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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 먹는 대마법사-141화 (140/249)

쓰레기 먹는 대마법사 141화

141. 차도살인지계(1)

달콤했다.

그리고 혹하기도 했다. 마이클은 그걸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눈앞의 매끈하게 생긴 동양인 청년은 마이클이 상상한 것 이상이었다.

‘괴물.’

나이보다도 더 어려 보이는 동양인이기 때문인지 상혁은 미국의 십 대와 비슷해 보였다. 하지만 상혁은 성인이다. 그것도 SG그룹이라는 거대한 제국의 황자쯤 된다.

그런 상혁이 하는 말이니 그냥 무시할 수도 없었다. 상혁이라면, 그리고 SG라면 능히 그럴 만한 능력이 있다는 걸 마이클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세간에 알려진 SG는 빙산의 일각이다.’

마이클은 미 정보국 소속이기 때문에 한국에 부임하면서 SG에 대한 조사를 게을리하지 않았다. 그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한반도에서 SG의 영향력은 이미 정부와 국회의 그것을 아득히 집어삼켰기 때문이다.

‘군림하되 지배하지는 않는다.’

마이클이 본 SG는 딱 그러했다. 그러나 SG가 방귀라도 뀌거나 헛기침을 하면 정부부터 국회까지 모두가 긴장했다.

‘그러니 저 어린 도련님에게도 무언가 비장의 한 수가 있겠지.’

그렇기에 마이클은 상혁에게도 한 수가 있을 것이라 믿었다. 그렇다면 상혁에게 능력은 있으니 이제 공은 마이클에게로 넘어온 셈이다.

“무엇을 원하십니까.”

상혁의 입가에 미소가 맺혔다. 여기까지 도달하는데 참 오래도 걸렸다. 마이클은 신중한 성격이기에 쉽사리 넘어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국 정부에 반환한 용산 미군기지. 거길 좀 들어가게 해 주시죠.”

“용산?”

* * *

“별문제 없을 겁니다.”

사만다는 아닌 척을 하고 있었지만 안색이 창백했고 주드는 안절부절못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그렇기 때문에 상혁의 말에 둘은 눈에 띄게 안도하는 표정을 지었다.

“모리조 가문이라고 해 봤자 한국에서는 미국인일 뿐이죠.”

사만다는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상혁이 나타나자 행크 모리조 때문에 놀랐던 것이 치유되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얼마나 불안했던지.

상혁이 오는 그 몇 시간 동안에도 사만다와 주드는 불안함을 감추지 못했다.

“하지만 모리조는 미국 대사까지 움직일 수 있습니다.”

“미국 대사요?”

“예. 주한 미국 대사와 함께 입국했다고 했습니다. 주한미군 방위비 관련 문제로 함께 들어왔다고 하던데…….”

“미 국방성과 외교부의 정책에도 관여하는 겁니까?”

“그렇습니다.”

확실히 일개 가문이 가진 힘이라고 보기에는 무리일 정도로 강력한 영향력이다. 전쟁을 통해 정치를 이끌어왔다는 모리조 가문다웠다.

“그래도 괜찮습니다. 아마 모리조와 글레이저는 당분간 두 분께 신경을 쓸 겨를이 없을 겁니다.”

“예?”

“사만다보다 더 먹음직스러운 먹이를 던져 줄 생각이거든요. 승냥이들이니 그걸 물어뜯자고 달려들 겁니다.”

주드는 하려던 말을 꿀꺽 삼켰다. 상혁이 하는 일에 초를 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글레이저와 모리조는 쉬운 가문이 아니다.

그 둘의 신경을 끌 수 있는 먹잇감이라니.

“저…… 상혁.”

그때 사만다가 조심스럽게 상혁을 불렀다.

“저, 그 구기동으로 돌아가도 될까요?”

“구기동이요?”

상혁은 주변을 슥 둘러봤다. 나우 호텔의 스위트룸은 웬만한 대저택과 비교해도 꿇리지 않는 시설을 자랑한다. 사만다라는 슈퍼스타가 머물기에 적합한 호텔인 것이다.

사만다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시설이 좋으면 뭐 해요. 마음이 불편한데. 허락해 주세요.”

사만다는 이 호텔에 있는 게 가시방석 같았다. 반면 상혁의 저택은 편했다. 그곳에서는 잠도 잘 잤고, 김경자가 해 주는 밥도 남기지 않고 싹싹 비웠다.

“주드도 함께요.”

“뭐. 방이 남으니 괜찮긴 하겠습니다만. 여기처럼 편하진 않습니다.”

“마음이 편한 게 더 좋아요.”

“그렇다면야.”

상혁은 어깨를 으쓱했다. 사만다의 불안감을 이해했다. 행크 모리조가 불쑥 나타났으니 글레이저 가문이 그렇게 나타나도 하등 이상하지 않았다.

공개 연애를 선언한 다음이라 그렇게 과격하게 움직이지는 않겠지만 사람의 마음이 그랬다.

