이좋게 죽었다는 걸 노스턴 장관은 쉬이 믿을 수 없었다.

“후우, 그 총격전을 벌이게 만든 것이 바로 미스터 백입니다.”

“왓!!”

노스턴 장관은 한 대 얻어맞은 표정을 지었다. 파월의 입에서 나오는 것이 그의 상식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파월이 농이나 하자고 노스턴 장관에게 거짓을 말할 리 없다. 그러니 그의 말이 사실이라는 뜻이다.

“그럼 어제 국장이 자리를 비웠을 때…….”

“예. 미스터 백이 저를 부른 이유가 그것 때문이었습니다. 현장에 대한 뒷정리를 할 사람과, 자기의 능력을 과시하기 위해서요.”

“대체 그게 어떻게 가능한 일입니까? 그 셋이라면 평소에 대동하고 다니는 경호원만 해도 각각 열 명이 넘지 않습니까. 한국에서 그런 대규모 무장 병력이 넘어왔다는 첩보는 없었지 않았습니까.”

상혁이 그런 총격전을 유도했다는 건 말이 되지 않는 이야기다. 파월은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장관님의 말씀이 맞습니다. 미스터 백은 혼자였으니까요.”

“그런데 총격전을 벌이게 만들었다는 겁니까? 어떻게요?”

파월의 입술이 부르르 떨렸다. 이걸 말한다 해도 노스턴 장관을 어떻게 설득시키느냐가 까마득하게 멀게만 느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파월은 진실을 말할 수밖에 없었다.

‘미스터 백이 그러고자 나에게 자신에 대한 것을 밝혔으니까.’

* * *

[방금 미국 내 모든 언론사와 구독자 백만 명 이상의 정치, 사회 인플루언서들에게 윌리엄 글레이저와 스캇 고먼의 비리가 적힌 자료를 발송했습니다.]

“고생했어, 일호.”

[별말씀을. 마스터, 곧 미국 내 모든 커뮤니티에도 관련된 자료를 게시하겠습니다.]

상혁은 씩 웃었다. 일호는 상혁의 예상보다 훨씬 더 다재다능함을 갖추게 되었다. 단순히 상혁을 옆에서 보좌하는 것이 아니라 이제는 인터넷과 컴퓨터를 이용해 더 넓은 범위에서 서포트하는 것이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이제 일호는 현존하는 모든 해커들의 실력을 뛰어넘었다. 일호가 도장 깨기를 하듯 전 세계의 해커들과 그 조직들을 깨고 다녔기에 아는 이들은 일호를 코드네임 ‘브레이커’라 부르고 있었다.

정보전이라면 세계에서 가장 뛰어나다는 러시아와 중국의 해커조직도 일호에 의해 단신으로 깨졌으니 사실상 0과 1의 세상에서 일호가 최강자의 자리에 올랐다는 뜻이다.

“이호와 일영은?”

[이호와 일영은 백도현을 감시하고 있습니다. 참, 그리고 조만간 백성철 회장이 검찰에서 나올 것 같습니다.]

“그 정도면 됐어. 무리해서 백성철 회장을 막는 건 지양하라고 해. 백성철 회장에게도 적당히 희망은 줘야 하니까.”

[예. 그럼 백정연 대표가 호텔과 리조트를 SG그룹으로부터 분리하여 독립하는 정도로 마무리 짓도록 하겠습니다.]

백정연은 그녀가 원하던 대로 호텔과 리조트를 얻을 것이다. 그리고 SG그룹에서 분리되어 독립한 뒤 SG그룹은 다시 백성철의 손아귀로 들어올 것이다.

“좋아.”

상혁은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백성철에게서 SG그룹을 빼앗는 건 지금이라도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상혁은 그에게 이룰 수 없는 희망을 조금씩 주어 그가 아주 길게 고통을 받게끔 할 예정이었다.

“상혁!”

그때 사만다가 상혁을 발견하고는 잰걸음으로 걸어왔다. 상혁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사만다, 천천히. 그러다 넘어…….”

와락!

그때 사만다가 달려와 상혁을 와락 끌어안았다. 그러자 주변에서 사만다를 보고 웅성거리던 이들이 환호성을 내질렀다.

상혁은 당황한 표정으로 그 자리에 굳었다. 사만다의 머리에서는 향긋한 데이지 냄새가 났다.

“저, 사만다.”

“고마워요, 상혁. 당신은 정말 내 목숨도 구해 주고, 내 인생도 구렁텅이에서 꺼내 주었어요. 고마워요 정말로.”

상혁은 그녀가 뉴스를 보았음을 눈치챘다. 벌써 일호가 보낸 자료와 함께 윌리엄 글레이저의 사망 소식이 인터넷을 달구고 있다는 뜻이다. 그리고 사만다는 그걸 바로 보았고.

‘주드가 말해 줬을 수도 있지.’

사만다의 일을 자신의 일처럼 생각하는 사만다가 속한 기획사의 사장인 주드가 말해 주었을 수도 있다.

확실한 것은 사만다가 진심으로 상혁에게 고마워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약속했잖아요. 난 할 일을 했을 뿐이에요.”

윌리엄 글레이저와 스캇 고먼, 그리고 로키드마틴의 CEO가 롱아일랜드 외곽인 몽탁에서 총격전을 벌이다 죽었다.

사만다를 거짓된 사랑으로 파탄에 빠뜨린 윌리엄이 죽었다는 소식에 사만다는 자신을 옭아매고 있던 쇠사슬이 끊긴 것 같은 자유를 느꼈다.

“난, 난 정말…….”

사만다는 말을 하려다가 상혁의 어깨에 자신의 얼굴을 파묻었다. 그녀의 눈에서 흐른 눈물이 상혁의 어깨를 적셨다.

