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 먹는 대마법사 134화
134. 처음 타 보는 비행기(4)
재계의 신비스러운 재벌에서 한순간에 상혁은 대한민국 세기의 스캔들의 주인공이 됐다.
대한민국 재벌과 할리우드 여배우의 밀회.
밀회라고 보기에는 이제 무리가 있었다. 사만다가 직접 한국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이 사실을 공표해 버렸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그러고 나서 상혁이 사만다와 에스랜드를 찾아 알콩달콩 여느 연인처럼 데이트를 하는 모습이 대한민국 전체에 쫙 뿌려졌다.
비단 대한민국뿐만 아니라 할리우드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 핑계로 상혁은 취임한 지 얼마 안 된 한국대도 출근하지 않았다.
기자들이 너무 몰려 비단 상혁뿐만 아니라 다른 이들까지 번거롭게 한다는 이유 때문에 아예 핸드폰도 꺼 버리고 잠적을 선택한 것이다.
지이이잉!!
그러나 상혁이 잠적을 한 건 단순히 기자들을 피하기 위함이 아니었다. 애초에 기자는 상혁의 핑곗거리일 뿐이지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후우.”
상혁은 땀으로 젖은 이마를 쓸어 올리며 덥다는 듯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부드럽고 시원한 미풍이 상혁의 땀을 식혔다.
“오래간만이네.”
상혁은 구기동 저택의 자신의 실험실에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상혁은 지난 사흘간 그 안에서 두문불출하며 어떤 작업에만 집중했다.
“일호, 마무리 지어.”
“예, 마스터.”
상혁의 말에 일호가 양손에 용접기를 들고는 안면 가리개를 내렸다. 그 모습이 마치 쌍으로 랜스를 든 기사 같아 상혁이 피식 웃었다.
화아악!
치이이익!!
마지막 용접 작업이 시작됐고 시력을 떨어뜨리게 할 것 같은 불꽃과 함께 철판이 녹으면서 붙기 시작했다.
상혁은 시원한 얼음물을 들이켠 뒤 후욱, 하고 속에 차올랐던 뜨거운 숨결을 내뱉으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마법이 편하긴 한데 접근성이나 효율성에서는 과학이 몇 배는 위군.”
거대한 전기집진식 필터.
상혁이 일호와 함께 밑그림만 그려 놓았던 것의 프로토타입의 완성을 목전에 둔 것이다. 5서클로는 여러모로 제약이 많았기 때문이다. 어서 6서클이 되어야 할 필요성을 느꼈기 때문에 상혁은 사흘 동안 실험실에서 먹고 자며 전기집진식 필터를 완성하는 데만 집중했다.
그리고 실제로 머릿속으로만 그리던 것과 실제로 만들기 시작하자 예상외로 꽤 많은 부분의 설계가 바뀌었다.
마법과 과학.
심오하기 그지없는 두 분야는 서로가 상호보완적인 관계로도 승화시킬 수 있었기에 여러모로 큰 깨달음을 얻었다.
마법과 과학은 서로 평행선을 달리는 법칙의 양극에 위치하는 진리가 아니라 서로 교차되는 부분도 많은 학문이란 것을 확실히 깨달은 것이다.
“휴우.”
상혁은 머리가 아프다는 듯 인상을 찌푸렸다.
결국 마법과 과학의 진리에 대해서 탐구하기 위해서는 공부와 실험이 필수다. 어차피 마법이야 평생이 공부와 실험이니 그리 낯설지는 않았다.
하지만 과학은 다르다.
상혁은 과학에는 거의 문외한이나 다름없기 때문에 벌써부터 아득해진 것이다.
“해야지 암. 그렇고말고.”
