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 먹는 대마법사 158화
158. 닿을 수 없을 것 같았던 곳(3)
‘잘하고 있네.’
상혁은 투명 마법을 쓴 상태로 피식 웃었다. 박성원이 백도현에게 달라붙어 주먹을 휘두르고 발길질을 하자 백도현이 할 수 있는 건 비명밖에 없었다.
사실 체구로만 따지면 박상원이 바닥을 굴러야 하는 것이 맞다. 하지만 복수에 눈이 먼 박상원의 기세에 백도현은 바닥을 굴러다니며 돼지 멱 따는 비명을 내지르는 것이 전부였다.
‘잘 찍혔고.’
상혁은 카메라에 적나라하게 잘 찍힌 백도현의 얼굴과 음성을 확인했다. 경호원을 비롯한 백도현의 수행원은 모두 다 곤히 잠든 것까지 확인했다.
‘목격자가 없는 건 확인했고.’
어차피 백도현도 다른 사람의 눈에 띄는 것을 원치 않았기에 오늘 이 일은 박성원과 백도현만이 아는 사실이 될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박성원이 그동안 쌓인 응어리를 푸는 걸 지켜보기만 하면 된다.
퍽! 퍽!
“이 개자식! 이 개X끼! 너 때문에, 너 때문에…….”
“억! 어윽! 어억!”
박상원의 주먹질은 어설펐다. 살면서 그가 주먹을 휘둘러 본 적이 몇 번이나 될까.
박상원의 주먹이 까지고 백도현의 얼굴이 피범벅이 됐다. 사람을 제대로 때릴 줄 아는 사람이 박상원이 때린 횟수만큼 백도현을 때렸다면 백도현은 진작에 죽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젠 박상원도 지쳐 거의 백도현에게 데미지를 입히지 못했다.
“어흐흐흑…….”
박상원은 그대로 무릎을 꿇은 채 오열했다. 그렇게나 쏟아 냈다고 생각했는데 아직도 박상원에게는 쏟아 낼 눈물이 남아 있었다.
그런 박상원에게 상혁은 손가락을 튕겼다.
“슬립.”
풀썩.
“캔슬 인비지블.”
박상원이 잠들었다. 동시에 상혁의 발끝부터 머리끝까지 휘감던 마나가 공중으로 흩어졌다. 상혁은 심장의 고리가 꽤 빈 것을 느끼고는 미약한 탈력감을 털어 내며 박성원을 바로 눕혔다.
“눈을 뜨면 새로운 삶이 시작될 겁니다.”
따악!
클린 마법이 시전되면 땀 범벅에 백도현의 피로 범벅이 된 박성원의 몸이 깨끗해졌다. 그리고 상혁은 몸을 돌려 백도현에게 걸어갔다.
“끄으으으…….”
태어나 백도현은 누군가에게 맞아 본 적이 없었다. 태어날 때부터 다이아몬드 수저를 물고 태어난 그가 누군가에게 맞았을 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제대로 주먹도 휘두를 줄 모르는 박상원에게 엉망이 될 때까지 얻어터진 백도현은 육체의 고통보다도 정신적으로 패닉에 빠졌다.
상혁은 그런 백도현을 쳐다봤다.
그의 얼굴에서는 백성철이 보였다. 그리고 자신의 얼굴은 아버지의 얼굴을 닮았을 것이다. 만일 아버지가 살아 있었고, 정상적인 집안이었다면 이런 모습으로 백도현과 마주 보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백성철은 동생인 백성운을 죽였다.
그리고 그런 백성철의 아들인 백도현 앞에 백성운의 아들인 상혁이 섰다.
“넌 파멸할 것이다.”
상혁은 정신 못 차리고는 신음 소리를 내고 있는 백도현에게 선고를 내리듯 말했다. 백도현의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그 잘난 SG도 이번만큼은 너를 감싸 주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서운해할 필요는 없어. 네가 누리지 못한 걸 네 형과 네 아비도 누리게 하진 않을 테니까.”
상혁은 차갑게 웃었다. 그러고는 백도현의 머리 위에 손을 얹었다. 상혁의 손에서 피어난 푸른 마나가 백도현의 머릿속으로 파고들었고 백도현이 갓 잡힌 생선처럼 펄떡였다.
