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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 먹는 대마법사-157화 (156/249)

쓰레기 먹는 대마법사 157화

157. 닿을 수 없을 것 같았던 곳(2)

박성원은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는 초조한 듯 다리를 떨었고 어디 의지할 곳이 필요한 듯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제 팔을 잡았다가 손을 잡았다.

박성원의 집.

오래전 사람의 손을 탔던 흔적은 찾아볼 수 없었다. 여기저기 먼지가 쌓이고 곰팡이가 꽃 피웠던 집은 상혁의 손짓 한 번에 마치 새집처럼 바뀌었다.

오랜 연인이던 아내와 함께 신혼집을 차린 그 집에 남은 건 아무것도 없었지만, 박성원은 제집에 있겠다고 고집을 부렸고 상혁은 그 고집을 들어주었다.

헛된 망상을 좇는 것이라고 해도 상관없었다.

이곳에서 희미하게 느껴지는 듯한 아내의 체취만으로도 박성원은 진정할 수 있었으니까. 상혁이 내민 손을 잡은 박성원은 그렇게 제집으로 수년 만에 돌아왔다.

“긴장되십니까?”

“조금요.”

박성원은 손을 쥐었다 폈다 했다. 지난 며칠간 양질의 식사를 하고 휴식을 취한 덕분에 볼에 약간 살이 올라왔다.

그래도 아직까진 전체적으로 볼품없는 외형이었으나 두 눈만은 형형하게 안광을 발했다. 박성원은 중독에서 벗어났고, 그로 인해 과거의 총명함을 되찾았다.

그리고 그는 상혁이 짜 놓은 판 위에 기꺼이 등판하기로 했고, 지금 백도현을 기다리고 있었다.

“만나면 제가 무엇을 하면 됩니까?”

박성원은 상혁에게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느냐고 물었지만 상혁은 그저 웃으며 이렇게만 말했다.

“하고 싶은 대로 하세요.”

“말씀해 주신 대로라면 지금 백도현의 상황은 그리 녹록치 않을 겁니다. 저를 찾은 것도 자신의 논란을 덮기 위한 고기 방패로 써먹기 위함일 테고요. 그런데도 하고 싶은 대로 하라는 겁니까?”

박성원은 괜히 자신이 엘리트 코스를 밟은 것이 아니라는 듯 수년간 회사에서 멀어졌음에도 백도현의 현 상황만을 듣고는 정확히 모든 상황을 유추해 냈다.

“네. 막 나가셔도 됩니다.”

“후우우…….”

박성원은 뜨거워지려는 자신의 머리를 크게 심호흡하며 식혔다. 상혁의 말은 박성원을 울컥하게 만들었다.

마치 그를 이해한다는 듯, 상혁은 박성원에게 무언가를 요구하지 않았다. 그저 자신이 짠 판 위에 박성원이 마음껏 놀라는 듯 그에게 모든 것을 허락해 주었다.

“죽일지도 모릅니다.”

“그래요? 그러면 죽이세요.”

상혁은 선뜻 그러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사람 같았으면 박성원이 화를 냈을지도 모른다. 제대로 된 시나리오도 없이 백도현이란 거물을 거론하냐고 하면서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을 것이다.

하지만 박성원은 주저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 제 마음대로 하겠습니다. 당신께서 특별한 대책이 있으시겠죠.”

자신을 구해 준 구세주이자 신이다. 스스로를 마법사라고 했지만 박성원은 마음속에서 그를 신으로 생각했다.

그 절망의 구렁텅이 속에서, 자칫하면 또다시 미몽 안에서 백도현에게 이용당하고 버림받았을 자신을 구해 준 것이 바로 상혁이었기 때문이다.

그건 신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이다.

‘당신께서 나를 구해 주셨으니, 나 역시 당신을 위해 기꺼이 쓰이겠습니다.’

박성원의 두 눈이 열기를 띠고 상혁을 쳐다봤다. 그렇게 생각하자 백도현을 만난다는 것에 요동치던 감정이 가라앉았다.

‘난 그저 당신께서 하고자 하는 대로 쓰이면 될 뿐. 내 머리로 섣불리 재단하실 수 있는 분이 아니시다.’

박상원은 심호흡을 길게 했다. 그때 상혁이 빙긋 웃으며 그에게 마법을 사용했다.

“기억하세요. 하고 싶은 대로. 그 뒤는 전부 내가 책임집니다. 내가 항상 곁에 있다는 걸 의심하지 마시길.”

화아악!

상혁의 마나가 상혁을 발끝부터 감싸기 시작했다. 그와 함께 상혁의 모습이 허공 속으로 녹아 없어지듯 사라졌다.

4서클 인비지블.

투명화 상태로 돌입한 상혁이 손에 크기에 비해 화질이 미친 듯이 좋아 한 대에 수백만 원을 호가한다는 카메라를 들고는 녹화 버튼을 눌렀다.

그리고.

똑똑똑.

문을 누군가 두드렸다. 박성원은 자리에서 일어나 현관문을 열었다. 박정철이 그곳에 있었다. 박성원은 그의 어깨너머를 보았지만 아무도 없다는 것을 발견했다.

