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쓰레기 먹는 대마법사-133화 (132/249)

쓰레기 먹는 대마법사 133화

133. 처음 타 보는 비행기(3)

백도현은 자신도 모르게 입술을 혀로 핥았다. 그만큼 입술이 바짝바짝 탄다는 증거다. 상혁은 그런 백도현의 모습을 하나도 놓치지 않으며 입술을 오므렸다.

‘말을 해 줄까 말까 고민하는 것처럼.’

백도현은 상혁이 대체 사만다를 어디에서 만났는지, 그게 가장 궁금할 것이다. 엘릭서 프로젝트 때문이다.

사만다를 비롯한 다른 인체 실험의 희생양들이 어떻게 살아남았는지, 누가 그들을 살렸는지를 알게 된다면 글레이저 가문과 원탁 쪽에 오히려 목소리를 높일 수 있는 계기가 되기 때문이다.

‘백도현의 성격이라면 벌써 다른 줄을 붙잡았을지도 모르지.’

원탁의 정적이라 불리는 프리메이슨의 끈을 벌써 붙잡을지도 모르는 백도현이다. 백도현은 SG그룹이라는 제국의 황좌에 앉기 위해 외부에서 힘을 끌어오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제국이니까.

황제가 되는 순간 그 모든 것들을 갚고 자신만의 제국을 운영해 나가면 된다고 생각하고 있을 놈이었다.

‘그렇다면 간단하지.’

상혁은 속으로 씩 웃었다. 백도현이 듣고 싶은 말을 해 주면 된다. 그러면 백도현은 아마 자신이 거기에 살을 덧붙여서 믿고 싶은 대로 믿을 것이다.

‘대마도사 일란이 등장할 때군.’

이런 경우를 대비해 상혁은 이미 여러 시나리오 시뮬레이션해 보았다. 그리고 백도현은 자신이 믿고 싶은 대로 믿을 것이다.

그렇다면 슬쩍 흘려 주기만 하면 된다.

상혁의 뒤에 누군가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게 백성철이나 그런 게 아니라 백도현만 알고 있는 무언가라는 비밀을 알려 주면 백도현은 믿고 싶은 대로 자신이 알아서 믿을 것이다.

그게 저 스스로가 똑똑하다고 믿는 수많은 광오한 이들이 치명적인 약점이었다.

“저도 사실은 누군지 잘 모릅니다.”

“잘 모른다?”

“네. 단지 글레이저 가문이라는 것만 말해 주더군요. 사만다를 보호하는 이유로요.”

백도현은 심장이 쿵쾅거리며 뛰는 것을 느꼈다. 상혁의 입에서 글레이저 가문이란 이름이 나왔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상혁의 뒤에는 진짜 그가 모르는 무언가 있다는 소리다.

“널 도와준 사람이 누군데?”

“그것까진 잘 모르겠어요. 사실 제가 회장님 조카라는 것도 그쪽에서 먼저 접근해서 알려 준 거라. 그런데 생각해 보면.”

상혁은 백도현을 보며 이야기를 지어내기 시작했다. 상상력으로 먹고사는 것이 마법사다. 그중에서도 대마법사, 대마도사라 불렸던 상혁은 상상의 나래를 마구잡이로 넓혀 나갔다.

어차피 믿는 건 백도현이 알아서 믿을 것이기 때문이다.

“어릴 때부터 도움을 받은 것 같아요. 그게 아니라면 인생이 꽤 힘들었을 것 같은데.”

‘작은아버지의 사망 후 상혁이의 소재는 아버지도 찾지 못하셨지. 그때부터 누군가 상혁이를 도와줬다는 건가.’

상혁의 아버지인 백성운의 사망 이후 상혁의 소재를 백성철조차도 찾지 못했었다는 것이 백상혁 배후설에 의도치 않은 도움을 주었다.

백도현은 다급히 상혁에게 물었다.

“그래서 뭘 원한대?”

“그것까지는 몰라요. 그냥 도움만 받는 처지라.”

상혁은 그렇게 말하고는 말끝을 흐렸다. 너무 말이 많았다는 후회 섞인 표정도 슬쩍 흘리는 것을 잊지 않았다.

