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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 먹는 대마법사-139화 (138/249)

쓰레기 먹는 대마법사 139화

139. 마법사의 기만술(4)

만전 상태라면 30분 안에 미국 최강의 정예 보병사단을 전멸시킬 수 있다!

상혁의 말은 모르는 사람이 들으면 광오함의 극치였다.

미국이 어느 나란가.

천조국이라고 한국에서는 불릴 정도로 한 해 국방비로만 한화 천조를 기꺼이 지불하는 나라가 바로 미국이다.

천조 규모의 국방비를 낼 수 있다는 건 그만큼 미국의 국력 자체가 강대하다는 뜻이고, 막대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미국의 국방력이 세계의 패권을 쥘 정도로 어마어마하다는 뜻이다.

그곳의 한 개 보병사단이다.

미국의 보병사단은 ‘보병’이라 불린다고 해서 보병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웬만한 한 개 군단급의 규모를 자랑하기 때문에 미국의 막대한 자금력으로 최신식 장비와 무기로 무장한 일 개 사단은 웬만한 나라와 자웅을 겨룰 정도다.

그러니 미국이 뜬다고만 하면 다들 벌벌 떨면서 미국의 눈치를 보는 것이다.

미국이 세계 경찰임을 자부할 수 있는 건 그 막대한 전력 차이에서 나온다.

만약 이 보병사단에 전투기 편대와 해군의 지원까지 더해진다면 그야말로 난공불락의 요새요, 막을 수 없는 쓰나미 같은 공격력을 자랑하는 군대가 되는 것이다.

하지만 상혁은 그런 보병사단을 상대로 필승을 자신했다.

자신을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경악을 담아 쳐다보는 김태양의 시선을 보면서 상혁은 다시 한번 더 쐐기를 박았다.

“만전 상태라면.”

“마법사에게 있어 만전 상태라는 건 내가 상대를 완벽하게 이길 수 있다는 것을 자신할 때지.”

상혁은 히죽 웃었다.

비록 5서클에 불과하다고는 하나 상혁은 훨씬 더 높은 경지인 대마법사의 경험을 가진 5서클 마법사다.

그리고 미국의 핵이라 불리는 비대칭 전력을 보유하고 있다면 상혁은 이 지구에서 그 누구에게도 알려지지 않은 마법이란 비대칭 전력을 보유하고 있는 셈이다.

드러난 비대칭 전력과 아무도 모르게 숨겨진 비대칭 전력.

어느 것이 더 우위일지 상혁은 뻔히 알 수 있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상혁이 자신에 대한 불신을 드러내는 김태양을 믿지 못하는 건 아니다.

‘못 믿을 만하지.’

개인의 몸으로 최강대국인 미국의 수천에 달하는 보병사단과 싸워 이길 수 있다니. 그걸 대체 누가 믿을 수 있을까.

그러나 반드시 소수가 다수에 비해 불리하다는 이런 편견은 가나안에서는 존재할 수 없는 편견이었다.

가나안에서는 소수가 다수에 비해 유리한 경우가 훨씬 더 많았다.

그 소수가 소드마스터나 대마법사라면, 소수가 다수에 비해 불리할 일이 없다는 것을 역사에도 기록이 되어 있고 더 올라가면 전설과 신화 속에서도 그에 대해 노래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구에는 그런 기록이 없다.

‘역사 속에 있기는 하지. 하지만 대부분 허구로 취급되고 있고.’

상혁도 과거를 살지 못했기에 그 기록이 진실인지 아닌지에 대해서는 판별할 방법이 없다. 예를 들면 고려의 척준경이 소수로 대군의 포위망을 뚫고 들어간 것이 고려사에 적힌 일 같은 것의 진위를 판별할 방법은 없었다.

‘파고들지 못하면 알아내지 못할 것은 없으나, 과거에 얽매이기에는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지.’

상혁은 김태양을 보면서 빙긋 웃었다.

“내 말이 진실인지 아닌지는 당신의 판단에 맡기면 될 것이고. 그래서 더 할 말은?”

