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 먹는 대마법사 154화
154. 마법의 극의(4)
한얼일보는 미상의 제보자가 제보한 인체 실험에 대한 보고서를 폭로했다. 그러고는 국내 굴지의 대기업이란 이름과 함께 백도현의 이름을 B로 바꿔서 내보냈다.
나름 명확한 증거가 나오기 전까지는 중립을 유지하기 위한 방법이었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SG그룹의 백도현이 아니냐는 추측이 나옴으로 인해 삽시간에 불이 붙었다.
국내 굴지의 대기업인 SG는 모두의 선망의 대상이자 꿈의 대상이다.
그런 곳에서, 남부러울 것 없는 로열패밀리인 백도현이 인체 실험에 가담했다?
한얼일보에서 내보낸 것은 추측성 기사임에도 불구하고 그건 마치 벌써부터 진실이라도 된 것처럼 인터넷을 통해 빠르게 퍼져 나갔다.
“이사장님, 회장님께서 찾으십니다.”
그리고 백성철은 빠르게 상혁을 찾았다. 일주일 동안 10위권 내에 드는 언론사를 찾아 주로 밤에 눈코 뜰 새 없이 움직였던 상혁이다.
그런 자신을 찾는다는 소리에 상혁은 하품을 쩌억 했다.
“하암- 저를요?”
“예? 예.”
비서실에서 나온 비서는 순간 당황했으나 그 모습을 얼른 숨겼다. SG그룹에서 백성철이란 이름 석 자는 왕의 이름이나 다름없다.
그런데 그 이름을 듣고 하품을 하는 사람은 비서도 비서 생활 수년 만에 처음 보는 광경이었기 때문이다.
“아, 제가 잠을 좀 못 자서.”
“아닙니다.”
비서는 노련했다. 그렇지 않았다면 비서실에 입성할 수 없었을 것이다. 상혁은 눈가에 묻은 눈물 몇 방울을 찍어 낸 뒤 말했다.
“왜 부르시는지 아십니까? 뵙고 온 지 얼마 안 됐는데.”
“용산 기지 낙찰 건 때문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지금 여론은 SG그룹 전체가 나선다고 해도 붙잡을 수 없을 정도로 백도현에 대한 안 좋은 여론이 확산되고 있었다.
마치 마른 가뭄에 불이 난 것처럼 순식간에 모든 커뮤니티가 들끓어 올랐다. 하지만 백성철이나 백도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할 것이다.
‘일호와 흑태양파가 큰 공을 세웠군.’
그 뒤에 일호와 흑태양파가 있었다는 것을 말이다. 일호는 벌써 자가 학습을 통해 매크로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는 수준까지 이르렀고 포털사이트나 커뮤니티의 방화벽을 뚫을 수 있는 수준까지 이르렀다.
일호의 말로는 그 메커니즘이 마법 회로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했는데 상혁에게 별로 와닿지는 않았다.
‘이상하게 숫자만 보면 두드러기가 돋는 느낌이라.’
상혁도 현대 정보전을 좌우하는 0과 1의 세계에 관심을 가져 보지 않은 건 아니다. 하지만 수차례 시도해 본 결과 상혁에게 0과 1의 세계는 맞지 않았다.
노력하면 어떻게든 될 것 같았으나 그 시간에 마나를 쌓아 예전의 경지를 되찾는 것이 더 할 수 있는 것이 많다는 결론에 도달한 셈이다.
‘8서클 퍼펫 마법으로 최상위권의 해커를 조종하는 게 더 편하겠다.’
오죽하면 그런 생각이 들 정도였으니 말이다. 그리고 그게 훨씬 더 효율적이기도 했다.
어쨌거나 그 정도 수준에 도달한 일호와 한때 댓글부대로 시끌벅적한 국정원 출신인 흑태양파는 아주 큰 도움이 됐다.
김태양의 부하들 중에 그때 활동했던 이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많이 할 필요도 없다고 했지. 물꼬만 틀어 주면 사람들이 알아서 흐름을 만들고 그 안에 타기 시작한다고.’
