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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 먹는 대마법사-160화 (159/249)

쓰레기 먹는 대마법사 160화

160. 닿을 수 없을 것 같았던 곳(5)

덜컹.

모든 주주들이 착석하고 난 뒤 주총장의 문이 굳건히 닫혔다. 이제 저 문은 안건이 상정되고, 표결을 거칠 때까지 열리지 않을 것이다.

백이현은 긴장이 섞인 작은 한숨을 내뱉었다.

‘그래도 긴장이 되는 건 어쩔 수 없군.’

모든 승기를 자신이 쥐고 있었다. 그리고 승리의 여신이 자신을 향해 웃어 주고 있었다. 제아무리 회장직을 수십 년간 지킨 백성철이라고 해도 이미 균형의 추는 기울었다.

그래도 꿈꿔 오던 순간이 눈앞에 오자 긴장이 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도 사람이기 때문이다.

슥.

그때 백이현의 눈이 김대엽 실장의 눈과 마주쳤다. 굳은 그의 표정을 본 순간 백이현은 가슴속 긴장이 스르르 풀리는 것을 느꼈다.

백성철은 김대엽에게 자신이 없을 때를 대비해 여러 일을 맡겼지만, 자신이 한발 빨랐다.

‘계속해서 보고 있던 건 나니까.’

백성철이 백이현 자신의 손을 내치고 백도현을 품에 안았을 때부터 백이현은 이 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 때문에 한발 뒤늦게 움직인 김대엽은 자신에게 따라붙지 못했다.

‘내가 이겼습니다, 삼촌.’

김대엽에게 그렇게 속으로 중얼거린 백이현은 고개를 돌렸다. 엉덩이가 들썩였다. 어서 안건을 상정하고 일을 끝내버리고 싶었기 때문이다.

‘58퍼센트.’

주총장에는 자신의 뒤에서 손을 들어 줄 이들의 면면이 가득했다. 백이현은 절대로 패배할 수 없는 58퍼센트의 패를 손에 쥐고 있었다.

백성철을 비롯한 그의 우호 세력은 합해 봤자 50퍼센트 미만. 백도현 게이트로 시작되어 백성철의 지도력에까지 의구심을 품은 대주주들이 백이현에게 돌아섰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유 실장.”

“예, 회장님.”

백이현의 눈썹이 한 번 꿈틀거렸다. 유원태가 사람들 있는 곳에서 자신을 회장이라 불렀기 때문이다. 하지만 백이현은 그를 나무라지 않았다.

이미 기호지세, 호랑이 등에 올라타서 호랑이굴로 들어가기 불과 몇 분 전이다.

백이현은 유원태에게 말했다.

“너무 골목으로 몰아넣으면 쥐도 고양이를 무는 법이지. 그러니 쥐가 물지 못하도록 철저하게 찍어 눌러야 한다. 도현이에게 빈틈을 줘서는 안 돼.”

“예. 걱정 마십시오. 조철왕과 황제파가 이미 부산항 인근에 잠복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경찰과 기자들도 준비시켜 놓았고.”

“훌륭하다.”

유원태는 깊숙이 고개를 숙였다. 오늘은 그에게도 특별한 날이다. 그가 백이현의 오른팔 넘어 SG그룹의 실세로 비로소 도약하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잠시 후 주총이 시작됐다.

안건은 간단했다.

[백성철 회장 해임 건.]

백성철 회장과 백도현으로 인해 SG그룹이 입은 피해는 막심했다. 기존 시장 점유율을 경쟁사에게 빼앗기고, 전 세계적으로 안 좋은 이미지가 심어졌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이 모든 책임을 져야 하는 건 응당 백성철 회장이었다.

그리고 백이현은 확실히 쐐기를 박기 위해 미리 모든 준비를 끝마쳤다.

“죄송합니다.”

백이현은 자리에서 일어나 그 자리에 참석한 모든 주주에게 허리를 숙였다. 적절한 퍼포먼스와 감정연기, 그리고 백성철이 백이현의 제안을 뿌리쳤다는 증거는 남은 주주들마저 백성철 회장에게 등을 돌리게 만들 것이다.

웅성웅성.

그리고 백이현의 예상대로 여전히 백성철을 지지하고 있던 주주들이 흔들리는 것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백이현이 꿈을 이루기 전까지 마지막 한 발자국이 남았다.

* * *

까딱까딱.

상혁은 백이현이 단상 위에서 눈물의 쇼를 펼치는 모습을 보며 자신의 팔을 손가락으로 두드렸다.

겉으로는 별다른 표정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러나 속으로는 그런 백이현을 보며 비웃음을 감추지 않았다.

‘그래야지. 모든 것을 쥐었다고 생각할 때, 모든 것이 무너지는 것을 보고 지을 네 표정이 궁금하니까.’

상혁은 주변에 귀를 기울였다. 백이현의 퍼포먼스는 확실한 효과가 있었다. 백이현이 백성철에게 맞섰다는 명백한 증거가 남아 있었기 때문에 사람들의 마음이 그에게로 기울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버지에 맞선 아들.

