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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 먹는 대마법사-144화 (143/249)

쓰레기 먹는 대마법사 144화

144. 차도살인지계(4)

행크 모리조의 전방위적인 압박.

“건방지게 감히 직계인 나를!”

행크 모리조는 모리조 가문의 직계가 아니다. 역사가 깊은 가문일수록 직계와 방계의 구분이 엄격하기 마련이라 원래라면 행크 정도의 방계와는 얼굴조차도 마주하지 않는 것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윌리엄은 분노를 가라앉혔다. 지금은 분노로 뜨거워진 머리보다는 차갑게 식힌 심장이 더 중요했다.

“모리조 가문이 엘릭서 프로젝트를 방해했다.”

행크 모리조의 손에 들어간 증거물이 그것을 뜻했다. 물론 글레이저 가문이 미처 모르는 어떤 암중 세력이 모리조 가문과 손을 잡았을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방계인 행크 모리조가 이번 기회를 절대로 놓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었다.

이건 총칼 없는 전쟁이다.

그리고 그 전쟁에서 전공을 세우면 방계라고 할지라도 가문의 요직에 들어갈 수 있었다. 행크 모리조는 그런 야심이 있는 인물이었다.

“어쩌다 이 윌리엄 글레이저가…….”

윌리엄은 이를 으득 깨물었다. 걸려도 된통 걸렸다. 이럴 줄 알았다면 한국에 직접 들어오지 않았을 것이다. 한국에 직접 들어온 탓에 윌리엄은 행크의 그물에 걸렸다.

이미 사만다 허드와 백상혁에 대한 건 우선순위에서 뒤로 밀렸다. 그때 윌리엄의 전화가 울렸다.

“아버지.”

프랭크 글레이저.

글레이저 가문의 당대 가주이자 차기 대선주자로 레이스를 달리고 있는 그가 직접 전화를 건 것이다.

그에게도 모리조 가문에 대한 소식이 들어갔으리라.

[고생이 많구나.]

“아닙니다. 모리조 가문의 움직임을 조금만 일찍 알아챘더라면…….”

그러면 이렇게 당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거기에는 엘릭서 프로젝트의 향방을 알아내기 위해 한국에 투입했던 더블아이가 모종의 이유로 전력에 구멍이 뚫린 것의 영향이 컸다.

‘또 대한민국인가.’

더블아이는 혹독한 고문에도 절대로 자백할 이들이 아니었다. 글레이저 가문에 대해서 누구보다도 잘 알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 모두가 직접 경찰에 자수했다.

이전에도 불가해한 일이 대한민국에서 벌어졌었는데, 또 대한민국이라니.

“모리조 가문이 확보한 서류는 엘릭서 프로젝트가 맞습니다. 그중 저희 가문의 이름만 노출된 상태입니다.”

[이곳은 조용하다.]

“예?”

[본토에서는 모르게 그 행크라는 놈이 움직였다는 뜻이다. 모리조 가문도 상황을 파악 중이고.]

행크 모리조가 움직이고 있는데 모리조 가문에서는 상황을 파악 중이다? 그걸 들은 순간 윌리엄의 눈이 커졌다.

“정녕 저희가 모르는 어떤 세력이 개입한 것입니까?”

[아마도. 그러나 확실한 건 없다. 그러니 알아내라.]

“예. 그리하겠습니다.”

[모리조에서 조만간 연락이 올 것이다. 바라는 것이 있겠지.]

지금은 모리조가 약간의 우위를 점하고 있지만 글레이저는 글레이저다. 그렇기에 모리조도 전면전을 원하지 않을 것이다.

아마 적당한 선에서 휴전하려고 할 것이다. 그때 글레이저는 모리조가 유리한 만큼 합당한 대가를 내주어야 할 것이다.

그러니 윌리엄이 할 일은 자명했다.

[SG의 백도현을 이용하거라.]

“예, 아버지.”

[믿으마.]

달칵.

프랭크는 지금 이 일에 대선 정국인 미국 내에서 큰 이슈로 번지기를 바라지 않았다. 미국 대통령에 앉지 않아도 막대한 권력을 휘두를 수 있지만 중임제까지 포함하여 8년간 최강대국의 원수가 된다는 건 더 큰 이익을 불러올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모리조 가문의 입을 다물게 만들어야 한다.

윌리엄은 만약 자신이 이번 일을 제대로 마무리 짓지 않으면 아버지의 신뢰를 잃을 것을 두려워했다.

전화가 끊겼다. 윌리엄은 입술을 물어뜯으며 초조한 기색을 드러냈다가 이를 악물었다.

“백도현.”

이미 갈라선 백도현과 윌리엄이다. 엘릭서 프로젝트가 전소된 이후 백도현의 반도체 공장에도 화재가 일어났다고 한다.

글레이저 가문은 그런 백도현에게 책임을 돌리며 그와 한 약속을 저버렸다. 그러나 백도현의 쓸모가 뒤늦게 생겨 버렸다.

“백도현한테 만나자고 해.”

비서가 고개를 꾸벅 숙였다.

* * *

“윌리엄 글레이저의 소재를 파악했습니다.”