댓글부대의 여론 공작의 매뉴얼은 아주 간단했다.
없는 여론을 만들어 호도하는 건 그들에게도 복잡한 사전 작업이 필요했으나 이번처럼 있는 사실을 수면 위로 끌어내어 여론을 조작하는 건 손바닥 뒤집기만큼 쉬운 일이라고 말이다.
게다가 상대는 일반인들이 딱 박탈감을 가지기 좋은 대기업 로열패밀리다.
인터넷에는 아주 작은 고깃덩어리 한 점만 던져 줘도 우르르 몰려들어 물어뜯는 피라냐들이 많았고 그 피라냐들은 상대가 재벌이건 연예인이건 정치인이건 가리지 않았다.
일단 우르르 몰려가 물고 보는 것이다.
그 때문에 흑태양파가 한 건 그 작은 고깃덩어리 하나를 피라냐가 사는 인터넷이란 공간에 던져 준 것뿐이다.
그다음은 그 피라냐들이 알아서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기며 다른 사람들의 관심을 저절로 끌어모았다는 것이다.
지금 상황을 만든 것이 바로 상혁인데, 백성철은 상혁을 불렀다.
‘용산 기지 건으로 이슈를 만들어 덮으려는 모양이군.’
한국전쟁의 상징이자 미군정의 상징이던 용산 기지를 SG그룹에서 낙찰받는다는 건 그 자체만으로도 현대사에 있어 상징적인 일이다.
무려 70년, 거의 80년 가까이 끌어오는 전쟁의 상징을 드디어 치유하는 듯한 제스처를 줄 수 있는 좋은 마케팅 요소였기 때문이다.
아마 백성철은 그걸 침소봉대하여 백도현의 부정적인 여론을 덮을 수 있을 정도로 키우려고 할 것이다.
“어서 가셔야 합니다.”
비서는 상혁이 선뜻 자리에서 일어서지 않자 상혁을 재촉했다. 상혁은 미적거리며 비서를 물끄러미 쳐다봤다.
“할 일이 있는데요?”
“예?”
“보시다시피, 제가 지금 회장님이 시키신 일을 하고 있는 중인지라.”
상혁은 일부러 한 번 튕겼다. 사실 상혁은 출근만 해 놓고 놀고 있었다. 다른 일은 최만금이 다 알아서 처리했기 때문이다.
“회장님의 부르시는데 안 가시겠다는 겁니까?”
“아니, 안 가겠다는 게 아닙니다. 하지만 지금 중요한 일이 있어서 자리를 비우기 어렵다는 겁니다.”
그게 그거인 소리다. 하지만 ‘아’ 다르고 ‘어’ 다르듯 비서는 교묘하게 말을 꼬아 놓는 상혁을 보며 답답함을 느꼈다.
“이거 보세요.”
척.
상혁은 비서가 뭐라고 더 말하기 전에 자신의 옆에 쌓인 서류를 손바닥으로 짚었다. 다른 일은 모르지만 주드 포터가 주최하는 오디션만큼은 상혁이 직접 처리해야 했다.
주드 포터와 만나기 위한 수단이었다고는 하나 자신의 한마디에 진짜로 판이 벌어졌기 때문에 발을 뺄 수가 없었던 것이다.
“내가 뭘 안다고 이런 서류를 보고 판단을 하겠습니까. 하지만 해야지요. 회장님이 제게 이사장을 맡으라고 하신 다음에 처음으로 하신 일인데요.”
상혁은 나도 정말 가고 싶지만 일이 너무 많고 어려워서 못 가겠다며 푸념을 늘어놓았다. 그러자 비서의 표정이 바뀌었다.
“제가 어떻게 도와드리면 되겠습니까?”
그러자 상혁이 활짝 웃었다.
“비서님이 도와주시면 감사하죠. 제가 연예계 쪽에는 무지해서 보는 눈이 없거든요. 그래서 그런데 혹시 아시는 연예인 있으십니까?”
비서는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 * *
“왔느냐?”
“예, 회장님.”
