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 먹는 대마법사 178화
178. 천벌(3)
몽탁.
세계의 끝.
상혁은 그곳에 자리한 등대를 개조한 카페를 보며 감탄했다. 절벽 위에 지어진 그곳의 풍경은 과연 세상의 끝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의 수려한 경관이었기 때문이다.
“멋지네.”
그러나 상혁의 옆에는 그의 말에 대답해 줄 사람이 없었다. 상혁 홀로 하늘에서 내리쬐는 달빛을 받으며 철썩거리는 파도 소리를 즐기고 있었기 때문이다.
펄럭펄럭.
상혁의 옷자락이 바람에 의해 흩날렸다. 상혁은 주변의 장관이 한눈에 들어오는 것에 꽤 만족했다. 상혁도 이곳에 집을 하나 지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휘오오오-!!
바람이 조금 세게 불며 상혁의 머리카락을 흩날리게 만들었다. 그러자 상혁은 손가락 하나를 세웠고 나부끼던 상혁의 옷자락과 머리카락이 잠잠해졌다.
마치 바람이 상혁을 중심으로 피해 가듯 상혁의 앞에 생성된 실드에 의해 옆으로 빗겨 나갔기 때문이다.
그런 상혁의 눈에 저 멀리 쌍라이트를 켠 차 한 대가 들어오는 것이 보였다. 지금은 해가 진 뒤의 야심한 시각. 그런데 보이는 차가 한두 대가 아니었다.
“걱정도 많은 양반이네.”
하늘을 부유하고 있는 채로 상혁이 피식 웃었다. 하지만 자신과 만나자고 했던 국무부의 파월 국장이 만약을 대비해 얼마나 많은 인원을 몰고 왔는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어차피 나랑 만날 일도 없을 테니.”
오늘로 약속을 잡은 것은 상혁이지만 상혁은 그런 파월 장관과 만날 생각이 없었다. 파월 장관이 만날 사람은 전혀 다른 사람이었다.
허공을 부유하고 있던 상혁이 천천히 아래로 하강했다. 마지막 관객도 드디어 나타났으니 이제는 이 극의 마무리를 할 때가 됐다.
척.
상혁은 3만 평 규모의 대지 위에 지어진 대저택의 정원에 착지했다. 상혁이 착지하는 동안 주변은 적막에 잠겨 있었다.
대저택 주변으로는 높이가 2m는 가뿐히 넘어 보이는 담장이 둘러져 있었다. 그리고 그 안은 마치 프랑스 왕궁의 정원을 그대로 옮겨 놓은 것처럼 말끔하고 화려하기 그지없었다.
그런데 놀라운 건 상혁 혼자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자, 이제 마지막 손님이 도착하신 것 같으니 슬슬 끝냅시다.”
상혁의 눈에 마치 마비가 된 것처럼 선 채로 굳은 수십 명의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들 손에는 각기 흉악하기 짝이 없어 보이는 총기류들이 들려 있었는데, 다들 식은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눈동자를 굴리는 것이 그들이 움직일 수 있는 것의 전부였다.
상혁은 그들 틈을 여유롭게 거닐어 끝까지 갔다.
그러자 정원의 끝에 마찬가지로 식은땀을 흘리며 서로의 얼굴만 바라보고 있는 세 명이 상혁의 눈에 들어왔다.
윌리엄 글레이저.
스캇 고먼.
그리고 안드레아스 타이클레였다.
“아이고, 다들 힘드실 텐데. 그래도 조금씩만 더 참으세요. 곧 있으면 끝날 겁니다.”
상혁이 빙긋 웃었다. 상혁은 그들과 차례차례 눈을 마주쳤다.
“윌리엄 글레이저 씨, 한국에서 한 번 봤죠? 왜, 도현이 형님이랑 그쪽이랑 무명에서 대화하는 거 본 적이 있거든.”
