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쓰레기 먹는 대마법사-165화 (164/249)

쓰레기 먹는 대마법사 165화

165. 다 끝내고 갑시다(5)

마나의 실.

상혁이 온 정신을 집중해 다듬어 낸 마나의 실이 심장의 고리를 꿰뚫었다. 하나의 커다란 고리를 천만 개의 실을 서로 엮어 다듬어 낸 서클은 일생의 예술품이자 혼을 담은 그릇이다.

1억 개.

첫 번째 고리를 이루는 데 백 올의 마나를 실로 만들어 꿰었다.

두 번째 고리는 천 올의 마나로 만들어진 실.

세 번째, 네 번째, 다섯 번째, 여섯 번째.

그렇게 일곱 번째는 1억 올의 마나로 만들어진 실이다.

상혁의 심장에 쌓인 고리는 마나의 실로 엮여 더 이상 고리라고 부를 수 없을 정도로 커졌다. 그러나 놀랍게도 상혁의 신체는 거뜬하게 그 방대한 마나를 담아냈다.

회귀하여 생을 다시 살게 된 대마법사가 아니라면 감히 시도조차도 해 볼 수 없는 마법의 역사를 새로 쓰는 셈.

상혁은 마나를 1억 올의 실로 정성스럽게 만들었다. 그리고 세심하게 온 정신을 집중하여 하나의 조형물을 만들어 내는 것처럼 서로 엮었다.

그리고 마지막 마나로 만들어진 실.

상혁은 자신이 왜 이만큼이나 마나의 실을 벼려 냈는지 그 이유조차도 잊었다. 아니, 상혁은 자신이 6서클을 넘어 7서클이라는 지고의 경지에 발을 내디뎠다는 것도 잊었다.

무아의 경지.

마나안은 고고히 빛을 발하고 있었고 그로 인해 상혁은 스스로의 서클을 관조할 수 있었지만 어느 순간부터 아예 자신의 존재조차도 잊었다.

스윽.

어째서, 무엇을 등의 이유를 모두 잊은 상혁은 무아지경으로 마나의 실을 엮었다.

하지만 너무 무아지경에 빠져 있었기 때문일까.

“아…….”

파아아앗-!!

1억 개째 벼려 낸 마나의 실은 짧았다. 마지막 한 올의 마나가 짧았던 것이다. 그 순간 상혁의 무아지경이 깨지며 상혁의 입에서 아쉬운 탄성이 흘러나왔다.

그리고 눈을 뜬 상혁은 자신의 몸 주변에 넘실거리고 있는 마나의 물결을 느꼈다.

6서클.

비로소 대륙에서 마법사로 이름을 날릴 수 있는 고위급 마도사의 자격을 갖춘 것이다. 그리고 상혁은 그냥 6서클이 아니라 거기서 한 발을 더 나아갔다.

7서클.

마지막 한 올이 부족해 7서클에 발을 들이지 못했지만 상혁은 마나만 갖추어진다면 7서클에 오를 수 있는 모든 기반을 다졌다.

“스으으읍!!”

상혁이 눈을 반개한 채 심호흡을 하자 상혁이 6서클을 넘어 6서클 극후반에 한꺼번에 오르며 몸 밖으로 흘러나온 마나가 상혁의 몸 안으로 모조리 빨려 들어갔다.

파라라랏!!

상혁의 머리카락이 흩날리고 옷자락이 어지러이 나부꼈다. 그리고 한 통에 수십 킬로가 넘는 특수 용기들이 상혁의 주변으로 휘몰아친 마나의 폭풍에 들썩이면서 사방으로 밀려났다.

뽀르르!!

휘몰아치는 마나의 물결에 신난 건 초아뿐이었다. 주변에 가득한 오염 물질에 상혁의 머리카락에 숨어 나오지 않던 초아는 마나를 만끽하며 상혁의 주변을 맴돌았다.

파아앗-!!

그러더니 어느 순간 초아가 초록빛의 정령력을 뿌리며 빛에 휩싸였다. 6서클에 오른 상혁의 정순한 마나에 초아가 영향을 받은 순간 진화가 일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정령의 진화였다.

그러자 방독면 없이는 사람이 호흡할 수 없는 환경이던 지하 연구소에 풀 내음이 가득 차올랐다. 공기 중에 잔존하던 독성이 초아의 정령력에 한순간에 깡그리 정화된 것이다.