그러자 몸이 달아오른 건 백도현이었다.

상혁이 이야기를 하다가 말자 자신만이 아는 비밀의 문이 닫히는 듯한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글레이저. 그리고 원탁. 반대 세력이 프리메이슨만 있는 게 아니었다는 말인가? 그게 아니면 프리메이슨?’

상혁은 눈알을 굴리는 백도현을 즐거운 마음으로 지켜봤다. 상혁을 앞에 두고도 머리를 굴리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리는 듯했다.

‘욕심 많은 놈.’

백이현과 백도현, 더 나아가서는 백성철까지 이 집안사람들은 선천적으로 욕심이 많은 듯했다.

그러나 그게 상혁에게 나쁠 것은 없었다.

결국 제 욕심이 제 발목을 붙들고, 결코 잃고 싶지 않아 하는 이 거대한 제국을 결국 허물어 버릴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까지만 말할게요. 형님이 제게 말씀해 주신 비밀은 딱 이 정도인 것 같네요.”

백도현은 이제 조금 상혁이 이해가 간다는 표정을 했다.

상혁의 저 어른스러움. 그러니까 고시나 준비하던 스무 살답지 않은 의연함과 여유가 믿는 구석이 있기 때문에 나온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심각한 오해였지만 상혁에게는 나쁠 것 없는 오해다.

“그럼 SG에 들어온 것도 널 도와주는 사람들이 원하는 거였어?”

상혁은 허수아비다. 백도현은 그렇게 생각했다. 누군지는 모르지만 상혁의 배후에 있는 이들이 상혁을 SG에 집어넣은 것도 의도가 있을 것이다.

만약 그게 SG그룹을 삼키기 위해서라면 경계해야 한다.

원탁과 프리메이슨, 미국을 암중에서 조종하는 이 두 조직 못지않은 조직일 확률이 높았기 때문이다.

그게 아니고서야 원탁에서 은밀하게 추진했던 엘릭서 프로젝트 같은 것을 미리 알고 방해했을 리 없다.

‘모리조 가문도 대충 짐작만 하고 있었던 거니까.’

이미 백도현은 프리메이슨의 모리조 가문과 만났다. 미국 대사와 함께 방한한 모리조 가문의 담당자에게 백도현은 엘릭서 프로젝트의 전말에 대해서 이미 자신이 알고 있는 모든 정보를 넘겼다.

그러나 지난번 일로 백도현은 프리메이슨도 믿지 않았다.

그런 상황에 또다시 나온 암중 세력이라니.

“아니요.”

상혁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상혁은 백도현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눈을 감고도 맞출 수 있었다. 그가 상혁을 경계하는 건 간단했다.

상혁의 뒷배가 상혁을 SG그룹의 회장으로 만들려는 것이 아닌가 하는 걱정이 들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SG그룹에 아무런 관심이 없다고 하면 오히려 믿지 않겠지.’

의심 많은 백도현은 상혁이 SG그룹에 관심이 없다고 하면 더 믿지 않을 것임을 잘 알았다. 이 세상에 이유 없는 호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적당한 구실로 욕심을 부려야 한다.

“SG 전체에는 관심 없어요.”

“그럼?”

“전자.”

상혁이 말하자 백도현의 눈이 커졌다. SG전자는 현재 SG그룹을 먹여 살리고 있는 대표적인 계열사다. 더불어 SG전자가 글로벌 기업으로 발돋움할 수 있었던 것 자체가 SG전자 때문이다.

한마디로 알짜 중의 알짜라는 이야기.

“그걸 원해요. 그리고 나도, 내 아버지 유산으로 그 정도는 원하구요.”

유산과 배후세력이 원하는 것.

그 두 가지가 맞아떨어져 상혁이 SG에 들어왔다는 뜻이다. 그 말을 듣자 백도현의 눈에 서린 강한 경계심이 오히려 옅어졌다.

‘그러면 말이 된다.’

백도현이 직접 겪은 상혁은 남에게 휘둘리는 꼭두각시는 아니다. 그러니 상혁에게 아무런 욕망이 없다면 오히려 믿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배후세력의 니즈와 상혁의 욕망이 맞아떨어진다.

