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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 먹는 대마법사-145화 (144/249)

쓰레기 먹는 대마법사 145화

145. 차도살인지계(5)

안주영은 피 한 방울 안 섞였지만 자신을 친동생처럼 아껴 주고 궂은일을 마다하지 않는 남자, 김성원의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그렇게 말했다구요?”

“예.”

“이상하네요. 용왕의 제작자가 백상혁일지도 모른다는 건…… 하긴, 그자들의 말을 100퍼센트 신뢰할 수는 없는 법이겠죠.”

“그렇습니다.”

무명은 중립지대다. 그러나 그곳이 중립지대일 수 있는 이유는 각 국가의 이해관계가 상충하는 유일한 곳이 바로 무명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백상혁의 말을 국가안전부 쪽에 전해도 그쪽에서는 따로 움직이겠지요?”

“은밀하게 핵 실험을 진행하기 위해서는 용왕이 필수이니 그럴 겁니다.”

안주영의 입에서 나온 국가안전부는 이 세상에 단 한 곳밖에 없었다.

국가안전부, MSS.

중국의 국가정보원을 말하는 것이었다. 그렇다는 건 중국에서 안주영을 통해 상혁과 만나려고 했다는 것이다. 용왕의 제작자를 상혁으로 추정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걸 상혁이 알고 있었다.

“국정원이나 CIA에서 먼저 접촉한 게 아닐까요?”

그 정도면 국가권력 급의 정보력이다. 그러니 상혁이 중국에서 자신을 찾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면 국정원이나 CIA에서 먼저 상혁에게 접촉했을 가능성도 있다.

대한민국은 국정원의 안방이고 CIA야 언제나 중국의 MSS보다 한발 앞서 있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안주영은 턱을 괴었다. 그녀는 머릿속으로 백상혁이란 인물에 대한 등급을 높여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우리에 대해서는 어떻게 알았을까요?”

무명은 전 세계 퍼진 점조직이다. 무명은 권력에 기생하여 그들의 정보를 취급하고, 가교 역할을 맡아 공식적인 협상장이나 회담장에서 나눌 수 없는 이야기들을 전달하는 이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무명과 접촉하기 위해서는 최상류층 중에서도 다시 한번 더 검증하여 무명이 먼저 접촉한다.

“마이클 무어가 아니겠습니까?”

“CIA는 바보가 아니에요. 게다가 마이클 무어와 백상혁은 원래부터 아는 사이도 아니었잖아요. 그런데 우리를 알고 있었어요.”

상혁은 무명에 대해 알고 있었다. 김성원을 보고 마담에게 말을 전해 주라고 한 것 자체가 그 증거다.

“우리가 예상한 것 이상의 사람이에요.”

“며칠 전에 일어난 시스템 다운과 관련이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들어오는 모습은 봤지만 나가는 건 못 봤으니까요. 하필이면 그때 시스템이 다운이 되는 바람에.”

상혁의 마력이 일으킨 일이었지만 마력의 존재를 모르는 이상 전문가를 불러다가 봐도 그냥 시스템이 과부하를 일으킨 것으로밖에 설명할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상혁은 한 가지를 빠뜨렸다.

“마이클 무어와 만난 뒤 일어나는 것까지는 확인했죠. 그리고 인근 사거리에 백상혁이 탄 차가 찍힌 시각이 맞지 않아요. 약 10분 정도.”

무명 안에서의 기록은 끊겼다. 그때 시스템이 다운이 되면서 감시 카메라가 작동을 멈췄기 때문이다.

하지만 안주영은 인근 도로의 CCTV를 전부 뒤졌다. 그리고 무명으로부터 상혁의 차가 찍힌 도로의 거리를 계산하여 역산한 결과 시간이 빈다는 것을 알아챈 것이다.

