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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 먹는 대마법사-143화 (142/249)

쓰레기 먹는 대마법사 143화

143. 차도살인지계(3)

안주영.

곱게 늙은 태가 나는 중년 여인이 기품이 묻어 나오는 자태로 상혁에게 인사를 꾸벅했다. 그녀를 보고 상혁의 머릿속에 떠오른 건 하나였다.

‘여왕인가.’

중년 여인의 주변으로는 휠체어를 탄 그녀를 상시 수행하는 이들이 여럿 있었다, 그들이 꼭 여왕을 수행하는 몸종 같았다. 하지만 이내 상혁은 피식 웃었다.

“두 번째 무례인 것 같네요.”

“예?”

상혁의 말에 중년 여인이 되물었다. 하지만 상혁은 그녀를 쳐다보지 않았다. 대신 중년 여인을 수행하기 위해 서 있는 이들 중 맨 구석에 서 있는 자그만 체구의 소녀를 쳐다봤다.

“세 번째 무례는 참을 생각이 없습니다만.”

“…….”

안주영은 기품이 묻어 나오는 중년 여인이 아니었다. 딱 보기에도 이십 대가 되지 않은, 여인이라기보다는 소녀에 가까운 여자가 바로 안주영이었다.

‘간단하지.’

상혁이 그걸 알아낸 건 간단했다. 상혁이 벽 뒤에 설치된 카메라에 심어 놓았던 마력의 파편이 가장 구석에 있는 소녀의 몸에서 느껴졌기 때문이다.

‘최상류층의 정보를 모아 놓는 곳의 권한이 아무에게나 있을 리 없고.’

그러니 저 소녀가 안주영이다. 상혁이 진짜 안주영을 쳐다본 채 꿈쩍도 하지 않자 무리의 가장 맨 끝에 있던 소녀가 어쩔 수 없다는 표정을 짓더니 중년 여인이 앉아 있는 곳으로 걸어왔다.

‘그리고 애초에 처음부터.’

그러자 중년 여인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상혁은 피식 웃었다. 중년 여인이 휠체어를 탄 것 자체가 기믹이었다. 그걸 한눈에 알아봤기 때문에 이중의 속임수가 깔려 있음을 눈치챌 수 있었던 것이다.

“안녕하세요. 안주영이라고 합니다.”

안주영은 상혁보다도 어려 보이는 10대 후반 정도의 외모다. 하지만 상혁은 그게 그냥 겉모습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서른 살은 넘었겠군.’

지나치게 어려 보이는 동안과 이목구비가 그런 분위기를 풍기는 것일 뿐, 안주영의 눈이 내포한 세월은 삼십 년 이상이다.

상혁은 고개를 꾸벅 숙였다.

“백상혁입니다.”

“놀라지 않으시네요.”

안주영은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무명의 마담이란 건 곧 이곳의 주인이라는 뜻이다. 대개 많은 이들은 마담이라고 하면 처음 상혁을 맞이했던 중년 여인 같은 이를 떠올리곤 했다.

“충분히 제 나이 같으십니다.”

“호, 호호호.”

안주영이 순간 어색하게 웃었지만 상혁은 웃지 않았다. 안주영은 상혁을 보며 신선함을 느꼈다. SG의 새로 등장한 로열패밀리라고는 하나 상혁의 나이대에 저런 침착함을 보이는 이는 거의 없다.

‘한 방 먹었네.’

거기에 한 방 먹기까지. 안주영은 자신이 어려 보인다는 걸 지금까지 무기로 사용해 왔다. 하지만 상혁에게는 그런 게 통하지 않음을 직감했다.

‘세 번.’

상혁은 세 번의 무례는 참지 않는다고 했다. 안주영은 조심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순간 상혁이 혈기 왕성한 스무 살이 아니라 백전노장처럼 여겨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벽 뒤의 감시 카메라라. 드나드는 사람들은 알고 있습니까?”