막연함과 기대가 동시에 공존했다. 상혁은 뒷머리를 긁적였다. 가나안처럼 그리 한가롭게 마탑에 틀어박혀 마법을 연구할 시간이 있을까 모르지만 그래도 짬이 나는 대로 해야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저 기계가 돌아가기 위한 모든 에너지는 마법으로 대체할 수 있다. 그리고 복잡한 회로 역시 마법진으로 대체할 수 있고. 그러나 동시에 지금 수준으로는 구현할 수 없는 마법진을 회로로 대체할 수 있으니까.”
상혁은 일호가 마지막 용접 작업을 하는 동안 거의 실험실 절반을 가득 채울 정도로 커다란 전기집진식 필터의 곳곳을 살피며 마지막 확인 작업을 마쳤다.
“이 정도 중노동은 거의 해 본 적이 없는데 말이지.”
상혁은 마지막 마법진 하나까지 확인한 다음 허리를 두드리는 시늉을 하며 상체를 쭉 폈다. 복잡하고 거대하지만 아름다운 이 녀석을 보라. 상혁은 히죽 웃었다.
“일호, 모든 데이터는 확보했지?”
“예, 마스터.”
“그럼 다음부터는 내가 필요 없겠네?”
“그렇습니다.”
상혁은 만족하기로 했다. 아예 새로운 것을 서번트인 일호가 창조해 낼 수는 없다. 비록 그가 상혁도 모르는 신비에 의해 학습이 가능한 서번트가 되었다고는 하나 창조는 전혀 다른 영역이다.
적어도 인공 생명체로는 넘볼 수 없는 영역임에는 틀림없었다.
‘혹시 모르지. 일호가 계속해서 학습하고 발전해 나간다면 달라질지도.’
그러나 적어도 상혁이 이렇게 한 번 보여 준 것은 일호가 다음번에는 상혁이 없이도 구현이 가능했다.
게다가 어차피 이 전기집진식 필터는 상혁의 마력으로 직접적으로 구동하는 것이 아니었다.
달그락.
“네 개인가?”
“그렇습니다, 마스터.”
“효율이 좋아야 할 텐데.”
퀘스트를 클리어하고 보상으로 받은 마정석 10개 중 네 개를 정화하여 마나석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필터에는 군데군데 비어 있는 곳이 있었는데 그곳에 마나석이 들어가 에너지원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일영과 함께 지붕에서 대기해.”
“예, 마스터.”
일호가 고개를 꾸벅 숙이고는 실험실 바깥으로 나갔다. 상혁은 문보다 확연하게 더 큰 전기집진식 필터를 보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따악.
상혁이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상혁의 손가락에서 뿜어져 나간 마나가 거대한 필터를 들어 올리기 시작했다.
상혁의 고리가 맹렬하게 회전하기 시작했다. 물건을 마나로 들어 올리는 텔레키네시스는 1서클의 기본 마법이지만 어떤 것을 들어 올리느냐에 따라 마력 소비가 기하급수적으로 달라진다.
끼익!
상혁이 손가락에 힘을 주자 미리 분리하기로 했던 대로 필터가 수십 조각으로 나뉘었다. 문으로 빠져나갈 수 있을 만한 크기로 필터를 가른 뒤 상혁이 손가락을 까닥했다.
휘익!
하나씩, 차례대로.
수십 조각으로 나뉜 필터가 질서정연하게 줄을 선 채로 문밖으로 빠져나갔다. 그리고 상혁이 실험실 밖으로 나가 저택의 지붕 위를 쳐다보자 그 지붕 위로 기계 부품들이 하늘을 날아 착착 조립되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주변에서 누군가 타인이 본다면 귀신이 곡할 노릇이라며 기겁할지도 모르는 노릇.
하지만 상혁의 마나안에는 지붕을 둘러싼 일루젼 마법의 마력 구조가 또렷하게 보였다. 상혁이 저택 안으로 들어가자 김경자가 앞치마를 두른 채 점심을 하다가 상혁을 마주쳤다.
“점심 드시겠어요?”
