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 먹는 대마법사 172화
172. 횡재(2)
쿠르르르!!
인천공항으로부터 14시간 떨어진 곳.
미국 뉴욕.
상혁은 창밖으로 활주로가 정신없이 지나가는 것을 보며 턱을 쓰다듬었다.
‘기네.’
비행은 쾌적했지만, 벗어날 수 없는 실내에 꼬박 14시간을 있어야 한다는 건 생각보다 답답한 일이었다.
그러나 답답함도 잠시, 상혁의 마음에도 어쩔 수 없이 기대감이 슬쩍 고갤 들었다.
‘그러고 보니 첫 미국이네.’
상혁이 외국에 나와본 것은 칠십 평생을 통틀어 처음이다. 물론 그 칠십 평생 중에는 가나안이라 불리는 타차원이 있다는 것이 다른 점이지만 어쨌든 지구에서는 처음이다.
‘그렇게 비행기를 타 보고 싶었는데.’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난 후, 보육원으로 보내졌던 상혁은 열아홉을 먹고 보육원에서 나오기 전까지 하늘을 나는 비행기를 보며 꼭 비행기를 타 보겠노라 다짐했었다.
TV에 비행기가 나오기만 해도 다른 친구들과 함께 꼭 비행기를 타자고 했었는데.
‘그러고 보니 나도 친구라고 부를 놈들이 있기는 했지.’
보육원을 나온 후 상혁은 짐을 싸 들고 신림동 고시원으로 들어갔다. 어차피 대학교 등록금이 없는 이상 먹고살기 위해서는 공무원만이 살길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함께 연락하던 보육원 친구들과도 연락을 자연스럽게 끊었다.
그리고 지난 세월이 50년.
‘나에게만 50년이지. 그 애들한테는 2년 남짓한 시간일 테고.’
보육원에서 갑자기 사회로 내팽개쳐진 아이들의 삶은 팍팍했다. 기댈 곳이 없는 아이들은 각자 살아남기 위해 정신없이 바쁘게 사회에 적응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연락이 뜸해졌지만, 비행기가 활주로에 내리는 광경을 보자 그때의 한 장면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보육원 이름도 생각이 안 나네.’
안 좋은 기억은 잊었다. 가나안에서 겪은 고생이 너무 많았기에 보육원에서 한 고생은 고생 축에 끼지도 못했다.
하지만 이렇게 생각이 나니 궁금해졌다.
‘그곳은 여전히 있겠지.’
모든 보육원이 그렇지는 않겠지만 상혁의 뽑기 운은 최악이었다. 20세기 초도 아니고 21세기에 보육원 아이들을 돈으로만 보는 원장에게 하필이면 걸렸기 때문이다.
‘옷은 허름했지. 근처 헌옷수거함에서 가져와 대충 기운 옷이었으니까. 시설도 형편없었어. 일부러 관리나 유지 보수를 등한시해 놓고는 카메라에 내보내 후원금을 착복했으니까.’
그러고는 뒤로 공무원과 관할 경찰들의 뒷주머니에 돈도 찔러 주면서 감사 등을 기가 막히게 피해 갔다.
‘나도 몇 번 굶었고.’
원장은 직접 아이에게 손을 대지 않았다. 그는 절묘하게 선을 잘 탈 줄 아는 사람이었다.
대신 그는 아이들을 굶겼고, 아이들을 선동하여 말을 안 듣는 아이를 따돌렸다.
보육원이 세상의 파도에서 자신을 지켜 주는 유일한 방패막이임을 아는 고아들은 원장의 말에 복종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탈출할 날을 꿈꿨지.’
그래서 상혁은 비행기 타는 것을 손꼽아 기다렸다. 그가 비행기를 탄다는 건 이 지옥 같은 보육원에서 드디어 벗어날 수 있다는 뜻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제야 그 비행기를 타고 있었다.
‘껍데기만 똑같지 속은 일흔 먹은 대마법사가 되어서.’
인생이란 참 재밌는 것이다. 보육원에서 나올 때까지만 하더라도 보육원이 아니라 아예 지구에서 벗어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으니까.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요, 상혁?”
상혁이 창밖을 보며 가만히 보육원 생각을 하고 있자 사만다가 옆에서 말을 걸었다. 상혁이 미소를 지으며 대꾸하는 사이 머릿속에 떠올랐던 보육원에 대한 상념이 사라졌다.
* * *
상혁은 스튜어디스들의 융숭한 배웅과 함께 비행기에서 맨 먼저 내렸다. 그리고 입국 심사 역시 프리패스.
입국 심사를 하는 공무원은 상혁의 얼굴도 제대로 보지 않고 그냥 도장을 쿡 하고 찍었다.
‘듣던 얘기로는 까다롭다던데.’
이번에는 뽑기가 운이 좋았던 것일까. 정수빈 역시 프리패스였다. 그녀는 그녀를 알아본 공무원과 사진까지 찍어 준 다음에 기다리고 있던 상혁에게 혀를 빼꼼 내밀면서 웃었다.