백상혁의 얼굴을 윌리엄이 못 알아볼 리 없다. 하지만 그런 윌리엄은 식은땀만 흘리며 상혁의 눈을 피하고 있었다.
“사만다를 그렇게 괴롭히셨다면서요. 뭐 이해는 합니다. 원래 정치하는 인간들이 가운데 다리 잘못 놀리는 일은 허다하거든요.”
상혁은 자신의 손톱 밑을 보면서 별것 아니라는 투로 말했다.
“그런데 그건 좀 아니지 않나? 사람을 인체 실험 대상으로 쓰다니. 내가 그거 한 번 당해 봐서 알거든요. 기분 진짜 더러워요.”
상혁이 흐흐흐, 하고 웃었다. 윌리엄의 이마에 솟아난 식은땀이 땅으로 떨어졌다. 상혁은 그의 땀을 손을 뻗어 닦아 주었다.
“뭐, 다른 사람 눈에서 피눈물 흘리게 한 게 돌아왔다, 이렇게 생각하시면 됩니다. 아, 외국인이라 동양의 업보에 대해서는 모르려나? 카르마, 카르마 있잖아요. 그거.”
“…….”
윌리엄은 눈이 바르르 떨렸다. 그는 무언가를 말하고 싶어 했지만 상혁의 허락 없이는 지금 이곳에 있는 그 누구도 입을 열 수 없었다.
그리고 상혁은 그에게 쓸데없이 입을 열어 말할 기회를 줄 생각이 추호도 없었다.
“에이. 또 말하는 거 들으면 내가 귀가 얇아서 설득당하거든. 약속한 걸 지키려면 그쪽이 이 세상에서 사라지는 게 더 도움이 될 것 같네요. 그리고 애초에 이 사회에 딱히 필요한 인간도 아니었잖아, 당신?”
상혁은 고개를 휙 돌려 안드레아스 타이클레를 쳐다봤다.
“네바다의 51구역에 있는 TC-01 생산공장은 내가 잘 쓰겠습니다. 그게 나한테 필요하거든요.”
상혁이 양손에서 불과 얼음을 만들어 내고 머리 위로 벼락을 떨어지게 만들며 안드레아스 앞에서 마법을 뽐냈다.
그러고는 이내 마법을 싹 캔슬시키며 배시시 웃었다.
“이런 거. 이런 거 하려면 마나란 게 필요한데, 그게 댁들이 용산에 놓고 간 생화학 무기에 찐하게 있더라구요. 그 이름이 TC-01인 건 몰랐지만.”
안드레아스의 눈이 이리저리 흔들렸다. 상혁은 그의 매끈한 머리를 손바닥으로 살살 쓰다듬었다.
“사실 그쪽에게는 고마운 마음밖에 없긴 해요. 뭐 덕분에 6서클에서 7서클까지 거의 한꺼번에 뛰어넘었으니까. 그래도 그림상, 이게.”
상혁은 두 손으로 네모를 만들어 셋을 상대로 구도를 잡고는 어깨를 으쓱했다.
“한 명이 빠지면 좀 그림이 죽거든. 아트, 이해하죠?”
상혁은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는 눈빛을 보내는 안드레아스의 볼을 톡톡 두드려 준 뒤 스캇 앞에 섰다.
“뭐, 넌 말할 필요도 없는 그냥 변태 살인마고.”
상혁이 뒤로한 발자국 떨어졌다. 그리고 상혁의 발이 땅에서 30cm 정도 떨어지며 위로 날아올랐다.
둥실.
“자. 그럼 우리의 만남은 여기까지. 이별이 길어 봤자 좋을 것 없으니까요. 그러면.”
상혁의 양손에서 마나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상혁은 그 마나로 허공에 수인을 맺으며 스펠을 캐스팅했다.
“지옥 구경 잘들 하시길.”
퉁.
