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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 먹는 대마법사-161화 (160/249)

쓰레기 먹는 대마법사 161화

161. 다 끝내고 갑시다(1)

부산항.

백도현은 박정철이 마련해 준 허름한 옷가지와 얼굴의 반이 가려지는 벙거지 모자를 쓴 채 초췌한 모습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CCTV가 도처에 있음을 알지만 백도현에게는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자신이 도주한 것을 백이현이 알아채기 전에 한시라도 빨리 배에 오르는 것이 우선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백도현에게 딱 봐도 질이 불량해 보이는 남자가 접근했다. 껄렁거리는 자세로 껌을 쫙쫙 씹는 그 남자가 백도현의 어깨를 툭 쳤다.

“그쪽이요?”

백도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눈앞의 남자는 브로커다. 박정철이 백도현을 위해 일본으로 밀입국을 할 수 있도록 가짜 신분 등을 준비해 두었기 때문이다.

남자는 백도현을 위아래로 슥 훑었다.

“요새 일본 쪽 경계가 강화돼서 준비하는 데 힘이 좀 들었수다. 미리 연락을 준 것도 아니고, 당장 준비하라는 통에 꽤 힘들었단 말이지.”

남자는 물어보지도 않은 말을 하면서 시간을 끌었다. 백도현은 인상을 살짝 찌푸리고는 말했다.

“그래서 원하는 게 뭡니까?”

“뭐긴. 이걸 더 달라는 거지.”

남자가 씩 웃으며 손가락을 비볐다. 남자가 웃는 순간 금니가 반짝하고 빛났다. 평상시였다면 상종도 안 할 종류의 인간이었으나 지금 아쉬운 건 백도현이었다.

백도현은 지갑 안에서 100만 원짜리 수표 열 장을 꺼냈다.

이런 질 안 좋은 놈들은 생각한 것보다 더 큰돈을 쥐여 주는 것이 깔끔했다. 자신이 예상치 못한 돈을 받는 순간 오히려 겁을 먹는 잔챙이들이었기 때문이다.

척.

“이건…….”

그리고 백도현의 예상대로 브로커는 움찔했다. 그의 눈에 긴장이 떠오른 것을 본 백도현은 낮은 목소리로 브로커에게 말했다.

“시끄럽게 굴지 말고 어서 내놓고 꺼져. 이 일, 다른 곳에 가서 말하면 뒷감당은 알아서 하고.”

1000만 원을 그냥 턱 내어놓은 백도현이다. 브로커는 자신이 받은 의뢰가 예상보다 더 위험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브로커는 고개를 얼른 끄덕였다. 천만 원을 받고 입을 다무는 것이 훨씬 이득이다. 브로커가 위조 여권과 핸드폰, 그리고 일본 현지에 도착하면 쓸 차 키를 건네고는 사라졌다.

“후우.”

백도현은 그것을 받아 안주머니에 챙기고는 한숨을 내쉬었다. 자신의 신세가 처량했기 때문이다.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이 모래알처럼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다니 이제는 도망자 신세다.

‘그래도 이게 낫다. 형에게 모든 것을 빼앗기고 평생 패배자로 낙인이 찍힐 바에야.’

백이현이 긴급 주총을 소집했다는 소리를 듣자마자 백도현은 도주를 결심했다. 믿었던 백성철마저 백이현을 막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백이현은 결코 자신을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그런 그가 긴급 주총으로 회장직에 오르기라도 한다면 더욱 큰 재앙이 닥칠 것이다.

백도현은 품에서 자신이 쓰던 핸드폰으로 마지막 전화를 걸었다.

[아빠?]

미국에 있는 백도현의 딸인 백정아다. 백도현은 백정아에게 빠르게 말했다.

“정아야. 당분간 아빠 연락이 되지 않더라도 걱정하지 말거라. 내가 다시 연락할 테니까 당분간 한국에 들어올 생각도 하지 말고. 엄마한테 모든 걸 맡겼으니 잘하리라 믿는다.”

[아빠, 아빠!]

“그럼 끊는다.”

백도현은 야망이 큰 남자였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신의 유일한 혈육인 백정아를 사랑하지 않는 건 아니었다.

혹여라도 도청을 당하거나 추적당할까 봐 백정아에게 당부의 말을 쏟아 내고 끊은 백도현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기필코 다시 돌아온다. 절대 이대로 끝이 아니야.”

백도현은 재기를 꿈꿨다. 해외로 나가 국내의 눈을 피한다면 충분히 승산 있었다.

“형은 시끄러운 걸 싫어하니까, 회장에 오르고 나면 언론을 통제하기 시작하겠지. 경찰이나 검찰한테 나를 맡기는 것도 부담스러울 것이고.”

백이현이 지금 SG 내부의 일을 공적인 일로 만들어 버린 건 그가 궁지에 몰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백이현의 성격상 그가 주도권을 쥐고 나면 외부의 간섭을 점점 줄이려고 할 것이다.

“조금만 버티면 된다.”

그러니 조금만 버티면 언론과 여론의 눈을 줄어들 것이다. 물론 백이현은 다른 방식으로 백도현을 찾으려 하겠지만 백이현은 섬세하지 못하니 분명 틈이 나올 것이다.