“기다리게 해서 죄송해요.”
“아닙니다.”
정수빈은 상혁에게 자신의 사정을 솔직하게 모두 다 털어놓은 이후 한결 편안해진 표정과 행동으로 상혁을 대했다.
덕분에 더 이상 오는 비행기 안에서 불편한 상황은 생기지 않았다. 그리고 상혁과 정수빈이 가방을 다 찾을 때까지 사만다는 나오지 않았다.
“사만다는 왜 안 나오죠?”
“무슨 문제가 생긴 모양입니다.”
미국령 안에 들어왔으니 이제 글레이저의 안방에 들어온 셈이다. 사만다를 억류한 것도 글레이저의 유치한 수작일 것이라 생각한 상혁이 캐리어를 끌고 출국 게이트를 향했다.
“잠깐만요, 상혁 씨. 그냥 가실 거예요?”
“여기서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습니다. 차라리 나간다면 모를까.”
상혁은 단호하게 대답했다. 이건 글레이저가 사만다를 위해 준비한 아주 조촐한 환영식에 불과했다. 앞으로 미국에 있는 동안 글레이저의 눈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보여 주기 위해 이렇게 유치하게 나온 것이다.
“그, 그래도 누군가는 기다려야 하지 않을까요?”
“그럼 여기서 기다리세요.”
상혁이 캐리어를 끌고 정수빈에게서 멀어졌다. 상혁이 그녀에게서 멀어진 이유는 간단했다.
우우웅!!
상혁의 손가락 사이로 푸른 마나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상혁은 그런 손가락으로 얼굴을 몇 번 훑어 내렸다.
그러자 얼굴 위로 가면을 쓴 것처럼 다른 사람의 얼굴이 생겨났다. 금발의 벽안, 공항 어디서든 흔히 찾아볼 수 있는 백인의 얼굴이었다.
“그리고.”
간단한 일루젼 마법으로 얼굴을 바꾼 상혁이 손가락을 비벼 마나를 가루처럼 자신의 얼굴 위로 떨어뜨렸다.
인식장애 마법이다.
바꾼 얼굴도 기억하는 사람이 없도록 인식장애 마법을 건 것이다.
저벅저벅.
드르륵.
상혁이 캐리어를 끌며 입국 심사장으로 거꾸로 되돌아갔다. 그러자 상혁에게 그래서 안 된다고 말리기 위해 몸을 돌린 공항 공무원의 눈들이 풀리며 허수아비처럼 그 자리에 멍하니 섰다.
그리고 상혁이 지나가자 퍼뜩 정신을 차리고는 의아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6서클에 오르니 역시 편하네.”
상혁의 뒤로는 마나가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고 있었지만 그게 보이는 건 상혁의 마나안뿐이다. 상혁이 지나가는 길 뒤로 펼쳐진 망각 마법에 상혁을 본 이들이 그 사실을 망각했다.
“여기서는 조금 더 힘을 주고.”
우우웅!!
상혁의 옷자락이 작게 펄럭였다. 마나의 출력이 늘어나며 입국 심사장에서 줄을 선 채 기다리고 있던 수백 명의 눈이 풀린 것이다.
수백 명에게 망각 마법을 건 상혁은 태연하게 맨 뒷줄에 가서는 섰다. 그러고는 자신의 가방을 다시 검색대에 넣고는 손가락을 튕겼다.
파지직!
쇼크 마법.
회로와 전기를 쓰는 지구의 과학 기술은 아이러니하게도 상혁의 1서클 쇼크 마법의 손쉬운 먹잇감이었다.
상극도 이런 상극이 있을 수 없었다. 굳이 라이트닝이니 썬더스톰 같은 고위급 마법을 쓰지 않더라도 쇼크 한 번으로 모두 무력화가 가능했기 때문이다.
검색대 역시 마찬가지.
팟-!
검색대의 스크린이 꺼지고 불이 번쩍거리며 들어왔다. 하필이면 상혁의 짐이 통과할 때 일어난 일이다.
그러자 검색 요원이 살짝 긴장한 눈으로 상혁을 향해 말했다.
“나오셔서 양팔을 벌려 주십시오, 미스터.”
수많은 사상자를 낸 9.11 테러 이후로 미국의 입국 절차는 180도 뒤바뀌었다. 그리고 모든 직원이 필수적으로 대테러 교육을 받았고 9.11이 전 미국인의 트라우마가 되면서 작은 일에도 과민하게 반응하게 된 것이다.
띠, 띠, 띠.
팟-!
상혁의 몸에 금속탐지기를 들이민 순간 그것도 쇼크 마법에 터져 나갔다. 그러자 검색 요원 둘이 더 다가오더니 상혁에게 정중하게 말했다.
“안쪽으로 들어가시죠.”
“무슨 문제가 있습니까?”
“죄송하지만 선생님의 짐을 한번 열어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상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들이 상혁을 사만다가 억류된 곳으로 안내할 것이다. 상혁은 순순히 그들의 뒤를 따랐고 따로 분리된 공간의 문을 열고 상혁을 들여보내는 순간 상혁의 손이 슬쩍 움직였다.