10분.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

“설마, 만나셨다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김성원은 설마 하는 표정을 지으며 그녀를 쳐다봤다. 하지만 안주영은 표정 하나 변하지 않았다. 김성원의 설마가 사실이라는 뜻이다.

“왜요. 불가능한가요?”

“시스템을 다운시키고 저희를 만나고 갔는데 저희는 모른다는 겁니까?”

“……그렇겠죠.”

하지만 그 10분이 걸린다. 김성원의 말이 맞다는 걸 안주영은 머리로는 이해하고 있었다. 하지만 묘하게 거슬리는 이 느낌은 무엇이란 말인가.

“쓸데없는 생각이겠죠. 국가안전부에게 백상혁의 말을 전달해 주세요. 그 뒤부터 우리 무명은 이 일에 개입하지 않겠습니다.”

“마담.”

“내 육감이 그래요. 용왕의 제작자, 그게 백상혁이라면 접근해 친분을 다져 놓는 게 좋을 겁니다. 엄청난 이익을 공유할 수 있을 테니까. 하지만…….”

안주영은 눈을 데구루루 굴렸다.

“왠지 내가 모르는 무언가, 아주 위험한 사람일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 그러니 제 말대로 해 주세요.”

김성원은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육감이라는 말로 퉁 치고 있지만 안주영의 육감은 대부분 들어맞았었기 때문에 반박을 제시할 수도 없었다.

“예, 마담.”

* * *

“사장님, 기분이 좋아 보이십니다.”

“그래? 그래 보이나?”

백이현은 자신의 얼굴을 스윽 쓸어내렸다. 그러자 비서실장인 유원태의 말대로 백이현은 자신이 미소 짓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유 실장.”

“예, 사장님.”

“어쩌면 도현을 확실히 짓밟아 버릴 수 있을지도 모르겠어.”

“예?”

백이현이 어제 외유를 나갔다 들어왔다는 걸 유원태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형제간의 사적인 일정이기 때문에 일부러 따라 나가지 않았다.

그런데 경쟁자이자 동생인 백도현을 짓밟을 수 있을 것 같다니.

“상혁이가 복덩어리인 모양이야.”

백이현은 흐뭇하게 웃었다. 상혁과 손을 잡은 것이 이런 행운을 가져왔다고 그는 생각했다. 하지만 유원태의 표정에는 경계심이 서렸다.

그런 유원태에게 백이현이 어제 있었던 일을 설명했다.

“CIA가 접근했다는 말씀이십니까?”

“그래. 백도현은 윌리엄 글레이저와 대화 중이었고. CIA가 글레이저 가문을 경계하는 모양이야.”

“그래서 무엇을 얻으신 겁니까?”

유원태는 백이현에게 물었다. 그러자 백이현이 스윽 미소를 입가에 머물고는 유원태에게 말했다.

“생체 실험.”

“그게…….”

“미국에서 비밀리에 진행하려던 생체 실험에 도현이가 한 손을 보탠 모양이야. 실험 책임자로. 도현이의 이름과 글레이저의 이름이 적힌 자료를 확보했지.”

백이현은 빙긋 웃었다.

“국민을 상대로 생체 실험이라니. 그런 끔찍한 일을 저지른 도현이가 과연 SG그룹의 회장을 이어받을 자격이 있을까?”

“사장님. 설마 터뜨리실 생각이십니까?”

유원태의 머릿속에 경종이 울렸다. 얼핏 듣기에는 백이현이 백도현을 경쟁에서 이길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인 것처럼 들렸으나 그 의도가 불순했다.

“CIA에서는 왜 직접 그 자료를 사용하지 않는다는 겁니까?”

“유 실장, 감이 많이 죽었어.”

백이현은 혀를 끌끌 찼다. 자신의 옆에서 너무 오래 한국에만 있었더니 국제 정세에 대한 감각이 죽었다며 그를 타박했다.

“CIA라고 해서 글레이저 가문의 영향력에서 자유로울까?”

