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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 먹는 대마법사-179화 (178/249)

쓰레기 먹는 대마법사 179화

179. 천벌(4)

“마법입니다.”

상혁은 무덤덤한 얼굴로 그리 말했다.

“마법…… 이요?”

파월의 대답은 한참이 지난 뒤에야 가까스로 나왔다. 대답하기까지의 시간 동안 얼마나 치열하게 머리를 굴린 것인지 그의 얼굴이 순식간에 5년쯤 늙은 것처럼 보일 정도였다.

“하하하. 그럼 지금 이게 우연이거나, 무슨 귀신의 장난처럼 보이십니까?”

상혁이 손가락으로 대저택을 가리켰다. 그러자 파월은 얼음물을 뒤집어쓴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설마, 고먼과 글레이저, 그리고 제피렐리를…….”

“쉿. 거기까지.”

상혁은 입술에 검지를 가져다 대었다. 파월은 흐읍 숨을 들이마시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믿기 힘들지만 파월은 상혁을 자신이 알고 있는 상식으로 재단해서는 안 되는 인물이란 것을 깨달았다.

“좋은 눈빛이에요.”

상혁은 파월의 눈빛을 보고는 씩 웃었다. 저런 눈빛을 한 사람에게는 굳이 같은 말을 두 번씩 할 필요 없었다. 어차피 같은 말을 두 번 이상 할 생각도 없었지만 말이다.

파월의 머리가 재빠르게 돌아갔다. 순식간에 머리가 뜨끈해지면서 정수리로 수증기가 피어오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파월은 크게 심호흡한 뒤 상혁에게 말했다.

“어째서…… 라고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상혁이 파월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는 건 파월로 하여금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끔 만들었다. 그러나 그중 가장 중요한 건 상혁이 자신의 정체를 숨길 생각이 없다는 뜻이었다.

그게 아니라면 상혁은 굳이 대저택을 파월 앞에 보여 주고 파월 앞에서 자신이 마법사라는 것을 밝힐 필요도 없을 것이다.

그러니 가장 중요한 건 상혁의 의사다.

“스캇 고먼. 곧 언론과 SNS를 통해 한 번 쫙 뿌릴 생각인데, 그자는 변태 살인마였습니다. 어릴 적 여자에게서 받지 못한 사랑을, 애 있는 여자를 자신의 손으로 직접 살인함으로써 풀었으니까요. 그런데 하필이면 한국대학교 학생 하나를 죽였네요?”

“스캇 고먼이…….”

“그리고 윌리엄 글레이저.”

상혁은 손가락 하나를 더 폈다. 그러고는 파월을 보며 한 사람의 이름만 말했고, 그걸로 설명은 충분했다.

“사만다 허드.”

“이해했습니다.”

상혁의 피앙세. 처음 스캔들이 터졌을 때부터 공식적으로 교제를 인정한 이후에도 지금까지 상혁과 사만다에 대한 이슈는 가십지에서 심심하면 터뜨리는 주제 중 하나였다.

그렇기에 파월이 모르려야 모를 수가 없었다.

“사실 마지막 사람이 가장 애매하죠. 안드레아스 타이클레. 뭐 하지만 태어나는 건 순서가 있어도 가는 건 순서가 없다잖아요? 로키드마틴이 대한민국 용산에 비밀 연구소를 세우고 그곳에서 극비리에 치명적으로 유해 한 생화학 무기를 개발하고 있었죠. 그 때문에 대한민국의 국토가 심각하게 오염되었고. 그 때문이라고 합시다.”

누가 보더라도 그건 그냥 가져다 붙인 이유다. 하지만 파월은 상혁을 일반 사람과 같은 윤리 선상에 놓고 판단하는 우를 범하지 않았다.

“그럼 저 안에서 서로 총격전을 가한 것처럼 꾸며 놓으신 것도 미스터 백이 한 일이란 뜻입니까?”

“네.”

