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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 먹는 대마법사-140화 (139/249)

쓰레기 먹는 대마법사 140화

140. 마법사의 기만술(5)

“그럼.”

김태양이 고개를 꾸벅 숙였다. 나이가 많은 김태양이 상혁에게 깍듯하게 고개를 숙이는 모습은 확실히 이질적이었다.

하지만 최근 하도 뜨겁게 모든 뉴스란을 달군 것이 상혁이기에 주변에서는 그걸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SG그룹의 새로운 로열패밀리라는 것을 모두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계산하겠습니다.”

김태양이 빌지를 내밀었다. 그곳에서 김태양이 내민 빌지를 받아 든 것은 바로 마이클이다. 마이클은 김태양을 아래위로 살폈다.

‘동류다.’

상혁을 기다리던 건 마이클 역시 마찬가지다. 행크 모리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선수를 김태양에게 빼앗겼다. 그런데 그 김태양에게서 자신과 비슷한 냄새가 났다.

‘국정원인가.’

CIA의 필드 요원인 자신과 동류라면 한국에는 국정원이나 기무사 정도가 전부다. 그 수가 적은 기무사보다는 국정원일 확률이 높았다.

그때 마이클의 신경이 곤두섰다.

‘들켰다!’

김태양의 눈이 매처럼 자신을 포착한 것을 발견한 것이다. 마이클은 언제든 출수할 수 있도록 전신 근육을 서서히 긴장시켰다.

마이클은 신용카드를 철제 트레이에 담아 내밀었다. 김태양은 신용카드와 영수증을 챙겨 정장 상의 안쪽 주머니에 넣은 뒤 펜을 꺼냈다.

사인을 하기 위해서 비치해 놓은 펜이다.

하지만 김태양의 손에 들어간 순간 펜은 더할 나위 없이 무서운 무기가 된다. 마이클은 김태양의 일거수일투족에 신경을 곤두세웠다.

상대도 자신을 눈치챘고 자신도 상대를 눈치챘다.

그렇다면 결국 생사의 판가름은 호흡 한 번에 나게 된다. 마이클은 역전의 용사로 수많은 임무를 성공했지만 눈앞의 김태양 역시 자신과 비슷한 사선을 넘어왔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꼈다.

‘개미지옥이라 했던가.’

대한민국은 첩보원들의 개미지옥이다. 한 번 발을 잘못 디디면 그냥 모가지가 날아가는 곳이 바로 한국이다.

대한민국과 북한.

인접국인 일본과 중국, 러시아.

그리고 대한민국의 혈맹인 미국.

겉으로 보기에는 늘 평온하게 돌아가는 듯한 일상이지만 그 물밑에서는 각국의 정보원들이 치열하게 한 치의 정보라도 더 확보하기 위해 피 냄새가 가시지 않는 곳이다.

그만큼 최고의 실력을 갖춘 정보원들이 모이는 곳이 대한민국이다. 그리고 국정원이라면 바로 그 대한민국 한정으로는 미국보다 더 막강한 정보력을 자랑하는 한국의 CIA다.

마이클은 김태양의 눈빛 하나, 호흡 하나가 변하는 것을 알아채기 위해 신경을 잔뜩 곤두세웠다.

스윽.

하지만 먼저 물러난 것은 김태양이다. 김태양 역시 마이클을 보며 놀랐다. 정확히는 마이클 때문에 놀란 것이 아니라 상혁 때문에 놀란 것이다.

‘어떻게 아셨지?’

김태양은 슬쩍 상혁을 쳐다봤다. 자리에서 일어나는 김태양에게 상혁은 빌지를 건네주며 말했다.

[대신 계산하고, 관찰인지 감시인지 모를 거 그만하고 여기로 오라고 해.]

밑도 끝도 없는 상혁의 갑작스러운 말에 김태양은 고개를 갸웃했다. 하지만 빌지를 내민 순간 김태양은 눈치챘다.

마이클이 자신과 동류임을.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김태양은 전혀 느끼지 못하고 있던 감시의 눈길을 상혁이 미리 알고 있었다는 뜻이다.

‘괴물 같은 양반이니 더 이상한 게 나와도 놀라지 않을 테다.’

하릴없는 다짐을 한 김태양은 마이클과 유지하던 구도를 깼다. 김태양이 한 발짝 뒤로 물러서자 팽팽하게 맞부딪치던 긴장이 느슨해졌다.

대신 김태양은 빙긋 웃으며 마이클에게 말했다.

“들켰으니까 그만하고 오시랍니다.”

“……예?”

“그렇게만 전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럼.”

김태양은 고개를 까딱하고는 망설임 없이 등을 돌렸다. 김태양을 순간적으로 긴장하게 만들었던 마이클이다. 그의 실력이라면 숨을 한 번 내쉴 시간에 기습을 당해 죽을 수도 있다는 것을 김태양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상관하지 않았다.

저벅저벅.

김태양이 그렇게 홀연히 사라져 버리자 마이클은 직원에게 카운터를 맡기고는 상혁이 앉은 곳으로 향했다.