“파벌 말씀이시군요.”

“그래. CIA의 주요 간부는 대표적인 글레이저 가문의 사람들이지. 그러니 그 내부에서 이 자료를 들고나와 봤자 아무런 소용이 없지.”

백이현은 밖에서 따사롭게 자신의 얼굴을 비추는 햇빛을 만끽했다. 마치 자신의 앞날을 알려 주는 것처럼 눈부시기 그지없는 햇빛이었다.

“절호의 기회야.”

“하지만…….”

“유 실장은 뭐가 걸리는 모양이야.”

백이현의 눈살이 찌푸려졌다. 큰일을 앞두고 자꾸만 유원태가 초를 치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러자 유원태가 허리를 바로 세웠다.

“아닙니다, 사장님.”

백이현은 독선적이다. 그는 자신의 말에 아랫사람이 태클을 거는 걸 좋아하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유원태도 수상했지만 더 이상 의문을 제기할 수 없었다.

“도현이와 윌리엄 글레이저가 만난 것도 이것 때문이겠지. 내 손에 들어온 걸 글레이저 가문에서 모를 리 없으니까.”

그래도 가장 오래 함께했다고 백이현은 유원태가 신경 쓰인 모양이다. 그가 부연 설명했다.

“도현이가 행크 모리조를 만났다고 하더군. 글레이저의 원수인 모리조 말이야. 만약 모리조의 손에 이 자료가 있다면 어떻게 될까?”

“아.”

유원태의 눈이 커졌다. 백이현은 더 설명 안 해도 유원태가 알아들은 표정이자 낄낄거리면서 웃었다.

“바로 그거야. 최근 도현이의 실패를 되짚어 보니 알겠더군. 도현이는 글레이저의 손을 잡았다가 실패한 뒤 손절한 거야. 하지만 윌리엄이 도현이의 바짓자락을 붙잡았고.”

승승장구를 달리던 백도현이 최근에 겪은 실패는 한둘이 아니다. 그 이유를 제대로 알지 못했는데 글레이저가 연루된 엘릭서 프로젝트를 빈칸에 끼워 넣는다면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었다.

“그러니까 결국 회장님도 내 손을 들어 주실 수밖에 없을 것이고.”

백이현이 거대한 SG그룹 본사가 가까워져 오는 것을 느끼며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 * *

“하지만 백성철 회장은 그걸 덮을 겁니다.”

“예? 자칫하다가는 미국발 스캔들에 휘말리는 순간 SG그룹에도 큰 타격이지 않습니까.”

SG그룹 전체의 의지가 아니라 백도현 개인의 일탈이라고 해도 그가 로열패밀리인 이상 생체 실험에 가담했다는 사실이 알려진다면 SG그룹은 거대한 타격을 입을 것이다.

하지만 이선호의 의구심 섞인 표정에도 불구하고 상혁은 확신했다.

“백성철 회장도 인간이니까요.”

“인간이요?”

“예. 늙고 싶지 않고, 죽고 싶지 않은 그런 욕망을 가진 보통의 인간.”

이선호의 눈이 커졌다. 상혁이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 알아들은 것이다. 상혁은 그런 이선호를 향해 히죽 웃었다.

“엘릭서 프로젝트에 대해 백성철 회장이 감을 잡는 순간 욕심이 생길 겁니다.”

엘릭서 프로젝트라는 허무맹랑한 이 프로젝트가 입안이 되고, 막대한 자금을 들여 원탁을 통해 은밀하게 진행된 것도 그 욕심 때문이다.

진시황이 가졌고 이 세상 모든 위정자들이 품었던 욕심.

손에 든 것을 놓고 싶지 않은 것.

그러기 위해서는 아프지 않게 오래오래 살 수 있는 무병장수, 혹은 불로불사를 원했으니 그 엘릭서 프로젝트가 실제로 진행이 된 것이다.

그건 백성철 회장 역시 마찬가지다.

