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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 먹는 대마법사-136화 (135/249)

쓰레기 먹는 대마법사 136화

136. 마법사의 기만술(1)

상혁은 손수 따뜻한 차를 탔다. 아직 이사장실이란 곳 자체가 어색한 것투성이였지만 티백을 넣고 찻물을 위에 붓는 것 정도는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드세요.”

“가, 감사합니다.”

상혁이 잔을 건네자 피켓시위를 하고 있던 학생, 반도체 학과 3학년인 김도준은 고개를 꾸벅거리며 조심스럽게 잔을 받아 들었다.

“마시면 조금 안정이 될 겁니다. 너무 긴장하지 않으셔도 돼요.”

상혁은 빙글 웃으며 김도준에게 손짓을 했다. 김도준은 별로 차 생각이 없었지만 바로 앞에서 상혁이 그리 보고 있어 어쩔 수 없이 차를 한 모금 마셨다.

화악!

그 순간 김도준의 눈이 커졌다.

‘어?’

난데없이 새로운 이사장을 만나 독대까지 하게 되었다는 것에 딱딱하게 굳었던 긴장이 슬쩍 풀리는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건 그냥 기분 탓이 아니었다.

상혁의 손에서 반짝거리는 마나가 김도준의 몸으로 스며들었기 때문이다.

캄(calm) 마법을 사용한 상혁은 김도준의 호흡이 평상시처럼 돌아오자 그에게 물었다.

“자세하게 이야기해 주시겠어요?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그리고 왜 밖에서 시위하고 있었던 것인지 말이에요.”

상혁은 어렸다. 그러나 김도준은 상혁을 보고 한참 어른 같다고 느꼈다. 상혁의 눈이 담고 있는 세월을 은연중에 느꼈기 때문이다.

상혁이 일부러 그렇게 느끼라고 그런 눈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고.

‘이런 사람의 마음을 여는 건 어렵지 않지.’

상혁은 김도준이 조금씩 말문을 트는 것을 보면서 속으로 생각했다.

시위를 하는 것 자체가 어떻게 보면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 달라고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적절히 편안한 분위기만 조성해 주어도 알아서 말문을 트기 시작한다.

“제희는 그렇게 죽었어요. 그리고 우리는 진상 규명을 요구했지만 학교에서는…….”

반도체 학과 2학년인 박제희라는 학생은 성적우수자로 한국대 반도체 학과에서 매년 성적우수자의 미국 연수 프로그램에 뽑혀 한 여름 방학에 미국으로 향했다.

김도준도 그 연수 프로그램에 참여했는데 처음에는 좋았다고 한다.

미국의 SG전자 반도체 공장은 한국에 지어진 공장보다 최신 설비를 갖추고 있었고, 여러 공정을 직접 눈으로 볼 수 있었던 데에다 현직에 있는 선배들에게 귀중한 경험담을 들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문제는 그다음이었다고 한다.

‘조교 하나가 학생들을 인솔해서 유명 클럽에 갔다고 했지.’

SG전자 반도체 공장은 미국 텍사스에 있었다. 그리고 미국 연수 프로그램은 비단 공장만 둘러보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조교 인솔로 클럽에 간 건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한창 놀 때의 나이 들이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거기서 일이 벌어졌고.’

피해 학생뿐만 아니라 모든 학생들이 복잡한 클럽 내에서 뿔뿔이 흩어졌다고 한다. 돌아갈 시간이 됐는데도 피해 학생이 보이지 않았지만, 조교는 자신이 알아서 하겠다며 나머지 학생들을 돌려보냈다고 한다.

그리고 피해 학생이 그날 새벽 변사체로 발견됐다.

“조교는 못 봤다고만 말해요. 하지만 자신이 책임지겠다고 했잖아요. 책임은 조교한테 있는데 학과에서 나서서 조교를 감쌌어요.”

“책임자가 없는 거네요?”

“네. 불운한 사고였다면서. 하지만 그게 아니란 걸 알고 있어요.”

김도준의 눈 밑이 붉게 물들었다. 피해 학생과 꽤 가까운 사이였던 모양이다. 고등학교 때부터 친구인 과 동기라고 했다.

“기껏, 기껏 힘들게 아르바이트해서 번 돈으로 학비 내고 1년 다닐 수 있다고 했는데. 그랬는데…….”

아마 가정 형편도 어려운 학생이었던 모양이다. 하지만 여기서 드는 의문점에 상혁은 고개를 갸웃했다.

“가족분들은요? 그러니까 유족분들.”

“제희네 가족이요?”

김도준이 눈을 들었다. 짧은 사이에 그는 분노하고 있었다. 상혁은 김도준의 말을 듣고는 어떤 가족들인지 대충 이해하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형편이 좋지 않으니 그냥 합의금을 받고 입을 다물었겠군.’