그리고 마이클이 다가가자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처럼 상혁이 손을 들었다.

“앉으세요.”

“…….”

마이클은 긴장을 늦추지 않았다. 자신이 CIA 지부장이란 건 극비다. 물론 사전에 정보를 공유하는 혈맹국인 대한민국 국정원은 알고 있을 것이나 그 외에는 극비다.

‘SG그룹이라면 파악하고 있는 게 이상하지는 않다. 하지만 백상혁이라면.’

최근 들어 SG그룹의 일원이 된 상혁이 자신에 대해서 알고 있다는 건 이상한 일이다. 상혁은 SG 내부에 그 어떠한 기반도 없기 때문이다.

기껏해야 백성철이 적선하듯 내준 한국대 이사장 자리가 전부.

그마저도 상혁이 오고 난 후 실각당한 줄 알았던 최만금을 전면에 내세워 재단을 다시 운영하게 한 것이 전부다.

‘분명 아무것도 없어야 한다. 분명.’

하지만 마이클은 상혁을 앞에 두고 긴장을 늦출 수가 없었다. 마이클은 자신이 왜 이러는지 알 수 없었지만 자신의 본능을 믿기로 했다.

“어깨에 힘 좀 빼시고. 서로 죽자고 달려들 생각 없으니까.”

마이클은 자신의 어깨가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는 것을 그제야 깨달았다. 그걸 안 순간 마이클은 묘한 패배감을 느끼며 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이 무슨 추태란 말인가. 고작 스무 살밖에 되지 않은 어린애 앞에서 CIA의 최고 요원 중 한 명인 자신이 이토록 긴장하고 있다니.

마이클은 주도권을 상혁에게 넘기지 않기 위해 도발적으로 말했다.

“그러면 죽이실 수는 있습니까?”

“워. 죽이긴요. 무슨 그런 살벌한 말씀을.”

상혁이 양손을 들어 보이며 능청스레 웃었다. 상혁은 조금도 긴장하지 않고 있었다. 마이클을 자신의 손바닥 위에 올려놓았다는 자신감 때문일까.

‘수행원도, 경호원도 없다. 대체 이 배짱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만약 마이클 자신이 미 CIA 소속이란 걸 알았다면 이 나우 호텔 역시 CIA에서 위장용으로 운영하는 자회사 중 하나임을 알았을 것이다.

즉, 상혁은 아무런 도움의 손길 없이 홀로 범의 아가리 속에 머리를 들이민 상태로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조금도 주눅 들지 않으니 마이클의 머리가 복잡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끔찍한 말은 입에 담지도 마시죠. 으으으.”

상혁은 천연덕스럽게 끔찍하다는 연기를 하며 어깨까지 부르르 떨었다. 그러나 마이클의 미간의 주름은 펴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근데, 내가 못 할 것 같습니까?”

그 순간 마이클은 하마터면 숨겨 놓은 총을 뽑을 뻔했다. 상혁의 기세가 뒤바뀌며 마치 사나운 맹수를 앞에 둔 것 같은 살기와 투기가 느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기세는 눈 한 번 깜박하고 나자 씻은 듯이 사라졌다. 마이클은 숨을 작게 헐떡이면서 상혁을 쳐다봤다.

“뭐 내가 당신을 죽일 수 있느냐 없느냐, 아니면 내가 당신에 대해서 어떻게 알았느냐 하는 게 중요한 건 아닙니다.”

마이클은 속으로 중요하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방금 그것은 꿈이거나 환각이 아니었다. 마이클은 상혁이 자신을 손가락 하나로 간단히 죽일 수 있는 강자임을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상식적으로는 불가능하다. 상혁은 스무 살 애송이였고 자신은 수많은 작전을 성공으로 이끈 베테랑이었으니까.

하지만 본능에 충실할수록 수명이 길어진다는 걸 알고 있는 마이클이다. 이성보다 감성이, 감각으로 살아남는 것이 요원이다.

“내가 관심 있는 건 그쪽이 알고 있는 정봅니다. 아, 물론 맨입은 아니고요.”

“맨입이 아니라면…….”

“당신, 어느 쪽입니까. 글레이저? 모리조?”

상혁의 말에 마이클의 눈이 커졌다. 상혁은 전부 다 알고 있었다. 그러자 싸늘한 긴장감이 다시금 등골을 시리게 만들기 시작했다.

“무슨 말씀이신지.”

“모르는 척하거나 떠보려는 수작은 집어치우시고. 둘 때문에 당신도 여기 있는 거 다 알고 있습니다.”

첫 만남부터 상혁은 마이클에 대해 알고 있었다. 상혁이 그렇게 딱 끊어서 말하자 마이클은 주변을 슥 살폈다.

“자리를 옮기시죠. 이런 자리에서 말하기에는 어렵습니다.”

마이클은 도청이나 듣는 귀를 걱정하는 듯했다. 하지만 상혁은 요지부동이었다.

“상관없습니다. 어차피 아무도 듣지 못할 테니까.”