그렇다면 상혁의 모든 행동이 말이 된다. 그러나 백도현은 여기서 한 가지를 더 깨달았다.

‘그 세력이 아직 백상혁을 믿는 건 아니군.’

상혁은 그들에게서 일방적으로 전달을 받고 시키는 대로 움직이는 것 같았다. 물론 명령을 받는 정도는 아니지만 그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일에만 도움을 주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거기에 상혁은 지금껏 단 한 번도 그들의 얼굴조차도 보지 못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오히려 내가 더 적합할 수도 있겠군.’

원탁이 추진하던 엘릭서 프로젝트를 사전에 파악하고 훼방을 놓았을 정도의 조직이다. 그 정도라면 오히려 자신이 더 적합할지도 모른다.

“전자는 무리야.”

“그건 형님이 회장님이 되셨을 때 이야기고요.”

상혁은 짐짓 그런 백도현을 도발했다. 하지만 백도현은 상혁의 도발에 넘어가지 않았다. 오히려 귀엽다는 듯 씩 웃었다.

“전자는 우리 SG그룹의 시작이자 끝이야. 내가 사장이라서 그런 소리를 하는 건 아니고. 아마 전자를 넘겨주느니 양패구상을 하려고 들 거다.”

상혁은 입을 슥 다물었다. 여기까지다. 상혁은 적절히 백도현 앞에서 치기 어린 모습도 보여 주었다.

‘질러. 얼른.’

상혁은 넘어올 듯 넘어오지 않는 백도현을 보면서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때 백도현이 그에게 말했다.

“어디 한번 열심히 해 보렴. 전자를 가져가는 게 쉽지는 않을 거다. 네 배후가 누군지는 몰라도 우리 SG도 만만치 않거든.”

백도현이 씩 웃었다. 상혁은 그런 백도현을 보면서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만약 백도현이 이 자리에서 상혁에게 배후를 소개해 달라고 했다면 상혁이 원하던 그림이 안 나온다.

팔자에도 없는 1인 2역을 해야 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백도현이 저렇게 나왔다?

‘몰래 접선하려고 하겠지. 나를 24시간 내내 쫓아다녀서라도.’

그게 오히려 편하다.

“그냥 보내 주시는 건가요?”

“왜. 형님이나 회장님한테 밀고라도 할까 봐?”

“네.”

상혁의 솔직한 말에 백도현은 씩 웃었다. 그러면서 속으로 생각했다.

‘아무리 애늙은이라고 해도 이럴 때는 영락없는 애송이군. 경험이 없어.’

상혁이 일부러 그러는 줄도 모르고 백도현은 상혁을 무시한 뒤 대답했다.

“형님이 있으니까. 너랑 내가 싸우면 득을 보는 건 형님이랑 회장님뿐이야. 난 내 시간과 노력을 들여서 남을 이롭게 해 줄 생각이 없거든. 대신 네 비밀과 내 비밀을 공유했으니 우린 더 긴밀한 사이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르지.”

“긴밀한 사이…….”

“네 원대한 꿈은 네가 회장이 되어야만 이룰 수 있으니 너에게도 나쁜 제안은 아닐 거다. 그 의미로 사만다의 일은 내가 도움을 줄 수 있을 것 같은데.”

백도현은 확실히 야망이 컸다. 그리고 머리가 잘 돌아갔다. 백이현처럼 깡패들을 보내는 것이 아니라 백도현은 서로 비밀을 공유하지 않았냐며 은밀한 연대를 제안했기 때문이다.

상혁이 고개를 갸웃했다.

“사만다요? 왜요?”

사만다에게 왜 도움이 필요한지 모르겠다는 듯 연기했다. 백도현은 그런 상혁을 보며 그 배후세력이 상혁을 중용하지는 않고 있다는 자신의 예상에 확신을 더했다.

엘릭서 프로젝트에 대한 것을 상혁이 하나도 모르고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너도 짐작은 하고 있을 텐데. 그 스캔들을 기획한 게 네 배후일 테니까. 둘이 사귀는 사이도 아니잖아.”