“그, 그러니까…….”

김태양이 애초에 상혁을 말리려고 했던 건 상혁이 모리조와 손을 잡지 않으면 글레이저와 싸울 수 없다고 말하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지금까지 저자가 딱히 위험이 빠진 적도 없는데?’

심지어 글레이저에서 손 놓고 있었던 것도 아니다. 그런데 상혁은 멀쩡했다. 그렇다는 건 적어도 글레이저가 한국에서 벌일 수 있는 사이즈의 판에서 상혁을 상대하는 건 역부족이었다는 뜻이다.

‘역부족인 건 백상혁이 아니라 글레이저였던가?’

김태양은 침을 꿀꺽 삼켰다. 그러자 상혁이 피식 웃었다.

“생각이 많아 보이는군. 앞으로는 내가 말한 걸 염두에 두고 판을 다시 짜도록. 내가.”

상혁이 자기 자신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최소한 글레이저의 무력을 내세운 협잡질은 통하지 않는 상대라고 가정하고.”

김태양은 다시 한번 더 침을 꿀꺽 삼켰다. 지금 상혁은 자랑하는 것이 아니었다. 착 가라앉은 상혁의 두 눈은 지극히 이성적이었다.

상혁은 지금 당연한 사실을 말하고 있었다.

“그럼 대체.”

김태양이 충격을 속으로 삼키며 가까스로 입을 열었다.

“마법…… 이란 건 어느 정도까지 가능한 겁니까?”

김태양이 알고 있는 마법은 게임이나 영화, 소설 속에서 나온 것이 전부다. 그렇기에 김태양은 상혁에게 요구했다.

정보를 놓고, 판을 짜기 위해서는 아군의 전력을 명확하게 파악하고 있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김태양의 입에서 침이 바짝 마르기 시작했다.

‘어쩌면, 회사를 박차고 나온 게 내 인생에 가장 잘한 일일지도 모른다.’

국정원.

국가를 위한 보이지 않는 헌신으로, 모두의 희생을 요구하는 그런 국가적 집단에서 김태양이 자신을 따르는 이들과 함께 나온 건 일생일대의 도박이었다.

어차피 더 이상 그 안에 자신의 자리는 없다고 생각했고 그럴 바에는 다른 인생을 시작하는 것이 나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자 마치 기다렸다는 것처럼 백상혁이 새로이 나타났다.

첫 만남은 최악이었고, 목숨의 위협까지 느꼈으나 통나무 공장을 운영하던 놈들을 박살을 내면서 그제야 비로소 자신이 나라를 위해 무언가 이익이 되는 일을 했다는 보람을 느낀 것도 사실이다.

국정원 요원으로 10년이 넘게 국내와 해외를 오가며 국익이라는 이름 아래 많은 작전을 펼쳤으나 그것이 실질적으로 나라를 더 부강하게 만든다거나 국민들의 권리를 보호한다는 느낌은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김태양이 성공시킨 작전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은 여전히 외교란 이름 아래 주변 강대국의 헛기침에 몸을 바짝 웅크리는 것이 전부고 평화라는 이름 아래 북한의 미사일 발사 때마다 유감이라는 표현만 몇 마디 하는 게 전부였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미국만 바라보면서 아기 새처럼 지저귀는 것이 김태양이 10년 동안 국정원에서 일하면서 단 한 번도 변하지 않았다.

그것에 회의감을 느끼는 현장 요원들이 수두룩하다.

하지만 먹고 살길이 없어 그런데도 그곳에 붙어 있으니, 점점 타성적으로 변하는 것도 당연하다.

그건 그들이 책임이 아니다.

나라의 책임이지.

‘하지만 이 남자는 뭔가 달라.’

김태양은 상혁을 보면서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현장 요원으로 수 없이 많은 사선을 넘었던 김태양의 육감은 틀린 적이 없었다.

‘달라질 수 있어.’