그건 백성철의 강력한 카리스마를 허물 수 있는 좋은 명분이다. 허울뿐인 명분이라고 해도 SG그룹은 백성철의 강력한 카리스마 하나로 이 자리까지 이르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런 백성철에 가려 존재감이 약했던 백이현이 비로소 제자리를 찾은 듯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었다.

명분, 상황, 모든 것이 백이현에게 유리한 쪽으로 흐르고 있었다.

그때 상혁의 눈이 연회장 가장 뒤쪽에 선 백정연과 마주쳤다. 상혁은 그녀를 향해 빙긋 웃어 보였다. 백정연은 그런 상혁을 빤히 쳐다보다가 고개를 휙 돌렸다.

“슬슬 준비를 해 볼까.”

상혁이 중얼거리며 손가락을 튕겼다. 그 순간 상혁의 오른 눈에 오색찬란한 서기가 서렸다. 상혁은 몸속에서 빠져나가는 마나를 느꼈다.

주총에 참석한 인원은 총 300명.

저서클 마법만 사용해도 300명이 모두 걸려들게 하기 위해서는 꽤 많은 마나가 필요했다. 상혁의 고리가 웅웅거리며 그간 품었던 웅혼한 마나를 일제히 뿜어내기 시작했다.

다섯 개의 고리가 일제히 전력을 다해 회전하는 것을 느끼며 상혁은 그 마나를 멀리멀리 퍼뜨렸다.

범위는 연회장 전체.

마나가 서서히 공간을 물들여 나가는 것이 느껴졌다. 상혁은 이마에 송골송골 맺힌 땀을 손등으로 슥 닦아 내면서 앓는 소리를 냈다.

“어구구, 이 짓도 못 해먹을 짓이네.”

말은 그렇게 하지만 상혁의 두 눈은 반짝이고 있었다. 그때 연회장에 앉은 이들이 자신들도 모르게 팔을 슥슥 문질렀다.

한기를 느낀 것이다.

그 한기의 정체가 바로 마나다. 상혁은 공간 전체를 마나로 물들이고 있었다. 그로 인해 마나가 가득 들어차는 순간 상혁이 마음껏 그림을 그릴 수 있는 도화지가 완성되는 셈이다.

누군가에게는 통쾌한 복수의 그림을, 누구에게는 평생 악몽이 될 그림을 그리기 위해 상혁은 두 손을 활짝 펼쳤다.

키이잉-!

상혁은 은밀히 손가락을 움직여 수인을 맺었다. 수인을 맺을 때마다 수인에 마나가 실리며 공간에 퍼졌다.

‘컨퓨전에 확장을 걸고.’

공간에 마법을 거는 일이다. 상혁은 마나가 깃든 공간에 도화지에 그림 그리듯 수인으로 마법을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마법의 변환, 확장, 증폭.

평범한 마법사라면 한 마법에 하나도 겨우 하기 힘든 그것을 상혁은 실시간으로 펼쳐 내면서 마법을 변환하고 개조하고 두 가지 이상의 마법을 하나로 섞었다.

그것을 가능케 하는 건 상혁의 천재적인 마법 감각과 마나안 덕분이다.

마나안으로 모든 마법의 결이 보였기에 상혁은 마치 악기의 현을 조율하는 조율사가 된 것처럼 마법을 엮고 또 섞어 새롭지만 익숙한 마법을 펼쳐 내기 시작했다.

다섯 개의 마법, 그리고 다섯 개의 변환, 다섯 개의 확장, 다섯 개의 증폭.

스무 개의 수인이 공간에 그려졌다. 그리고 그 이상의 가능성이 상혁의 손에 의해 서로 연결되고 얽히며 하나의 거대한 그림을 공간에 그려 나가기 시작했다.

상혁의 마나 고리가 부서질 것처럼 맹렬하게 마나를 토해 냈다. 아마 이곳에 마나를 느낄 줄 아는 사람이 있었다면 그 웅혼함에 전율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5서클이지만 그 이상을 아득하게 뛰어넘는 마나가 공간을 지배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공간을 장악하는 마법은 일개 마법사 개인이 펼칠 수 없었다. 절대적인 마나량이 부족하기에 마법사들은 대개 마나석이 박힌 아티팩트를 보조 도구로 삼아 공간 마법을 펼친다.

하지만 상혁은 그것을 홀로, 두껍고 튼튼하게 얽힌 다섯 개의 마나 고리로 불가능을 가능케 만들고 있었다.

마법사는 오롯이 진리에 대한 탐구와 헤아릴 수 없는 자연의 섭리로 불가능을 가능으로 비트는 자.

상혁은 자신이 생각한 궁극의 마법사에 한 발짝 더 가까워진 것을 느끼며 입꼬리를 비죽 끌어 올렸다.

신외기물의 조력 따윈 필요 없는, 오롯이 홀로 기적을 써 내려가는 마법사.

파바바밧-!!

상혁이 손으로 그려낸 수인이 마법의 힘을 지닌 문자, 룬어가 되어 허공에서 빛을 발했다. 수인으로 빚어낸 스무 자의 룬어.