‘스위스에 있는 내 계좌. 그리고 미국 법인에서 내 앞으로 돌려놓은 차명 계좌만 확보한다면…….’

백도현은 신중한 성격이다. 돌다리도 두드려 보고 건너는 성격인 백도현은 최악의 상황에도 대처해 놓았다.

물론 지금처럼 이렇게 차, 포가 다 떨어져 나간 상태로 도망자가 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러나 백도현의 의지는 꺾이지 않았다.

“출국만 하면 돼. 출국만 하면.”

백도현은 벙거지 모자를 푹 눌러쓰며 배편을 확인했다. 그런데 그때 백도현의 눈에 예전에 한 번 본 적이 있던 조철왕의 얼굴이 우연히 들어왔다.

그걸 본 순간 백도현은 이를 아득 깨물었다.

‘백이현.’

자신의 형인 백이현이 황제파라는 조직을 세워 여러 이권에 개입했다는 걸 모를 백도현이 아니다. 그중 조철왕은 황제파의 두목이자 백이현의 충견으로 백도현도 그 얼굴을 알고 있었다.

그런 조철왕이 부산항에 모습을 드러냈다?

‘날 감시하고 있었구나.’

백이현이 자신을 감시하고 있었다는 소리다. 백도현은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나 남자 화장실로 들어갔다.

덜컹.

‘어떻게 하지?’

백도현의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조철왕이 혼자 움직였을 리 없다. 황제파의 조직원들을 대동했다면 자신이 여기서 붙잡히는 것은 시간문제다.

‘일단 이곳을 뜬다.’

배만 타면 한국에서 벗어날 수 있었지만 백도현은 망설이지 않았다. 무리해서 배를 타려고 하다가 모든 것이 어그러질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차라리 세찬 비는 피해 가는 것이 상책이다.

‘밖에 나가서 차를 한 대 빌리고…….’

생각을 정리한 백도현이 화장실 문을 연 순간 황제파 조직원과 눈이 딱 마주쳤다.

“……!”

황제파 조직원이 다른 조직원을 부르기 위해 잠시 눈을 돌린 사이 백도현이 달려들어 조직원을 넘어뜨리고는 도주하기 시작했다.

“잡아!!”

조철왕이 소리치자 조직원들이 일제히 백도현을 쫓기 시작했다. 그 수가 서른을 훌쩍 넘어갔다. 하지만 기를 쓰고 도망가는 백도현을 따라잡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여기서 잡힐 수는 없어. 내가, 내가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데.’

백도현은 이를 악물었다. 숨이 차오르고 폐가 터질 것 같았지만 백도현은 멈추지 않았다. 부산항 바깥으로 뛰쳐나온 백도현이 도로를 가로질러 황제파 조직원들의 눈에서 벗어나려고 하는 순간.

쾅!!

갑자기 튀어나온 백도현을 보고 속도를 줄이지 못한 듯 승합차 한 대가 그대로 백도현을 들이받았다.

백도현의 몸이 붕 떠서는 옆 상점을 부수고는 처박혔다. 피가 뭉게뭉게 흘러나오고 주변에서 비명이 울려 퍼졌다.

뒤늦게 부산항에서 나온 조철왕은 설마 하는 표정을 지었다. 비상등을 켠 채 백도현을 친 승합차가 그의 눈에 너무나도 낯익었기 때문이다.

“저, 저건…….”

98마 2356.

조철왕이 타고 온 승합차였다.

“이런 X발.”

조철왕의 입에서 기운 빠진 듯한 육두문자가 힘없이 비죽 흘러나왔다.

* * *

백도현은 전치 40주, 말 그대로 거의 반죽음에 가까운 빈사 상태로 병원으로 실려 갔다.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었다. 병원에 도착해 중환자실로 백도현이 실려 가는 사이 백도현이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다.

서울에서는 백이현이 긴급 주총을 열었다가 아무것도 건지지 못한 채 자신의 무능만을 입증하며 제 발로 추락해 버렸고, 백도현은 죗값을 치르지 않고 부산항을 이용해 은밀하게 출국하려다가 교통사고를 당한 뒤 사라졌다.

말 그대로 SG그룹 백씨 일가의 수난 시대.

그리고 대부분의 언론에서는 이 사실을 대서특필하며 사자성어 하나를 모든 헤드라인 앞에 달았다.

[자업자득 SG그룹.]

자업자득.

뿌린 대로 거뒀다는 뜻이다. 그 사이 SG그룹은 회장인 백성철과 그 뒤를 이을 두 아들이 알아서 스스로 똥을 싸기 시작하며 끝도 없는 구렁텅이로 떨어지는 듯했다.

대한민국 재계 서열 1위, 그리고 한국산 글로벌 기업의 날개 없는 추락은 가팔랐고 또 매서웠다.

증권가에는 일제히 날개 없이 추락하는 SG그룹에 매도 의견을 피력했고, 목표 주가를 절반 이상 낮춰 잡았다.

