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 먹는 대마법사 175화
175. 횡재(5)
재미와 쾌락을 위해 사람을 죽인 자.
그들을 일컬어 사회는 그들을 살인마라 부른다.
그리고 지금 상혁의 눈앞에 눈 풀린 살인마가 잠에 빠진 채 옆으로 쓰러져 있었다. 간단한 수면 마법으로 스캇을 재운 것이다.
“일어나면 다 끝나 있을 겁니다.”
“아, 아…….”
“슬립.”
정수빈 역시 눈을 감고 스르르 옆으로 쓰러졌다. 그리고 상혁은 그녀에게 망각 마법을 걸어 이 안에서 본 것을 잊도록 만들었다.
“상혁.”
“당신 역시 마찬가지.”
사만다는 두 눈을 지그시 감았다. 상혁이 사는 세계에 자신이 개입할 생각은 애초에 없었다. 그저 그의 비밀 하나를 공유한 것만으로도 그녀는 만족했다.
스르륵.
사만다가 눈을 감고 옆으로 쓰러졌다. 상혁은 그녀를 받아 들어 누운 자세가 편하도록 만든 뒤 팔짱을 꼈다.
부우웅.
리무진은 여전히 흔들림 없이 뉴욕 시내를 나아갔다. 리무진의 운전석에는 리무진 뒤편을 볼 수 있는 카메라가 설치되어 있었지만 그가 볼 수 있는 건 상혁이 펼친 환상뿐이다.
“이 살인마 새끼로 제피렐리를 끌어내면 되겠네.”
상혁은 리무진에 타는 순간 스캇에게 마법을 걸었다. 정확히는 이 차내에 떠도는 약의 미약한 기운들을 모아 하나로 뭉쳐 놈의 몸에 스며들게 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에 곁들어진 간단한 최면 마법.
그렇기에 스캇은 마치 술이나 약을 먹은 것처럼 그리 횡설수설하며 상혁에게 자신이 박제희를 죽였다는 것을 제 입으로 털어놓은 것이다.
“등신 새끼.”
그런 스캇을 내려다보는 상혁의 입에서 고운 소리가 나올 리 없다. 이제 막 피어나는 대학생을 죽여 놓고도 쾌락이니 즐거움을 입에 담는 놈은 아주 저 깊은 곳부터 잘못된 것이 틀림없다.
“이런 경우에는 부모에게도 손가락질을 하지.”
자식을 어떻게 키우면 저런 놈이 되냐며.
상혁은 스캇을 보며 그 부모까지도 어떤 유형의 사람인지 읽어 냈다. 보나 마나 뻔했다. 스캇과 자라온 환경과 생활 방법이 비슷했을 것이다.
주체할 수 없는 돈과 권력.
그리고 미국의 암중에서 암약하는 고먼 가문과 원탁이라는 든든한 배경까지 그들은 태어나면서부터 지금까지 ‘실패’라고 부를 만한 것을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들보다 더 강하고 잘난 이들이 없었을 테니까.
그들은 일반인들이 개미처럼 일하고 열심히 사는 모습을 보면서 정말 개미라고 손가락질을 하며 낄낄 웃었을 것이다.
필요하면 가져다 쓰고, 필요가 없어지면 손가락으로 짓눌러 죽이고 마는 그런 개미 같은 존재.
그렇다면 이제 그들에게도 똑같이 보여 주고 돌려주면 된다.
이제부터는 상혁이 그들을 개미라고 생각할 셈이니까.
툭.
상혁은 손가락으로 스캇의 머리를 건드렸다. 그러자 그가 부스스 눈을 떴다. 풀렸던 그의 눈에는 여전히 초점이 없었다.
“야, 너.”
스캇이 고개를 돌려 상혁을 쳐다봤다. 최면과 약을 취한 스캇의 눈에 상혁이 무엇이라 보일지는 알 수 없었다.
다른 사람의 뇌까지 상혁이 들여다볼 수 있는 건 아니었으니까.
“내가 왜…….”
그나마 상혁은 제대로 보이는 모양이다. 눈에 이채를 띈 상혁은 스캇에게 말했다.