아마 가족들은 학교 측에서 이 사실을 조용히 묻기 위해 지불하기로 한 합의금을 받고 입을 다물었을 것이다. 그러니 가족이 아닌 친구인 김도준이 홀로 시위하고 있었던 것이고 말이다.

“그리고 그다음 날 밤에 조교가 누구를 만나는 걸 봤어요.”

“만나요? 누굴?”

“모르겠어요. 하지만 그게 좋은 의도는 아닐 것이라고 확신해요. 그게 누군지만 알았어도…….”

미국 현지에서도 피해 학생과 관련된 사건은 일찍 종결됐다고 한다. 그리고 한국에서도 조교를 비롯한 교수는 자체 위원회를 통해 가벼운 징계만 받고 지나갔다.

그러나 죽은 학생을 위한 건 하나도 없었다.

“보호자나 가족 관계가 아니라고 아무것도 볼 수 없었어요. 사인이 무엇인지, 시신은 어땠는지 전부 다요. 그리고 아예 미국에서 화장까지 해 버렸으니까요.”

‘증거 인멸까지.’

상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 일에 백도현이 관련되어 있었다. 그렇다면 이걸 묻기 위해 직접 나선 것은 바로 백도현인 셈이다.

그러니 일개 학생인 김도준은 한참 늦은 다음에야 증거를 찾으려고 했을 것이다.

“도와주세요, 이사장님. 제희는 억울하게 죽었어요.”

김도준은 시뻘게진 눈으로 코를 훌쩍거렸다. 그는 진심으로 친구의 죽음에 슬퍼하고 있었다. 상혁은 웃음기 없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인 뒤 김도준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한번 알아보겠습니다.”

“부탁드립니다. 제발.”

김도준이 기어코 엉엉거리며 눈물을 터뜨렸다.

* * *

“부탁드립니다, 이사장님.”

“네. 무슨 말씀이신지 잘 알았습니다. 다시 한번 살펴보도록 조치를 취하도록 하겠습니다.”

“예.”

상혁은 코끝이 바닥에 닿을 것처럼 깊숙이 허리를 숙인 여학생이 문을 닫고 사라지자 눈썹과 눈썹 사이를 손끝으로 문질렀다.

“대충 여기까진가?”

“예.”

이창엽은 이제 자포자기한 표정으로 상혁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상혁은 무려 사흘 동안 학교에 출근해 마치 신문고가 된 것처럼 찾아오는 사람들의 억울한 사연을 들어 주었다.

사연은 정말 다양하기 그지없었다.

첫날 김도준처럼 그런 사건부터 시작해 그간 교내에 경직된 소통과 문화로 인해 벌어졌던 사제 간의 이야기들까지.

상혁을 찾아온 사람들은 그런 사건에서 약자의 포지션에 위치한 이들이었다.

첫날 김도준을 만나 그의 이야기를 들어 준 것이 소문이 나 지금껏 억울한 일을 당하고도 참을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이 상혁을 찾아온 것이다.

그리고 상혁은 그런 사람들의 방문을 막지 않았다.

원래 이사장이었던 최만금은 상혁처럼 직접 사람들과 대면하지 않았다. 상혁은 이창엽을 쳐다보며 말했다.

“내가 왜 이러는지 궁금합니까?”

이창엽은 입술을 오물거리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이창엽은 칼끝을 걷는 것 같은 아슬아슬함에 얼마나 가슴을 조였는지 모른다.

그러나 며칠이 지나자 이창엽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한국 최고의 대학이라 불리는 한국대 안에서 이런 수많은 부조리가 일어나고 있을 줄은 미처 상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아마 손님이 찾아올 겁니다.”

상혁은 이창엽에게 불쑥 말했다. 상혁은 일어나서 물을 끓이고는 찻잔에 쪼르르 따랐다.

달그락.

찻잔을 아무도 없는 자리에 내려놓은 뒤 허리를 편 상혁이 이창엽에게 말했다.

“그 손님을 보면 아마 이해하시게 될 겁니다.”

이창엽은 알쏭달쏭한 표정을 지었다. 그가 알기로는 오늘 누군가 만나기로 한 스케줄을 일정표에 없었기 때문이다.

아니, 있기는 했다.

엄밀히 말하면 그건 누굴 만나는 약속이 아니라 상혁이 비워 놓으라고 해서 비워 놓은 시간이었다.

그리고 그때.

“백 이사장님.”

누군가 문을 두드리고는 열고 들어왔다. 이창엽은 그 얼굴을 보고는 놀라 하마터면 뒤로 넘어질 뻔했다.

하지만 상혁은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처럼 손짓해 앞의 소파를 가리켰다.

“앉으시죠. 최만금 씨.”

전 이사장인 최만금, 그가 약속도 없이 찾아온 것이다. 최만금은 미리 자리에 놓인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찻잔을 보고서는 눈만 크게 떴다가 다시 원래대로 돌아왔다.

“제가 오실 걸 알고 계셨습니까?”

“예.”