상혁이 수인의 끝을 마나가 담긴 손가락으로 찍어 끝냈다. 그러자 마나가 정원 전체로 퍼져 나가며 그곳에 석상처럼 우뚝 서 있던 수십 명의 몸속으로 스며들었다.
스윽, 스으윽
철컥!
그러자 각자 총기류를 꺼내든 채 석상처럼 서 있던 이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움직임이 얼마나 부자연스러운지 마치 관절이 없는 레고를 움직이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수십 명의 사람이 일제히 서로를 향해 총구를 겨누고 방아쇠에 손을 얹는 데에는 문제가 없었다.
“아, 맞다. 주인공들도 챙겨 줘야지.”
오늘 야밤에 몽탁에서 벌어지는 이 극의 주인공은 세 명이다. 상혁이 손가락을 까닥하자 염력에 의해 총기 몇 자루가 허공을 날아 각기 스캇과 안드레아스, 그리고 윌리엄의 손에 들어갔다.
“이제 진짜 마지막. 하핫. 그럼 시작!”
상혁이 활짝 웃으며 손가락을 튕겼다.
투다다다다다!!
타다다당!
쾅!!
퍼버벙!
그리고 대저택의 정원이 삽시간에 수백 발의 총성으로 뒤덮였다.
* * *
“왜 하필이면 몽탁일까.”
파월 국장은 저 멀리 보이는 대저택을 보며 턱을 쓰다듬었다. 몽탁은 맨해튼에서 결코 가까운 거리가 아니다. 차로 무려 2시간 반이 꼬박 걸리는 거리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미국 태생도 아니고, 뉴욕 토박이도 아닌 상혁이 왜 굳이 몽탁을 만남의 장소로 정한 것일까.
[진입합니다.]
파월 국장이 탄 차의 앞, 뒤 그리고 양옆으로 무려 다섯 대나 되는 승합차가 뒤따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안에 탄 것은 모두 다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 파월이 준비한 경호원들이었다.
총기 특유의 비릿한 냄새가 파월이 있는 곳까지 느껴지는 것 같았다. 그런데 그때 밤공기를 뚫고 요란한 총성이 울려 퍼졌다.
[산개, 산개!!]
끼이이익-!!
갑작스러운 총성에 파월이 탄 차와 그를 호위하는 차가 난리가 났다. 다급한 무전기 너머의 명령과 함께 파월이 탄 차가 끼익 소리를 냈고 그 앞을 방탄 처리가 된 차들이 다급히 가로막았다.
투다다닥!!
다다다다다!!
하지만 파월은 이내 총성이 자신들 쪽으로 울려 퍼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파월은 앞을 가로막은 방탄차 너머로 저 멀리 상혁이 있다고 한 대저택에서 총성이 울려 퍼지고 있다는 것을 눈치챘다.
“무슨 일이야!! 빨리 알아봐!!”
[라져!]
우우웅!!
방탄차에서 드론이 떠올랐다. 파월은 이쪽의 기척을 모두 숨기기 위해 차의 시동과 라이트까지 끈 채 어둠 속에서 경호 책임자의 무전이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그리고 5분 뒤.
[전방 목적지에서 총격전이 벌어졌습니다. 대략 오십 명 남짓한 인원이 벌인 대규모 총격전입니다.]
“사상자는?”
[근접해 살펴봐야 하겠지만 드론으로 정찰한 결과 살아남은 자들이 거의 없는 것으로 보입니다.]
“제기랄. 백상혁이 저곳에 있는데.”
파월은 고민했다. 이걸 일단 경찰에 알려야 하나, 아니면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자신이 먼저 파악해야 하느냐 때문이었다.
“일단 진입해.”
[라져!]
경호원들이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라이트를 끈 차는 최대한 소음을 만들어 내지 않으며 대저택에 접근했다. 척후로 나섰던 경호원이 보고한 내용이 금방 파월의 앞에까지 올라왔다.
“뭐?”
“생존자가 없습니다.”