국익과 외교라는 이름 하에 보이지 않는 희생으로 헌신만 하지 않아도 된다. 백상혁이라면 그게 가능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김태양은 하기 시작한 것이다.

글레이저 가문.

미국을 암중에서 움직이는 원탁의 한 가문인 글레이저 가문을 상대로도 눈 하나 깜박하지 않고 미 보병사단을 상대로 30분 안에 이길 수 있다고 자신하는 남자다.

“그걸 알고 싶다는 건 아예 내 밑에서 확실하게 일을 하겠다고 말한 거라고 봐도 되나?”

상혁은 쑥 하고 김태양의 의중을 곧바로 찔렀다. 상혁의 화법이 원래 이랬다. 8서클 대마법사로 모든 것을 발밑에 둔 상혁은 굳이 말을 돌려서 하지 않았다.

“이 나라에 해가 되지 않고, 중범죄를 저지르지 않는 수준이라면.”

김태양은 그렇게 대답했다. 그래도 명색이 나라를 위해 일했던 요원이다. 미우나 고우나 자신의 조국이다. 조국에 해가 되는 일은 하고 싶지 않았다.

이미 국익이라는 이름으로 손에 묻힌 피만 얼마던가.

그렇기에 자신을 깨끗하게 써달라고는 말할 수 없었다. 가장 잘하는 일이 그런 일이기도 했고.

상혁은 씩 웃었다.

“마음에 드는군.”

상혁은 이런 자들을 좋아했다. 김태양의 눈에는 고집이 있었다. 미래가 보이지 않지만 자신의 신념으로 오래간 일을 해 온 자들의 그런 고집 같은 것이 있었다.

그런 자들은 한 번 마음을 얻으면 대부분 쓸 만한 경우가 많았다.

미래가 보이지 않음에도 신념만으로 버텨왔던 이들이기에 배신하는 경우가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현장에서 발로 뛰는 정보원이다? 더 좋지.’

상혁에게 필요한 것은 정보다. 자신의 손발이 되어 줄 이들이 필요했다. 이들이 이끌고 상혁이 만들어 내는 골렘이 있다면 대한민국의 정보는 상혁의 손아귀에 들어올 것이다.

“약속하지. 너희들을 귀하게 여기겠다고. 너희를 버린 국가처럼 그리 홀대하지는 않겠다고.”

상혁의 말에서 힘이 느껴졌다. 마법사의 말은 힘을 싣는다. 그 말에 힘을 실어 자연의 법칙을 뒤틀고 이용하는 마법사이기 때문이다.

그런 상혁의 말에 김태양은 눈시울이 빨개지는 것을 느꼈다.

‘이게 무슨 창피를.’

김태양은 서둘러 고개를 숙였다. 마치 새가 원하는 가지를 찾아 앉은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상혁은 빙긋 웃으며 옆에서 냅킨을 뽑아 들었다.

“말로만 하는 건 별 효력이 없지. 그러나 내 말은 효력이 없다는 게 아님을 보여 주지.”

스스슥.

상혁이 냅킨 위를 손가락으로 그었다. 그러자 손가락이 훑고 지나간 곳이 까맣게 타오르더니 글씨가 새겨지기 시작했다.

그것을 본 김태양은 눈물이 쏙 들어간 것을 느끼며 두 눈을 부릅떴다.

“마법…… 입니까?”

“그렇게 부르지. 어떻게 배웠냐고 해도 알려 줄 생각은 없어. 날 제외하면 배울 수 있는 사람은 지구상에 아무도 없으니까.”

상혁이 씩 웃자 김태양은 고개를 끄덕였다. 쓸데없는 호기심은 단명을 부른다. 김태양은 자신이 이해하지 못하는 저 마법을 이해하려고 들지 않기로 했다.

그냥 인정하면 된다.

스스슥!!

냅킨 위로 빼곡한 글자가 새겨졌다. 김태양이 주변을 힐끗거리자 상혁이 보지도 않고 말했다.

“저들은 이걸 봐도 아무것도 보지 못해. 그러니 걱정할 필요 없어.”