“마이클 무어가 빠르게 움직였군.”

상혁은 백도현과 윌리엄 글레이저가 서로 머리채를 쥐어뜯으면서 개싸움을 벌이는 것을 구경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 전에 윌리엄 글레이저의 소재를 파악하는 것이 우선이다.

마이클 무어는 협력의 증표로 윌리엄 글레이저의 소재지를 파악해 주었고 일호가 방금 그것을 확인했다.

“윌리엄 글레이저와 백도현이 움직이고 있습니다.”

패밀리어 마법을 일호와 연결해 주었다. 본래 패밀리어 마법은 마법사와 마력으로 연결되어 있어 패밀리어가 죽으면 큰 타격이 마법사에게 전해졌지만 일호와 연결해 주면 문제없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상혁 정도의 마력 제어술이 필요했지만 말이다.

어쨌거나 그 덕분에 일호는 생체 감시 카메라를 언제든 운용할 수 있었다.

새.

서울에 흔히 보이는 비둘기와 참새가 일호의 눈이 되어 주고 있었다. 그리고 일호는 그 눈으로 백도현과 윌리엄을 감시했다.

“만났습니다.”

윌리엄과 백도현은 금방 자리를 마련했다. 그만큼 둘 다 급박하다는 뜻이다. 특히 윌리엄이 급박해 백도현을 자극했을 가능성이 높았다.

“어때?”

“백도현은 격분한 기색이 역력합니다. 밖에서 대충 인사만 하고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어디로?”

“무명입니다.”

상혁이 묘한 표정을 지었다. 하필이면 무명이라니. 안주영은 아마 상혁을 만나 기억도 하지 못하고 있을 것이다.

그녀뿐만이 아니라 그날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이들이 상혁을 본 것을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상혁은 일어나 거울 속 자신을 쳐다봤다.

스윽.

상혁이 손을 올려 얼굴을 가렸다. 웃음을 감추기가 힘들었다. 그렇게 웃은 뒤 상혁은 손을 내리며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형님?”

백이현이었다.

* * *

이 세상에서 가장 재밌는 것은 바로 불구경과 싸움 구경이다.

그중에서도 싸움 구경은 두 명이 아니라 세 명, 네 명 더 많은 이들이 싸울수록 더 재밌는 법이다. 그래서 상혁은 윌리엄과 백도현을 싸움 붙이는 걸로 만족할 생각이 없었다.

백도현과 윌리엄이 만나는 그곳에 백이현을 들여보낼 생각이었다.

호탕한 척하지만 누구보다도 영악한 백이현이 백도현을 본다면?

‘퍽 재밌겠지.’

“도착했습니다.”

“밖에서 대기해.”

“예.”

오승택이 고개를 꾸벅 숙였다. 상혁이 내리자 때마침 백이현이 탄 차가 도착했다. 백이현은 차에서 내리면서 짐짓 호탕하게 웃었다.

“무명이라니. 괜찮은 곳이지.”

백이현은 상혁에게 황제파를 보낸 걸 기억하지 못하는 것처럼 친근하게 굴었다. 역시 능구렁이 같은 양반이었다. 상혁은 짐짓 모른 체 활짝 웃어 보였다.

“오셨습니까.”

“어서 들어가자꾸나.”

백이현은 상혁을 앞장서서 이끌었다. 그러나 상혁은 그의 모든 신경이 자신에게로 쏠려 있다는 것을 눈치챘다.

백이현은 상혁을 경계하고 있었다. 상혁과 한 번 충돌한 뒤 상혁의 저력이 만만치 않았기에, 자신을 불러낸 이유에 대해 열심히 머리를 굴리고 있었다.

그때 상혁이 짐짓 몰랐다는 듯 말했다.

“어? 도현 형님 아닙니까?”

“뭐?”

저쪽에서는 이쪽을 발견하지 못했다. 그 때문에 상혁이 가리킨 곳을 바라본 백이현은 순간 눈이 팽그르르 돌았다.

‘머리 굴리는 게 훤히 보인다 보여.’

백이현은 상혁의 어깨를 붙잡았다. 그러고는 그들의 눈에 띄지 않는 곳에 조용히 엉덩이를 붙이고 앉았다.

“인사하러 가시지 않습니까?”

“나중에.”

“예.”

상혁은 속으로 빙글거리며 웃었지만 겉으로는 고개를 갸웃하며 앉았다. 하지만 이미 백이현의 머릿속에 상혁은 안중에도 없었다.

‘윌리엄 글레이저.’

백도현이 마주 보고 앉은 이가 윌리엄 글레이저라는 것을 알아봤기 때문이다. 백이현이 윌리엄을 알아보지 못할 리 없다. 미국을 좌지우지하는 정치가문의 장남을 못 알아보면 SG그룹 장남의 자격이 없다.

‘둘이서 밀회를 한다? 무명에서 은밀하게?’

백이현은 곧바로 냄새를 맡았다. 무언가 있었다. 그때 상혁이 슬그머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잠시 화장실 좀 다녀오겠습니다.”

“그래.”

백이현은 대충 손을 내저었다. 상혁은 화장실을 가는 척 화장실 안으로 들어가서는 얼굴 위로 손을 슥 올렸다.