“평생 속죄해라. 내 아버지의 피로 만들어진 그 영광을 누리고 산 너희 핏줄의 죄. 결코 가볍지 않음을 평생 후회하며 살아라.”
상혁의 목소리는 의지가 되어 마나에 깃들었다. 그리고 악몽으로 변한 마나는 상혁의 의지를 받들어 백도현의 뇌리에 뿌리내렸다.
이제부터 백도현은 죽을 때까지 결코 평온한 밤을 가질 수 없을 것이다.
털썩.
상혁이 백도현의 정수리에서 손을 떼자 백도현이 눈을 까뒤집으면서 그대로 무너졌다. 상혁은 쓰러진 박상원을 어깨에 둘러멨다. 그러고는 창문을 연 뒤 플라이 마법으로 날아오르며 그대로 어둠 속으로 연기처럼 사라졌다.
* * *
[인체 실험을 한 것도 그래선가?]
[그래. 그렇게 쓰이면 감사한 줄 알아야지. 미천하게 태어난 운명을 나 같은 사람을 위해 봉사할 수 있도록 해 준 것이니까.]
백도현의 목소리가 인터넷을 통해 전 세계에 퍼져 나갔다. 그러자 가장 먼저 뒤집힌 것은 당연히 한국의 여론이었다.
[백도현이 인체 실험을 한 게 결국 맞다는 소리네?]
[미천하게 태어난 운명? 나 같은 사람을 위해 봉사? 지금 내가 제대로 들은 거 맞지?]
[지금이 조선시대냐? 자기는 왕이고?]
[저런 게 SG그룹의 사장이었다고?]
[다 같은 놈들이란 소리지.]
[재벌 OUT!!]
오천만 대한민국 국민의 분노는 대단했다, 그 분노는 곧 거대한 화력이 되어 SG그룹에 밀어닥쳤다.
대한민국의 GDP를 책임지는 SG그룹?
세계 글로벌 시장 점유율을 책임지는 대한민국 대표 그룹?
대한민국 국민들의 자랑이었던 SG그룹의 위명은 순식간에 바닥으로 곤두박질쳤다. 사람들은 목소리를 한곳으로 모아 백성철 회장에게 이번 사건의 해명을 하라며 몰려들었다.
그렇게 오천만 국민의 분노가 쏟아지자 결국 정치권에서도 움직이기 시작했다.
바로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SG그룹의 눈치를 보느라 움직이지 않았던 정치인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 공식적으로 기자회견을 하고 인터뷰를 하며 SG그룹에 맹공을 퍼붓기 시작했다.
[SG그룹은 이번 사건에 대해 명명백백히 해명해야 할 겁니다. 그게 아니라면 이 이원구가 직접 전면에 나서 검찰에 고발토록 하겠습니다.]
[이번에 일어난 일에 대해 저는 참담함을 금치 못했습니다. 대한민국 국민의 대표로 대기업이 자신의 권력을 내세워 인체 실험이라는 참혹하기 그지없는 일이 벌어지다니, 결코 이번 일을 좌시하지 않을 것이며…….]
그에 SG그룹에서는 어젯밤 백도현이 의문의 괴한에게 습격을 받았다는 뉴스로 진화를 하려고 했지만 오히려 역풍에 시달렸다.
[잘됐다. 누군지 모르겠지만 의인이네.]
[이걸 퍼뜨린 사람은 대체 누군데? 그 사람이 백도현을 이렇게 만든 거 아니야?]
[의인을 국회로!!]
한 번 불붙은 대한민국 국민들의 화력은 가히 전율적이었다. 대한민국 국민들의 화력은 한때 죽음을 무릅쓰고 일제에 맞섰던 그것이 전승되어 내려온 것이다.
[광화문 광장, 제1회 SG그룹 인체 실험 규탄 대국민 집회]
그리고 그들은 촛불을 들고 길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1회 집회에 운집한 사람만 해도 거의 10만 명이 넘었다.
그리고 이건 대한민국 최초이기도 했다.