SG그룹의 평균 주가는 10만 원대에서 단박에 5만 원대로 절반 넘게 날아갔다. 그렇다는 건 시장에서 보는 SG의 기업 가치가 불과 일주일 만에 절반으로 떨어졌다는 소리다.

당연히 SG그룹 곳곳에서 불협화음이 터져 나올 수밖에 없었다.

그러자 대주주는 SG그룹의 혼란을 수습하고 다시 원 궤도에 올려놓을 사람이 필요했다. 백성철이 검찰에 들어가 있는 현 상황에서 SG그룹 내에 백씨 성을 쓰는 사람은 딱 두 명뿐.

백정연, 그리고 백상혁.

“고려해 주십시오.”

“하아. 알겠어요. 한번 생각해 볼게요.”

그리고 김대엽은 백정연에게 찾아왔다. 백정연은 끈질긴 김대엽의 설득에 한숨을 내쉬면서 생각해 보겠다고 답할 수밖에 없었다.

김대엽이 백정연의 축객령에 집 밖으로 쫓겨난 뒤 백정연은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넌 이걸 예상했니?”

백정연이 그렇게 묻자 방 안에서 상혁이 비죽 웃으며 걸어 나왔다. 김대엽보다 한발 먼저 백정연을 찾아온 건 상혁이었기 때문이다.

“누님밖에 없으시죠. 이 혼란을 바로잡을 사람은. 게다가 전 김대엽 실장의 눈 밖에 난 터라.”

아마 김대엽은 상혁이 백이현의 편에 선 것으로 알고 있을 것이다. 김대엽이 도와 달라는 것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그러니 김대엽이 찾아갈 사람은 백정연밖에 없다.

백정연은 그런 상혁을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쳐다봤다. 주총 바로 직전 그녀에게 한 말을 생각해 보니 팔에 소름이 돋았다.

상혁은 이 모든 것을 알고 있었다.

그렇게밖에 설명할 수 없었다. 백정연은 상혁을 쳐다봤다. 상혁은 첫 만남부터 놀라웠다. 이미 백정연은 상혁의 비밀 일부를 들여다보았기 때문이다.

“어때요? 누님이 원하는 게 있으면 누님이 직접 쟁취하라고 했잖아요. 그 기회가 온 것 같지 않아요?”

“임시 회장직을 맡고 나중에 아버지한테 호텔과 리조트를 독립시켜 달라고 해라?”

“그럼요. 어차피 누나는 회장님이 나오시기 전까지 잠깐 얼굴마담밖에 안 될 테니까요.”

“그렇겠지.”

김대엽이 직접 삼고초려의 수고를 마다하지 않았으나 김대엽이 바라는 건 백성철이 나오기 전까지 그의 자리를 대체할 얼굴마담이다.

당장의 혼란을 어느 정도 수습할 수 있는, 백씨 일가의 일원이 필요한 것이다.

“하. 누군가의 들러리로 살고 싶지 않았는데.”

백정연은 쓰게 웃었다. 재벌가 여자의 운명은 정해져 있는 것이 싫어 일부러 결혼도 하지 않고 자신의 사업에만 몰두했던 그녀다.

하지만 그걸 자신의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누군가의 들러리를 잠시나마 해야 한다. 그 사실이 백정연의 한숨을 절로 자아냈다.

“하세요. 그리고 임시 회장직 하셔서 용산 경매 건이나 얼른 끝내주세요.”

“이미 입찰하지 않았어?”

“그렇죠. 그런데 기업 꼬락서니가 이러니 제대로 진행될 리가 있나요.”

상혁은 어깨를 으쓱했다. 그러자 백정연이 상혁을 슬쩍 흘겨봤다.

“그것 때문에 나보고 얼른 회장 하라는 거구나?”

“뭐, 그럴지도?”

상혁이 킬킬거리며 웃었다. 백정연은 그런 상혁을 미워할 수 없다는 듯 쳐다봤다. 잠시 푸념을 늘어놓기는 하였으나 이건 백정연에게도 절호의 기회였다.

‘내게 주어진 시험이다. 내가 한 기업의 총수가 될 자격이 충분하다는 걸 입증해 줄 기회.’

백이현과 백도현에게 가려 주목받지 못했던 백정연이다. 그러니 이번 기회는 그녀에게도 기회가 될 것이다.

“좋아. 네 말대로 할게.”

SG그룹의 구원투수가 등판하기로 결정했다. 상혁은 그런 백정연을 보며 환하게 웃었다.

“누님이라면 잘하실 수 있을 거예요.”

그녀라면 잘 할 수 있을 것이다. SG그룹을 휘젓고 다닌 마법사가 얌전해질 것이니 그건 당연한 이치다.

그때 상혁의 핸드폰이 울렸다. 이창엽이었다.

[이사장님을 찾아오신 분이 계십니다.]

“저요? 누구죠?”

상혁은 고개를 갸웃했다. 오늘 일정에는 그런 약속이 잡혀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미국 맨해튼대학교의 앤드류 파커라는 사람입니다. 한국대학교와 미 맨해튼대학교의 연구협약 때문에 찾아왔다고 합니다.]

“연구협약? 맨해튼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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