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 먹는 대마법사 156화
156. 닿을 수 없을 것 같았던 곳(1)
“아, 아…….”
박성원은 전율했다. 미몽에 가려져 있던 정신이 또렷해지고, 눈으로 보이는 사물이 명확해졌다. 그게 몇 년 만인지 모른다. 박성원은 제 눈에 또렷하게 비치는 달빛에 자신도 모르게 눈물을 주르륵 흘렸다.
박성원의 지난 시간이 한꺼번에 휘몰아쳤다.
시간이 지나면 사람은 망각하는 동물이지만 동시에 모든 것을 기억하는 동물이기도 하다.
박성원은 백도현의 술수에 넘어가 억울하게 가족을 잃은 뒤 정신병원에 갇힌 뒤, 약에 취해 잊었던 그 시간들을 떠올렸다.
한꺼번에.
“컥, 컥.”
박성원은 자신의 목을 양손으로 움켜쥐었다. 숨이 쉬어지지 않았다. 그 기나긴 고통이 일시에 몰려들며 순간적으로 몸이 숨 쉬는 것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스윽.
상혁은 그런 박성원을 향해 손을 들어 올렸다. 그러고는 손끝으로 푸른 마나를 가루처럼 만들어 박성원의 머리 위로 뿌렸다.
1서클의 진정 마법이다.
“커헉!!”
박성원의 입가에서 진득한 침이 주욱 흘러내렸다. 그의 눈이 시뻘겋게 충혈됐다. 자신이 잊고 살았던 수년이란 세월이 한꺼번에 몰려온 그 충격은 그게 누구더라도 쉽게 느껴지지 않을 것이다.
“나연아…… 나연아…….”
박성원은 약에 취한 몇 년 동안 단 한 번도 떠올리지 못한 아내의 이름을 되뇌었다. 그는 꺽꺽거리며 해소되지 않은 아픔을 토해 내려 했지만 목에 턱 막혀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아내의 얼굴이 떠오르지 않았다.
“아, 아……!”
박성원은 목을 놓아 구슬프게 울부짖었다. 그는 그가 멍하니 쳐다보던 달이 아내라도 되는 것처럼 두 팔을 뻗어 달을 그러쥐기 위해 손을 쥐었다 폈다를 반복했다.
상혁은 그런 박성원의 곁에서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은 채 묵묵히 그를 지켜보았다.
절망, 절규, 슬픔, 원망, 증오.
박성원에게서는 인간이 품을 수 있는 모든 부정적인 감정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 부정적인 감정이 상혁의 눈에 보였다. 상혁의 마나안이 흐리게 서기를 흘려 댔고 상혁은 박성원의 머리 위를 향해 손을 들어 올렸다.
[불허한다.]
상혁의 손에 담긴 마나가 육안으로는 보이지 않는 허상의 공간에 선을 그었다. 마나가 담긴 상혁의 손짓에 박성원을 향해 몰려들려던 잡귀들이 멈칫했다.
잡귀들.
‘악귀의 잔재들.’
인간의 부정적인 감정을 먹고 사는 허상의 존재들. 그들이 부정적인 감정을 품어 강대해지면 그것이 원귀가 되거나 마계의 악마를 불러들이는 매개체가 된다.
마나가 풍부하게 존재하는 가나안에서는 그로 인해 마계의 문이 열리는 일이 잦았다.
그러나 지구는 그러진 않았다.
대신 잡귀가 인간의 몸에 들러붙어 정혈을 뽑아먹고 쇠하게 하거나, 인간의 운명을 틀어 버리는 기생귀가 된다.
‘지구라고 해서 인간만 사는 건 아니지.’
이미 오승택의 동생인 오승환을 통해 영혼의 존재를 확인한 상혁이다. 그렇기에 상혁은 지구에 저런 잡귀들이 존재한다는 것에 신기해하지 않았다.
감정의 부스러기, 오염된 감정의 파편들이 모여 만들어진 잡귀들.
그것들은 자연스럽게 부정적인 감정에 끌리고 그곳으로 모여든다. 그러나 이번에 그것들은 운이 없었다. 상혁의 손이 허공을 노닐었다.
화륵, 화륵, 화륵!
끼에에엑-!
마법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에까지 그 영향을 끼친다. 상혁의 마나안은 그것들을 볼 수 있었고 박성원 주변으로 작은 스파크가 튀어 올랐다.
소멸.
상혁은 잡귀들이 소멸시키며 여전히 정신을 놓고 있는 박성원을 쳐다봤다.
“백도현에게 복수하고 싶지 않으십니까?”
움찔.
그가 잃어버린 세월과 그간 잊어버렸던 기억들의 홍수에 허우적거리던 것이 백도현이란 이름 석 자에 멈췄다.
스윽.
박성원이 고개를 돌려 상혁을 쳐다봤다.
“복수, 할 수 있습니까?”
“네.”
