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 먹는 대마법사 174화
174. 횡재(4)
고먼 재단.
상혁은 미국에 오기 전 웬만한 검색 엔진 수준의 검색 능력을 지니게 된 일호의 능력과 국정원 중심의 흑태양파를 통해 스캇 고먼에 대해서 다방면으로 알아보았다.
그러나 결과는 신통치 않았다.
스캇 고먼 개인에 대한 정보는 별로 이렇다 할 만한 게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고먼 재단은 달랐다.
고먼 재단은 장학 사업을 중점적으로 진행하는 재단이었으나 그 재단에 속한 대학교들의 면면이 대단히 화려했다.
하버드, 스탠포드, MIT, 콜롬비아, 브라운 등등.
미국의 상위 대학을 뜻하는 아이비리그에 속한 사립대학 중 거의 90퍼센트 이상이 고먼 재단의 장학 사업에 동참하고 있는 학교였던 것이다.
고먼 재단이 장학 사업을 통해 일 년에 각 대학에 다양한 명목으로 지급하는 장학금의 액수만 100억 달러.
한화로 12조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금액이다.
그리고 이 금액은 미국의 1년 교육부 예산인 660억 달러의 약 1/6에 달하는 액수로 고먼 재단이 미국 교육의 한 축을 이끌어 나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셈이다.
그리고 그 고먼 재단은 고먼 가문에 속해 있었다.
고먼 가문.
상혁이 스캇 고먼에 대해 조사해 달라고 부탁한 다음 김태양이 하루 상혁을 찾아왔는데, 김태양은 혀를 내두르며 상혁에게 물었다.
[우리가 접근하려고 한다는 것을 알자마자 곧바로 꼬리가 서른 개쯤 달라붙었습니다. 뭐, 서일호 씨 덕분에 전부 잘라 내긴 했습니다만, 장난 아닌데요?]
그 과정에서 서일호라는 이름을 쓰게 된 일호의 활약이 대단했다고 한다. 마치 한 사람 몸에 여러 사람이 들어앉은 것처럼 붙은 꼬리 서른 개를 쥐도 새도 모르게 해치워 버렸다고.
영혼을 가지게 된 서번트인 일호의 성장세가 무서울 정도였으나 상혁에게는 오히려 잘된 일이었다.
가장 믿을 수 있는 자신의 마법 생명체인 서번트가 고도화될수록 상혁에게는 이득이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그렇게 여차저차 여러 고비를 겪으며 김태양이 가져온 고먼 재단의 규모는 상상 그 이상이었다.
‘원탁의 고먼. 로스차일드에 맞서기 위해 결성됐다는 설만 있을 뿐.’
미국에는 금융과 부동산, 재계를 한 손에 쥐고 있는 괴물이 있었다. 그게 바로 로스차일드다. 로스차일드 가문은 석유를 중심으로 막대한 부를 축적하였고 그에 맞서기 위해 만들어진 곳이 고먼이라는 소문이 있었다.
어쨌거나 그 고먼이 보유한 재력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
‘고먼 재단은 부차적인 사업에 불과했지. 1년에 12조를 장학금으로만 쓰는 재단이 말이야. 절세나 탈세를 위해 만들어진 곳일 테고.’
롱텀캐피탈.
드러켄밀러 펀드 매니지먼트.
콥로드 인베스트먼트.
이 세 회사는 월가에서 그 이름만으로도 모두가 다 알 정도의 역사와 영향력을 가진 회사들이다. 월가를 꿈꾸는 사람이라면 세 곳 다 희망 지망란의 첫 번째를 차지할 정도로 어마어마한 회사들이었다.
이 세 회사가 전부 다 고먼 가문에 속한 회사들이었다.
피도 눈물도 없는 돈의 노예들이 모인 곳.
그렇게 사람들에 의해 손가락질을 받는 곳이 롱텀캐피탈이다. 그들은 사람들의 비극에 베팅을 하여 막대한 수익을 올린 회사로 고객들에게는 최고의 회사이지만 다른 이들에게는 지탄의 대상이 되곤 했다.
특히 1997년 대한민국 IMF 당시 어마어마한 수익을 올린 곳 중 하나로 그 연도에만 롱텀캐피탈의 평균 수익률이 1,200퍼센트를 달성하곤 했다.
그리고 드러켄밀러.