정치라는 공적인 영역에 대한 국민들의 움직임이 아니라 최초로 사기업에 대한 국민들의 대규모 집회라는 점에서 대한민국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셈이다.
그리고 이 사건이 외국에 알려지면서 외국에서도 역풍이 불기 시작했다.
인권은 모든 유럽 국가들이 최우선적으로 우선시하는 그런 가치다. 특히 2차 세계 대전의 내홍을 심하게 겪은 나라일수록 그런 경우가 심했다.
독일.
[우리는 SG전자의 신제품을 포함한 제품을 시장에서 퇴출시키기로 결정했습니다.]
나치와 유대인 학살 사건으로 인해 이런 인권 문제에 가장 민감한 독일에서는 아예 SG전자의 제품을 매대에서 전부 빼 버렸다. 그리고 다른 유럽 국가들은 아예 퇴출하진 않았지만 매장에서 점점 뒤로 밀렸다.
그리고 수직 하락하는 SG전자의 주가.
SG전자는 SG그룹을 지탱하는 메인주다. 그런 SG전자의 주가가 폭락하기 시작하자 덩달아 SG그룹의 모든 계열사의 주가에 파란 불이 들어왔다.
첫날 -5퍼센트.
이튿날 –10퍼센트.
그리고 사흘째 –20퍼센트.
SG그룹의 주가는 불과 나흘 만에 30퍼센트 이상이 폭락하며 사이드카까지 걸려 한국 주식 시장 전체에 충격을 안겨 주었다.
개인이건, 기관이건, 외국인이건 모두가 매도인으로 돌아서면서 SG그룹의 주가는 100조 이상이 날아갔다.
그러자 몇몇 언론사나 정치인은 그 틈에 SG그룹의 편을 들어 그들이 한국 경제에 기여하는 바를 알리며 SG그룹에 반전을 꾀했지만 분노한 국민들의 십자포화에 가루가 되어 사라졌다.
그리고 한국대학병원의 VIP실.
백도현은 눈물을 줄줄 흘리며 자신의 아버지인 백성철을 바라봤다. 습격으로 병원에 입원한 백도현은 병실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SG그룹이 실시간으로 나락으로 치닫는 것을 두 눈을 뜬 채로 봐야만 했다.
병실 밖에는 백성철 회장이 붙인 경호원들이 백도현을 감시했고, 팔다리가 모두 떨어져 나간 백도현은 하릴없이 그 모든 것을 지켜보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백도현의 이름으로 출국금지가 떨어졌고 경찰과 검찰이 조사에 착수했다는 안 좋은 소식이 빗발치는 가운데 백성철 회장이 백도현을 찾았다.
“다녀와야겠다.”
“아버지.”
“나도 이 길로 검찰에 출두할 예정이다.”
백성철이 굳이 대학병원에 온 이유는 검찰에 타고 갈 휠체어를 고르기 위함이다. 고령인 그가 검찰 포토라인에 나서야 할 정도로 지금 상황은 좋지 않았다.
“네가 뱉은 말, 네가 책임지리라 믿는다.”
백성철이 자신의 아들에게 한 말은 딱 거기까지다. 백도현은 하지 말아야 할 말을 내뱉었고, 멍청하게 녹음까지 당했다.
마음 같아서는 백도현을 당장 눈앞에서 치워 버리고 싶었지만 백성철은 마지막 인내심을 발휘했다.
“죗값을 치른 뒤 외국으로 나가거라. 평생 들어오지 않는다면 너에 대한 국민들의 분노가 가시겠지. 결국 대기업도 국민들의 지지가 있고, 그들이 호주머니를 열어야 먹고 살 수 있는 법이다. 네가 있는 이상 SG는 국민들의 외면을 받을 것이고.”
“아…….”
백도현은 자신이 평생 일궈 왔던 것을 두 번 다시 볼 수 없으리란 것을 깨달았다.
“아무것도 하지 말고, 쥐 죽은 듯이 살거라. 사는 데 불편함은 없게 해 줄 테니.”
모든 것을 내려놓고 이 세상에 없는 사람처럼 살아야만 한다. 백도현은 허탈감을 느꼈지만 백성철은 그런 아들을 일별한 채 뒤돌아섰다.