상혁은 그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박성원은 소매로 자신의 눈가를 닦았다. 그러자 박성원의 눈빛이 형형해졌다.
“정말입니까?”
“내 이름을 걸고, 그렇습니다. 내가 돕겠습니다.”
“누굽니까 당신은.”
박성원은 상혁의 얼굴을 자신의 뇌리에 각인시키겠다는 듯 쳐다봤다. 상혁은 그의 눈을 피하지 않았다. 순간 박성원은 상혁의 눈에 어린 서기에 자신도 모르게 눈을 크게 떴다.
“이게 보이는 모양이군요.”
상혁은 담담하게 박성원을 쳐다봤다. 모든 사람은 마나를 느낄 수 있다. 지구에는 마나만 없을 뿐이다. 하지만 사람의 신체는 자연스럽게 쓸모없는 기관을 없애버린다.
그러나 박성원처럼, 오승환처럼, 전아영처럼 어떤 이들은 이를 느끼거나 볼 수 있는 이들이 있었다.
‘박성원의 경우는 일시적인 것이겠지만.’
슬픔과 복수심에 평소에는 닿을 수 없는 고조된 상태에 도달한 박성원이기에 순간적으로 보인 것이다.
그러나 그게 박성원에게는 다른 의미로 받아들여진 모습이었다.
“당신은 혹시, 신이십니까?”
밤하늘을 날아온 밤손님. 자신을 미몽에서 벗어나게 하였으며 자신의 모든 것을 앗아 간 이에게 복수를 하게 돕겠다고 손을 내미는 그런 존재는 신밖에 없다.
상혁은 그런 박성원을 향해 빙긋 웃었다.
“신이라. 그런 꿈을 꿨던 적이 있었죠.”
마법사들은 신을 믿지 않는다. 그들은 자연의 진리를 탐구하며 자연의 진리를 깨닫는 순간 초월적인 존재가 될 수 있으리라 믿는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마법의 경지에 오르게 되면 신을 믿게 된다. 신이 아니라면 이런 오묘한 자연의 섭리를 만들어 낼 수 없을 것이라고 믿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유일하며 전지전능한 존재.
인간이 인간을 초월하여 된 초월적인 신화 속의 존재가 아닌 이 세상 모든 것에 연결된 진리의 정점에 선 존재.
그건 신이라 불리는 절대적이고 영원불멸한 존재가 아니라면 그 시작과 끝을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8서클 대마법사.
그런 점에서 상혁은 그 진리의 정점에 가장 가까이 도달한 최초의 인간이자 최후의 인간이다. 상혁은 자신을 신이라 부른 박성원을 보며 빙긋 웃었다.
“전 마법사입니다. 불가능을 가능케 바꾸는 존재, 진리를 탐구하는 자. 동시에.”
상혁이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박성원은 경외를 담아 상혁을 바라봤다.
“이룰 수 없는 당신의 염원을 들어 줄 수 있는 자. 그리고 당신과 같은 목표를 걷는 자.”
웨에에엥-!!
정신병원 내 사이렌이 요란하게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이상을 이제야 감지하고 비상벨을 울리기 시작했다는 뜻이다.
사아아아-!!
그 순간 상혁의 옷자락이 펄럭이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상혁을 주변으로 마나의 파동이 뿜어져 나오며 정신병원 전체를 순식간에 파동이 감싸 안았다.
파동이 병원 전체를 감싸 안은 순간 그 안에 있던 모든 이들이 잠들었다. 단 두 명, 상혁과 박성원만을 제외하고.
뚝!
그리고 사일런스 마법이 펼쳐지며 정신을 요란스럽게 만들던 사이렌 소리가 뚝하고 끊겼다. 상혁의 오른 눈에 서린 서기가 짙어졌다. 박성원은 그것을 홀린 듯한 눈으로 쳐다봤다.
“갑시다.”
상혁이 손을 내밀었다. 그러자 박성원은 일어나 상혁의 손을 자신의 두 손으로 꽉 움켜쥐었다.
* * *
“일을 대체 어떻게 하는 거야!!”
다음 날.
백도현의 엄명에 급히 차를 몰아 강원도의 정신병원에 도착한 박정철은 전날 밤 있었던 일을 듣고는 극도로 분노하여 병원장의 따귀를 날렸다.
짜악!!
“아악!!”
“우리가 어려운 걸 그쪽에게 바란 것도 아니고. 사람 하나 지키고 있으라고 한 게 그렇게 무리였나? 돈도, 사람도 다 우리가 보냈는데!!”
짜악-! 짜악-!
박정철은 맞아 쓰러진 병원장의 따귀를 몇 번이나 더 후려쳤다. 병원장이 입에서 피를 흘리면서 기절하자 박정철은 씩씩거리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누구야!!”
“전혀 증거가 남지 않았습니다. 모든 CCTV의 회로가 나가 버리는 바람에…….”
“그러면 목격자는? 인근 CCTV까지 싹 다 뒤져야지!!”