상혁은 최만금을 보며 자신의 찻잔에 찻물을 채웠다. 마음 같아서는 탄산을 먹고 싶지만 힘들게 자신의 사연을 털어놓고 도움을 요청하러 온 사람들 앞에서 차마 탄산을 먹을 순 없어 차만 준비해 놓았다.

‘앞으로는 내 전용 음료를 사 와야겠군.’

속으로 중얼거린 상혁은 앉지 않고 자신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는 최만금과 눈을 마주쳤다.

“저를 오게 하시려고 그러신 겁니까.”

“뭐가요.”

“이사장은 고민 상담사가 아닙니다. 그래서 더 소문이 빨리 돌지요. 뒷방 늙은이가 된 제 귀에도 소식이 들어올 정도로.”

“글쎄요. 전 이사장으로서 할 일을 한 겁니다만. 행정부와 학부에서 처리하지 못하는 애로사항을 확인하는 거니까요.”

이사장에게는 그럴 권한이 있었다. 단지 지금까지는 직접 두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던 이사장이 없었기 때문에 혁신이 된 것이다.

“젊으니까 발로 뛰고 몸으로 부딪쳐야지. 제가 어디서 언제 학교를 운영해 봤다고 이사장실에 꿔다 놓을 보릿자루처럼 멍하니 앉아 있겠습니까.”

상혁이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그러자 최만금이 상혁에게 말했다.

“그러지 않으셔도 벌여 놓은 일이 있으시지 않습니까. 주드 포터의 오디션 같은…….”

“그런 건 최 학부장님이 알아서 하실 겁니다. 전문가시니까요. 전문가의 일은 전문가에게. 그게 제 신조입니다만.”

상혁은 고개를 갸웃했다.

“억울한 사연을 가진 이들을 담당하는 전문가는 없더군요. 그래서 제가 하려고 합니다. 가장 돈 많고 짱짱한 사람이 이런 걸 해야 그런 일이 다시는 벌어지지 않더군요.”

상혁의 말에 최만금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사장님.”

“예, 최만금 씨.”

“백이현, 백도현 사장님을 건드려서 좋으실 것이 없습니다.”

최만금이 본론을 곧장 꺼내 들었다. 그러자 상혁이 씩 웃었다. 상혁이 최만금이 올 것이라고 예상한 이유는 간단했다.

최만금은 백도현과 백이현의 약점인 반도체 학과와 건축학과의 사건에서 알려지지 않은 중요한 키를 쥐고 있었다.

“이미 건드렸는데요.”

“아직 늦지 않았습니다. 차라리 그걸 빌미로 두 사장님들에게 한국대를 운영할 수 있는 지원을 받으시는 게…….”

“그거군요.”

상혁이 최만금을 쳐다봤다. 그 순간 최만금은 어깨를 흠칫했다. 자신의 반의반도 살지 못한 상혁에게서 순간 뒷목이 오싹할 정도의 위압감이 느껴진 탓이다.

“당신이 두 사장의 비밀을 알고도 살아 있는 이유가.”

“…….”

최만금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상혁의 말이 정곡을 찔렀다. 로열패밀리의 비밀을 알고도 최만금이 목숨을 부지한 이유는 그가 그걸로 사리사욕을 챙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만약 그가 욕심을 부렸더라면 백이현이나 백도현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최만금을 죽여 비밀을 막았을 것이다.

“그게 뭐냐고 묻진 않겠습니다.”

상혁은 최만금을 보며 포식자의 두 눈으로 그를 응시했다. 최만금은 호랑이 앞의 사슴이 된 것처럼 옴짝달싹할 수 없었다.

“비밀을 알고 있는 당신에게 목줄 하나 걸려 있지 않을 리 없으니까.”

최만금의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상혁의 말이 정답이다. 최만금은 미국에서 유학 중인 자신의 딸에게 백이현이나 백도현이 붙인 감시자가 늘 있음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건 최만금만 알고 있었다.

이 세상의 어떤 것들은 차라리 모르고 있을 때가 더 나은 경우도 있었기 때문이다.

“대신 저 대신 일 좀 하시죠.”

“네?”

최만금은 자신도 모르게 반문했다. 상혁은 자신의 자리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면서 어깨를 으쓱했다.

“봐도 뭔지 모르겠네요. 전 경영 수업을 받은 것도 아니고, 경험도 없고요.”

거짓이다. 수백, 수천 명의 마법사를 거느린 마탑도 운영한 경력이 있는 상혁이다. 단지 귀찮을 뿐이다.

‘귀찮은 건 잘하는 사람에게 맡기면 그만이지.’

그건 이 세상의 영원불멸의 진리다. 백성철이 모든 일을 하지 않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대신 두 형님이 물어보면.”

상혁은 팔짱을 끼고는 다리를 꼬면서 씩 웃었다.

“숨기지 말고 다 말해 주세요. 내가 어디서, 누굴 만나고 뭘 하고 다니는지. 그거면 됩니다.”

최만금의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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