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 먹는 대마법사 135화
135. 처음 타 보는 비행기(5)
[신사 숙녀 여러분. 현재 우리 비행기는 난기류 구간에 진입하여…….]
덜컹 덜컹!
촤악!
윌리엄은 샴페인 잔을 잡으려다 기체가 흔들리는 바람에 샴페인 잔을 손가락으로 쳐 버렸다. 당연히 샴페인 잔은 앞으로 엎어졌고, 샴페인이 윌리엄에게로 왕창 쏟아졌다.
“…….”
뚝, 뚝, 뚝.
윌리엄은 가만히 테이블을 타고 뚝뚝 흘러내리는 샴페인을 응시했다. 그러자 잠시 후 얼굴이 하얗게 질린 윌리엄의 비서가 승무원을 독촉해 마른 수건을 가져와 윌리엄에게 묻은 샴페인을 닦고 쏟아진 샴페인을 훔쳐 냈다.
덜컹덜컹.
그 와중에도 비행기는 걷잡을 수 없이 크게 흔들렸다. 안전벨트를 매라는 신호가 띵 하는 소리와 함께 뜨고 승무원들도 서둘러 자신들의 자리에 돌아가 안전벨트를 맸다.
“하.”
윌리엄은 마치 놀이기구를 탄 것처럼 난기류를 만난 비행기가 요동치자 마음에 안 든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송구합니다, 사장님. 원래 난기류가 많은 구간이 아닌데…….”
비서가 어쩔 줄을 몰라 하며 사과했다. 난기류가 발생한 것은 비서의 잘못이 아니지만 그는 마치 자신이 죽을죄를 진 것 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옷이나 주세요.”
“예, 여기 있습니다.”
원래라면 글레이저 가문의 전용기를 타고 한국에 왔을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국내선 전용이 아닌 국제선을 비행할 수 있는 에어버스급 비행기는 전부 가문에서 먼저 쓰고 있었기에 어쩔 수 없이 국적기 중 한 곳의 일등석을 이용할 수밖에 없었다.
‘좁고, 춥고, 시끄럽군.’
한 번 타는 데 최소 천만 원이 깨지는 일등석이지만 윌리엄은 모든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가문의 전용기가 훨씬 더 넓고, 쾌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꾹 참았다.
글레이저 가문에서 어릴 적부터 제왕학을 배운 윌리엄은 외유할 때 자신이 써야 할 위선의 가면이 어떤 것인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괜찮으세요, 손님?”
그때 스튜어디스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윌리엄에게서 젖은 수건을 받아 들며 친절하게 물었다. 윌리엄은 전용기보다 나은 것이 그거 하나라고 생각하며 스튜어디스를 향해 부드럽게 웃어 주었다.
“괜찮습니다. 비행기가 흔들린 건데요.”
“죄송합니다. 잠시만 일어나 주시면 금방 정리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승무원은 윌리엄에게 친절하게 말했다. 윌리엄은 그녀가 비행 내내 은근히 눈길을 던진 것을 기억하고 있었기에 부드럽게 웃었다.
‘잠깐의 여흥으로 나쁘지 않겠군.’
윌리엄은 신사인 척을 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런데 그때.
덜커덩!!
쿠당탕!
비행기가 크게 흔들리면서 윌리엄의 발이 공중으로 30cm쯤 떠올랐다가 떨어졌다. 그러면서 균형을 이기지 못한 그가 비행기 내부를 우당탕탕 거리며 굴렀다.
“꺄악! 손님!!”
“사장님!!”
승무원과 비서가 아연실색해서는 윌리엄을 부축해서 일으켰다. 윌리엄은 머리가 띵한 것을 느끼며 자리에서 일어나서는 순간적으로 얼굴을 와락 일그러뜨렸다.
“이런…….”
욕이 입 끝까지 나올 뻔했지만 윌리엄은 가까스로 참았다. 기분 같아서는 기장과 부기장을 불러다가 아주 경을 치고 싶었다.