“화, 확인해 보겠습니다.”
박정철의 서슬 퍼런 호통에 사람들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박정철은 입술을 짓씹었다. 백도현이 살아남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것이 박성원인데, 그가 연기처럼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다.
‘건설 쪽에서 먼저 움직인 건가? 아니. 서로가 목줄을 쥐고 있는데 그쪽에서 움직일 리 없지. 그럼 대체 누가.’
박정철은 사건 현장을 확인하고서는 박성원을 찾는 일이 거의 불가능에 가까울 것임을 직감했다. 당장 뭐라도 나오기를 바라며 난리를 쳤지만 애초에 박성원은 외부의 조력자에 의해 그 어떠한 증거도 남기지 않고 탈출했다.
그것도 병원의 창문을 통째로 뜯어 버리고 탈출한 것이다.
병원의 모든 감시망이 일거에 무력화됐다. 그리고 증언에 따르면 모두가 수면제를 먹은 것처럼 한꺼번에 잠들었다고 한다. 그사이 정원이 아니라 바깥 낭떠러지 쪽으로 박성원이 탈출했다는 것이다.
“아.”
박정철은 벽에 손을 기대고는 풀리려는 다리에 힘을 줬다.
논란은 논란으로 덮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한국대 사건에 박성원이 반드시 필요했다. 하지만 그 중요한 키가 사라졌으니 결국 백도현은 써먹을 패가 사라진 셈이다.
이제 무슨 수를 써야 한다는 말인가.
박정철은 자신이 탄 배가 서서히 물속으로 가라앉는다는 것을 느끼고는 눈을 질끈 감았다.
“하늘이 결국 도련님을 버리시는가.”
* * *
백도현 논란은 뉴스에서 백도현 게이트란 단어를 쓰면서 본격적으로 그 논란에 불이 붙기 시작했다.
하나둘씩 SG의 눈치를 보던 정치인들이 백성철이 입을 다물고 있자 조심스럽게 입을 열기 시작하면서 정계의 쟁점으로 급부상했기 때문이다.
백성철은 백도현을 불렀다.
“도현아.”
“아버지.”
백도현은 그사이 살이 5kg 넘게 빠져 수척하기 그지없었다. 푸석푸석한 피부와 시커먼 눈 밑을 보니 그간 제대로 잠도 이루지 못한 것이 틀림없었다.
박성원을 확보하는 데 실패한 이후 열흘.
그 사이 백이현은 은밀히 자신의 인맥을 동원하여 모든 방면에서 백도현을 압박했다. 백도현이 입을 다물고 백성철이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으면서 몇몇 시민단체에서는 시위까지 벌이며 현재까지 밝혀진 사실에 대한 SG의 공식적인 답변을 요구했다.
물론 전부 다 백이현의 돈이 들어갔음에는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더 이상 기다려 줄 수 없겠구나.”
“하, 하지만…….”
“모든 자료를 김 실장에게 넘기거라. 그러면 내 너를 최대한 빨리 꺼내 주겠다고 약속을 해 주마. 최고의 변호사들을 붙여 줄 터이니 걱정하지 말고.”
“아버지.”
“이건 그 누구도 탓할 수 없는 일이다. 이건 위기관리에 실패한 네 탓이 가장 크다. 그걸 명심해야 한다.”
“…….”
백도현은 모멸감에 두 주먹을 부르르 떨었다. 하지만 그런 백도현이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간 그가 누리던 권력은 허상이었다는 듯 불과 열흘 만에 무너져 내렸다.
백도현을 따르던 이들은 백이현이나 백성철에게로 건너가 버렸고 백도현의 곁에는 이제 그의 사람이라고 부를 사람도 거의 남지 않았다.
그 누구도 침몰하는 배에 동승하고 싶어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걱정 말거라. 아무리 저 바깥사람들이 네게 손가락질을 하고 욕을 한다고 해도 넌 내 아들이니까. 내게는 소중한 아들이니 말이다.”
백성철의 목소리는 부드러웠다. 그러나 그의 눈은 뱀처럼 요사스럽게 빛나고 있었다. 그가 원하는 것은 백도현이 알고 있는 엘릭서에 대한 자료다.
그걸 위해서라도 그는 백도현을 버릴 생각이 없었다.
그리고 그걸 차, 포 다 떨어진 백도현이라고 해도 잘 알고 있었다. 그건 그가 마지막으로 매달려야만 하는 동아줄이다.
그러나 방법이 없다.
상황을 누구보다 잘 읽어 내는 백도현도 자신이 더 이상 나아갈 곳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박성원.
그놈만 있었더라면…….
우당탕, 벌컥!
그런데 그때 회장실 문이 벌컥 열렸다. 박정철이었다. 백성철이 박정철의 행동에 눈살을 찌푸렸지만 박정철은 고개를 한 번 숙이고는 백도현의 귓가에 속삭였다.
“사장님! 박성원에게서 연락이 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