“그래도…….”

상혁이 일부러 두 눈에 미련을 가득 담았다. 그리고 그걸 모르는 사람이 본다면 영락없이 백도현처럼 생각할 것이다.

‘사만다에게 빠진 건가? 그 계집이 예쁘긴 하지.’

상혁이 사만다에게 반했다고. 그래서 기획된 스캔들이지만 상혁은 사만다와 헤어지는 것을 아쉬워한다고 말이다.

“뭐 사만다의 일을 해결한다고 해서 무조건 헤어지는 건 아니지. 조만간 내가 사람과 함께 찾아가지. 그때 사만다도 함께 만나는 걸로 해. 그 전에 사만다를 설득하건, 이해시키든지 하는 건 네 능력이고.”

상혁이 볼을 슬쩍 붉혔다. 제 마음을 들킨 데서 부끄러움을 느끼는 척을 한 것이다. 백도현은 여자 따위에게 휘둘리는 상혁을 보면서 속으로 혀를 끌끌 찼다.

‘허당인가. 교육이 모든 걸 해결해 주는 건 아니지. 경험이 없는 온실 속 화초일 뿐이군.’

그렇다면 자신이 이용해 먹을 수 있다. 백도현이 상혁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럼?”

“보고 결정하죠.”

상혁이 백도현과 악수를 나누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백도현은 피식 웃고는 빈손을 내렸다.

“그러지.”

* * *

“재밌군.”

윌리엄 글레이저는 전 세계에 대문짝만하게 난 열애설 기사의 사진을 죽 훑어 내리면서 중얼거렸다.

그 안에는 놀이공원에서 찍힌 상혁과 사만다의 얼굴이 있었고, 그 뒤로는 호텔 앞에 내려 정답게 귓속말을 나누는 둘의 사진도 찍혀 있었다.

“사만다가 다른 남자를 보고 웃는다라.”

윌리엄의 두 눈에 소유욕이 번들거렸다. 사만다는 그에게 있어 빛나는 트로피 중 하나였다. 비록 그 트로피가 제 발로 진열장을 뛰쳐나갔기에 부술 수밖에 없었지만, 그럼에도 사만다는 자신의 트로피였다.

그런데 그 트로피가 부서지지도 않고 남의 손에 들려 있다니.

그 사실이 윌리엄에게는 썩 유쾌하지 않았다.

“이렇게 되면 사만다를 건드릴 수 없겠네.”

SG그룹의 로열패밀리인 상혁과 이런 사진까지 찍힌 사만다다. 이런 와중에 사만다가 사라진다? 자칫하면 SG그룹에서 나설 수도 있었다.

물론 그럴 확률은 낮지만, 사람의 마음을 100퍼센트 다 꿰뚫고 있는 것이 아닌 다음에야 글레이저 가문이 그런 도박을 걸 수는 없었다.

“백도현과는 경쟁자라고?”

“그렇게 파악하고 있습니다. 애당초 백성철 회장이 조카인 백상혁을 그룹에 들인 이유가 백도현과 백이현을 견제하기 위한 것으로 보입니다.”

“야심 많은 두 아들과 욕심 많은 왕이라. 그리고 그사이에 들어온 칼. 어울리는 한 쌍이긴 하군. 둘 다 도구일뿐이니.”

그래도 기분이 나쁜 건 나쁜 거다. 윌리엄은 비서에게 말했다.

“전용기 준비시켜. 한국으로 간다.”

“예?”

“한국으로. 주한미군 주둔 비용 협상 때문에 시끄럽잖나. 그것 때문에 간다고 해.”

“하, 하지만 프랭크 의원님께서.”

비서가 말을 더듬거리자 윌리엄은 표정이 사라진 얼굴을 들어 비서를 쳐다봤다.

“넌 누구의 비서지?”

윌리엄의 눈빛과 목소리는 얼어붙을 것처럼 차가웠다.

“죄송합니다. 준비하도록 하겠습니다.”

“두 번의 용서는 없다.”

“예, 도련님.”

비서는 고개를 숙였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