백성철은 상혁을 평온한 얼굴로 맞이했다. 얼굴만 본다면 아무 일이 없었다고 믿을 정도로 전혀 속내가 드러나지 않았다.
하지만 상혁은 백도현을 보고는 속으로 고소를 감추지 못했다.
백성철을 찾아와 도와달라고 비굴하게 빌고 있었던 듯, 옷매무새가 미묘하게 흐트러져 있었고 얼굴에 붉은 기가 돌았기 때문이다.
‘일주일.’
백도현은 일주일 내내 백성철을 찾았다. 그러고는 백성철에게 완전하게 굴종했다. 상혁은 그걸 이창엽을 통해 알아냈고 백도현의 기세가 완전히 꺾인 것을 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굴복시켰나.’
백성철은 아들이라고 해서 봐준다거나 하지 않았다. 집요하게 백도현을 굴복시킨 모양이다. 상혁은 백도현에게도 고개를 숙였습니다.
“저 왔습니다, 형님.”
“……그래. 오랜만이구나.”
백도현은 상혁을 향해 덤덤하게 인사했다. 그때 백성철이 자리를 내주었다.
“앉거라. 바쁜데 갑작스레 불러서 경황이 없을 것이고.”
비서가 상혁이 보인 모습을 일러바친 모양이었다. 그러나 상혁은 변명하는 대신 해맑게 웃어 주었다.
“예. 다행히 보내 주신 분이 도움을 주시기로 하셔서 일이 수월하게 풀릴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다행이고.”
백성철은 상혁을 탐색하듯 아래위로 훑었다. 하지만 이내 눈에서 흥미를 잃고는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리는 것이 느껴졌다.
상혁에 대한 의구심을 거둔 것이다.
‘구렁이 같은 노인네. 마지막의 마지막까지도 사람을 의심하는 버릇이 있군.’
백성철은 이 모든 일에 상혁이 연관되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의구심을 마지막까지 가지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를 기만한 상혁이 맞은편에 앉자 백성철이 곧바로 입을 열었다.
“상혁이 너. 그 사만다라는 처자랑 약혼을 올리는 게 어떠하냐?”
“예?”
상혁의 눈이 커졌다. 미처 예상치 못한 일격이 들어왔다.
* * *
“으음.”
사만다는 눈 사이를 문지르며 손에 들고 있던 이력서를 내려놓았다. 주드 포터가 한국대학교와 손을 잡고 개최한 오디션은 성황리에 예선이 끝났다.
채널 쪽에서도 한 곳이 붙어 이 모든 과정을 영상에 담았다. 한국 기획사가 아닌 사만다 허드를 보유한 주드 포터의 기획사가 제2의 사만다 허드를 찾는다는 목적으로 만들어진 오디션은 제작진에서도 흥행을 기대할 정도로 많은 이들이 몰려들었다.
할리우드 진출.
단순 충무로를 뛰어넘어 파급력으로도, 자금의 규모로도 한국을 아득하게 뛰어넘는 세계 무대로 진출할 수 있다는 기대감이 수많은 이들을 지원하게 만든 것이다.
그 심사위원 중 한 명으로 사만다도 직접 참가했다. 노느니 뭐라도 하는 게 낫다고 주드에게 졸라서 얻어 낸 위원 자리였다.
머리가 복잡하게 혼자 가만히 있느니 뭐라도 해서 조금 나았지만, 너무 피곤했다. 길게 끌 수 없는 오디션이기에 빠르게 진행하느라 휴식이 없이 거의 강행군 수준으로 진행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피곤하지?”
“아니요. 즐거운데요.”
그러나 연기에 대한 열정으로 가득 찬 이들을 마주하는 것은 사만다에게 있어서도 큰 힘이 되어 주고 있었다.
특히나 글레이저에게 죽을 뻔하고 난 뒤 앞으로 무엇을 하고 살아야 하나 고민에 빠진 사만다에게 그녀의 원래 꿈을 바로잡아 줄 수 있는 강한 동기가 된 것이 이번 오디션이었다.
사만다도 예전에는 그들처럼 그런 열정을 품고 있었으니까.
