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 먹는 대마법사 155화
155. 마법의 극의(5)
“내게?”
백도현이 자기 자신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면서 고개를 갸웃했다. 백성철 회장의 눈에도 이채가 떠올랐다. 자신이 아니라 백도현에게 바라는 것이 있다는 것이 의외였기 때문이다.
“해 줄 수 있는 선 안에서 최선을 다해 들어주마.”
“그 문제를 해결해 주셨으면 해요. 반도체학과 여학생 자살 사건이요.”
“뭐?”
백도현의 얼굴이 굳었다. 백성철의 눈에서 빛이 반짝였다. 상혁은 눈썹 하나 깜박하지 않고 백도현을 쳐다봤다.
“난처한 사건이라는 것 알아요. 하지만 형님이 직접적으로 연관된 사건도 아니었잖아요.”
“그걸 해결하는 게 네게 필요한 거야?”
백도현은 입술을 잘근 깨물며 화를 삭였다. 만약 그가 이런 난감한 상황에 처해 있지 않았더라면 상혁에게 진노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당장 상혁이 필요했다. 정확히는 상혁이 가지는 화제성이 필요했다.
“네. 아시는지 모르겠지만 제가 이사장으로 새로 취임한 뒤 해결되지 않던 미제 고충들을 수렴해 왔거든요.”
“이야기는 들었다.”
백성철이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최만금을 쳐 내지 않고 그를 강등시켜 일을 시킨다는 것도 백성철은 알고 있었다.
백성철의 뜻에 반하는 일이었지만 그냥 내버려 두었다. 상혁이 최만금과 손을 잡는다면 모를까 그게 아니라면 굳이 건드려서 일을 크게 만들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행히 상혁과 최만금 사이에 별 유대 관계는 보이지 않았다.
“백 사장.”
“예, 회장님.”
백도현은 백성철에게 고개를 꾸벅 숙였다.
“아직도 그 건을 내버려 두었단 말이냐?”
“유족들과 합의하였습니다. 무엇보다 자꾸 유족이나 재학생 측에서 주장하는 것이 스캇 고먼이었던 터라.”
“음.”
백도현의 말에 백성철은 납득했다. 상혁만 납득하지 못했다. 그러나 상혁은 머릿속에 고먼이란 이름을 기억했다.
‘여학생 자살이 스캇 고먼이라는 사람과 관련이 있었다라.’
백도현은 그 사건을 덮었다. 무리해서 언론을 동원하고 많은 돈을 들여 여론 조작까지 감행하며 아예 수면 아래로 묻어 버린 것이다.
그렇다는 건 그 스캇 고먼이라는 사람이 백도현에게, 더 나아가서는 SG전자에 중요 인물이었다는 뜻이다.
‘그런 자리에 학생이 동행했다고?’
상혁은 구린 냄새를 맡았다. 하지만 내색하지 않은 채 백도현에게 말했다.
“아무래도 밝히기 어려운 걸까요? 이사장으로 취임하고 난 뒤 첫 과제로 그 문제를 해결하고 싶거든요. 제가 어리고 낙하산이니까 사람들의 마음을 살 기회가 필요한데…….”
상혁은 백성철을 스윽 쳐다봤다.
“용산에 분원을 설치하고 한국대학교의 학문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 회장님께서도 여러 방면으로 도와주고 계시지만 아무래도 가장 중요한 건 바로 사람의 마음이 아니겠습니까?”
“사람의 마음이라.”
“재학생이나 졸업생의 지지를 받는 이사장이면 아무래도 그 권한이 더 커지는 법이니 이사장이 추진하는 안건들이 수월하게 통과될 것 같아서 드리는 말씀입니다.”
의학 연구소.
백성철 회장이 상혁에게 용산 매물을 낙찰받아 주는 대신 조건으로 건 그것을 말한다는 걸 백성철은 깨달았다.
사실 의학 연구소를 세우는 건 어마어마한 자금이 들어가는 일이다. 아무리 한국대학교에 약학대학이 있다고는 하나 대기업 제약 회사 정도는 되어야 하나 있을까 말까 한 것이 의학 연구소이기 때문이다.
물론 명분은 충분하다.
하지만 명분이 충분하다고 해서 모든 안건이 이사회에서 통과되는 건 아니다. 한두 푼 드는 것도 아닌 의학 연구소 건립을 위해서는 이사장의 권력이 더 강화되어야 한다.
‘그러니까 나한테 힘을 실어 달라고.’
상혁은 백성철을 보며 그렇게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러기 위해서는 상혁이 재학생이나 학교에 산재한 미해결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보여 줌으로써 그들의 지지를 얻을 수 있다는 그럴듯한 명분까지 예쁘게 포장을 해 놓았다.
그러나 사실은 그 모든 것이 백도현을 잘라 내기 위함이었지만 말이다.
‘증거도 하나 확보했겠다.’
스캇 고먼.
역시 두드리면 열리고 틈이 드러나는 법이다. 1인 시위를 이어 나가고 있는 재학생이나 유족 측에서는 알고 있지 못한 작은 정보 하나가 금세 흘러나왔기 때문이다.
