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 먹는 대마법사 138화
138. 마법사의 기만술(3)
“그럼 이걸로 당분간은 문제가 없겠네요?”
“예, 기존의 인선과 시스템을 건드리지 않은 덕분에 학교 일 전반은 최만금 처장에게 맡겨도 무방할 듯합니다.”
최만금은 기획조정처의 처장이 됐다. 그리고 원래 그곳의 처장이던 한덕술은 최만금 밑으로 들어갔다.
“좌천당했다고 생각하진 않았습니까?”
그런 한덕술의 설득은 이창엽이 맡았다. 그리고 한덕술은 꽤 기회주의적이었던 것으로 기억에 남았기 때문에 상혁이 그렇게 묻자 이창엽은 비릿하게 웃었다.
“그렇게 생각해도 어쩔 수 없을 겁니다.”
“너무 홀대하진 마세요. 그래도 나중에는 필요해질지도 모르는 사람이니까.”
“예.”
이창엽은 고개를 꾸벅 숙였다. 적당한 협박과 설득, 회유로 한덕술을 설득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기회주의적인 자이기 때문에 그만큼 겁이 많았고, 자신의 위치에 대해서 명확하게 파악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이들을 상대하는 건 이창엽에게 있어 별로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SG그룹과 백상혁, 이 두 개로 한덕술을 제압하는 데 완벽하게 성공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만금 전 이사장을 믿으십니까?”
이창엽이 우려스럽다는 표정으로 상혁에게 물었다. 상혁은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왜요. 뒤통수 칠까 봐요?”
“최만금 전 이사장에게 제가 모르는 비밀이 있다는 건 알겠습니다. 하지만 최만금 전 이사장도 노회한 자인지라 솔직히 말하면 믿을 수가 없습니다.”
이창엽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 백성철을 상대로 오랜 기간 한국대 이사장직을 손에 쥐고 놓지 않았던 최만금이다.
그만큼 그 자리를 길게 유지했다는 것은 숨겨진 한 수가 있다는 뜻이다.
“그럴 걱정은 할 필요가 없죠. 원하는 게 서로 같으니까, 적어도 그걸 이루기 전까지는 동행 관계가 이어질 겁니다.”
“만약 원하는 걸 최만금 전 이사장이 먼저 얻는다면…….”
이창엽이 최만금을 견제하는 건 긍정적인 일이다. 상혁은 그런 이창엽을 보며 그의 평가를 한 단계 조정했다.
“최만금 전 이사장이 배신한다고 해도 제게 크게 위협이 될 건 없습니다.”
상혁은 최만금을 대단하게 여기지 않았다. 물론 이창엽이 우려하는 바가 어떠한 것인지는 이해했다. 하지만 최만금은 상혁을 위협할 수 있을 만한 인물이 아니었다.
“최만금 이사장이 쥐고 있는 비밀. 그 비밀이 오히려 자신의 목을 겨누게 되지는 않을까 걱정을 하고 있으니까요.”
“…….”
치명적이지만 동시에 자신에게도 위험한 비밀을 최만금이 알고 있다는 것을 이창엽은 깨달았다. 그건 양날의 검이다. 상대를 상하게 할 수도 있지만 자신도 상하게 할 수 있는 것이다.
최만금은 그걸 걱정하고 있을 것이다.
백이현과 백도현이 바보도 아니고, 최만금이 자신들의 약점을 쥐고 있으니 그들도 최만금의 가장 약한 부분을 찌를 준비를 했을 것이다.
‘예를 들면 가족 같은.’
최만금의 딸은 미국에서 유학 중이다. 백도현과 백이현이 그런 부분을 노리지 않을 리 없다. 상혁은 이창엽에게 말했다.
“반대로 말하면, 최만금 이사장이 느끼고 있는 그 위기감을 우리가 해결해 주면 우리 사람으로 만들 수 있을 겁니다.”
최만금이 쓸모 있는 건 그가 충분히 늙었다는 것이다.
그렇게 늙을 동안 최만금은 SG그룹의 일원으로 자신의 인생을 바쳤다. 백성철의 곁에서 한국대 이사장에 이르기까지 최만금이 보낸 그 세월 자체가 최만금이 쓸모 있는 이유다.
‘백성철, 아니 더 나아가서는 SG그룹을 무너뜨릴 수 있는 약점들을 알고 있을 테니까.’
상혁은 일찌감치 최만금을 반드시 끌어들여야 할 인재 중 하나로 낙점했다.
“최만금 처장의 주변을 조사해 올리겠습니다.”
“약점으로 삼을 수 있는 것들. 최만금을 협박하기 위해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그런 관점에서 접근하세요.”
“예, 이사장님.”
이창엽은 뒷목에 소름이 돋았다. 점점 시간이 흐를수록 저런 상혁의 모습을 보면서 의구심이 들었다.
‘이대로 계속 간만 보면서 정보를 빼다가 보고하는 게 맞을까?’