일반 마법사면 기껏해야 세 자, 네 자를 쓸 수 있는 룬어를 홀로 스무 자를 펼쳐 낸 상혁은 그것을 따로, 또 같이 묶어서는 펼쳐 냈다.

말 그대로 마법의 향연.

아무도 볼 수 없는, 오롯이 상혁만이 볼 수 있는 룬어가 공간을 장악하며 고고하게 빛을 발했다.

그 사이 박성철 회장의 해임 건은 빠르게 상정되어 이제 주주들의 표결만을 앞두고 있었다. 모두에게 주어진 전자 표결 단말기에 주주들이 각기 받은 카드를 내려놓았다.

그리고 상혁은 고리에 있는 마나가 바닥을 드러내는 것을 느끼며 마지막으로 손가락을 튕겼다.

따악-!

바로 옆에 있는 사람도 듣지 못할 정도의 작은 소리다. 하지만 그건 단순한 소리가 아니다. 상혁의 손가락에서 피어오른 마나의 파장이 파문을 그리며 공간에 피어오르고, 그것이 스무 자에 달하는 룬어에 동시에 도달했다.

파앙-!

룬어가 회전하기 시작했다. 상혁은 그것을 보며 아쉽다고 생각했다.

“이걸 나만 볼 수 있다니.”

이곳에 있는 주주들은 아마 상상도 하지 못할 것이다. 자신들의 머리 위에 룬어 수십 자가 떠올라 돌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화아악!!

룬어가 공간에 녹아들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마법이 공간 전체에 펼쳐졌다.

300명.

무려 300명이나 되는 사람에게 상혁은 동시에 마법을 건 것이다.

그리고.

달칵!

전자 표결 단말기에 불이 들어왔다. 상혁은 고개를 들어 단상 위를 올려다봤다. 그곳에는 의기양양함을 지우지 못하는 백이현이 있었다.

그는 여전히 단꿈에 취해 있었다.

자신이 SG그룹의 회장이 될 것이라는 그런 단꿈.

“흐흐흐.”

상혁은 자신의 등줄기가 식은땀으로 흠뻑 젖은 걸 알았지만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상혁이 홀로 웃고 있는 사이 표결이 끝났다.

전자 표결이기 때문에 집계는 순식간이었다. 그리고 집계는 어떻게 조작하거나 다른 사람이 말릴 새도 없이 곧바로 커다란 스크린에 떠올랐다.

[찬성 : 1]

[반대 : 299]

상혁은 그것을 보며 소리 죽여 웃었다. 그러나 백이현은 아니다. 백이현은 스크린에 결과가 뜬 순간 그대로 굳었다.

찬성 1.

반대 299.

백이현 본인을 제외한 다른 모두가 반대를 던졌다는 뜻이다. 이 정도면 의결권을 가진 사람들과 그들이 가진 주식 수를 반영할 필요도 없었다.

백이현이 홀로 과반수 이상을 들고 있는 것이 아니었으니까.

[부결]

“이, 이건, 이건 말도 안 되는…….”

백이현이 충격적인 결과에 말을 잇지 못 하고 있는 사이 상혁이 건 마법이 풀렸다. 300명이나 되는 사람에게 마법을 거는 건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상혁이 8서클이라면 모를까, 5서클로는 제아무리 룬어를 스무 자나 만들어 내고 그것을 하나로 엮었다고 하더라도 5분이 고작이다.

웅성웅성

“부, 부결?”

“내가 반대를?”

“어, 어떻게…….”

백이현과 약속한 주주들의 안색이 허옇게 변했다. 반면 기뻐하는 사람도 있었다. 주총장이 삽시간에 혼란으로 빠진 가운데 김대엽은 백이현에게로 다가갔다.

“회장님께서 그냥 넘어가시지 않을 겁니다.”

“자, 잠깐. 말도 안 돼! 이, 이건 사기야!!”

백이현이 새된 비명을 내질렀다. 이건 사기다. 그런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그러나 투표에 조작은 없었다. 모든 절차가 녹화되고 있었고 적법하게 진행되었기 때문이다.

단지 하나.

마법사의 존재가 모든 예정된 결과를 뒤틀었을 뿐이다.

“사기라고! 거짓이야! 어떻게 다 반대가 나올 수가 있어!”

백이현은 꼴사납게 모두가 보는 앞에서 사기라고 울부짖으며 미친놈처럼 손을 휘저었다. 그러나 그가 그런다고 해서 다시 없던 걸로 변할 결과가 아니다.

오히려 백이현은 그런 꼴 사나운 모습을 주주들 앞에 보임으로써 그가 회장의 자질이 없다는 것을 증명하였을 뿐이다.

상혁은 그 모든 것을 지켜보는 관조자로 씩 웃었다.

“제 발로 알아서 넘어져 주니 고맙네.”

그때 상혁의 핸드폰이 울렸다.

일호였다.

상혁의 입이 쭉 찢어졌다. 그는 홀로 울부짖고 있는 백이현을 뒤로한 채 주총장에서 나오며 전화를 받았다.

오늘은 아무래도 백씨 형제에게 있어 최악의 하루가 될 모양이었다.

“어, 백도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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