누군가 튀어나올 것 같으면 자꾸 그게 신경 쓰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반면 상혁의 구기동 저택은 달랐다.

상혁이 중간중간 설치해 놓은 다양한 마법진과 일호, 일영의 존재로 인해 사실상 대한민국에서 그곳만큼 안전한 곳은 없었다.

그런 걸 차치하고서라도 그곳에선 마음이 편했다.

“예. 그러시죠.”

“고마워요, 상혁.”

굳이 이 궁궐 같은 곳을 놔두고 좁은 곳을 자처하다니. 하지만 사만다는 아이처럼 해맑게 웃었다.

* * *

“한미는 오랜 혈맹 관계입니다. 이런 일방적인 요구는…….”

“일방적이라니. 우방이기에 지금껏 한국의 무리한 요구를 들어주었는데…….”

별을 단 장군 둘이 격론을 펼쳤다. 비단 그 둘만 있는 것도 아니었다. 이번 회담을 위해 양측에서 회의에 참여한 인원만 스무 명이 넘었다.

그 정도로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한미 방위비 협정.

6.25 전쟁 이후 미국은 공산주의의 동진을 막고 자유민주주의를 위한 최후의 방벽으로 대한민국을 낙점했다.

소련과 함께 38선을 그은 후 미국은 한국과 동맹을 맺고 그 동맹국을 지킨다는 목적으로 한국에 주한미군을 주둔시켰다.

그게 벌써 60년.

그동안 한국이 눈부신 성장을 이루며 세계 경제에서 한 축을 차지하는 국가로 발돋움하자 미 정계에서 말이 나오기 시작했다.

[대한민국은 이미 세계에서 손꼽히는 발전한 국가다. 그런 나라가 자랑스러운 미국의 용사들에 지불하는 비용이 더 많아야 한다.]

한국이 지불 능력이 생겼으니, 주한미군의 주둔비를 올리겠다는 뜻이다.

당연히 한국에서 반발이 터져 나올 수밖에 없었다.

미군과 맺은 협정으로 인해 한국은 단독으로 전쟁을 수행할 수 있는 작전권을 이미 그들에게 넘긴 상태였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주둔비까지 올린다?

한국은 주권국가다.

미국이 가져간 작전권에 주둔비까지 올리면 한국의 국방력은 미국에 종속되는 셈이다. 그걸 국민들이 납득할 리 없다.

그렇기 때문에 매년 벌어지는 방위비 협상은 난항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지난 몇 년간은 그나마 요식 행위에 불과했지만 미국에 강경파 대통령이 취임하면서 한국에 대한 압박이 더욱 강해졌기에 회담장에는 살벌한 기운이 흘렀다.

딱딱.

그런데 그때 회담의 살벌한 분위기를 깨고 생뚱맞은 소리가 울려 퍼졌다.

윌리엄 글레이저.

회담의 한 자리를 차지한 그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펜의 뒷부분으로 책상을 내리친 것이다.

“무슨 말이 그렇게 많으십니까. 에이브러햄 사령관님. 이런 모습을 보여 주시려고 절 오라고 하신 겁니까?”

댄 에이브러햄 주한미군 사령관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무슨 연유에서인지는 모르지만 윌리엄은 한국에 도착할 때부터 저기압이었다.

그런 윌리엄의 돌발 행동에 한국 협상단도 술렁였다. 윌리엄에 대해서 모르는 사람이 대부분인데 그가 사령관을 마치 아랫사람 부리듯 불렀기 때문이다.

“말이 너무 깁니다. 이건 동등한 위치에서 하는 협상이 아닙니다. 한국은 우리가 없으면 아쉽지만 우린 한국이 없어도 괜찮으니까.”

“지금 그게 무슨 소립니까!”

쿵!

한국 측 장군이 책상을 내려치면서 자리에서 일어섰다. 윌리엄은 그런 한국 장군을 무시한 채 댄에게 말했다.

“주한미군 빼세요. 비용은 우리가 책임집니다. 협상의 기본을 모르는 작자들이 여론과 국제사회를 등에 업은 채 주제넘게 까부는 걸 내가 왜 들어야 하는지 모르겠군.”

윌리엄은 차갑게 그렇게 말한 채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러고는 협상장에서 빠져나왔다. 그가 나온 협상장 안에서 웅성거리며 분노하는 한국 측의 목소리가 바깥까지 흘러나왔다.

그때 윌리엄에게 누군가 다가왔다.

“안녕하십니까, 도련님.”

“누구지?”

윌리엄은 주변을 슥 살폈다. 아무나 함부로 안에 들이다니, 경호원들이 제 일을 제대로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남자가 이름을 밝힌 순간 윌리엄은 경호원에 대한 생각을 잊었다.

“행크 모리조라고 합니다.”

“모리조?”

윌리엄은 글레이저의 정적인 모리조 가문에서 나온 행크를 보면서 인상을 찌푸렸다.

“나한테 볼일이 있나?”

“예. 정확히 말하자면 글레이저 가문에 볼일이 있습니다만.”