한국에서 뉴스를 볼 때 증시 부문이 나오면 이런 말을 자주 듣곤 한다.
‘외국 투자가가…….’
‘외국 투자기관이…….’
이럴 때 언급되는 그 ‘외국’ 투자자와 투자기관이 대부분 드러켄밀러 펀드 매니지먼트이다. 가장 유명한 사건으로는 1990년 영국 파운드화 공매도로 영국 파운드화로 무려 68퍼센트의 수익을 올리고 영란은행을 무릎 꿇렸던 그 사건의 주역이 바로 드러켄밀러다.
한 나라의 금융기관을 상대로 싸워 승리한 롱텀캐피탈은 금융이 취약한 나라를 골라 그 나라의 약점을 공략하는 악명 높은 곳으로도 유명했던 것이다.
마지막으로 콥로드 인베스트먼트는 현재 미국 시가총액 1, 2위를 다투고 있는 헤슬라와 구골이 유명해지기 전 발탁하여 자금을 투자하고 지분을 받아 낸 투자회사로 그들이 손을 안 뻗친 회사가 없다는 말이 월가에 돌 정도.
개중에는 투자금을 넘기고 경영권을 포함한 지분까지 받아 온 경우도 있어 그들을 비판하는 이들은 유니콘 헌터라는 이름으로 부르기도 했다.
매출 1조를 뜻하는 유니콘 기업이 될 스타트업들을 사냥했다며 손가락질을 하는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세 회사의 가치는 미화로 무려 1조 5천억가량. 한화로는 2,000조가 넘었다.
김태양은 그런 고먼 가문을 한 문장으로 압축했다.
‘원탁의 금고.’
고먼 가문은 원탁의 금고 역할을 하는 곳이다. 가장 중요한 곳 중 한 곳이기에 그들은 다른 원탁 가문들의 비밀도 훤히 꿰뚫고 있을 것이다.
돈이면 귀신도 부린다는 자본주의 세상에 고먼 가문의 막대한 자금력은 같은 편인 원탁이라고 해도 그들의 약점을 속속들이 다 알고 있을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거기에 백도현과의 연관성까지.
‘백도현은 고먼 가문을 통해 미국에 진출하려 했으니까.’
미국 내 사업 활로를 모색하고 경쟁에서 앞서기 위해 백도현은 스캇 고먼과 친밀한 관계였던 것으로 보인다.
그 과정에서 한국대의 박제희란 여학생이 모종의 이유로 죽었고, 백도현이 그 일을 덮었다. 스캇 고먼이 그 일에 연루되어 있었다.
“상혁.”
“아, 사만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깊게 해요?”
상혁은 부드럽게 웃었다. 사만다는 그에게 손에 들린 샴페인잔을 건넸다. 상혁은 스캇이 상혁을 위해 준비했다는 리무진에 탄 상태였는데, 그 리무진 내부는 마치 작은 바를 옮겨 놓은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냉장고와 각종 주류는 물론이고 화려한 조명과 음향까지 움직이는 바라고 해도 손색이 없었다.
이 차를 스캇 고먼이 자랑하듯 삼십만 달러가 넘는 차를 사서 리무진으로 개조하기 위해 또 삼십만 달러쯤이 더 들었다고 떠들어 댔지만 상혁은 귀담아듣지 않았다.
하지만 확실한 건 딱 하나가 있었다.
‘여기서 더러운 짓이 참 많이 벌어졌다는 뜻이지.’
맨 처음 사람 좋은 웃음을 지어 보이는 스캇의 면상을 볼 때부터 느낌은 왔다. 하지만 이 리무진에 타자 그 확신이 더욱 짙어졌다.
단순히 스캇이 힐끔거리며 사만다의 풍만한 엉덩이를 쳐다보았기 때문이 아니다.
‘피랑 약 냄새.’
순수히 자연에서만 나온 것을 혼합하여 나올 수 있는 향기가 아니다. 더군다나 상혁의 심장의 고리를 쿡쿡 찌르는 이런 냄새는 지난번에 한번 비슷한 것을 맡아본 적이 있었다.
그곳은 검찰 자료보관실이었다.
그곳에서 아주 ‘우연히’ 손에 넣었던 것과 아주 유사한 느낌이 들었다. 보나 마나 밖에서는 전혀 안이 보이지 않는 이 이동하는 주지육림 안에서 스캇은 꽤 질펀하게 여럿과 놀아난 것이 눈에 훤히 보였다.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돈을 가진 집안에서 태어난 인간의 타락.