눈만 뜨면 연기를 생각하던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었다. 물론 그 전에 글레이저 가문과의 일이 정리되어야 하겠지만.
‘상혁 씨가 믿으라고 했으니까.’
사만다는 상혁을 믿었다. 그가 그러겠노라고 말을 한 다음 그것이 이뤄지지 않은 적은 없었다. 근래 글레이저의 걱정을 하지 않고 이리 편하게 지낸 적이 몇 분이나 있던가.
“가자.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고 쉬기도 해야지. 내일부터 또 달려야 하는데.”
시곗바늘이 10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창밖이 어두운 것을 보니 밤 10시였다. 사만다는 아침 9시에 이곳에 나왔다는 것을 깨닫고는 벌써 시간이 그렇게 되었다는 것에 놀랐다.
“피곤한 이유가 있었네요.”
사만다는 그 자리에 함께 있던 한국대학교의 예술학부 교수들과도 인사했다. 그들의 협조가 아니었다면 이렇게 원활하게 오디션이 착착 진행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런 교수들도 상혁이 보낸 것이라고 하니 상혁이 손을 대기만 하면 안 풀리는 일이 없구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런데 그때 주드가 사만다의 앞을 가로막았다. 땅을 보고 걷던 사만다가 놀라 주드를 쳐다봤다. 그때 주드의 어깨 너머로 수많은 카메라가 보인다는 것을 깨달은 사만다는 본능적으로 주드의 뒤로 숨었다.
촤라락!!
“사만다 허드 씨! 한국대학교 백상혁 이사장과 약혼한다는 설이 나돌던데 사실인가요?”
“대답해 주세요!!”
* * *
‘백도현의 허물을 내 약혼 이슈로 덮겠다는 뜻이군.’
상혁은 백성철의 셈을 단박에 눈치챘다. 하지만 상혁은 모른 척을 했다.
“약혼이요? 아직 그럴 사이는 아닌데…….”
“원래 로열패밀리 정도 되면 약혼이나 결혼도 정략적으로 써야 하는 법이지. 네 사촌 형이 곤경에 빠졌으니 가족으로 한번 도와주는 것이 어떠하냐?”
백성철은 상혁을 타이르듯 말했다. 그는 숫제 상혁을 애 다루듯 말하고 있었다. 한국대 이사장을 맡기면서 조커로 써먹겠다고 할 때는 어른으로 대하더니 이제는 또 애다.
‘일호. 사만다 쪽의 동향 체크해 봐. 기자들 보낸 것 같은데.’
상혁은 백성철이 이미 일을 저질렀을 수도 있겠다는 것을 눈치챘다. 그러니 타이르는 것이다. 그 정도면 그냥 넘어갈 수 있으리라 생각한 모양이었다.
“용산 낙찰 건에 내가 직접 나서기로 했고, 도현이도 도움을 주기로 하였으니 잠깐의 소나기만 피해 가자는 뜻이란다.”
잠깐의 소나기.
과연 그게 잠깐의 소나기일지는 두고 봐야 할 것이지만 상혁은 큰아버지의 기대를 꺾는 그런 불효자가 아니었다.
“정 그게 아니면 나중에 아니었다고 정정 보도를 내면 되는 일이다.”
“사만다 씨가 곤경에 처할 텐데요.”
“네 덕을 그 여자도 보았을 터이니 그 정도는 주고받는 셈이지. 모든 것은 비즈니스다 상혁아. 네가 SG에 들어온 이상은 모든 것이.”
상혁은 속으로 조소를 감췄다. 추악한 방법으로 지금의 권력과 부를 쌓았으면서 그게 무슨 대단한 일인 것마냥 구는 저 입을 찢어 버리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런 쉬운 길로 갈 수는 없지.’
그러나 그런 쉬운 결말은 백성철에게는 사치요 축복이다. 상혁은 거짓 웃음을 입가에 매달았다.
“하지만 회장님. 수지타산이 맞지 않는 것 같은데요.”
“원하는 것이 있느냐?”
상혁이 고개를 돌려 백도현을 쳐다봤다.
“회장님이 아니라 형님께 원하는 게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