“네놈 따위가?”

모리조란 이름을 쓰지만 윌리엄이 본 적이 없는 걸 보니 방계다. 방계 주제에 글레이저 가문을 입에 담다니.

윌리엄이 분노를 토하려는 순간 행크가 윌리엄의 눈앞에 사본으로 보이는 서류들을 내밀었다.

“엘릭서 프로젝트에 관련한 문젭니다.”

“뭐?”

윌리엄은 행크의 손에서 낚아채듯 그 서류를 뺏었다. 그러고는 그걸 읽는 순간 속으로 기함했다.

‘이, 이건.’

가문에서 만든 엘릭서 프로젝트의 기획안이다. 엘릭서의 안정성을 시험하기 위해 진행했던 인체 실험과 관련자의 이름이 적힌 문서다.

다른 이름들은 전부 다 가려져 있었지만 글레이저란 이름만 가려져 있지 않았다.

“네놈.”

윌리엄이 으르렁거리며 행크를 쳐다봤다. 행크는 바짝 긴장했으나 겉으로는 여유로운 척 웃었다.

“제가 이걸 어떻게 얻었을까요?”

“너희, 모리조였나!!”

윌리엄의 입에서 분노가 쏟아져 나왔다. 한국에서의 실험이 무너진 것에 의심만 하고 있었는데 모리조가 바깥으로 유출돼서는 안 되는 자료를 들고 왔다.

그렇다는 건 모리조가 어떤 식으로든 그 일에 연관이 되어 있다는 뜻이다.

“모리조 가문의 전언입니다.”

윌리엄이 분노하건 말건 행크는 그에게 말했다. 이건 기회다. 모리조 가문이 글레이저 가문을 누를 수 있는 절호의 기회.

가문의 전언을 전달하는 행크의 머릿속에 CIA 지부장인 마이클 무어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는 어디서 이런 걸 얻은 거지?’

* * *

청담동의 한 고급 바.

멤버십으로 운영되는 이곳은 아무나 가입할 수 없어 엄격한 심사를 거치고 들어온 상류층만이 출입할 수 있는 곳이었다.

그런 곳에 상혁이 도착했다.

“저는 밖에서 대기…….”

“됐어, 들어와.”

“예? 하지만…….”

오승택이 긴장한 듯 침을 꿀꺽 삼켰다. 그런 오승택을 보며 상혁은 피식 웃었다.

“뭐 이런 곳에 쫄아? 어차피 사람 다 똑같아. 저기서 파는 술이라고 마시고 안 취할 줄 알고?”

“그…….”

“이때 이런 경험도 하는 거지.”

피식 웃은 상혁이 주머니에 손을 꽂고는 휘적거리며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입구에서 들어오는 사람을 감시하고 있던 가드 두 명이 나와서는 상혁을 막았다.

“잠시만요. 멤버십이 있으십니까?”

“없는데요.”

“죄송합…….”

가드가 상혁을 막아서려고 할 때 안에서 다다닥거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콧수염을 기른 중년 남자가 나와서는 가드를 옆으로 확 밀어 버렸다.

“죄, 죄송합니다. 몰라뵙고 실수를 저질렀습니다.”

상혁은 김샜다는 표정을 지었다. 여기서 못 들어가게 하면 또 재미나 한번 보려고 했더니 재미없게도 자신을 알아보고 안에서 먼저 뛰어나왔다.

책임자로 보이는 듯한 콧수염 남에게 상혁은 하는 수 없다는 듯 어깨를 으쓱했다.

“됐습니다.”

“아, 안으로 모시겠습니다. 누구를 만나러 오셨는지…….”

“마이클 무어.”

마이클 무어는 상혁을 바로 불렀다. 007 시리즈부터 시작해서 첩보원들은 왜 이런 바를 좋아하는지 알 수 없었다.

자신이 CIA라는 것을 티를 내고 싶은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상혁은 콧수염이 안내하려고 하자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뭐 해? 들어가야지?”

“예? 예.”

상혁이 오승택을 데리고 들어가려고 하자 콧수염이 슬쩍 인상을 찌푸렸다. 오승택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하지만 상혁은 그런 콧수염에게 말했다.

“되죠?”

누구 앞에서 안 된다고 하겠는가. SG의 새로운 로열패밀리인 상혁의 말인데. 이곳에서는 사회적 명성과 돈이 전부다. 콧수염은 허리를 구십 도로 꺾었다.

“얼마든지 가능하십니다.”

“봐 봐. 된다잖아.”

씩 웃은 상혁이 오승택의 등을 떠밀었다. 그러자 오승택이 아래층으로 밀려서 내려갔다. 그 뒤를 상혁이 따라 들어갔다.

간판이고, 뭐고 겉으로 봐서는 전혀 고급 바 느낌이 안 나는 문을 통과한 순간 오승택과 상혁의 눈이 커졌다.

신세계.

그곳엔 마치 다른 세상에 들어온 것 같은 광경이 펼쳐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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