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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 먹는 대마법사-129화 (128/249)

쓰레기 먹는 대마법사 129화

129. 형 대접을 받고 싶으시거든(4)

“건배.”

쨍!

백이현과 상혁은 마치 기계가 된 것처럼 위스키 한 병이 바닥을 드러내기 전까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서로 바라보면서 술잔만 기울였다.

상혁은 눈 하나 깜박하지 않고 독주를 연신 들이켜는 백이현을 보면서 속으로 피식 웃었다.

‘사내인 척하고 싶은 건가.’

40도가 넘는 위스키를 한 병이 다 빌 때까지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마시는 백이현은 모르는 사람이 보면 꽤 남자다워 보일 것이다.

문제는 그런 연기가 상혁에게는 하등 통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렇게 마셔 봤자 속만 버리지.’

우물우물.

백이현은 상혁이 구워 온 고기에 젓가락 한번 대지 않았다. 하지만 상혁은 태연하게 백이현이 바라보는 와중에도 안주까지 챙겨 넣으며 술을 계속해서 마셨다.

그렇게 위스키 한 병이 바닥을 드러냈다.

그러자 백이현이 입을 열었다.

“난 말이다 상혁아.”

“예.”

“내 걸 건드리는 걸 아주 싫어해.”

“그렇습니까?”

내 소유를 건드리는 걸 좋아할 사람은 없다. 그 상대가 자신이 항거하지 못할 정도의 강자라면 모를까.

백이현이 지금 그 말을 하는 건 상혁이 자신보다 약자라고 생각해서 말하는 것일 터다. 상혁은 실소가 새어 나오는 것을 참았다.

“누가 형님의 것을 건드렸습니까.”

“응.”

백이현은 짧게 대답한 뒤 상혁을 쳐다봤다. 그 뒤에 생략된 것이 바로 상혁이라는 것 정도는 세 살짜리 어린아이도 느낄 정도로 노골적인 시선이었다.

“제가요?”

“우리 연기는 하지 말자. 아버지가 널 데려온 건 나와 도현이를 견제하기 위함이겠지. 한국대를 너에게 맡긴 것도 아버지가 다 아시고 있기 때문이고.”

백이현은 지금 제 입으로 한국대에 자신과 백도현의 약점이 있다는 것을 밝혔다. 상혁이 슬그머니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그런가요.”

“모르는 척하긴. 네가 바보가 아니란 것쯤은 나나 도현이도 다 알아. 대체 어디서 배워 왔을까 싶지만.”

상혁의 이력은 아주 깨끗하다. 상혁이 오십 년을 가나안에서 보낸 세월을 증명할 방법이 없으니 이력만으로는 상혁을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상혁은 이레귤러다.

지구의 상식과 논리가 통하지 않는 유일한 존재인 셈이다.

“그래서 제게 기자들을 보내셨습니까.”

“그래서 네가 날 찾아오는 게 더 자연스러우니까. 혹여 누군가 의심을 하고 있더라도 변명을 대기에도 충분하고.”

“도현 형님 말씀하시는 겁니까?”

백이현은 말없이 씩 웃었다. 백이현이 백도현보다 한 발 더 빨랐다. 백도현은 워낙 신중한 놈이니 전후 사정을 파악해 본다고 하다가 늦었을 것이다.

반면 백이현은 과격하지만 여우처럼 영리하다. 백도현처럼 상황을 다 보고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제가 움직이면서 돌발 상황에 대처하는 방식인 것이다.

“어차피 넌 회장이 되지 못해.”

백이현은 불쑥 그렇게 말했다.

“아버지는 널 칼로 쓰기 위해 데려온 거다. 우리 두 형제를 견제하기 위해서.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면…….”

백이현은 뒷말을 굳이 이어 나가지 않았다. 하지만 그 안에 담긴 메시지는 명확했다. 백이현과 백도현, 어느 쪽으로 줄을 탈 것인지 결정해야 한다는 뜻이었다.

하나를 택한다면 당연히 자신의 줄이라는 뜻이었고.

그러나 그도 꿈에는 모를 것이다.