“혹시 컬렉션 같은 거 만드냐 너?”
이런 놈들의 생리를 꿰뚫고 있는 상혁이 스캇에게 물었다. 꼭 이렇게 돈 많고 인생 어려움 없이 살아온 놈들은 인생이 지겨운 것인지 다른 사람에게는 없는 취미를 하나씩 만든다.
그중 스캇처럼 인간이기를 포기한 놈들은 꼭 컬렉션을 만든다.
희생자들의 물건이나 그들의 신체 일부러 만들어진 그런 컬렉션.
히죽
스캇이 상혁의 말에 입꼬리를 끌어 올리며 웃었다.
“보고 싶어?”
“응. 한번 보자.”
“좋아. 내가 오늘 생긴 새로운 친구를 위해 인심 쓴다. 가 보자.”
“일단 호텔부터.”
정수빈과 사만다까지 그곳에 데려갈 필요는 없다. 어차피 오늘 내로 사라질 곳이기 때문이다. 스캇이 손을 들어 운전석을 쿵쿵 두드리며 소리쳤다.
“호텔로!”
부우웅
리무진이 방향을 꺾었다.
* * *
“보호해.”
상혁의 목소리가 마나에 실려 허공으로 흩어졌다. 그리고 그런 상혁의 목소리는 아래층에 있는 김태양의 귓가에 울려 퍼질 것이다.
그러니 이제 사만다와 정수빈의 안위는 걱정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걸린다면 글레이저 가문이 걸렸으나 그쪽은 공항에서 일어난 일만 해도 머리가 터질 지경일 것이다.
“국무부는 언제쯤 접촉하려나.”
국무부의 초청을 받아 미국행을 결심한 상혁이다. 하지만 글레이저 가문 때문인지, 아니면 스캇 때문인지는 몰라도 아직까지 아무런 접촉이 없었다.
비밀리에 진행된 비공식적인 접선이라고 해도 그들의 골칫거리를 해결해 주기 위해 친히 미국까지 왔는데 굼뜨게 움직인다는 게 썩 마음에 들진 않는다.
그래도 상혁은 한 번 더 참기로 했다.
‘7서클에 오를 수 있다면야.’
제피렐리도 있었지만 국무부의 요청대로라면 조금 더 쉽게 7서클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거기에 제피렐리에서 무엇을 개발하고 있건 상혁에게 도움이 될 그것들까지 독차지한다면 미국에서 이룰 수 있는 모든 것을 이루게 된 셈이다.
‘7서클부터는 텔레포트를 쓸 수 있으니까.’
공간 이동 마법.
6서클에 오르며 단거리 공간 이동인 블링크를 습득했다. 그 블링크만 해도 효용성이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다.
하지만 텔레포트는 블링크와 아예 다른 차원이다.
좌표를 습득하기 위해 마나를 꽤 쏟아부어야 하지만 한 번 좌표만 확보된다면 세계 어느 곳이든 텔레포트 마법과 마나만 있다면 갈 수 있게 되는 셈이기 때문이다.
이동 시간이 획기적으로 줄어든다는 뜻이다.
그리고 그렇다는 건 비로소 대마법사 소리를 듣기 시작한 마법사가 마음먹고 게릴라전을 펼친다면 재앙이 된다는 소리다.
‘보통 7서클 마법사들은 마나가 문제인데. 그것도 내게는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고.’
텔레포트는 마나 잡아먹는 귀신이다. 그 때문에 가나안에서는 텔레포트 마법을 펼치기 위해 마나석의 도움을 받는 것이 당연했다.
마법사가 자체적으로 보유한 체내 마나 만으로는 텔레포트 마법을 사용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상혁은 다르다.
촘촘하게 심장을 둘러싸고 있는 마나실로 만들어진 두터운 마나의 고리. 거의 7번째를 이루기 직전에 있는 마지막 한 올만 갖춰진다면 상혁은 비로소 6서클을 완성하고 7서클에 진입하게 된다.
이미 그 마나량만 해도 7서클을 아득하게 상회하는 수준이다.