초아는 세계의 의지가 직접 상혁에게 맡긴 풀의 정령.

그런 정령이 그냥 가로수에나 붙어사는 하급 정령일 리가 없다. 상혁의 경지가 6서클에 도달한 순간 초아의 진화가 일어난 것이다.

뽀르르-!

빛이 사그라졌지만 초아의 모습은 별반 달라진 것이 없었다. 은은히 몸 주변으로 초록빛의 정령력을 뿜어내는 것이 다른 정도.

하나 정령력은 삿된 것을 절로 정화하는 기운이 있었으니, 초아는 이제 존재 자체만으로도 주변을 정화하는 힘을 가지게 된 셈이다.

사아아.

상혁의 몸 주변으로 나부끼던 마나의 폭풍이 줄어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지막 한 톨의 마나까지 몸으로 스며든 순간, 놀랍게도 상혁의 존재감이 줄어들었다.

마나의 흔적이 지워지고 마법사임을 뜻하던 두 눈의 반짝이는 총명함의 빛이 줄어들었다. 그러자 상혁은 눈을 씻고 보더라도 평범한 일반인처럼 보이는 수준이 됐다.

“후우우우.”

상혁이 길게 심호흡을 내뱉으며 천천히 눈을 떴다. 상혁은 천천히 심호흡하며 자신의 몸을 관조했다.

파앗-!!

상혁의 오른눈이 서기에 물들었다. 그러자 눈에 자신의 심정 어림에 쌓인 거대한 고리가 눈에 들어왔다.

고리에 담긴 마나는 방대했다. 방대하게 흐르는 마나는 고요한 강물처럼 흐르고 있었다. 무려 1억 개의 마나로 벼린 실이 모여 만들다 만 7번째 서클도 느껴졌다.

6서클의 극후반.

필요한 건 딱 하나의 마나로 벼려진 실.

상혁이 품은 마나의 양은 천만 올의 실을 벼려 만들어 낸 6서클의 10배에 달하는 양이다. 그걸 가나안으로 환산해 보자면 족히 8서클에 준하는 마나가 상혁의 몸 안에 쌓인 셈이다.

다른 사람 같았다면 그 정도 마나를 받아들인다면 온몸이 터져 나갔으리라. 그러나 상혁의 심장은 거뜬히 거의 완성된 일곱 개의 고리를 버텨 내고 있었다.

“아깝다.”

상혁이 자신의 몸을 관조한 뒤 가장 먼저 느낀 감정은 아쉬움이었다. 마지막 한 올의 마나, 그게 부족하여 7서클에 올라서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런 기연을 만나기란 쉽지 않은 법이었는데, 그 기연이 한끝이 부족했구나.”

그렇게 중얼거린 상혁은 그것을 끝으로 아쉬움을 떨쳐 냈다.

“세상만사 내 뜻대로 흐르는 건 없으니. 이 정도 성취를 이룬 것만으로도 만족해야지.”

상혁은 심장 쪽으로 손을 올려 슬슬 쓰다듬었다. 6서클 극후반에 도달한 심장의 고리는 6서클 마법을 서른 번은 연속으로 써도 될 정도의 마나가 쌓였다.

안 그래도 웬만한 6서클 마법사보다 많던 상혁의 마나량이다. 그게 6서클에 오르면서 무려 열 배로 늘어났고 7서클을 거의 완성하면서 또다시 열 배로 늘어났다.

마르지 않는 샘.

마나를 벼려 실로 만들어 고리를 만드는 일은 지난한 가시밭길이지만 점점 서클이 올라갈수록 이처럼 기하급수적으로 마나의 양이 늘어난다는 장점이 있었다.

“견고한 구조로 만들었으니 일차원적인 원 모양의 서클보다 훨씬 더 안정적이고.”

마나로 벼린 실을 서로 엮어서 만든 고리의 안정성은 웬만해서는 마나의 역류나 급격한 폭주가 일어나는 일이 거의 없을 정도였다.

일차원적인 원으로 만들어진 고리는 그 고리에 타격이 오면 고리의 모양 전체가 변하면서 역류나 폭주가 일어나지만 마나를 실로 벼려 만든 고리는 수십만, 수천만의 마나실 중 일부만이 손상이 일어나게 된다.