별로 신선한 소재도 아니다.
상혁의 눈매가 쳐졌다.
‘어째 너희는 다 레퍼토리가 똑같냐.’
가나안이나 이곳, 지구나. 돈 많고 권력이 많은 이들의 레퍼토리는 다 비슷비슷했다. 가진 것이 많아도 만족할 줄 모르는 그 끝없는 욕망과 배부른 놈들의 타락은 이제 질릴 지경이었다.
상혁은 괴짜였고 대의를 품은 선한 마법사는 아니었으나 적어도 자신의 눈앞에서 벌어지는 비도덕적이고 비윤리적인 일을 그냥 눈감고 못 본 척할 정도로 인성을 버리진 않았다.
그래서 청소했다.
뭐 대단한 의미는 없었다. 세상을 깨끗하게 만들겠다는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하필이면 자신의 눈에 띈 덕분에, 상혁의 눈에 거슬렸다.
힘을 가진 상혁의 눈에 거슬린 그자들의 말로는 모두 다 비참하고 처참했다.
상혁은 그들보다 권력이 많았고, 가진바 무력도 차고 넘칠 정도로 많았으니까.
그들의 그 하릴없는 욕망은 결국 더 큰 힘 앞에 모래성처럼 무너질 정도로 다 부질없는 것에 불과했지만 그걸 깨닫는 사람은 지극히 드물다.
그 때문에 힘을 가지고, 돈이 있는 자들 중 선한 자보다 악한 자들이 더 많은 것일지도 모른다.
모름지기 선(善)의 길이란 것은 지난하고 고행에 가까운 일이기에 그냥 두 눈 꾹 감고 편하고 쉽고 즐겁고 재밌는 길로 빠지게 되는 것이리라.
‘뭐, 선(善)을 그리 힘들게 만들어 놓은 게 문제겠지.’
상혁에게 선과 악의 기준치는 명확하지 않았다. 이 세상에 악인치고 사연 없는 악인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딱 하나의 기준은 있었다.
내 눈에만 거슬리지 말아라.
상혁의 눈에만 거슬리지 않고, 상혁에게 걸리지만 않으면 상혁이 모르는 것까지 굳이 파고들어서 일일이 찾아다니며 징벌하고 다닐 생각 따윈 추호도 없었다.
그러고 살기엔 인생이 너무 짧았으니까.
그런 점에서 스캇은 별로 운이 좋지 않았다.
‘내 눈에 띄어 버렸네.’
지운다고 지우고, 치운다고 치운 것 같았으나 상혁의 코에는 이 리무진 안에서 선명한 혈향이 느껴졌다. 그리고 상혁의 심장은 쿵쾅거리며 공중에 미약하게 퍼진 마나를 들여보내 달라면서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상혁이 고개를 돌려 스캇을 쳐다봤다.
“미스터 고먼.”
“오, 노우! 미스터 고먼이라니. 스캇이라고 불러 주세요 상혁.”
스캇이 느물거리며 대답했다. 그는 정수빈의 어깨를 주물럭거렸고 정수빈은 거미줄에 잡힌 먹잇감처럼 옴짝달싹도 하지 못했다.
비행기 안에서 상혁을 노골적으로 도발하고 유혹하던 것과는 180도 다른 모습.
정수빈은 스캇에게 몸도 마음도 지배당하고 있었다.
“스캇? 어려울 것 없지.”
“오, 역시 난 네가 나와 말이 잘 통할 거라 한눈에 알아봤다고.”
스캇이 낄낄거리며 웃었다. 상혁은 턱짓하며 스캇에게 말했다.
“우리 작은형님이 네게 신세를 많이 졌다고 하시던데.”
“백도현? 그럼, 이 미국에서 사업을 하기 위해선 고먼 가문이 필요하니까. 듣자 하니 SG그룹도 마찬가지라 그러던데?”
“그렇지. 그런데 형님이 그러시더라.”
상혁이 스캇을 보며 씩 웃었다.
“박제희. 네가 죽였다고.”
“왓? 누구?”