“예.”

“마스터라고 부르고.”

“예, 마스터.”

마탑의 모든 마법사들은 그 탑주를 마스터라 부른다. 자신의 사람이 된 김태양에게도 그렇게 부르라고 한 뒤 상혁은 냅킨을 내밀었다.

“여기. 피를 묻혀.”

“피요?”

“계약서다. 마법으로 쓰는 계약서.”

상혁이 씩 웃었다. 마법사가 마나를 이용해 쓰는 계약서는 마법사의 마나를 걸고 하는 일종의 맹세다.

어떤 계약서냐에 따라 심하면 심장의 고리를 영원히 잃을 수도 있는 강력한 계약이다. 물론 상대방도 계약 내용을 어길 시 목숨을 앗아 갈 수 있을 정도의 조건을 걸어야만 성립이 가능하다.

이건 일종의 퍼포먼스였다.

김태양에게 보여 주기 위한. 그리고 그를 안심시켜 자신에게 전력으로 도움이 되게끔 하기 위한 퍼포먼스.

김태양은 멍한 눈으로 냅킨 위에 타들어 가듯 쓰이는 글자를 내려다봤다. 상혁이 냅킨을 앞으로 밀었다.

“근로계약서라고 하지. 국가가 버린 당신들을.”

상혁이 빙긋 웃었다.

“내가 품겠다는, 마법 계약서. 영혼을 바치거나 하는 건 아니니 읽어 봐도 좋아. 그리고 읽은 다음 그 아래, 네가 한 말을 지키려거든 피를 묻혀라.”

김태양은 냅킨을 보더니 품에서 작은 칼 하나를 꺼내 들었다. 그러고는 망설임 없이 자신의 손끝을 찔렀다.

뚝.

하얀 냅킨이 피로 물들었다. 상혁은 그 냅킨을 자신의 앞으로 가져와 자신의 손끝에 마력 칼날을 생성했다.

뚝.

또 다른 피 한 방울이 떨어졌다. 상혁은 피식 웃으며 농담조로 김태양에게 말했다.

“이제 큰일 났군. 무시무시한 마법사와 계약을 맺게 되었으니, 물릴 수도 없을 텐데.”

그러자 줄곧 심각한 표정이던 김태양이 상혁을 향해 입꼬리를 힘겹게 들어 올리며 슬쩍 웃었다.

“애초에 처음부터 그러셨잖습니까. 이상한 벌레를 먹이셨으니.”

“그랬나? 그거, 뻥이었는데.”

상혁이 키득거리며 웃었다. 김태양이 멍한 표정을 지었다. 그것 때문에 근 한 달은 제대로 잠을 자지 못했는데 속은 것이었다니.

하지만 이내 김태양은 풀썩 웃었다.

“왜 웃지?”

“이렇게 저와 제 부하들을 그 마법이란 걸로 속였으니까요. 그러니 글레이저고 모리조고 다 속지 않겠습니까. 무지란 게 그만큼 무섭다는 걸 깨달았으니까요.”

상혁이 크게 웃었다. 그 순간 냅킨이 파랗게 달아오르면서 불타올랐다. 그리고 그곳에 담긴 마나가 상혁과 김태양의 몸으로 스며들었다.

“됐군.”

“예, 마스터.”

김태양이 고개를 꾸벅 숙였다. 제법 정도가 아니라 대단히 쓸 만한 정보원을 얻은 상혁은 김태양에게 말했다.

“한 가지 어려운 부탁을 하지.”

“예.”

“이 대한민국 땅에서 가장 오염되고 남들 눈에 띄지 않을 은밀한 곳이 어딘지 찾아봐.”

“오염되고 은밀한 곳이요?”

“그래.”

국정원 출신이라면 알고 있는 것이 있을 것이다. 그때 김태양이 빙긋 웃었다.

“어려운 부탁이라더니, 쉬운 부탁이군요.”

상혁의 눈이 살짝 커졌다. 미처 예상치 못한 대답이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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