상혁은 어젯밤에 잘 잤냐고 물었을 때 대답하는 것처럼 무게감 없이 대답을 툭 내뱉었다. 하지만 파월은 그 가벼운 대답이 거대한 무게가 되어 자신의 어깨를 짓누르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외통수다.’

파월은 자신이 상혁이 파 놓은 함정에 완벽하게 걸려들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상혁이 마법사란 것을 모르는 세 가문에서는 스캇과 윌리엄, 안드레아스의 죽음에 파월이 연관되어 있다고 의심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이건 원탁과 프리메이슨의 전쟁으로 번질 수도 있었다.

“못 믿으시겠다면 보여 드릴 수도 있는데.”

상혁이 손가락을 까닥이며 움직이자 파월은 눈을 질끈 감고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괜찮습니다.”

“뭐, 궁금하시다면 언제든지.”

여유로운 상혁의 태도를 보며 파월은 등줄기에 식은땀이 흐르는 것을 느꼈다. 상혁이 블러핑을 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만에 하나 상혁의 능력이 진실이라면 자신은 되돌릴 수 없는 선택을 하게 되는 셈이다.

‘협박이다.’

상혁의 저 여유로운 태도는 파월에게 하는 협박이나 다름없었다. 미국 국무부라고 해도 자신을 어쩔 수 없다는 그런 자신감의 발로였다.

그리고 실제로 파월은 머릿속으로 여러 방면으로 시뮬레이션을 돌렸다. 그 결과 상혁이 마법사란 것을 모른다면 모든 시뮬레이션이 상혁의 압도적인 승리로 끝이 난다.

‘글레이저와 제피렐리 가문이 한국에서 큰 손해를 봤다고 했지. 무슨 손해를 본 것인지까지는 알 수 없었지만…….’

만약 거기에도 상혁이 손을 뻗친 것이라면?

‘용왕! 러시아와 중국에서도 밝혀내지 못한 용왕의 비밀이 미스터 백에게 있었어. 마법이라니. 정녕 지구 유일의 마법사란 말인가!’

파월이 상혁을 바라봤다. 상혁은 그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뻔히 알겠다는 듯 이를 드러내고 웃었다.

“상상에 맡기겠습니다.”

‘글레이저의 더블아이가 한국으로 급파되었으나 돌아온 요원은 없었다. 그리고 CIA의 비밀작전국과 블랙이 나섰는데도 아무런 성과를 얻었다는 소식도 없었고. 그렇다면…….’

블랙홀.

상혁은 블랙홀이다.

지금껏 한국에서 일어난 실패의 원인이 상혁에게 있었다는 것을 눈치챈 파월의 관자놀이로 땀이 주륵 흘러내렸다.

“이런. 더우신 모양입니다?”

사아아-!

상혁이 손가락을 흔들자 사방이 밀폐되어 공기가 흐를 수 없는 차 안에 미풍이 불며 파월의 땀을 식혔다.

상혁의 무력과시에 파월은 침을 꿀꺽 삼켰다.

“혹시 제게 원하시는 것이 있으십니까?”

“51구역에 들어가고 싶습니다.”

상혁의 말에 파월의 눈이 커졌다. 파월이 상혁에게 부탁하려는 것 역시 51구역에 있었다. 상혁과 자신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자 파월의 떨림이 줄어들었다.

그리고 상혁은 재밌다는 듯 그런 파월을 보며 빙긋 웃었다.

“이런. 마침 국무부의 목적과 제 목적이 맞아떨어진 모양이군요. 그럼 잠시간은 친구가 될 수 있겠네요. 그렇지 않겠어요?”

* * *

투다다다다다!!

푸확! 푸화아악!

펑!

투다다다!!

스크린에서 총성이 벼락처럼 터져 나오고 폭발이 일어나며 피가 흩날리는 모습이 가감 없이 흘러나왔다.

저게 영화였다면 좋겠지만 저건 영화가 아니라 실제 상황이었다.

잠시 후.