마력이 실린 손이다. 그 마력이 상혁의 얼굴에 투과되면서 상혁의 얼굴이 바뀌었다. 그리고 상혁이 손을 내렸을 때 상혁은 마이클 무어가 되었다.

상혁은 자신의 기척을 죽였다. 마법으로 주변에 인지장애를 걸었다. 그리고 손가락을 튕겨 안쪽에서 감시하고 있는 카메라를 마비시켰다.

그렇게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게 만든 뒤 상혁은 자리로 돌아왔다. 그러고는 자연스럽게 백이현의 앞에 앉았다.

그 순간 백이현이 흠칫하고 놀랐다. 상혁이 아니라 웬 외국인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마이클 무어, CIA입니다. 윌리엄 글레이저와 백도현이 나누고 있는 이야기…….”

상혁은 마이클의 흉내를 내면서 손에 들고 있던 종이 한 장과 USB를 죽 밀었다. 백이현이 무언가를 말하려고 했지만 상혁은 허락하지 않았다.

이것이 상혁이 준비한 옥타곤의 마지막 조각이었다.

“이 안에 모두 있습니다. 이건 사본, 이건 원본.”

이 안에 든 것은 엘릭서 프로젝트, 그중에서도 짝퉁 엘릭서의 제조법과 그간 그들이 임상실험을 진행해 온 결과물들의 일부가 담긴 파일이다.

상혁은 비단 백이현뿐만 아니라 더 큰 그 너머를 바라보고 있었다.

‘누구든 오래 살고 싶어 하지. 돈이 많고, 권력이 많을수록.’

상혁은 백이현과 닮은 누군가를 떠올렸다. 상혁의 머릿속에 있는 백 씨들은 모두가 다 상혁의 복수의 대상이었다.

상혁은 이것이 그 복수에 점화하는 순간임을 깨닫고는 속으로 환하게 웃었다.

살기 가득하게.

“그럼.”

상혁은 할 말만을 한 채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여기서 더 시간을 끌어 봤자 백이현에게 의심의 단초를 줄 뿐이다.

상혁은 곧바로 코너를 돌자마자 다시 상혁으로 돌아와서는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그건 백이현이 생각을 채 정리하거나 눈앞의 증거라 부른 것들을 수습할 시간도 없는 짧디짧은 시간이었다.

“어, 형님. 그게 뭡니까?”

상혁이 나타나자 백이현은 다급히 그걸 챙겨서 품에 넣었다. 이로 인해 백이현은 믿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상혁의 이른 등장으로 인해 의심할 시간을 빼앗겼기 때문이다.

“아무것도 아니다. 상혁아. 지금 급한 일이 생겨 일어나야겠다. 회사 일이야.”

“아, 그러십니까? 아쉽군요. 어쩔 수 없지요.”

“미안하다.”

백이현은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가 눈으로 본 것과 손에 들린 이 자료면 충분하다. 자리에서 일어나는 백이현의 눈에는 묘한 승리감이 비쳤다.

백도현.

백이현의 강력한 경쟁자인 그를 도모할 수 있을지도 모르는 무언가가 자신의 손에 들어왔다는 것을 직감했기 때문이다.

상혁은 그가 급히 자리를 뜨는 것을 보면서 히죽 웃었다. 그는 아마 꿈에도 모를 것이다. 이것이 상혁이 넓게 뿌려 놓은 그물이란 것을.

그 안에 백이현과 백도현, 그리고 백성철까지 낚이기를 상혁은 바랐다.

그때 누군가 다가왔다. 상혁은 그게 퍽이나 익숙한 기척이었기 때문에 속으로 피식 웃었다.

“백상혁 님.”

며칠 전 상혁을 안주영에게 안내해 주었던 남자다. 상혁은 그를 힐끗 쳐다보았다.

“뵙고자 하는 분이 계십니다. 움직일 수 없으시어 무례를 용서해 달라 하셨습니다.”

레퍼토리까지 비슷했다. 기억이 지워졌다고는 하나 비슷한 레퍼토리로 말하는 남자를 보는 건 감회가 제법 새로웠다.

상혁은 희미하게 웃었다. 그러고는 그 남자에게 말했다.

“갈 생각 없습니다.”

“예?”

“관심 없습니다. 무명의 마담에게는.”

남자의 표정이 굳었다. 상혁은 꼭 그게 누구인지 아는 투로 말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상혁은 그것만 아는 것이 아니었다.

안주영은 상혁의 마법에 걸려 모든 비밀을 말해 주었다.

“날 찾아왔던 사람들에게도 말했지만, 용왕은 내가 만든 게 아닙니다. 그렇게 전하세요.”

상혁이 빙글거리며 남자에게 말했다. 남자는 상혁을 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상혁이 무언가를 알고 있다는 기세를 풍겼기에 그의 식견으로 재단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안주영에게도 슬쩍 혼란의 씨앗을 남긴 상혁이 빙긋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모든 것이 상혁의 손바닥 위에 올라와 있었다.

이제 정말 팝콘이나 먹으면서 구경을 할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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