드르륵 탁.
문이 닫혔다. 백도현은 여기저기 붕대를 감은 채로 허공을 올려다보며 텅 빈 눈을 했다. 그런 백도현의 귀에 환청이 들리기 시작했다. 지난 나흘간 악몽으로 인해 하루에 고작 한 시간도 제대로 자지 못했기 때문이다.
[속죄하라.]
“무엇을…….”
[네가 쌓아 올린 죄업의 탑이 드디어 네놈의 머리 위로 무너질 것이니. 속죄하라.]
* * *
백도현의 모든 세력은 와해됐다. 그리고 백성철은 검찰의 포토라인을 앞에 두고 있었다. 검찰청에 차가 접어들자 백성철은 머리를 흐트러트리고 마스크를 쓰고는 김대엽에게 말했다.
“대엽아.”
“예, 회장님.”
“회사를 부탁한다.”
“걱정 마십시오.”
그 말이면 족했다. 백성철이 검찰에 처음 출두하는 것도 아니다. 그가 SG그룹을 운영하는 지난 수십 년 동안 여러 일이 벌어지곤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느낌이 달랐다. 백성철은 인상을 찌푸렸다.
“도현이가 누굴 만났는지는 아직 알아낸 것이 없고?”
“박성원을 만났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곳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전혀 증거가 남지 않았습니다.”
“대체 어떤 놈이 우리 SG를…….”
이번 사건으로 인해 SG가 입은 타격은 그 액수를 집계하기가 힘들 정도다. 지난 10년간 SG가 쌓아 올린 금자탑이 한 번에 무너져 내렸기 때문이다.
쌓기는 어려우나 무너지는 것은 순식간인 것이 바로 명성이다. 그것이 모두 수포로 돌아갔다. 그러니 당연히 이 일의 배후에 있는 누군가에 대한 백성철의 살기는 무시무시할 수밖에 없었다.
“이현이를 조심해라. 지금이 적기일 테니까.”
“예. 회장님.”
“상혁이라면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어리지만 제 역할이 무엇인지 아는 아이니까.”
김대엽은 고개를 꾸벅 숙였다. 상혁이라면 백성철과 백도현의 부재를 틈타 분명히 움직일 백이현을 견제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상혁의 권력을 더 키워 줘야 한다.
“감사본부의 본부장이 누구지?”
김대엽의 눈이 커졌다. 감사본부는 백성철 회장의 직속 부서로 말 그대로 모든 계열사를 감사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있었다.
회사원들이 가장 두려워한다는 감사권을 가진 곳이기에 SG그룹의 저승사자가 모인 곳이 바로 그곳이었다.
그러나 김대엽은 백이현을 견제하기 위해서는 그 정도는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다. 하지만 어딘가 불편했다. 과연 백상혁을 믿을 수 있는지는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악보다는 차악이 낫겠지.’
백이현이 백성철의 부재를 틈타 야욕을 드러내는 것보다는 믿을 수 없는 백상혁이 차라리 차악이다.
“5팀이 건설 담당이었지. 그곳의 팀장 권한을 상혁이에게 이양해. 그리고 건설 감사 시작할 수 있도록 지원해 주고.”
백이현의 광폭 행보를 막는 방법은 간단하다. 감사를 시작하면 된다. 감사는 감사본부의 고유한 권한이자 회장의 권한이기 때문에 막을 방법은 없다.
“예, 회장님.”
“그럼 뒤를 부탁하지.”
백성철 회장이 차에서 내렸다. 그리고 휠체어에 백성철 회장이 올랐다. 담요를 덮고 마스크를 쓴 백성철은 누가 보더라도 다 죽어 가는 노인이었다.
촤라락!
백성철이 세팅을 마치자 기자들이 셔터를 눌렀다. 아직 SG의 권력의 칼날은 살아 있었다. 그렇게 세팅된 채로 백성철이 검찰 간부의 안내를 받아 검찰청 안으로 사라지는 것을 보며 김대엽은 전화기를 들었다.
“백상혁 이사장님. 김대엽 실장입니다.”
백성철 회장이 당부한 대로 움직일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