사흘 만에 보는 상혁이다. 상혁이 중요한 일을 하고 있다고 아들에게 들었기에 일부러 방해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상혁에게 이제 나왔느냐 등 자잘한 질문은 하지 않았지만 그녀의 두 눈에는 상혁에 대한 반가움이 또렷했다.
“감사하지만 이따 먹겠습니다.”
“그래요. 피곤하실 텐데. 올라가세요.”
김경자는 피곤한 사람을 괜히 붙잡았다면서 얼른 부엌으로 들어갔다. 분명 부엌에서 나오고 있었던 것 같은데, 상혁을 불편하게 하지 않겠다는 배려였다.
상혁은 2층으로 올라가 창을 통해 지붕 위로 날아올랐다. 그러자 그곳에는 이미 일호와 일영이 거대한 필터가 조립되고 있는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마스터.”
일영이 상혁을 향해 고개를 꾸벅 숙였다. 상혁은 일호와 일영에게 말했다.
“양쪽 잘 붙들어.”
“예, 마스터.”
“거기. 거기서 조금 아래로. 그렇지. 수평 유지해야지. 일호 조금만 더 들고. 일영은 뒤로한 발자국만.”
상혁은 마치 벽에 액자를 걸어 두고 수평을 맞추는 것처럼 일호와 일영에게 손짓을 해 가면서 조종했다.
만약 일호와 일영이 아니라면 중장비가 필요한 일이었다. 과학과 마법이 융합한 전기집진식 필터는 그 무게가 예상한 것보다 150퍼센트 이상 무겁게 결과물이 나와 버렸다.
대신 효율이 더 올라가 무거워도 사용하기로 했는데, 그러다 보니 놓이는 위치가 매우 중요해졌다. 그 무게를 견고히 견딜 수 있을 만한 위치에 놓아야만 했기 때문이다.
“다음번에 설계할 때는 경량화 마법도 고려해서 마법진 설계를 해야겠군.”
필터는 가나안에 없었던 종류의 아티팩트다. 그렇기에 상혁은 거의 마법진을 만들어 내는 수준으로 설계를 해야만 했다.
‘바람을 일으키고, 기류를 만들어 내고 움직이기 위한 온도조절 마법, 필터를 움직이고, 정전기를 일으키고, 모인 먼지를 한 곳으로 모아 넣고.’
기본적으로 다섯 가지의 마법을 새겨넣어야 했기 때문에 그 외의 마법은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그러나 사흘 만에 이만한 마법진을 설계한 것도 상혁이 대마법사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설치 완료했습니다, 마스터.”
잠시 뒤 구조적으로 이 무거운 필터의 무게를 완벽하게 견딜 수 있을 만한 곳에 필터를 설치했다. 필터를 고정하는 데 사용된 것은 당연히 마법이었다.
접착 마법과 바인드 마법.
1서클이지만 범용성이 넓은 두 가지 마법으로 필터를 완벽하게 고정한 것이다.
“태풍이 불어와도 견딜 수 있을 정도입니다.”
“어떤 태풍이느냐에 따르겠지.”
“대한민국의 일기를 관측한 1905년 이래로 관측된 태풍의 최소 두 배 크기는 되어야만 필터를 손상시킬 수 있습니다.”
일호가 정확하게 짚어서 말하자 상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신기한 눈으로 일호를 쳐다봤다.
“그런 것도 알아?”
“인터넷이란 곳에는 참 신기한 지식들이 많습니다.”
“그래?”
“아직 3퍼센트 정도밖에 학습하지 못했지만 점점 나아질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3퍼센트.
일호는 그 짧은 시간에 무려 인터넷의 3퍼센트나 되는 어마어마한 방대한 양의 지식을 습득했다.
‘걸어 다니는 인터넷이 되겠군.’
그런 일호를 보며 상혁은 눈을 반짝였다. 어쩌면 일호는 가나안에서도 신화 속에서만 나오는 아카식 레코드의 서번트 버전이 될지도 모른다는 우스꽝스러운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상혁은 품속에서 마나석을 꺼냈다.