“백 사장은 같이 오지 않았습니까?”

“내부 점검을 한 뒤 오실 겁니다.”

박성원은 옆으로 비켜섰다. 박정철은 그를 지나쳐 안으로 들어갔다. 가구 하나 없는 썰렁한 집안이 박정철을 반겼지만 박정철은 속으로 놀람을 감추느라 주변을 돌아볼 여유를 갖지 못했다.

‘멀쩡하다. 대체 어떻게.’

박성원이 맞은 마약성 안정제를 공수한 것은 바로 박정철이다. 저 마약성 안정제는 중독 치료를 한다고 해도 족히 1년 이상의 치료가 필요한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그런데 박성원은 조금 야위었을지언정 중독자의 안색이 아니었다.

‘누군가 조력자가 있었다는 소리인가? 언제부터 준비한 것이었지?’

박성원이 오래전부터 탈출을 준비하고 있었다고밖에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렇다는 건 누군가 조력자가 있었다는 소리다.

‘백이현 사장은 아니다. 서로 감시하고 있는 상황에 우리 모르게 그쪽에 사람을 보낼 순 없어.’

박정철의 머리가 복잡했다. 그때 박상원이 뒤에서 그에게 말했다.

“그 검사라는 게 그냥 서 있는 겁니까? 그냥 서 있을 거면 빨리 백도현 사장이나 부르시지.”

“아닙니다.”

박정철의 뒤로 몇 사람이 따라 들어왔다. 박상원은 긴장한 기색이었지만 그들을 경계하진 않았다.

박정철은 박상원의 표정을 유심히 살피며 자신의 추측에 확신을 더했다.

‘무언가를 믿고 있다. 자신에게 해를 입히지 못할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는 상태야.’

만약 자신이 박상원이었다면 절대로 먼저 만나자고 연락하지 않았을 것이다. 상대는 대한민국 최고 권력인 SG그룹이었기 때문에 사람 하나쯤은 쥐도 새도 모르게 없앨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박상원은 초연했다.

믿는 구석이 있다는 뜻이다. 그래서 박정철은 내부를 더욱 세심하게 검사했지만 나오는 게 없었다.

애초에 가구도 하나 없는 곳이라 검사하고 말 것도 없었지만 그래도 나오는 것이 전혀 없었다.

‘옆집이나 윗집, 아랫집에?’

박정철의 뒷골이 곤두섰다. 하지만 박상원이 보고 있는 상태다. 그 점까지 미리 고려하지 않은 건 박정철의 실책이다.

“됐습니까? 언제까지 기다리게 할 참입니까?”

“……사장님을 불러 드리겠습니다.”

박정철은 서둘러 주변 집들을 확인해 봐야겠다고 생각하며 백도현을 불렀다. 잠시 뒤 백도현이 경호원들과 함께 모습을 드러냈다.

“박 부장.”

“오랜만입니다. 백도현 사장님.”

꿈틀.

자신의 부하였던 박성원이 자신을 원수처럼 노려보면서 이름을 한 자 한 자 씹어 내뱉듯이 말하자 백도현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하지만 그는 화를 드러내지 않았다. 박성원은 지금 백도현의 가장 중요한 키가 되어 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왜 그러셨습니까.”

“무엇을 말인가?”

백도현은 다른 이야기를 하고 싶었지만 박상원이 선수 쳤다. 박상원은 백도현의 반문에 이를 뿌득 갈았다.

“박제희. 그 아이를 죽게 내버려 두셨지요.”

“아직도 그 이야기인가?”

백도현은 지겹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게 언제적 이야기인데, 박성원은 또 그 이야기를 꺼내 들었다. 이미 오래전 마무리가 된 그 이야기를 말이다.

“자네가 병원에 있는 동안 그 일은 모두 끝이 났네. 유족이랑 합의했지. 돈을 원하더군. 그래서 원하는 것을 줬네만, 무슨 문제라도 있는가?”

“어릴 적 이혼한 친부가 아이의 목숨값을 받아 간 걸 다 끝났다고 생각하신 겁니까? 그 아이의 어머니와 친구들은 사건의 진위와 진범의 처벌을 원했습니다.”

“박 부장, 자네 참 낭만적이군.”

백도현은 박상원을 쳐다보며 냉소적으로 말했다.

“회사 생활을 한두 해 한 것도 아니지. 당시 SG전자 미국 법인이 현지에 반도체 공장을 건설하려고 했던 것 기억하는가?”

“…….”

“기억하겠지. 그 사업의 실무자가 자네였으니까.”

박성원은 입을 다문 채 백도현을 노려봤다.

“당시 미국 대통령은 자국 산업 보호에 혈안을 기울이고 있었지. 그건 일국의 대통령이 아니라 마치 깡패 같았어. 자국에 공장을 지어 자국민을 고용하지 않으면 관세를 크게 때리겠다니. 그게 무한경쟁 시대에 말이나 되는 이야기인가?”

“허튼소리는 그만두시지요.”