스크린이 띠익- 소리를 내면서 꺼졌다. 그러자 침묵이 내려앉았다. 말도 안 되는 상황에 모두가 할 말을 잃은 것이다.

“스캇 고먼. 윌리엄 글레이저. 그리고 안드레아스 타이클레.”

차가운 눈을 한 채 무덤덤한 목소리로 사망자의 이름을 읊은 남자는 윌리엄 글레이저가 30년 뒤쯤 저렇게 늙지 않을까 싶은 외모를 가지고 있었다.

프랭크 글레이저.

차기 대선주자로 대선 레이스에서 승기를 이미 단단히 굳혀놓았다는 글레이저 가문의 가주인 그가 차가운 분노를 속에 꾹꾹 눌러 담은 채 모니터 속의 얼굴들을 쳐다보았다.

원탁회의.

지금 이 자리에는 원탁에 속한 각 가문의 모든 가주들이 모였다. 맨해튼으로부터 차로 2시간 반 떨어진 몽탁의 대저택에서 일어난 총격전으로 인해 대규모 사상자가 나왔는데, 그중 세 명이 세 가문의 직계이거나 중요한 자리에 있는 이들이었기 때문이다.

글레이저 가문.

제피렐리 가문.

고먼 가문.

노리치 가문.

그리고 포든 가문.

각기 정계, 군수, 재계, 부동산, 금융의 큰 손들이자 원탁의 원년 멤버인 다섯 가문의 가주들이 모인 곳에서 프랭크의 목소리만 또렷하게 울려 퍼졌다.

“이 셋이 죽었습니다. 사망 추정 시각은 어젯밤 22시에서 23시 사이. 최초 신고자는 신원미상의 신고자였으며 경찰이 현장을 봉쇄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아들을 잃었지만 프랭크의 목소리에는 흔들림이 없었다. 그는 화상으로 이뤄지고 있는 모니터 너머의 가주들을 향해 고개를 꾸벅 숙였다.

“스캇과 안드레아스를 잃은 두 가주께 유감을 표합니다.”

고먼 재단과 제피렐리 가문.

프랭크는 자신의 아들도 사망 명단에 있었지만 두 가주에게 오히려 고개를 숙여 유감을 표했다. 그러자 화면 너머의 가주들이 프랭크에게 마주 고개를 숙이며 윌리엄의 사망에 유감을 표했다.

“먼저 이야기를 이어 나가기 전에 우리 글레이저 가문과 고먼 가문, 그리고 제피렐리 가문 간에는 상잔이 일어날 만한 일이 없었다는 것을 밝히고자 합니다. 동의하십니까?”

[동의합니다.]

[예.]

프랭크의 목소리는 소름 끼칠 정도로 고저가 없었다, 거의 완벽하게 감정을 컨트롤하고 있다는 뜻이다.

직계가 죽었기에 오해로 인해 균열이 일어날 뻔한 원탁의 분위기를 한 방에 사로잡은 프랭크는 연달아 입을 열었다.

“이번 사건에는 두 가지 큰 의문점이 있습니다.”

프랭크의 말에 화면이 저절로 돌아갔다.

“먼저. 이 셋이 왜 그곳에서 만났던 것이냐는 거죠. 미스터 고먼, 고언이 있으십니까?”

그 자리에 셋이 모인 건 스캇 고먼의 연락 때문이다. 원래 원탁의 직계나 중진들끼리 모여 친목을 다지는 건 그리 이상한 일이 아니지만 하필이면 저 셋이 모였을 때 이런 일이 벌어졌다는 것이다.

[저도 곧바로 주변을 조사해 봤습니다만 별다른 이유를 찾을 수 없었습니다. 그저 친목의 일환이 아니었나 하는 것 외에는요.]

“그렇군요. 그럼 다음입니다.”