상혁이 불쑥 선빵을 먼저 날렸다. 안주영의 평정심을 무너뜨리겠다는 뜻이다. 그리고 안주영은 상혁이 그걸 알고 있다는 것에 놀랐다.

하지만 여기서는 놀랐다는 걸 보여 주는 게 능사가 아니다. 안주영은 재빨리 표정을 감추고 말을 돌렸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뭐. 걸려들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인정하는 게 더 이상한 일이니까. 그나저나 절 왜 만나자고 하신 겁니까?”

상혁은 빙글거리며 웃었다. 상혁의 웃음을 본 순간 안주영은 묘한 패배감을 느꼈다. 줄곧 상혁의 손에 휘둘리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백상혁 님이 궁금했습니다. 사실 저희 같은 부류에 갑자기 새로운 사람이 나타나는 건 그리 자주 있는 일이 아닌지라. 좋은 인연이 될 수 있으리라 생각했고요.”

안주영은 어려 보이지만 어리지 않았다. 그녀는 무명의 마담으로 구렁이를 백 마리쯤 숨긴 이들을 상대해 왔다.

“좋은 인연이라.”

상혁은 안주영을 힐끗 쳐다봤다. 그 순간 안주영은 상혁과 눈을 마주치면 안 될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그건 일종의 육감이었다.

스윽.

그래서 안주영은 상혁의 눈을 피했다. 상혁은 자신의 눈을 피하는 안주영을 보면서 빙긋 웃었다.

‘감이 좋군.’

마법사인 상혁과 눈을 마주한다는 건 언제든 정신 마법에 걸릴 수 있다는 뜻이다. 그렇기에 가나안에서는 그 누구도 상혁과 눈을 마주치려고 하지 않았다.

거의 모든 마법이 능통한 상혁은 당대 최고의 마법사였기에 그 누구도 자신의 속내를 드러내고 싶어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SG그룹에 관심이 많으신 모양입니다.”

그 말을 들은 순간 안주영은 뒷골이 뻣뻣해져 오는 것을 느꼈다. 안주영은 굳은 얼굴의 근육을 애써 풀면서 웃었다.

“예?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저와의 인연이라. 저를 통해 마담이 얻을 수 있는 건 SG니까요. 보아하니 내가 어리고 고아로 살아왔다는 걸 알았을 테니 이용하기 쉽겠다고 느꼈을 것이고…….”

안주영은 얼음물을 뒤집어쓴 것처럼 서늘함을 느꼈다. 안주영은 바짝 긴장하기 시작했다. 팔의 솜털까지 바짝 긴장해 일어서기 시작했다.

‘실수다.’

어리고 아무것도 모를 것이라 생각해 접근한 백상혁이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 아무것도 모른 건 바로 자신이었다.

상혁은 새끼 사자가 아니었다.

이미 다 큰, 왕좌를 노릴 준비가 되어 있는 사자였다. 안주영은 그것을 깨달았다. 그걸 알지 못하고 상혁에게 섣불리 접근한 것 자체가 실수다.

언제든 목을 물려도 이상하지 않을 거리까지 사자가 눈앞에서 어슬렁거리게 놔둔 셈이기 때문이다.

주륵.

안주영의 관자놀이에 식은땀이 맺혔다. 상대는 낙하산이라고 해도 SG의 로열패밀리다. 자기 같은 마담은 언제든 날려 버릴 수 있는 힘이 있었다.

‘말을 잘해야 한다.’

안주영의 눈에 초조함이 서렸다.

“그렇지 않습니다. 제가 어떻게 그런 불미스러운 생각을 하겠습니까. 아직 회장님이 건재하신데요.”

“그래요? 그럼 다행이고. 그게 아니면 저와 친해져서 뭘 어쩌시려고요?”

상혁은 빙글거리며 어깨를 으쓱했다. 믿을 수는 없지만 한 번 그냥 넘어가겠다는 뜻이었다. 안주영은 상혁을 보며 이를 잘근 깨물었다.