당연히 마나 고리 전체가 충격을 받을 가능성은 현저하게 줄어드는 셈이다.

상혁이 손을 펼쳤다. 그러고는 손가락으로 허공에 가볍게 수인을 그린 후 손가락을 튕겼다.

“블링크.”

번쩍!

상혁의 신형이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가 조금 떨어진 곳에서 나타났다. 상혁의 입가에 흐릿한 미소가 맺혔다.

“되네.”

6서클의 단거리 이동 마법.

블링크.

6서클부터 마법사가 마도사로 불리는 이유는 이 블링크 마법 때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전까지는 플라이 마법이 이동 마법의 전부이던 마법사가 단거리 텔레포트인 블링크 마법이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마법사의 가장 취약한 약점이 기동력이 해결된다는 뜻이다.

“마나도 쓸 만하고.”

무려 공격 마법을 서른 번이나 펼쳐도 될 정도의 마나량을 보유한 상혁이다. 그러니 블링크 한정이라면 이동 거리에 따라 다르겠지만 오십 번 이상은 펼칠 수 있는 셈이다.

비록 7서클이 되지 못한 것은 아쉽지만 그래도 방법은 찾은 셈이니 관계없었다.

“제피렐리…….”

상혁은 자신의 몸에서 일어난 마나 폭풍으로 인해 구석으로 날아가 처박힌 제피렐리의 특수 용기를 바라봤다.

제피렐리 가문이 이 비밀 연구소에서 미처 처리하지 못하고 남기고 간 생화학 무기의 독성은 상혁의 상상 이상이었다.

인공적으로 만들어 낸 생화학 병기가 이 정도의 마나를 품고 있을 줄은 미처 상상도 하지 못했다.

‘생화학이 이 정도라면 핵이나 핵폐기물은 대체…….’

상혁의 눈이 반짝였다. 7서클에 올라가기 직전 미끄러진 상혁이다. 그러나 6서클과 7서클의 차이가 하늘과 땅 차이이듯, 한 올이 부족한 건 그저 한 올만큼의 마나만 보충한다고 해서 되는 일이 아니었다.

이번처럼, 독성이 강하거나 지독하게 오염된 것이 있어야만 그 안의 막대한 마나가 있어야 7서클에 오를 수 있을 것이다.

“제피렐리 가문이라면 가지고 있겠지.”

미국의 군수 기업이자 유력 가문인 제피렐리에게는 이런 비슷한 것이 또 있을 것이다. 상혁이 제피렐리를 떠올리며 히죽 웃고 있을 때 상혁의 머리 위로 초아가 날아와 살포시 내려앉았다.

뽀르르

“어, 너?”

상혁의 눈이 커졌다. 한눈에 초아에게 변화가 있음을 상혁도 알아챈 것이다. 상혁이 손바닥을 펼치자 그 위로 초아가 내려와 앉았다.

“너, 그냥 정령이 아니었구나?”

진화하는 정령은 정령계 전체를 뒤져 봐도 백만 정령 중 하나가 있을까 말까 한 정도. 정령들을 다스리는 정령왕이 될 자질을 가진 정령들만이 진화를 통해 상위 정령으로 거듭난다.

“세계가 재밌는 걸 나한테 붙여 놨어.”

상혁은 초아에게서 흐르는 정화의 기운을 느끼고는 피식 웃었다. 세계의 의지를 뿌리친 상혁이지만 초아를 이용해 감시를 붙여 놓은 셈이었기 때문이다.

“음흉한 세계군. 초아의 눈을 빌려 다 보고 있으면서도 모른 척했다니.”

어쩐지 너무 적절하고 절묘한 때에 퀘스트가 튀어나오는 것이 수상하긴 했다. 그러나 세계는 여전히 모르쇠로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어쨌거나 세계도 상혁을 이용하려는 만큼 그에 대한 합당한 대가를 지불했기에 그걸 걸고 넘어가지 않기로 했다. 상혁은 초아의 머리를 손가락으로 쓰다듬었다.

“잘됐다. 안 그래도 네 도움이 필요했는데.”

뽀르르?

초아가 날아오르며 고개를 갸웃했다. 상혁은 활짝 웃으며 초아에게 손가락으로 땅을 가리켰다.