마나를 품은 작은 돌. 마정석을 정화해서 마나석을 만들어 낸 상혁은 잠시 아깝다는 듯 마나석을 한 번 쳐다보고는 필터의 빈 홈에 마나석을 끼워 넣었다.
마나석 하나면 일호나 일영 같은 서번트, 골렘을 한 기를 만들어 낼 수 있다. 네 기를 만들어 낼 수 있는 마나석을 투자했으니, 부디 그 이상의 효율을 발휘해 주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작동시키겠습니다.”
일호가 그렇게 말한 뒤 스위치를 켰다. 그러자 필터에 박힌 마나석이 마나를 뿜어내면서 필터에 설계된 마법진에 차례대로 불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우우우웅!!
주변에 이 필터를 노출시킬 순 없었다. 누가 보더라도 눈에 띄는 모양새였기 때문이다. 그곳에서 퍼져 나온 소리가 마법 방벽에 부딪혀 바깥으로 나가지 못하고 사그라졌다.
“작동합니다, 마스터!”
일호가 상혁에게 그렇게 외쳤다. 그리고 상혁도 고개를 끄덕였다. 바람을 일으키는 마법진이 활성화되면서 바람이 일기 시작했다. 그리고 잠시 뒤 기류를 이용해 더 큰 바람을 일으키기 위해 화속성, 수속성 마법이 차례대로 작동하면서 기압을 만들어 냈다.
휘오오오!!
바람이 꽤 강해졌다. 그러자 필터의 프로펠러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주변의 공기를 필터가 빨아들이기 시작한 것이다.
그런데 그 순간.
“마스터! 제가 계산한 것보다 기압 차가 더 벌어지고 있습…….”
펑!
일호가 펑하는 소리와 함께 훨훨 날아서는 아래로 추락했다. 상혁은 이마를 탁 짚었다. 잘 나간다 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마법사에게 있어 실패는 항상 늘 곁에 있는 산소나 마찬가지인 친구였다. 그때 상혁의 눈이 커졌다.
위이이이이잉!
파츠즈즉!!
애초에 상혁이 예상한 것은 100배의 효율성이었다. 즉, 상혁이 직접 공기 중의 오염 물질을 모으는 것에 비해 100배 더 많이 모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말이 100배지 그걸로 마나를 쌓아 6서클로 올라가기 위해서는 짧아야 1년 이상 걸릴 것으로 예상했다.
길면 5년, 짧으면 1년.
그런데.
“미친.”
상혁이 미처 간과한 부분이 있었다. 대한민국, 특히 그중에서도 서울의 미세먼지 농도는 그 격차가 매우 크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오늘의 미세먼지는 ‘매우 나쁨’이었다.
“효율이 미친 듯이 좋잖아?”
거대한 필터가 덜컹거리면서 돌아가고 있었고 그곳에서 정전기가 발생하며 어마어마한 양의 공기 중의 오염된 물질이 모여들고 있었다.
그리고 그 효율은 상혁의 예상을 아득하게 뛰어넘었다.
“이 정도면 거의 500배? 아니, 700배 가까이 되겠는데?”
상혁은 두 눈을 반짝였다. 일호가 날아갔지만 어차피 일호는 서번트다. 그 정도로 죽을 리가 없었다. 대신 금방 넘쳐 버릴 저 미친 효율의 공기 오염을 처리하는 것이 더 급선무다.
절대로 상혁이 빨리 저 넘쳐흐르는 마나를 쌓고 싶기 때문이 아니었다.
“환경 보호 때문이지. 환경 보호.”
상혁이 필터에서 마지막으로 공기 중 오염 물질이 걸러져 나와 쌓이는 부분에 손을 넣고는 그 자리에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스으으읍!!”
상혁의 입가에 환희가 담긴 미소가 맺혔다. 그와 동시에 엄청난 양의 오염 물질이 상혁의 몸을 중심으로 정화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