‘득보다 실이 더 많겠군.’

오늘의 만남은 안주영에게 득보다 실이 많을 것 같았다. 이미 상혁에게 명분을 잃었기 때문이다. 안주영은 상혁에게 말했다.

“용왕을 저희에게 팔아 주십시오.”

“용왕?”

상혁은 고개를 갸웃했다. 용왕이라 하면 신화 속에 나오는 용들의 왕을 뜻하는 것이다. 아이들을 위한 우화 속에도 토끼와 거북이 같은 곳에 등장하는 것이 바로 용왕이다.

“무슨 말씀이신지 모르겠습니다.”

상혁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용왕이란 걸 상혁은 만든 적이 없다. 그러자 안주영이 조심스럽게 상혁에게 물었다.

“백정연 대표가 러시아 정부에 판매한 용왕에 대해서 모르십니까?”

백정연과 러시아.

그게 나오는 순간 상혁의 머릿속에서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정화 아티팩트를 말하는 건가?’

그곳에서 상혁은 자신을 도와준 백정연의 호텔이 환경부 평가를 통과할 수 있도록 오염된 바닷물을 정화할 수 있는 정화 마도구를 만들어 건네주었다.

그리고 백정연이 쓰고 남은 그것을 자신이 처리하겠다고 하면서 러시아를 언급했다. 러시아가 그 당시 국제사회에서 연신 비난을 거듭하던 핵 방사능 오염에 관심이 많았었기 때문이다.

‘그걸 알았다고?’

상혁은 그 모든 것을 백정연을 앞에 내세웠다. 그런데 그걸 자신이 했다고 안주영은 어떻게 알아낸 것일까.

상혁의 눈이 날카로워지자 안주영은 서둘러 부연해 설명했다.

“러시아 정부는 러시아 인근 해역의 오염도가 급격하게 떨어진 것을 대대적으로 홍보했습니다. 체르노빌이나 러시아가 냉전 시대부터 진행해 온 여러 핵 실험에서 흘러나온 방사능 문제는 그렇게 쉽게 해결될 것이 아니었는데 말입니다.”

“…….”

“그래서 역순으로 짚어나간 결과 백정연 대표가 용왕을 러시아 정부에 판매했다는 것을 알아냈습니다. 그걸 누가 공급했는지를 짚어 나가다 보니…….”

“제가 나왔고요.”

“예.”

용왕.

용왕은 본래 바다를 다스리고 물을 다스리는 신적인 존재다. 상혁이 만들어 낸 정화 마도구는 과학으로 불가능한 일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용왕이란 이름을 붙인 것이다.

뭐 이름이야 상관없다만.

‘확신은 없다는 것이군.’

상혁에 대해 조사를 했을 것이다. 그 결과 상혁이 그런 정화 마도구를 만들어 낼 배후세력 따위는 없다는 것을 알아냈을 것이다.

그게 아니었다면 이미 적대적인 방식으로든 다른 방식으로든 어떻게든 움직임이 있었을 것이다. 그게 없으니 지금처럼 오히려 정상적인 방법으로 접근해 온 것이고.

“어딥니까?”

“예?”

“그 정보의 출처.”

상혁은 안주영이 그걸 직접 알아냈다고 믿지 않았다. 국가급 정보력이 없다면 그걸 알아내는 건 불가능이다. 고급 바를 운영하는 안주영은 예를 들면 일종의 중립지역이다.

안주영을 통해 이 고급 바를 기점으로 대한민국에서 활동하는 각 국가가 서로 도움이 되는 쪽으로 손을 잡고, 정보를 주고받을 것이다.

안주영도 결국 하수인이란 소리.

“아니.”

상혁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 순간 상혁의 눈이 새파랗게 물들었다. 동시에 안주영을 제외한 방 안의 모든 이들이 눈을 뜬 채로 그 자리에 석상이 된 것처럼 굳었다.