“여기 정화하는 작업 좀 같이하자.”

뽀르르!!

귀찮음을 감지한 초아가 재빨리 도망가려 했지만 6서클에 도달한 상혁에게서 벗어날 방법은 없었다.

번쩍!

“잡았다!”

뽀르르!!

블링크를 이용해 도망가는 초아를 잡은 상혁이 씩 웃었고 초아는 비명처럼 뽀르르 하고 울었다.

* * *

100일이 지났다.

그러자 모든 언론은 상혁이 과연 제 말을 지킬 수 있을 것인가에 모든 포커스를 맞췄다. 그리고 대망의 100일째.

환경운동가가 주축이 되어 대한민국에서 가장 활발한 환경 관련 시민운동을 하는 시민단체인 만인의 자연에서도 사람이 나왔다.

세계적인 권위를 가진 환경학자인 김상돈 교수가 수많은 카메라를 보며 이곳에 쏠린 사람들의 관심이 지대한 것에 살짝 긴장한 표정을 지었다.

“사람이 많군요.”

“전부 백상혁 이사장이 자신이 한 말을 지킬 것인지 궁금해하는 사람들입니다 교수님.”

언론은 용산 기지의 오염도에 대해서는 별 관심이 없었다. 그들은 그저 백상혁이 제 입으로 한 약속을 지킬 것인지에 대해서만 궁금해했다.

“그렇죠. 환경보다는 그런 자극적인 가십거리에 더 관심이 많은 법이니까요.”

김상돈 교수는 흐릿하게 웃었다. 환경에 대한 위기는 지속적으로 국제 사회와 정상회담에서 주요 의제로 다뤄졌지만 일반인들이 피부로 느끼지는 못했다.

“이런 식으로라도 한 명에게라도 알려지면 좋은 게 좋은 거니까요. 우린 우리 일이나 합시다.”

김상돈 교수는 팔을 걷어붙였다. 사람들의 환경에 대한 무관심에 푸념하기보다는 할 일을 할 생각이었다.

용산 기지 내 토양의 비소와 독성물질인 석유계 총탄화수소의 수치는 비정상적으로 높은 상태다.

아예 토양 전체를 다른 곳에서 토양을 가져와 갈아엎지 않고서는 100일 이내에 이것을 해결하겠다는 백상혁의 말은 여러모로 무리수였다.

현장에서 독성을 검출할 수 있는 휴대용 기기를 가져와 언론 앞에서 공개할 생각이었기에 샘플용 토양을 떠서 기기에 넣은 순간 김상돈 교수의 표정이 변했다.

“……뭐?”

100일 전 이곳의 비소 오염도는 234.86㎎/㎏, 총탄화수소 오염도는 무려 1만8,040㎎/㎏이었다.

공원 등 1지역 기준으로 정해진 수치에 각각 9.4배, 36배를 초과하는 수준.

그 외에도 다이옥신 등의 발암물질과 9종이 넘는 유해 한 화학 물질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하지만 샘플용 토양에서 검출된 오염도는 놀랍게도 비소는 10㎎/㎏, 수은은 1㎎/㎏ 수준에 니켈이나 카드뮴 등 중금속 역시 1㎎/㎏ 미만 수준이었다.

학교가 지어질 수 있는 최소 수준을 충족하고도 남는 수준.

놀랍게도, 상혁은 자신의 장담대로 토양 오염을 해결한 것이다.

“지, 지하수. 지하수가 있습니다.”

김상돈은 별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지만 심각하게 오염되어 지하수 정화기준 기준치의 195배를 넘긴 지하수를 채취하여 검사했다.

그리고 그 결과 역시.

“1, 1급수입니다.”

지하수가 1급수로 변하는 기적이 나온 것이다. 김상돈은 벙 찐 표정을 지었다. 이건 역사에서 찾아볼 수 없는 수준의 기적이다.

수백 대의 카메라는 벙김상돈 교수의 표정과 검출치를 카메라에 불이 날 정도로 격렬하게 경쟁 취재했다.

“말씀해 주시지요, 교수님. 아무런 문제가 없다구요.”

상혁은 김상돈 교수가 한국대학교 측 책임자들에게 시달리는 모습을 보며 승리의 미소를 입가에 머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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