‘산술적으로 계산하자면 텔레포트 마법을 연달아 10번은 펼칠 수 있을 정도.’
말도 안 되는 마나량이다. 물론 드래곤 같은 아예 체급 외의 괴물들이 있어 그들은 텔레포트 마법을 100번을 넘게 쓸 정도의 마나를 보유하고 있다지만 같은 인간 중에 이 정도 마나량을 보유한 마법사가 있었던 적은 없다.
가나안에서도 나올 수 없는 그런 대마법사가 이 지구에서 탄생하게 되는 셈이다.
그것도 공기 중의 마나가 아니라 인간이 만들어 낸 오염 물질 속에 녹아 있는 마나를 통해서.
‘이제 보니 여기 방법이 더 나은 것 같기도 하고.’
가나안의 마나는 어딜 가든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지구의 마나는 오로지 인간이 인공적으로 만들어 낸 오염 속에서만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대체 인간이 무슨 짓을 한 것인지, 그 오염으로 농축된 마나가 말 그대로 노다지 중의 노다지였다.
드래곤 하트만큼은 못 하지만 마나를 높여 준다면 마나 덩어리, 그러니까 영약들을 찾아다니는 재미가 있을 정도.
‘내가 재수가 좋은 것도 있고.’
어디든 인간이 살지 않는 곳이 없으니 어디든 오염은 반드시 발생한다. 그중에서도 상혁이 운이 좋기는 했으나 그만큼 오염이 심각하다는 소리다.
50년에 걸쳐 8서클이 되었던 상혁이 회귀한 지 불과 1년도 채 되지 않아 7서클에 달하는 마나를 쌓은 셈이니까.
‘세계의 의지가 오지랖이 넓다고 생각했는데 그 간절함이 이해되기도 하고.’
그렇게 중얼거린 상혁은 호텔 로비 입구에 기다리고 있던 리무진에 올라탔다.
“가지.”
“큭큭큭. 후회하지 않을 거야.”
최면 마법에 걸린 스캇은 자신의 속내를 숨기지 않았다. 아니, 그럴 필요가 없었다. 스캇의 저열한 내면이 전부 다 튀어나오도록 최면을 유도했기 때문이다.
쓰고 있는 가면을 벗어던진 스캇은 제 발로 무덤으로 향하는지도 모른 채 상혁을 안내했다. 맨해튼 한복판에 있는 펜트하우스.
100층 높이의 펜트하우스에 도착한 상혁은 통유리로 만들어져 맨해튼 전경이 보이는 바깥 풍경을 힐끗 보고는 스캇을 쳐다봤다.
“컬렉션은?”
“이쪽으로 와.”
스캇이 큭큭 거리며 상혁을 안쪽으로 안내했다. 그는 책이 천장까지 꽂힌 서재의 한 부분을 손으로 슥 만지더니 안에서 책이 불쑥 튀어나왔다.
책이 꽂혀 있던 자리 뒤쪽에 스위치가 있는 모양이다.
‘클래식하군.’
진부한 클리셰다. 스캇이 그곳을 꾹 누르자 책장이 돌아가더니 웬 철문이 떡하니 나타났다. 그리고 그 문이 열린 순간 상혁의 눈에 이채가 맴돌았다.
“엘리베이터?”
“사실 여기, 4층짜리 펜트하우스거든.”
하지만 집 안에 있는 계단을 통해 올라갈 수 있는 건 3층이 전부다. 그런데 옥상 바로 아래 4층이라 불리는 비밀스러운 공간이 있다는 뜻이었다.
스캇은 정말 아무런 의심 없이 그런 은밀한 비밀까지 상혁에게 털어놓았다. 상혁이 엘리베이터에 올라타자 금세 엘리베이터가 4층에 도착했고 문이 열렸다.
후욱.
“흠.”
상혁은 문이 열리자마자 밀려드는 혈향이 콧잔등을 찡그렸다. 이 첫인상만 해도 대충 이 안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짐작이 갔다.
정수빈이 봤다는 살인 장면.
그리고 놈이 죽인 박제희까지.