프랭크의 말에 화면 위로 그곳에서 죽은 약 오십 명의 사망 사진과 사인에 대해서 주르륵 떠올랐다. 차마 두 눈 뜨고 보기 힘든 사진들이 많았지만 프랭크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오십 명. 스캇과 윌리엄, 안드레아스까지 합쳐서 쉰 세 명이 현장에서 사망했습니다. 사인은 모두 총상이며 치명적인 부위에 총상에 의한 관통상이 일어난 것으로 파악되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두 번째 의문점입니다.”

프랭크의 두 눈이 서늘한 빛을 띠었다.

“도주를 선택한 자가 한 명도 없다는 건 그렇다고 칩시다. 그런데.”

스캇과 윌리엄, 안드레아스의 사망 사진이 화면에 떴다.

“이 셋은 총기를 다루기는 하였으나 그 수준이 취미 정도로 알고 있습니다. 맞습니까?”

[맞습니다.]

[예.]

윌리엄과 스캇, 안드레아스는 마치 동시에 서로에 머리에 쏜 것처럼 쓰러졌다. 프랭크는 모든 가주들이 들을 수 있도록 목소리를 키워서 대답했다.

“그런데 어떻게 이 세 명이 동시에, 총을 발사하여 그 총알이 각 세 명의 머리를 관통할 수 있었을까요?”

세 명의 사인은 지극히 깔끔했다.

총기에 의한 두부 관통상.

그 외에 총상은 전혀 없었다. 즉, 이 세 명은 마치 동반 자살이라도 한 듯 동시에 서로의 머리에 대고 방아쇠를 당겼다는 뜻이다.

“다른 사망자의 사인 역시 마찬가지. 모두 치명적인 곳의 관통상을 제외하고는 쉰 명 중 서른다섯 명에게서 별다른 상흔이 발견되지 않았고, 다른 상흔이 나온 열다섯 명도 다른 이를 관통하고 나온 총알에 의한 관통상인 것으로 파악되고 있습니다.”

쉰세 명이나 되는 인원이 서로의 약점을 향해 각자 동시에 총알을 발사해 모두 한 번에 죽었다?

“이건 총격전이 아니고.”

총기류 수십 정이 한 번에 발포되었다고는 하나 그건 총격전이라 부를 수 없었다. 프랭크는 가주들을 향해 말했다.

“처형입니다.”

누군가 그 쉰세 명을 동시에 처형했다고 보는 것이 맞았다. 프랭크는 동요를 보이는 가주들을 보며 말했다.

“스캇 고먼과 윌리엄 글레이저. 그리고 안드레아스 타이클레의 지난 한 달 동안의 행적과 통화기록을 수집하여 용의자를 추려낼 계획입니다. 또한 인근 지역을 지나간 정찰위성의 기록을 국방부에 요청하여 받아 낼 생각입니다. 그래서.”

프랭크의 두 눈에서 마침내 불꽃이 타올랐다.

“이 일에 연루된 자들을 단 한 놈도 살려 두지 않고 응당한 징벌을 받게 할 생각입니다. 동의하십니까.”

[동의합니다!]

[예.]

[하는 수 없지. 동의합니다.]

[너무 과격한 대응은 프리메이슨을 자극할 수 있습니다. 전 반대합니다.]

찬성 넷, 반대 하나.

프랭크는 두 눈에서 귀화를 피워 올리며 선언했다.

“지금부터 SSP를 가동하겠습니다.”

SSP(Suspect Surveillance Program), 용의자 감시 프로그램은 제피렐리 가문의 로키드마틴에서 개발한 안면 인식 프로그램으로 미국 전역의 CCTV를 통해 특정 용의자를 가려내기 위한 시스템이다.

인권적인 문제 등으로 인해 원탁 내에서도 사용을 자제하고 있던 SSP의 가동을 재개하겠다는 말에 프랭크의 분노를 느낀 가주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지구의 대기권을 돌고 있던 정찰위성과 감시위성 중 30퍼센트 이상이 미국의 상공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범인을 찾기 위한 원탁의 분노가 터져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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