그걸 기점으로 조사를 하면 무언가 줄줄이 딸려 나올 것이다.
“일리는 있구나.”
그리고 백성철은 상혁의 손을 들어 주었다. 엘릭서라는 신약에 욕심이 났기 때문이다. 백도현이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백성철을 쳐다봤다.
“백 사장. 작은 허물로 큰 허물을 덮을 수 있으면 이득이야. 멀리 보거라.”
반도체학과의 일로 백도현 본인의 허물을 덮는다. 백도현은 이를 뿌득 깨물었다. 그러고는 상혁을 성난 눈으로 쳐다봤다.
‘뭘 봐.’
생글생글.
상혁은 생글거리며 백도현을 쳐다봤다. 그가 무슨 생각으로 자신을 쳐다보는지 훤히 읽히는 듯했다. 하지만 모르쇠로 일관하는 상혁의 연기에 백도현은 눈에 힘을 풀었다.
“예, 알겠습니다.”
“적당히 덮어. 그때 누가 수행했지?”
백도현이 한숨을 작게 내쉬었다. 일이 끝나면 사냥개를 삶아 먹는 건 당연한 일이다. 그래서 이리 삶아 먹은 사냥개인데, 결국 다시 방패막이로 써먹어야 할 모양이다.
“SG전자 미국 법인의 박성원 부장입니다.”
“가족들 건사할 수 있는 돈 쥐여 줘. 일찍 퇴직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라고 하고. 응?”
“……예.”
그런 백도현을 보며 상혁은 속으로 씩 웃었다. 그러고는 패밀리어 하나를 그에게 붙여 둔 뒤 상혁은 예의 바르게 백성철과 백도현에게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회장님. 그리고 형님.”
* * *
저벅저벅.
벌컥.
백도현은 빠르게 걸어 사장실의 문을 벌컥 열었다. 그러자 그의 뒤를 따르던 박정철이 문을 닫으며 비서들에게 멀리 가 있으라고 고갯짓을 한 뒤 문을 닫았다.
“으아악!”
파라락!
백도현이 거칠게 입고 있던 정장 상의를 벗어서 바닥에 내던졌다. 그러고는 숨을 몰아쉬며 한쪽 팔로 통유리를 짚고는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이 백도현이. 이 백도현이.”
백도현이 눈은 수치와 분노로 물들어 있었다. 그 옛날 한신은 파락호의 가랑이로 기었다는 고사를 떠올리며 수모를 참아 냈지만, 오늘은 그 분노를 참을 수가 없었다.
백상혁.
백도현보다 거의 스물일곱이나 어린 백상혁 앞에서 백성철에게 고개를 조아려야만 했고, 도움을 얻기 위해 과거 자신이 벌인 일을 다시 바로잡아야 할 지경이기 때문이다.
“어쩌다 이런 수모를…….”
백도현의 주먹이 부르르 떨렸다. 그가 태어나서 겪어 본 적이 없는 수모다. 하지만 이내 백도현이 크게 심호흡을 하며 안정을 되찾았다.
“박 실장님.”
“예, 사장님.”
박정철은 침통한 표정으로 백도현의 부름에 고개를 숙였다. 그도 자신이 탄 배가 기울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아직 백도현을 믿었다.
백도현은 언제나 위기에서 훌륭하게 벗어났고 그럴 때마다 더 성장했다. 이번에도 그러리라고 그는 자신의 주인을 믿었다.
“SG전자 미국 법인의 박성원 부장. 기억합니까?”
“예?”
“박성원 부장이요.”
백도현의 목소리에 짜증이 서렸다. 그러자 박정철은 박성원을 떠올렸다. 백도현은 곤란하다는 듯 얼굴을 한 번 쓸어내린 뒤 박정철에게 말했다.
“그자를 데려와요. 시켜야 할 일이 생겼으니.”
“예? 하, 하지만…… 그자는.”
“나도 압니다. 내가 그렇게 만들었으니까. 하지만 그래야 내가 삽니다.”
백도현이 창밖의 무언가를 보고 있는 것인지 눈빛만으로도 사람을 죽일 수 있을 것처럼 살벌하게 눈을 뜬 채로 말했다.
“정신병자라도 필요하면 써야지.”
* * *
SG전자 미국 법인의 박성원 부장은 15년 전 SG전자에 입사한 뒤 엘리트 코스를 거쳐 쾌속 승진한 인재였다.
한국 유수의 대학을 졸업한 그는 성과를 인정받아 미국 법인으로 옮겼고 그곳에서 미국 법인을 감찰하고 한국대학교 반도체학과 학생들의 연수를 위해 직접 왕림한 백도현을 수행하게 된다.
그러나 그는 근본적으로 백도현과 맞지 않았다.
스스로가 엘리트라는 자부심에 가득 찬 박성원은 로열패밀리란 이유만으로 자신의 머리 위에 서려고 하는 백도현을 인정하지 못했고 백도현은 그런 박성원을 괘씸하게 생각했다.
그렇게 서로 삐걱거리던 둘의 관계는 스캇 고먼이 찾아오면서 파국으로 치닫는다.