혹시나 자신이 상혁의 다음 타깃이 되지는 않을까 슬슬 무서워지기 시작한 것이다.
그런데 그때 상혁이 손을 내저었다. 축객령이다. 이창엽이 고개를 꾸벅 숙이고 나간 뒤 상혁은 전화를 받았다.
“백상혁입니다.”
[미스터 백. 주드 포터입니다.]
다급한 주드 포터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 * *
“직접 만나 뵙고 말씀드려야 할 이야기라 연락을 드렸습니다.”
상혁은 나우 호텔 로비에서 땀을 뻘뻘 흘리고 있는 김태양과 마주했다. 그는 서둘러 달려왔다는 것이 티가 날 정도로 옷매무새가 흐트러져 있었다.
“대단한 사람인 모양이야?”
“예?”
“전 국정원 출신이 이렇게 헐레벌떡 뛰어온 걸 보니까. 행크 모리조. 유명한 사람인가?”
주드 포터는 상혁에게 SOS를 요청했다. 이 한국 땅에서 사만다 허드와 주드 포터가 의지할 수 있는 건 백상혁뿐이었기 때문이다.
행크 모리조라는 사람이 찾아왔고 글레이저 가문의 협잡에서 지켜 줄 테니 그녀가 겪은 일을 모두 증언하라는 요구를 받았다는 것이다.
“행크란 사람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모리조 가문에 대해서는 아는 게 있습니다.”
김태양은 손등으로 땀을 닦아 냈다.
“글레이저 가문의 정적입니다.”
“그 정도는 나도 예상했어.”
글레이저 가문의 수작을 막아줄 수 있는 건 그들과 비슷한 파워를 가진 가문일 가능성이 컸다. 그리고 조금만 수소문하면 글레이저 가문의 정적이 모리조 가문이란 건 어렵지 않게 알아낼 수 있었다.
“전쟁을 통해 세력을 결집하고 미국 정계의 한 축으로 꾸준히 세력을 다져온 가문입니다. 걸프전부터 시작해 베트남 전쟁,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전쟁 등 모리조 가문이 손을 들지 않은 전쟁이 없었습니다.”
“정치를 통해 전쟁을 결정한 가문이라?”
“예.”
미국은 세계 어디서든 단 하루도 전쟁을 쉰 역사가 없다. 세계 2차대전 후 미국이 최강대국으로 발돋움하면서 미국은 전쟁이 자신들의 헤게모니를 유지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깨달음이 21세기인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었다. 미국은 세계 어디에서든 지속적으로 전쟁을 수행 중이었다.
그렇게 미국이 전쟁하는데 정치적으로 영향력을 발휘한 가문이 모리조라는 뜻이다.
“프리메이슨이라고 들어 보셨습니까?”
“들어 봤지.”
원탁의 글레이저 가문, 그리고 그 반대편에 서 있는 것이 프리메이슨이 모리조 가문이다. 김태양은 그렇게 설명한 후 상혁을 바라봤다.
“미국 내 원수지간이나 다름없는 두 가문이 전쟁의 배경을 한국으로 옮긴 겁니다. 모리조 가문에서 본격적으로 나섰다는 것은 글레이저 가문에게 확실하게 한 방 먹여 줄 수 있다는 계산이 섰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적의 적은 아군이다?”
“예.”
김태양은 조금의 주저함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글레이저 가문의 미국 내 영향력은 이사장님이 생각하시는 것보다 훨씬 더 큽니다. 송구하지만 현재의 이사장님으로는…….”
김태양은 ‘역부족’이라고 말하려다가 고개를 흔들었다. 상혁이 마법사란 걸 김태양은 알고 있었다. 심지어 직접 겪어 보기까지 했다.
직접 당해 보지 않으면 믿을 수 없는 것이 바로 마법이다. 그 때문에 김태양은 역부족이라고 말하기 전에 질문을 바꿨다.
“만약 이사장님께서 미국의 정예 보병사단 하나와 전쟁을 치러야 한다고 하면 가능하시겠습니까?”
상혁은 김태양을 보며 제법이라는 표정을 지었다. 김태양은 자신이 본 것이 전부가 아니라고 생각한 것이다. 사람이 상식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일을 겪으면 사고가 굳고 시야가 굳기 마련이다.
하지만 김태양은 상혁에게 ‘그게 전부였느냐’라고 묻고 있었다.
한 개 미국 정예 보병사단.
보병사단이라는 이름이라고 해서 단순히 보병만 있는 것이 아니다. 한국에 주둔하고 있는 미 제2보병사단에는 예하 부대로 보병전투단과 기갑여단, 전투항공여단, 야전포병 여단 등 독자적으로 전쟁 수행이 가능한 거의 모든 병과가 포함되어 있었다.
상혁은 눈을 지그시 감았다.
‘전쟁에 대비한 지구 최강대국의 군대.’
상혁의 머릿속에 미군이 그려졌다. 그들이 수는 수천에 달하는 반면 상혁은 혼자였다. 수천은 최신식 장비로 무장을 하고 있었고 육중한 탱크와 장갑차, 그리고 하늘 위를 전투기가 지배하고 있었다.