영생(永生)에 대한 욕심은 백성철 회장으로 하여금 백이현에게 제동을 걸게끔 할 것이다.

“만약 그렇게 되면 백이현의 배신감이 얼마나 클까요?”

이선호의 눈이 커졌다. 그러고는 무섭다는 눈으로 상혁을 쳐다봤다. 상혁은 부자 관계가 깨지도록 판을 짜 놓았기 때문이다.

“우리 큰형님이 너무 상처받지 마셔야 할 텐데.”

상혁이 어깨를 들썩이면서 키득댔다.

* * *

“회장님…… 아니, 아버지!”

백성철은 싸늘한 눈으로 자신에게 대드는 백이현을 쳐다봤다. 하지만 백이현도 눈에 뵈는 것이 없었다. 백성철의 반응이 자신이 예상한 것의 정반대였기 때문이다.

“이건 통보이자 명령이다. 그걸 이용할 생각은 버려라.”

“하지만 생체 실험입니다! 도현이가 무고한 국민을 상대로 인체 실험을 했다는 겁니다!”

“그래서.”

백성철의 눈에 뼈가 시릴 정도의 한기가 깃들었다.

“너는 도현이와 다르다고 말하고 싶은 게냐?”

“아버지! 저는 도현이처럼 외세의 손을 잡고 외세의 개가 되어 국민을 수술장에 강제로 들여보내지 않았습니다! 거기에 도현이는 실패하기까지 했고요!”

실패를 안 했다면 모를까 백도현은 실패했다. 그리고 이런 증거까지 남겼다. 하려면 들키지 않고 깔끔하게 해서 성공하든가, 모든 것이 낙제점이었다.

그런데 백성철은 백이현이 아니라 백도현이 손을 들어 주었다. 백이현은 그게 이해가 가지 않았다.

“용산 SG파크 붕괴. 그 사건으로 인해 생목숨이 서른 명이나 생매장당했지. 그건 네 책임이 아니었더냐? 그때가 기억이 나지 않은 모양이구나. 한 번만 살려 달라고 해서 내가 막았지.”

“아버지!”

“여긴 회사다. 난 회장이고.”

백성철의 눈빛이 더욱더 서늘해졌다. 그가 과거 이야기까지 꺼내 들자 백이현은 입술을 깨물었다. 피가 턱을 타고 흐르는 것이 느껴졌다.

“넌 회사를 아낄 줄을 모르는구나. 회사가 중요한 것이다. 그런데 공개하면 회사에 큰 손해를 안길 이걸 공개를 하겠다고? 그렇게 해서 오르는 왕좌가 무슨 의미가 있다는 말이냐.”

백성철은 백이현의 경솔함을 탓했다. 자신의 경쟁자를 이길 수 있다는 확신 이전에 회사에 손해가 가는지 안 가는지를 먼저 감안했어야 한다.

백이현은 주먹을 부르르 떨었다.

“정녕 이렇게 나오실 겁니까?”

“이렇게 나오면. 네가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이냐? 네 그 알량한 사장직이 영원히 네 것일 줄 아느냐?”

백성철의 눈에 노기가 깃들기 시작했다. 감히 아들이 아버지인 자신에게 이빨을 드러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직 백성철의 권력의 서슬이 시퍼런데도 말이다.

“여기까지다. 선을 넘지 마라. 이번 건은 도현이네 반도체 공장을 SG건설에서 전적으로 책임지고 지어 주는 것으로 해결하라고 시키마.”

“…….”

휙.

백이현은 대답 없이 등을 돌렸다. 백성철은 그런 아들을 향해 마뜩잖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이내 신경을 끊었다.

지금은 토라진 큰아들이 문제가 아니었다.

“엘릭서 프로젝트. 이게 진짜로 가능한 일이란 말인가? 그렇다면.”

백성철의 두 눈이 추악한 욕망으로 번들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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