스르륵.
파앗-!!
푸른빛이 뿜어져 나왔다가 사그라졌다. 그리고 문을 닫자 상혁을 이곳까지 데리고 온 이들이 멍한 표정을 짓더니 이내 눈을 뜨고는 서로의 얼굴을 쳐다봤다.
“우리가 왜 여기 있지?”
“그러게.”
“뭐지?”
그사이 상혁은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고는 금세 방 안에 우두커니 앉아 있는 사만다를 발견하고는 잠긴 문에 손을 얹었다.
“언락.”
달카닥!
잠금쇠로 잠겨 있던 문이 열리고 상혁이 나타나자 사만다의 눈이 커졌다. 그때 인기척을 듣고 안에서 나온 공무원 하나가 상혁을 향해 소리쳤다.
“거기, 당신 누굽니까? 어떻게 여기 들어왔어요?”
“당신 동료들이 안내해 주던데.”
“소지품 검사받으러 온 겁니까? 그거면 거기 아닙니다. 안내해 준 검색 요원을 따라가셔야 합니다.”
상혁은 남자를 보면서 어깨를 으쓱했다.
“문 앞에서 들어가라고 하고 자기네들이 돌아가던데요.”
“그럴 리가요.”
그때 남자의 손이 옆으로 슥 내려갔다. 상혁은 눈치 빠른 남자를 보며 빙긋 웃었다.
“눈치가 빠르시네.”
우뚝.
남자는 비상벨을 누르려고 하다가 손이 그대로 굳었다. 비단 손이 아니라 전신이 마비된 것처럼 굳자 흔들리는 눈으로 상혁을 쳐다봤다.
갑자기 몸이 움직이지 않으니 당황하는 것은 당연했다. 남자는 목에 핏대가 설 정도로 힘을 줬지만 상혁은 태연히 고개를 돌려 사만다를 쳐다봤다.
상혁은 빙긋 웃는 눈으로 그녀에게 검지를 들어 입술을 막았다. 갑작스레 나타난 웬 백인이 상혁이란 것을 깨달은 사만다의 눈이 더욱 커졌다.
사만다는 상혁이 설마 직접 자신을 찾으러 와 줄 줄 몰랐다는 표정이었다. 그녀도, 상혁도 글레이저 가문이 이렇게 나올 줄은 미처 몰랐기 때문에 이런 상황에 대비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상혁은 마비 마법에 걸려 몸이 굳은 남자에게 다가갔다.
“어디 보자.”
남자는 딱 보더라도 다른 공무원이나 요원들과는 옷차림부터가 달랐다. 최소한 중간급의 간부로 보였다. 상혁은 남자의 명찰을 확인한 뒤 남자의 셔츠의 윗주머니 속에 있던 스마트폰을 꺼내 들었다.
“이 남자가 뭐라고 했습니까?”
“자신도 고의는 아니라고 하더군요. 내보내 달라고, 내 소지품에 무슨 문제가 있냐고 해도 문제가 있다는 말만 반복할 뿐이구요.”
사만다가 잔뜩 화난 표정으로 남자를 쳐다봤다.
“윌리엄이라. 스마트폰은…….”
상혁이 남자의 손을 가져다 댔다. 그러자 지문으로 핸드폰이 풀렸다. 상혁은 통화 기록에 들어간 뒤 리스트를 쭉 훑어보고는 맨 위에 있는 통화 기록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저장되어 있지 않은 번호였다.
“이런 번호가 있네요. 이거 뭡니까?”
남자의 입은 막지 않았다. 상혁이 핸드폰을 들이밀자 남자가 새파랗게 질린 채로 더듬거렸다.
“그, 그 위에서 가끔 내려오는 번호인데 저, 저도 모릅니다. 말단이라서 아무것도 모릅니다. 정말입니다.”
“대포폰이라.”
글레이저 가문이거나 글레이저 가문의 사주를 받은 TSA(연방교통안전청)의 윗선이리라. 상혁은 피식 웃었다.
“유치하긴. 환영식이 이 정도 수준이라니. 글레이저 가문이 날 실망시키는군.”
상혁은 고개를 들어 내부의 CCTV를 쳐다봤다. 그러고는 태연히 CCTV를 향해 어깨를 으쓱여 보이면서 말했다.
“조금 더 분발해 봐.”
상혁이 남자에게 망각 마법을 걸었다. 남자의 눈이 퀭해지자 상혁은 사만다의 허리를 감싸 안고는 마법을 시전했다.
‘블링크.’
번쩍!
빛이 강하게 뿜어져 나왔다. 마법을 쓴다는 것을 보여 주지 않기 위해 강한 광원 마법을 터뜨려 모습을 감춘 것이다.
라이트 마법이 사그라지고 난 뒤 그곳에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백인으로 위장한 상혁도, 사만다도 사라진 채 눈이 풀린 남자만이 멍청하게 허공을 바라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