‘5서클.’
상혁의 현재 경지는 5서클이다. 상혁은 그 상태로 전투에 돌입했다. 상혁의 전신에서 마나가 피어오르고, 주변으로 더미들이 생겨났으며 방어 마법이 뒤덮였다.
‘가장 강한 마법.’
힘과 힘의 격돌.
상혁의 심장의 고리가 덜덜 떨리며 마나를 뿜어내기 시작했고, 상혁이 펼친 방어 마법에 포탄이 날아와 귀가 떨어져 나갈 것 같은 폭음을 터뜨렸다.
머리 위로는 음속으로 비행하는 전투기가 날아다니며 미사일을 발사했고 탱크의 포와 야전포에서 포탄이 끊임없이 발사됐다.
그것들은 상혁이 깔아 놓은 더미들을 하나씩 파괴하기 시작했다.
눈속임용 더미들.
한 몸으로 움직이는 듯한 보병사단은 골리앗이었고 상혁은 다윗이다.
그리고 성경 속에서 다윗은 골리앗을 돌팔매질로 죽인다.
파아앗!!
상혁에게서 첫 마법이 터져 나왔다. 그러나 그 마법은 불과 바람으로 전장을 휩쓰는 그런 마법이 아니었다.
상대는 연약한 정신 방벽을 가진 인간들.
오러나 마력으로 단련도 하지 못한 정신세계를 가진 인간들이다. 상혁의 손끝에서 대규모 환각, 환청 마법인 5서클의 할루시네이션(Hallucination)이 터져 나왔다.
그 순간 한 몸으로 움직이던 보병사단이 삐걱거리기 시작했다.
총부리가 돌아가고 표적이 바뀌면서 당황한 보병사단이 삐끗거리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지휘관의 재빠른 조치가 이뤄졌다.
상혁이 머릿속에 그린 것은 마법에 대한 경험이 있고, 그에 대한 대처를 할 수 있는 지휘관이 포진한 보병사단이다.
환각, 환청 마법에 노출된 내부 병력들이 가차 없이 처단됐다. 내부의 혼란을 극대화하는 것보다 아군을 해치우고 질서를 다잡은 것이다.
그 순간 상혁의 양손에서 각기 다른 고서클의 마법 두 개가 피어올랐다.
더블캐스팅.
상혁의 두 눈은 물론, 내쉬는 숨결에서도 마나가 흘러나왔다. 그리고 상혁의 마나안 위로 복잡한 수식이 펼쳐지고 마력에 휩싸인 양손으로 수인을 맺었다.
불벽(Fire wall).
삭풍(Gust wind).
그 순간 보병사단이 갈라졌다. 그들의 사이로 불 벽이 피어올랐기 때문이다. 동시에 눈에 보이지 않는 예리한 칼날이 보병사단을 갈아버리기 시작했다.
화르륵!!
불벽과 삭풍만 해도 살벌한 위력인데, 거기에 바람과 불이 더해졌다.
삭풍이 불벽을 통과하는 순간 삭풍에 화염이 덧씌워졌다. 상혁은 보병사단이 우왕좌왕하는 것을 보면서 손을 들어 올렸다.
“에어로봄. 파이어 애로우.”
위이잉!!
상혁의 눈에만 보이는 언제든 터질 준비가 된 공기 폭탄이 보병사단 사이에 수십 개가 깔렸다. 5서클 중에서도 특출나게 많은 마나를 지닌 상혁에게 3서클의 에어로봄 수십 개를 까는 건 일도 아니다.
그리고 상혁의 주변으로 피어오른 불화살들.
상혁이 손짓을 하자 수백 개의 불화살이 각기 다른 궤적을 그리며 수십 개의 에어로봄에 꽂혔다.
콰과과광!!
그 순간 에어로봄이 터지면서 불화살에 담겨 있던 화염이 함께 터져 나갔다.
그 위력은 대인지뢰와 수류탄을 아득하게 뛰어넘는 수준.
반짝.
상혁은 다시 눈을 떴다. 그러고는 김태양을 쳐다봤다. 찰나의 순간이지만 상혁은 완벽하게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을 돌렸고 결론을 내놓았다.
“만반의 준비를 한 상태라면 30분.”
“30분이나 버틸 수 있다는 겁니까?”
김태양이 놀라서는 입을 떡 벌렸다. 보통이 아닌 사람이라고 생각했지만 상대는 수천 명으로 이뤄진 미국의 보병사단이다.
웬만한 국가는 그 한 개 사단 수준에서 정리가 될 정도의 규모가 미국의 1개 보병사단인 것이다.
그런데 그걸 상대로 30분을…….
“아니. 30분 안에 전멸시킬 수 있을 것 같은데. 만전 상태가 아니라면 한 시간 정도는 걸리겠고.”
상혁이 김태양의 착각을 수정해 주었다. 그 순간 김태양의 턱이 빠질 것처럼 벌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