“사만다. 이제 당신을 앞을 막을 건 더 이상 없어요. 그러니까 울기보다는 웃어요. 그간 많이 울었잖아요.”

상혁의 목소리가 사만다의 긴장을 어루만지며 녹이는 듯했다. 그리고 사만다는 그 벅차오름을 담아 상혁의 어깨에 파묻은 얼굴을 든 뒤 상혁의 입에 자신의 입술을 맞췄다.

“흡!!”

우오오오오!

휘이익!

사만다의 과감한 스킨십에 주변에 있던 미국인들이 휘파람을 불고 환호성을 내질렀다. 그리고 상혁은 은은한 데이지향이 멀어지는 것을 느꼈다.

짧은 입맞춤.

사만다는 홍조가 잔뜩 오른 얼굴로 상혁을 다시 힘껏 끌어안았다.

“고마워요. 정말 고마워요, 상혁. 상혁은 내 영웅이에요.”

사만다의 목소리가 기쁨으로 가득 찼다. 그녀의 행동 하나하나에서 느껴지는 후련함과 기쁨에 상혁도 하하, 소리를 내어 웃었다.

그렇게 세계 최고의 여배우인 사만다의 모험이 끝이 났다.

* * *

사만다의 모험은 끝이 났으나 상혁의 모험은 이제 시작이다.

부우우웅, 끽.

상혁의 앞에 선팅이 짙게 되어 안이 하나도 보이지 않는 차 한 대가 와서는 섰다. 그러고는 차창이 지잉하고 내려가더니 노스턴 장관의 얼굴이 나타났다.

덜컥.

그 사이 앞 좌석에서 내린 경호원이 문을 열어 주었다. 상혁더러 타라는 뜻이었다. 상혁이 그곳에 올라타자 상혁을 태운 차가 미끄러지듯 이동했다.

“국무부의 노스턴 하파이트라고 합니다. 부족하나마 장관직을 맡고 있습니다.”

“백상혁입니다.”

상혁과 노스턴은 가볍게 악수를 나눴다. 차가 도로 위로 미끄러지자 노스턴의 차 주변으로 검은 차량들이 달라붙었다.

“경호 차량입니다. 헬리포트로 갈 예정입니다.”

노스턴은 상혁에게 차분하게 설명했다. 헬리포트로 이동하여 헬리콥터를 타고 공항으로 간 다음, 그곳에서 네바다로 간다는 뜻이었다.

상혁의 두 눈에 기대감이 가득 차올랐다. 51구역. 베일에 싸여 있다는 그곳에 들어가는 최초의 민간인이 될지도 모르는 일이기 때문이다.

“은밀하게 들어가는 방법은요?”

“간단합니다. 51구역이라고는 하나 그곳도 사람이 생활하는 곳이니까요. 웬만한 식자재는 그 안에서 자급자족으로 충당하나 인간은 그것만 먹고살 수 없는 법입니다.”

“그러면?”

“수송기를 타고 들어가시게 될 겁니다.”

수송기.

51구역 안에서 자체적으로 생산할 수 없는 생활용품이나 공산품을 실은 수송기에 상혁이 올라타게 될 것이라는 뜻이다.

상혁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다음에는요?”

“안에 저희 요원이 대기하고 있을 겁니다. 그 요원을 따라 아이언 포레스트, 속칭 IR로 향하시면 됩니다.”

“IR이라.”

아이언 포레스트. 이름만 들어서는 감이 전혀 오질 않았다. 그런 상혁에게 노스턴 장관은 조심스레 물었다.

“이미 파월 국장에게 듣기는 했습니다만. IR에서 3km 떨어진 지점에서 벌써 20㏜ 이상의 강력한 방사능이 검출되고 있습니다. 그라운드 제로는 200㏜ 이상의 방사능이 흘러나오고 있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구요.”

사람이 노출되어도 안전한 방사선량은 1년에 2m㏜다. 그런데 3km 떨어진 지점에서 20㏜의 방사능이 검출되고 있었다.

1시버트가 1,000밀리시버트이니, 그라운드 제로의 200㏜는 치사량의 수만 배에 달하는 농도다.

사실상 방호복을 입고 사람이 들어가더라도 불과 몇 분 내에 사망할 수 있을 정도의 방사능인 셈.

노스턴 장관의 조심스러운 말을 들은 상혁은 팔짱을 낀 채 태연한 표정으로 어깨를 으쓱했다.

“강아지 손이라도 필요하니 외국인인 저를 51구역까지 들이는 게 아닙니까? 그러니 믿어 보시죠. 대신 만일 제가 귀하가 원하는 대로 방사능을 안전하게 제어할 수 있다는 걸 증명한다면.”

국무부와 상혁의 이해관계가 맞는다고 해서 네바다주, 더 나아가서는 미국이라는 국가를 구원한 그 대가를 상혁을 그냥 퉁 치고 지나갈 생각이 조금도 없었다.

그 때문에 이미 상혁은 지난번에 만난 파월을 통해 원하는 것을 요구한 상태였다.

“내가 요구한 것들을 하나도 빠짐없이 들어주셔야 할 겁니다.”

씩 웃는 상혁의 얼굴을 마주한 노스턴 장관은 침중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입니다. 우리 미국은 한때의 어려움을 넘었다고 하여 결정적인 도움을 준 이의 뒤통수를 칠 정도로 그릇이 작은 나라가 아니니까요. 최고의 대우를 해 드리겠습니다. 제가 책임지고 대통령 각하와 담판을 지어서라도 요구사항을 들어드리겠습니다. 그러니 부디.”

노스턴 국장이 상혁을 간절히 쳐다봤다.

“네바다를 구해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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