스캇 고먼, 그는 놀랍게도 그 백도현이 극진히 모실 정도의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로 인해 벌어진 한 사건으로 인해 박성원은 큰 죄책감을 느끼게 된다.
자기 스스로가 엘리트라고 자부하며 살아왔지만 여학생 하나를 못 지켰다는 죄책감에 시달리던 그는 이 일을 폭로하는 내부고발자가 되기로 결심을 한다.
그러나 그가 그 결심을 한순간, 그의 인생은 송두리째 무너지게 된다. 그의 유일한 가족이자 이십 년지기이던 아내가 마피아에 의해 살해당하는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그리고 회사는 곧바로 기다렸다는 듯 심신 불안정을 이유로 박성원을 보직 해제한다. 그 뒤 SG전자에서는 박성원을 책임진다는 명목하에 그를 한국으로 불러들이고, 아무도 모르게 강원도의 한 정신 병원에 보낸다.
박성원은 작은 창문 너머로 보이는 밤하늘을 멍하니 올려다봤다. 박성원은 거의 매일 제정신이 아니었다.
정신을 차릴 때마다 이곳을 탈출하려고 했기 때문에 박성원은 늘 주기적으로 안정제를 맞았다. 그 안정제에 몸이 적응할 때가 되면 저 강한 진정제를 맞았고, 어느새 진정제에는 마약성 진정제로 변했다.
그렇기에 박성원은 천천히 무너져 내렸다.
자신의 무력감에 대한 좌절도, 아내의 죽음도 슬퍼할 겨를이 없이 정신이 온전치 않았기 때문에 늘 하늘만 올려다보게 된 것이다.
그날도 마찬가지였다.
박성원은 밤하늘을 멍하니 올려다봤다. 까맣기만 한 어둠은 쳐다보고 있으면 그를 삼킬 것 같았지만 단 한 번도 그를 삼킨 적 없었다.
박성원의 눈에는 초점이 없었다. 그러나 그는 매일 틈만 나면 하늘을 올려다봤다. 그러나 그런 그에게 관심을 기울이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또 하늘만 보고 있는 거야?”
“그러게.”
“하늘에 뭐라도 있나.”
“몰라.”
그를 감시하는 병원 간호사들은 이제 그에게 거의 관심도 기울이지 않았다. 어차피 진정제에 중독이 된 상태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박성원이 도망가지만 않으면 된다.
그게 그들에게 주어진 임무였다.
“내일 서울에서 온다고?”
“어. 데려간다는데.”
그 임무도 내일까지다. 서울에서 데려가기로 했기 때문이다. 건장한 남간호사들이 모니터 속 박성원을 보며 잡담을 떨고 있는 그때 하늘을 보고 있던 박성원의 눈이 흔들렸다.
달, 별, 구름 외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던 하늘.
그 하늘에, 정확히는 하늘에 동그랗게 뜬 달에 작은 점 같은 것이 생겨났기 때문이다.
그러더니 그 점이 점점 더 커지기 시작했다. 커지기 시작한 점은 어느 순간 머리와 팔, 다리가 생기더니 사람의 모습으로 변했다.
파지직!
그 순간 정신 병원 내의 회로가 정전기에 핀이 나가며 녹아내렸다. 그렇게 손가락 한 번으로 감시망을 무력화한 검은 그림자가 다가오더니 박성원이 입원한 4층 병실 앞에 둥실 떠올랐다.
[박성원 씨.]
상혁은 4층 높이의 바깥에 플라이 마법으로 떠오른 채 창 너머의 박성원과 눈을 마주했다. 그의 눈은 혼탁했지만 상혁은 그의 머릿속에 의념을 보냈다.
간단한 메시지 마법이다.
[마법의 극의에 대해서 아십니까?]
서걱!
[모르시겠죠.]
상혁의 손에서 일어난 바람의 칼날이 창을 통째로 베어 냈다. 그러자 창이 통째로 떨어져 나갔다. 상혁은 그 너머에서 박성원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마법의 극의는 간단합니다.]
8서클에 오른 대마법사, 상혁의 마법에 대한 극의는 간단했다.
[마법이란 본래 불가능을 가능케 하는 힘.]
휘오오오-!!
박성원의 몸이 마나로 일으킨 바람에 휩싸였다. 그와 동시에 상혁은 박성원의 체내를 중독시킨 마약성 진정제의 성분을 그대로 뽑아내었다.
꿈틀.
박성원의 칠공에서 보랏빛의 지독한 진정제가 흘러나오며 살아 있는 것처럼 꿈틀거렸다. 상혁은 손가락 한 번으로 그 보랏빛의 액체를 투명하게 만들었다.
흡수, 정화.
상혁은 그렇게 남은 잔재들을 기화시켜 날려 버리고는 박성원을 향해 말했다.
[당신의 불가능을 제가 가능으로 바꿔 드리죠. 함께 나와 갑시다.]
반짝.
그리고, 몇 년 만에 혼탁함으로 가려져 있던 박성원의 눈동자가 제빛을 되찾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