“다 죽었다고?”
“예.”
파월의 눈이 커졌다. 오십 명이 넘는 이들이 서로 총격전을 하다가 모두 양패구상을 당했다는 이야기다.
도망가는 자도, 심지어는 부상자조차도 없다는 말에 파월은 등줄기가 서늘해지는 느낌이었다. 한두 명도 아닌 오십 명이, 누구 하나 살아남지 못하고 다 죽었다는 건 말이 되지 않는 이야기다.
경호 책임자 역시 같은 의견이었다.
“차라리 다른 누군가 저들을 몰살시키고 빠져나갔다고 한다면 믿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미 총격전이 시작된 뒤 드론을 보내 내부 상황까지 확보한 그들이다. 그리고 안에서 죽은 이들 외에 외부 세력이 더 있다는 건 말이 되지 않는 이야기였다.
“그런데 사망자 중에.”
경호 책임자가 찍어 온 사진 세 장을 내밀었다. 그리고 그것을 본 파월 국장의 눈이 찢어질 것처럼 커졌다.
“이게 사실이야?”
“예. 가장 안쪽에 쓰러져 있었습니다.”
“말도 안 돼.”
스캇 고먼.
윌리엄 프레이저.
안드레아스 타이클레.
그 세 명의 얼굴을 알아본 파월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모두 다 원탁의 인물들이다. 이 사실이 알려진다면 아마 미국의 정계와 재계는 발칵 뒤집어질 것이다.
그 순간 파월의 머릿속에 스쳐 지나가는 이름이 있었다.
‘백상혁. 설마 이 모든 것이 백상혁이 짠 판인가?’
그렇다면 자신을 이곳까지 부른 것도 모두 설명이 된다. 하지만 그건 말이 되지 않는다. 백상혁이 대체 무슨 힘이 있어 이곳에 이 세 명을 불러 놓고, 이들이 양패구상하게 만든다는 말인가.
그 전에, 백상혁과 이들이 대체 무슨 관계가 있다고.
지이잉-!
그때 파월의 핸드폰이 울렸다. 파월은 액정에 떠오른 이름을 확인하고는 어깨를 흠칫 떨었다.
[백상혁]
백상혁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을 때 백상혁에게서 전화가 왔다. 파월은 조심스럽게 핸드폰의 통화 버튼을 눌렀다.
“여보세요?”
[파월 국장님. 제가 준비해 놓은 건 잘 즐기고 계십니까?]
백상혁이다. 즐거운 듯 웃음기를 머금은 상혁의 목소리를 들은 순간 파월은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전류가 관통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꿀꺽.
“이걸 미스터 백이 했다는 겁니까?”
[예. 이 먼 미국까지 온 이상 처리해야 될 인간들이었으니까요. 겸사겸사 제가 어떤 사람인지를 보여 드려야 할 필요도 있고.]
파월의 이마에 식은땀이 맺혔다. 상혁은 파월이 예상했던 그 모든 것을 한참 벗어났다. 파월은 자신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
SG그룹이 자신이 생각한 것보다 훨씬 더 위험한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런 파월의 생각을 읽은 것처럼 상혁이 말했다.
[SG그룹은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뭐, 이건 제 지극히 사적인 일인데.]
스윽.ㅈ
“그럼 이제 말씀해 보시죠. 국무부에서 날 왜 찾은 건지.”
파월의 뒷목에 소름이 쭈뼛 돋았다. 분명 수화기 너머 들려오던 상혁의 목소리가 갑자기 육성으로 바로 옆에서 들리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파월의 옆자리.
바깥에 경호원들이 지키고 있어 개미 새끼 한 마리도 들어올 수 없는 파월이 탄 차에 상혁이 다리를 꼰 채 빙긋 웃으며 앉아 있었기 때문이다.
“왜 그런 눈으로 보시는지?”
상혁이 밀랍처럼 창백한 얼굴을 한 파월에게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