하지만 여기는 보는 눈이 많았다. 윌리엄은 머리를 부여잡고는 비서와 승무원의 부축을 받아 자신의 자리로 되돌아갔다.
흔들!
쿵!
“악!”
들어가기 전까지 한 번 더 흘린 비행기에 윌리엄은 칸으로 나뉜 일등석의 문간에 머리를 퍽 하고 찧었다.
“후욱…….”
윌리엄은 이마가 시뻘겋게 부어올라서는 자리에 누웠다. 속이 부글거리면서 끓어 올랐다. 이게 무슨 추태란 말인가.
자신이 바닥을 굴렀다는 것에 도저히 삭힐 수 없는 화가 뻗친 윌리엄이지만 그는 그 화를 꾹꾹 눌러 참았다.
자신이 한국에 오게끔 만든 사만다와 백상혁이란 놈에게 괜히 앙심이 더해지는 기분이었지만 윌리엄은 침착함을 되찾기 위해 크게 심호흡했다.
하지만 윌리엄의 불행은 그게 끝이 아니었다.
휘오오오!!
밖에서 심상치 않은 바람 소리가 기내에서도 들렸다. 말 그대로 지금 윌리엄이 탄 비행기는 유례없는 난기류에 가까스로 항로를 잡고 비행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지금껏 여객기가 나온 이후 난기류로 인해 비행기가 추락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윌리엄은 그에 난기류에 흔들리는 비행기를 무서워하지 않았다.
단지 불편하고 어지러울 뿐이다.
“기분이 나쁜 나라야.”
땅에 발을 딛기 전부터 공중에서부터 재수 없는 일이 연달아 일어나다니. 이런 비행은 윌리엄에게도 처음이었다.
그러니 당연히 한국이 도착하기 전부터 좋아 보일 리 없는 것이다.
드드드!!
그런데 그때 하필이면 윌리엄이 앉은 곳의 창문 중 하나가 심상치 않은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쩌억-!
그러더니 어느 순간 쩌억 소리가 나더니 유리에 금이 쩍하고 갔다. 그 순간 윌리엄은 눈을 크게 떴다. 순간적으로 비행기의 창문에 부딪힌 것을 기내에 있던 그만이 봤기 때문이다.
‘콜라 캔?’
투다다닥!!
그때 다급한 발소리가 들리더니 기내의 거의 모든 승무원이 달려온 듯 건장한 스튜어드가 몸을 날려서는 윌리엄을 덮쳤다.
“크억! 이, 이 무슨…….”
“손님! 지금 이곳에서 나가셔야 합니다. 어서요!!”
“이, 이봐!!”
질질질.
윌리엄은 결국 창문이 깨져 대참사가 일어날 것을 저어한 스튜어드의 거친 손길에 짐짝처럼 끌려나갈 수밖에 없었다.
‘비, 빌어먹을 대한민국!!’
* * *
[긴급사고로 인해 한국항공은…….]
[반면 경찰 측에서는 비행 중이던 항공기의 외창을 강타한 물건을 찾고 있으며…….]
상혁은 볼을 긁적였다. 그러고는 고개를 돌려 일호를 쳐다봤다.
“앞으로 조심해야겠군.”
“예, 마스터. 미처 상정하지 못한 범위의 문제였습니다.”
“그렇지.”
상혁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가나안과 지구가 다르다는 것을 머리로는 알고 있지만 아직 그게 자연스럽게 모든 행동에 반영이 될 정도는 아니라는 것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가나안과는 달리 지구의 하늘은 많은 것들이 돌아다니니까.’
만약 이곳이 가나안이었다면 오늘 상혁이 설치한 필터는 아무런 문제도 일으키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곳은 대한민국이고, 지구였다.
그리고 지구의 하늘에는 하루에도 수백 대의 비행기들이 지나가는 항로가 있었다. 그리고 하필이면 필터가 일으킨 기류 변화가 마침 상공을 날던 여객기의 비행에까지 피해를 끼친 것이다.