이미 아까 전부터 이 안에서 나누는 이야기는 밖으로 흘러나가지 않는다. 마법 하나로 간단히 소음을 차단한 것이다.

그러나 마이클이 그걸 알 리 없다. 하지만 대화 대상은 상혁이 요지부동이니 하는 수 없었다.

“어느 쪽도 아닙니다.”

“CIA는 글레이저도, 모리조 쪽도 아니다?”

“CIA가 아니라 저를 말하는 겁니다.”

“파벌이군요.”

상혁의 말에 마이클은 씁쓸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미국을 암중에서 통치한다는 원탁과 프리메이슨의 입김이 CIA 내부라고 없을 리 없다.

정보를 얻는 자가 곧 승리하는 법이기에 CIA는 오래전부터 원탁과 프리메이슨 간의 기 싸움으로 파벌이 생긴 지 오래다.

그중 양측에 다 환멸을 느끼고 중립노선을 지키는 소수 중 하나가 바로 마이클이다.

“예. 파벌은 이미 CIA 전체의 병폐가 되었습니다. 국가 안보보다는 글레이저가 모리조의 개가 되기 위해 들어오는 이들이 더 많은 실정이니까요.”

“정보는 중요하니까요.”

CIA 정도면 전 세계의 정보를 다룬다. 그러니 글레이저와 모리조에서 탐을 내는 것은 당연하다. 부와 권력에 흔들리지 않는 사람은 드물다.

그러나 그의 한탄을 듣기 위해 부른 것이 아니다. 상혁은 마이클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모리조. 어떤 곳입니까?”

“글레이저와 별반 다르지 않은 곳입니다.”

“모리조를 들여보낸 것도 당신의 의지가 있었겠군요.”

“막을 수 없었습니다. 이미 상부의 승인을 받아왔으니까.”

마이클은 쓰게 웃었다. 사만다 허드가 실종을 당했다가 한국에서 모습을 드러낸 걸 그는 알고 있었다.

그 뒤에 글레이저 가문이 있었다는 것도.

그리고 그 직후 평택의 미군기지의 연구소가 전소되었다. 그리고 CIA 비밀공작국 소속 카터가 한국에 모종의 임무를 받고 들어왔다가 비밀공작국 소속 서른 명과 존 베리와 함께 죽었다.

‘사만다 허드가 이 일의 키다.’

그리고 눈앞의 백상혁은 그 일의 전모에 대해서 알고 있었다. 사만다 허드와 난 열애설도 목적이 있기 때문이란 것이 확실해졌다.

“미스 사만다를 글레이저와 모리조로부터 지켜야 합니다.”

“글레이저는 죽이고 싶어 하고, 모리조는 이용하고 싶어 하니까?”

상혁의 말은 간단했지만 정확히 중심을 읽어 내고 있었다. 마이클은 고개를 끄덕였다.

“미국으로 보내 주십쇼.”

“지킬 힘은 있습니까?”

“소수의 중립이라고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힘이 약하다는 건 아닙니다.”

마이클은 입에서 침을 튀기며 말했다.

“미스 사만다를 법정에 세워야 합니다. 법조계는 원탁과 프리메이슨의 입김이 미치지 않는 곳입니다. 그곳에서 사만다 양이 겪은 일을 털어놓는다면…….”

“어떻게요. 사만다가 글레이저를 고소라도 해야 합니까? 고소하면 그쪽이 법정에 나온답니까?”

“…….”

마이클의 입이 꾹 다물어졌다. 사만다를 법정에 보내는 게 전부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최소한 사만다가 법정에 서게 하기 위해서는 그곳에 글레이저 가문을 세워야 한다.

그렇다면 그 대단하다는 가문을 기소해야 한다는 건데.

“기소를 할 수는 있습니까?”

“범죄를 입증할 만한 자료가 있다면…….”

“그걸 무마할 힘이 있는 것 같던데. 그걸 아니까 모리조가 접근한 것이고. 그게 전부라면 실망입니다.”

상혁의 눈에 실망이 스쳐 지나갔다. 그걸 본 마이클은 몸이 바짝 달아올랐다. 그때 상혁이 슬쩍 말을 흘렸다.

“한 가지 방법이 있기는 한데…….”

“방법이요?”

“네. 그런데 그걸 그쪽이 해 줄 수 있으려나는 모르겠네요.”

“그게 뭡니까?”

마이클이 눈을 부릅떴다. 상혁은 입이 꿰인 마이클을 보면서 속으로 히죽 웃었다. 이미 그를 안팎으로 흔들어 놓은 터라 평소라면 걸려들지 않았을 간단한 수법에 걸려 들었다.

‘아니지. 마법도 있었지.’

상혁은 이미 마이클이 맞은편에 앉은 순간 마법을 이미 썼다. 간단한 마법으로 분노와 흥분을 일으키는 1서클의 마법이었다.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마이클을 뒤흔들기에는.

“차도살인지계라고. 글레이저나 모리조나 당분간은 이쪽에 신경 쓸 겨를 없이 만들 수 있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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