‘최소한 열 명인가.’
상혁은 스캇이 최소한 열 명 이상의 사람을 죽인 살인마라는 것을 눈치챘다. 하지만 그런 상혁의 심중도 모른 채 신이 난 스캇은 낄낄거리며 상혁을 안내했다.
박물관의 전시관 하나를 떼다 옮겨 놓은 것 같은 거대한 방. 그 안에는 유리관으로 정성껏 보관한 물품들이 있었다.
“이건 내 첫 번째 여자야. 정말 사랑했지. 내 모든 걸 줘도 아깝지 않을 정도로. 그런데 말이야, 감히 바람을 피우더군.”
“……이게?”
“결혼한 여자였어. 알고 보니 돈 때문에 접근했던 모양이야. 애새끼까지 딸려 있을 줄은 몰랐지.”
스캇이 가리킨 것은 아기가 가지고 놀만 한 장난감이었다. 그 장난감에 피가 묻어 있었다. 그걸 보며 스캇은 히죽 웃으며 말했다.
“그래서?”
“죽였지. 내가 직접. 처음이었어. 누군가를 죽여보는 건. 그리고 그게 그렇게 짜릿할 줄도 몰랐지. 내가 사랑하는 여자일수록 더 짜릿하더군.”
하아아
스캇의 두 눈이 살기로 번들거렸다. 그때의 쾌락을 상상이라도 하는 모양이다. 역겨운 모습이었지만 상혁은 눈 하나 깜박하지 않았다.
자신이 사랑했던 여자가 전남편과 바람을 피웠다? 애까지 있는 여자와 사랑에 빠졌다?
‘어디서 구라를 까고 앉아 있어.’
고먼 가문이 그저 그런 중산층 가문도 아니고. 스캇이 만나는 여자에 대해서 곧바로 조사에 들어가지 않을 리 없다.
아마 스캇도 알고 있었을 것이다.
애가 딸린 여자라는 것을. 아마 놈이라면 그게 오히려 더 놈의 도전정신을 부추겼을 것이다.
‘과시적인 성격. 그리고 자기애가 강하고. 하지만 애정결핍인가. 여자에게 사랑받지는 못한 것 같은데.’
스캇은 컬렉션마다 자신이 정말 사랑했던 여자라는 것을 강조했다. 그것을 보며 상혁은 확신할 수 있었다.
‘이 새끼 이거. 여자한테는 영 사랑받지 못한 놈이네.’
아마 스캇의 부모에게서, 특히 친모에게서 사랑을 받지 못한 모양이다. 전시관 안에 전시된 희생자들의 컬렉션은 무려 서른 종. 그중 열다섯 개 이상이 애가 있고 가정이 있는 여자다.
스캇은 그녀와 자신이 정말로 사랑했다는 것을 계속해서 강조했다.
하지만 그 여자가 결국 자신을 배신하고 바람을 피웠다고.
‘친모가 바람나서 제 놈을 버렸기 때문인가.’
상혁은 피식 웃었다. 무언가 대단한 놈이리라고는 생각하지도 않았지만 역시나 그저 그런 미친놈에 불과했다.
뭐 너무나도 레퍼토리가 뻔해 놀랄 가치도 없는 그저 그렇고 그런 놈.
“이게 네 비밀이란 거지. 그러면 그게 까발려졌을 때 네놈의 추악해질 모습을 한번 볼까?”
박제희의 유품은 학생증이었다. 그것 역시 유리관 안에 전시되어 있었다. 한글로 써진 한국대학교 학생증 위로 피가 한 방울 말라붙어 있었다.
그리고 상혁은 손가락을 튕겼다.
따악.
“일어나라.”
각성 마법. 최면 마법에 빠진 스캇을 깨우는 마법이 펼쳐졌다. 그 순간 스캇의 두 눈에 또렷한 초점이 들어왔다.
“안녕, 스캇. 정신이 들었어?”
스캇이 고개를 휙 돌려 상혁을 쳐다봤고, 상혁은 조소를 입가에 머금은 채 손을 들어 그에게 살짝 흔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