필터링 없이 상혁의 입을 거쳐 나온 말에 사만다와 정수빈의 눈이 커졌다. 아니, 정수빈은 거의 놀라서 실성할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박제희. 한국대학교 재학 중이던 여학생. 반도체학과 연수로 미국에 왔고, 너를 만났다고 하던데.”
“오, 오오오! 기억났다!”
스캇이 두 눈을 번뜩이면서 상혁을 쳐다봤다.
“궁금했거든. 한국 여자가 백인이라면 아주 사족을 못 쓴다고 너튜브에서 떠드는 걸 말이야. 여기서는 그 누구건 나를 거부하는 여자가 없으니까. 날 아예 모르는 여자를 만나 보고 싶었거든.”
“그게 박제희였어?”
“응. 나를 모르는 한국에서 온 여자. 넌 믿을지 모르겠지만 난 여자에게 한눈에 반하는 편이거든.”
스캇의 입가에 황홀한 미소가 떠올랐다.
“알잖아. 날 거부하는 여자. 그런 여자에게 판타지가 있다는 거. 그런데 그 애가 딱 그랬어. 날 거부하더라고. 내가 누군지 말해도 전혀 모른다는 표정이고.”
스캇은 지금껏 거절이란 것을 당해 본 적이 없다. 그가 원하는 것은 언제나 손에 들어왔다. 그건 사람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자신을 거절하는 동양인 여자는 스캇의 말초신경을 짜릿하게 만드는 무언가가 있었다. 거절을 당한다는 생소한 행위 자체가 스캇을 자극한 것이다.
상혁은 그런 스캇의 표정 변화를 놓치지 않고 살펴보고는 생각했다.
‘미친 또라이 새끼네.’
상혁은 저런 표정을 짓는 놈들을 본 적이 있었다. 참고로 놈이 아니라 ‘놈들’이 맞다. 왜냐하면 가나안에서는 난다 긴다 하는 귀족 자제들 중 꼭 저렇게 나사가 돌아버린 놈들이 한 놈씩은 존재했기 때문이다.
그러면 상혁이 왜, 어떻게 그런 놈들을 다 보았느냐?
‘가정교육을 어떻게 시켜 먹은 건지 마법사가 물건을 뚝딱 만들어 내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놈들이 많았지. 자기네들은 귀족이니까 명령하면 들어먹을 거라 생각한 놈들도 많았고. 그래서 문 닫은 귀족 가문이 몇 개더라?’
여자를 자빠뜨리는 아티팩트.
건드리기만 해도 여자를 흥분시키는 아티팩트.
한 모금에 의식을 잃게 만드는 연금술로 만든 물약 등등.
지구라면 그냥 하나만으로도 철컹철컹 은팔찌를 찰 것들을 만들어 달라고 마탑에 쳐들어와 당당하게 요구하는 놈들이 많았다.
그래서 상혁은 그놈들을 자근자근 밟아 가문으로 돌려보냈다. 반병신을 만들었어도 목숨은 끊지 않았으니 그게 어딘가.
하지만 그렇게 보내 버리면 꼭 그 부모라는 것들이 ‘내가 귀족인데 어디서 천한 것이 감히’를 시전하면서 마탑으로 달려온다.
그러면 또 상혁이 나선다.
개국공신인 상혁은 거의 모든 것에 면제를 받고 있는 상황인지라. 개국공신을 먼저 공격한 그 귀족들을 적당한 명분을 세워 싹 쓸어버렸다.
그렇게 영영 역사에서 사라져 버린 귀족 가문이 열다섯 개.
그중 세 곳이 백작가, 한 곳이 후작가로 고위 귀족들까지 그냥 깡그리 날려 버리고는 당당히 왕에게 가서는 고하면 왕은 상혁을 용서해 주었다.
그때 그 자식 놈들의 표정이 딱 저 스캇 같았다.
“그래서 그 애를 확 쓰러뜨렸을 때의 쾌감. 버둥거리며 발악하는 몸과 고통에 젖어 일그러지는 얼굴까지. 너도 분명 만족했을 거야, 상혁.”
“응, 아니야.”
따악-
상혁이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스캇의 눈이 탁 풀리더니 그놈이 앞으로 푹 고꾸라졌다. 비릿하게 웃은 상혁이 스캇의 목덜미를 잡아 일으켰다.
“이제 일말의 자비도 남길 필요가 없다는 걸 알게 해 줘서 고맙다. 병X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