다행히 경찰이나 전문가들은 갑작스레 항공기의 외창에 손상을 입힌 그 무언가를 찾지 못하고 있었지만 그래도 조심해야 할 것이 하나 더 늘어난 셈이다.
“앞으로 필터가 가동했을 때는 주변에서 섭식 금지다.”
“예, 마스터.”
오염 물질을 흡수하여 정화하는 도중에 목이 말라 일호가 가져온 콜라가 문제를 일으킬 줄은 정말로 상상도 하지 못했다.
무엇보다 필터에 최대한 많은 오염된 공기를 빨아들이기 위해 기류 변화를 일으킨 것이 콜라 캔을 비행 고도까지 날려 보낼 줄은 더더욱 상상도 하지 못한 것이다.
오늘도 또 다른 교훈 하나를 배운 상혁에게 일호가 말했다.
“필터의 효과가 극대화된 것은 오늘 공기 질이 매우 나쁨이었기 때문인 것으로 파악했습니다.”
“공기 질이라. 그것도 미처 예상하지 못했군.”
공기 중의 미세먼지를 측정하고 그것으로 공기 질을 나누는 건 가나안에서는 아예 존재하지 않았던 개념이다.
오십 년이나 그곳에서 살다 온 상혁이 그걸 미처 떠올리지 못한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그래도 필터의 효율이 극대화된 덕에 예상치보다 더 많은 마나를 고리에 쌓은 상혁이다.
우우웅.
상혁은 마나안을 피워 올리며 마나 고리를 관조했다. 그러자 다섯 겹으로 만들어진 고리 위로 미약한 여섯 번째 고리가 생겨나는 것이 느껴졌다.
그것 역시 다섯 개의 고리가 그러했던 것처럼 마나를 가는 실로 꼬아 고리를 만들어야 하니 어마어마한 양의 마나가 필요할 것이다.
“방법을 찾았으니 일호. 너는 필터를 만드는 데에만 집중하도록.”
“예, 마스터.”
“보유한 마정석은 여섯 개이니 그에 맞춰서 준비하도록 해.”
“예, 마스터.”
상혁에게 남은 마정석은 여섯 개다. 일호는 아예 상혁이 상시 소지하고 다니면서 사용할 수 있는 필터도 만들겠다며 열의를 불태웠다.
한 번 상혁과 작업을 했으니 일호가 그것을 반영하여 필터를 만드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지금 이런 속도면 10년 뒤에나 6서클에 오르겠군.”
필터 하나로만 마나를 쌓는다면 십 년 정도가 걸릴 것이다. 십 년 동안 계속해서 오염 물질을 정화해야 6서클에 오를 수 있는 마나가 모일 것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상혁은 당연히 필터 하나로만 만족할 생각이 조금도 없었다.
“두 개면 5년.”
오늘 만든 필터를 만드는데 마나석 4개가 들었다. 마정석 6개가 있으니 하나는 더 만들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굳이 그렇게 단순 계산으로만 갈 필요는 없었다.
“마스터. 지금 설계대로라면 더 큰 부지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일호가 상혁에게 때맞춰 건의했다. 상혁도 알고 있는 문제였다. 필터를 만드는 데는 문제가 없지만 중요한 건 그 필터를 설치할 수 있는 부지다.
“오늘 설치한 필터보다 더 큰 크기의 필터는 지붕이 하중을 견뎌 내지 못할 가능성이 농후합니다.”
“더 큰 부지라.”
마나석 네 개로 필터를 만들었다. 상혁이 일호에게 시킨 것은 마나석 여섯 개를 들여 마나석 열 개로 구동할 수 있는 필터를 만들라는 소리다.
그렇다면 출력은 단순히 네 개에서 여섯 개가 늘어난 만큼만 늘어나지 않는다.
마나석을 이용한 마법진은 그 위력과 효과가 마나석 하나가 늘어날 때마다 최소 배로 늘어나기 때문이다.