“대답하지 않아도 됩니다. 내가 알아내면 되니까.”

“그게…….”

안주영은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녀를 지키고 수행하는 모든 인원들이 선 채로 잠이 들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안주영은 더 이상 말을 하지 못했다.

보이지 않는 손이 마치 그녀의 전신을 붙잡은 것처럼, 안주영은 몸을 더 이상 움직일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 안주영의 눈에 새파란 안광을 흘리는 상혁이 다가와 손을 뻗어 그녀의 얼굴을 덮었다.

“주무십시오.”

화악!

안주영의 눈이 스르륵 감겼다.

상혁은 오승택을 제외한 모두를 잠들게 만들었다. 뒤에서 그걸 지켜보고 있던 오승택이 무언가 생각이라고 난 듯 어깨를 붙잡고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하지만 상혁은 오승택에게 신경 쓰지 않았다.

‘알아낼 것만 알아내고. 미안하지만 오늘은 우리가 안 만난 겁니다.’

상혁은 피식 웃었다. 마법을 쓴 이유는 간단했다. 자신에게 닿은 저들의 꼬리를 잘라내기 위함이다.

‘누군가의 사주를 받았으니까. 한 번 접점이 생기면 두 번, 세 번은 어렵지 않은 법이지.’

안주영과는 만나지 못한 상태로 두어야 한다. 상혁은 마력을 끌어 올리며 손가락을 안주영의 머리에 가져다 댔다.

인식장애 마법.

상혁의 마력은 간단히 안주영의 정신 방벽을 무너뜨렸다. 정신계 마법에 면역이 없는 지구인들은 정신계 마법을 견뎌 낼 힘이 없었다.

간단히 안주영이 인식하는 현실만 바꿔 주어도 안주영은 알아서 진실을 쏟아 낼 것이다.

초점이 사라진 안주영의 눈이 드러났다. 안주영의 눈앞에는 아마 그녀의 머릿속에서 만들어 낸 환상이 보일 것이다.

그건 과거다.

안주영에게 사주를 한 이와 만났던 과거의 시간.

상혁의 입꼬리가 스윽 올라갔다. 안주영의 입에서 전혀 의외의 이름이 나왔기 때문이다.

“큰형님이라.”

백이현.

안주영에게 사주를 한 것은 바로 백이현이었다.

* * *

상혁이 마이클에게 글레이저 가문의 약점을 전달해 주고, 마이클이 그것을 행크 모리조에게 전달한 다음 행크 모리조가 공격에 나섰을 무렵 상혁은 한 가지 선물을 더 준비했다.

“일영.”

“예, 마스터.”

“행크 모리조란 놈이 머무르고 있는 곳에 놔두고 오도록.”

상혁은 USB를 일영에게 건네주었다. 일영은 USB를 받은 뒤 임무를 완수하기 위해 곧바로 행동에 착수했다.

“아마 상상도 못 했을 겁니다.”

이선호는 상혁의 철두철미함에 혀를 내둘렀다. 상혁이 행크 모리조에게 전해 주라고 한 USB에 대해서 이선호는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글레이저 가문의 수족들이 제 입으로 자백을 할 것이라고는 말입니다. 거기에 CIA의 증언까지 있었죠?”

“그렇습니다.”

상혁은 씩 웃었다. 실종된 사만다를 찾고 연구소에서 사라진 장부를 찾겠다고 글레이저 가문의 사주를 받고 한국에 들어온 이들만 수십 명이 넘었다.

그리고 그들은 모조리 상혁의 시야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제 발로 경찰에 찾아가 자수를 했다.

그 전에 상혁은 그들의 자백을 친절히 하나씩 영상으로 만들어 남겨 놓았다.

이럴 때 쓰기 위해서.

“아마 곧 윌리엄 글레이저가 백도현을 끌어들일 겁니다.”

상혁은 히죽 웃었다.

“우린 팝콘이나 먹으면서 싸움 구경이나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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