“허튼소리가 아니네. 우리는 스캇 고먼에게 잘 보여야 할 필요가 있었어. 그래서 내가 직접 그곳까지 갔던 거야. 어차피 지어야 할 공장이면, 싸게 짓는 것이 나았으니까. 그 김에 고먼 가문과 연이 닿으면 미국 사업에도 날개는 다는 셈이고. 자네가 그렇게 써서 보고했지.”

박성원은 눈을 질끈 감았다.

백도현과 고먼 가문을 엮었던 것은 박성원이다. 그때는 그게 최우선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그런 그의 결정이 그 비극의 단초를 제공했다.

결국 그런 사건이 일어난 건 박성원과도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는 할 수 없었다.

“만약 거기서 자네 말대로 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백도현은 박성원을 빤히 쳐다보며 그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SG그룹은 미국에서 퇴출당했을지도 모르지. 그러면 SG그룹의 주가는 하락했을 것이고, 세계 시장 점유율도 빼앗겼을지도 몰라.”

백도현은 손가락을 튕겼다.

“대기업의 몰락은 그런 작은 균열부터 시작되지. 미국에서 퇴출당한 SG의 것을 누가 써 줄까. 그렇게 되면 SG는 몸집을 줄여야 하겠지. 그 과정에 구조조정이 일어났을 것이고.”

비약이다. 그것도 지나친 비약. 하지만 박성원은 알고 있었다. 백도현의 예상이 짧은 시간에 일어나지는 않았을지도 모르나 긴 시간을 걸쳐 일어날 수도 있는 것임을 말이다.

“그렇게 되면 몇 명이 과연 길바닥에 나앉게 될까? 대한민국의 SG 의존도는 박 부장도 잘 알 테니까.”

“그래서 학생의 죽음을 덮고 학생에게 오명을 덮어씌우는 것이 SG의 사장인 당신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었다는 겁니까?”

“돈을 달라고 해서 돈을 줬어. 그게 뭐가 잘못된 거지? 그 학생에게 그런 집안 사정이 있다는 것도 내가 고려해야 됐나? 그러면 언제까지 내가 사과를 했어야 한다는 거지?”

백도현은 단호하게 말했다. 그는 사업가다. 사업가의 시간은 금이다. 그래서 백도현은 금으로 시간을 아꼈다.

“그럼 나연이는…….”

“유나연 씨 일은 나도 유감이네. 그러나 강도에 의해 희생당한 걸 왜 내 탓으로 돌리지? 미국에서 한 해에 벌어지는 총기 사건이 몇 건인지 아나?”

박상원은 백도현을 쳐다봤다. 그는 변하지 않았다. 박상원은 그와 헛되이 입씨름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뼈저리게 깨달았다.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

그리고 사람은 고쳐 쓸 수도 없는 법이다.

“일단.”

박상원이 백도현에게 다가갔다. 경호원들이 박상원을 막으려 했지만 백도현은 손을 들어 올렸다.

“한 대만 맞읍시다.”

그러나 박상원의 행동은 백도현의 예상을 빗나갔다. 그는 박상원이 여전히 과거에 머물러 있는 것을 보며 한심하다고 생각했고, 방심했다.

그러나 ‘신’의 위세를 등에 업은 박상원은 백도현이 기억하고 있는 그 박상원이 아니었다.

뻐억-!!

박상원의 주먹이 백도현의 얼굴에 틀어박혔다. 백도현은 전혀 예상치 못한 일격에 우당탕탕 소리를 내면서 옆으로 엎어졌다.

우당탕탕!

경호원들이 박상원에게 달려들어 박상원의 사지를 구속했다. 잠시 후 화가 난 얼굴로 일어난 백도현을 박상원이 무릎이 꿇린 채로 올려다봤다.

“거 시원하네.”

박상원이 이를 드러내면서 씩 웃었다. 백도현의 코에서 코피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백도현은 그 코피를 손등으로 슥 닦아 낸 다음 박상원에게 말했다.

“박상원. 마지막 기회를 주마. 그때 그 사건, 네가 다 짊어지고 몇 년간 들어갔다가 나와야겠다.”

“하. 내부 고발을 하려다가 버림받은 내가 그 사건의 진범이 되어야 한다고?”

“내가 쓰겠다면 쓰는 것이지. 원래 너희들은 그렇게 태어난 거다. 나 같은 사람들에게 쓰이기 위해서.”

백도현의 선민의식이 드러났다. 그는 박성원을 독에 빠진 쥐라고 생각한 것인지 거침없이 자신의 비열함을 드러냈다.

“인체 실험을 한 것도 그래선가?”

“그래. 그렇게 쓰이면 감사한 줄 알아야지. 미천하게 태어난 운명을 나 같은 사람을 위해 봉사할 수 있도록 해 준 것이니까.”

박성원은 그를 보며 혐오스럽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백도현은 눈 하나 깜빡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때 경호원들이 약을 먹은 것처럼 고개를 떨구며 픽픽 쓰러지기 시작했다.

“후우.”

박성원은 자유의 몸이 되어 자리에서 일어났다. 백도현은 기현상에 눈을 크게 뜨면서 뒤로 주춤거리며 물러났다.

박성원은 주먹을 말아쥐며 백도현에게 말했다.

“그래. 뭐라고? 다시 한번 더 지껄여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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