십 년 동안 마나만 쌓을 시간은 없었다.
‘시시각각 위협이 닥쳐오니까.’
필요하다면 퀘스트 보상으로 받은 마나석까지 쓸 의향이 있었다. 상혁은 일호에게 말했다.
“일단 비슷한 크기의 필터를 하나 더 만들도록. 그래서 당장 쓸 수 있게. 마나석 열 개가 들어갈 수 있는 필터는.”
필터의 크기는 줄어들 필요가 없었다. 더 많은 양의 공기를 유입시켜 최대한 많은 양의 오염 물질을 확보하는 것이 최우선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 1서클 정도의 마정석으로는 지금 정도의 크기가 한계다. 마법이 이능 같은 기적을 발휘한다고는 하지만 그것도 결국 과학처럼 한계는 명확했기 때문이다.
“무인도를 하나 사서 그곳에 설치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아야겠군.”
큰 땅이 필요하면 무인도를 산다.
어차피 마법이 있으니 그곳을 드나드는 건 문제가 되지 않는다. 상혁은 고개를 끄덕인 뒤 일호에게 말했다.
“내가 알아볼 테니 필터를 하나 더 만드는 데 집중하도록.”
“예, 마스터.”
* * *
“한번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부탁드립니다.”
이선호에게 무인도를 살 수 있는지 지방자치단체에 알아봐 달라고 부탁한 상혁은 차에 올라탔다. 오늘 출근 인원은 어제보다 적었다.
이선호와 일호가 각자의 일로 빠졌기 때문이다.
대신 이창엽이 앞에 앉고 일영이 옆에 앉았다.
‘오늘이야말로 내 능력을 증명해야 한다.’
유능한 일호와 이선호가 사라진 것이 절호의 기회다. 이창엽은 상혁의 신뢰를 살 필요가 있었다. 상혁이 절묘하게 자신을 일에서 제외한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다.
오래간만에 하는 출근이었다.
이사장에 새로 취임해 놓고 여러 문제와 스캔들 때문에 학교에 나오지 못했다. 상혁이 탄 차가 교직원 전용 주차장으로 향했다.
“여기서 걸어 들어가신다고요?”
“그럴 겁니다.”
상혁은 굳이 주차장에서 내리지 않아도 됐다. 이사장이기 때문에 본관 입구에 내려도 상관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상혁은 굳이 고집을 부렸다.
이창엽이 그런 상혁을 만류했지만 다른 사람의 말을 들어먹을 상혁이 아니다.
그리고 본관으로 들어가는 상혁의 발이 한 피켓시위를 하는 학생의 앞에서 멈췄다. 그걸 본 이창엽의 안색이 노랗게 변했다.
‘설마 일부러?’
상혁이 본관에서 내리지 않은 이유를 이창엽은 눈치챘다. 이걸 위해서다. 본관에서 내리면 이렇게 거쳐올 필요가 없기 때문에 일부러 주차장에서 내린 것이다.
그러나 이창엽에게는 상혁을 말릴 명분이 없었다.
그 사이 상혁은 피켓시위를 하고 있는 학생에게 물었다.
“자살당했다라…… 지금 이 피켓에서 말하고 있는 학생과 무슨 관계입니까?”
피켓시위를 홀로 하고 있던 학생이 상혁을 쳐다봤다. 그러고는 눈을 크게 떴다. 지난 며칠간 뉴스를 시끌벅적하게 만든 낯익은 얼굴이 거기 있었기 때문이다.
백상혁 이사장.
학생은 자신보다도 어려 보이는 상혁을 보고는 침을 꿀꺽 삼켰다.
“과 동기입니다. 고등학교 때부터 친구이기도 하구요.”
“음…….”
상혁은 안절부절못하는 이창엽을 슬쩍 보고는 피식 웃었다.
“자세한 이야기가 필요하겠네요. 들어오시죠.”
이창엽의 안색이 새파랗게 질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