상혁의 목표는 회장이 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부모님을 죽인 이 SG그룹을 갈기갈기 찢어 버리는 것이다.

백성철 회장이 제 혈육보다도 아꼈던 SG그룹이 공중분해 되는 것을 지켜보게 만드는 것이 상혁의 목표라는 것을 말이다.

어차피 손으로 쥘 수 없는 그림자에 백이현과 백도현은 손을 휘두르고 있었다.

“무슨 말씀하시는지 잘 알겠습니다. 그럼 말입니다 형님.”

상혁은 백이현에게 말했다.

“도현 형님이 한국대에서 숨기고 싶어 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알려 주시죠. 그럼 한번 찾아보겠습니다.”

“그걸 나한테 넘길 거냐.”

“합당한 대가를 치러 주신다면야.”

상혁이 그렇게 말하자 백이현이 껄껄 웃었다. 대가를 요구하는 사촌 동생을 백이현은 믿을 수 있을 것인가 머릿속으로 저울질을 열심히 했다.

이 말을, 똑같이 백도현에게 가서 할 것이란 것도 고려를 해야 한다.

만약 이게 상혁의 기만술이라면 그것에 말린 순간 자신과 백도현은 상혁에게 약점 하나씩을 잡힌 것이 된다.

백성철 회장이 상혁에게 기대한 대로 상혁이 두 형제 사이에서 그 약점을 쥐고 중재하고 조율할 수 있는 자리에 앉게 된다는 뜻이다.

상혁은 고민하는 백이현을 보며 피식 웃었다.

‘참.’

화악!

상혁의 마나가 꿈틀거리며 마법이 펼쳐졌다. 그 마법이 펼쳐지는 순간 백이현의 눈빛이 변했다.

‘너희들의 의지를 강제하지는 않으마. 네 의지로 네게 그걸 털어놓는 것이다.’

상혁은 백이현의 눈빛이 바뀌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상혁은 굳이 이들의 정신을 지배하지 않았다. 그래서는 복수의 의미가 없었기 때문이다.

자기가 내린 결정으로, 제 손으로 백성철의 제국이 무너지게끔 만드는 것. 그것이야말로 백성철과 욕심 많은 두 아들에게 내려질 수 있는 가장 가혹한 벌일 것이다.

“한국대에 반도체학과가 있다.”

“SG전자에서 후원하는 학과를 말씀하시는 거군요.”

SG그룹이 한국대의 재단을 맡은 이후 SG전자에서는 양질의 인력을 공급받기 위해 반도체 학과를 신설했다.

그러고는 그곳을 졸업한 학생들을 곧바로 SG전자의 특채로 뽑아갔다. 입학만 하면 대한민국 최고 기업인 SG전자에 입사할 수 있다는 것 때문에 한국대의 반도체 학과는 선풍적인 인기를 구가하고 있었다.

그곳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SG반도체 사업부의 미래 인재를 키워 내기 위해 단순 R&D뿐만 아니라 SG반도체 사업부에 필요한 거의 모든 분야의 인재들을 길러 내는 곳이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성적우수자를 뽑아 매년 미국으로 연수를 간다. 미국에 지은 최신식 SG반도체 공장을 직접 견학하고, 미국 법인에서 실습도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지.”

그건 몰랐다. 미국 연수까지 보낼 줄이야.

“그런데 연수를 갔던 학생 한 명이 죽었다.”

“예.”

사망사고라.

“미국에서 총기 사고에 의해서 희생당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사실은 다를 거다. 그때 미국 법인에 중요한 미국 정계 쪽 사람이 있었거든.”

상혁이 눈살을 찌푸렸다. 하필이면 미국 정계라. 그리고 학생이 그곳에서 죽었고. 상혁은 백이현에게 물었다.

“설마…….”

백이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거길 한 번 파 봐.”

“그러죠.”

만약 상혁의 머릿속에 그려진 가설이 사실이라면 이건 백도현이 직접 나선 일이다. 그리고 미국과 백도현이 연결 지어지자 머릿속에서 엘릭서 프로젝트까지 생각이 미쳤다.

“그럼 여기까지. 아마 조만간 도현이도 널 부를 거다.”

백이현과 무슨 대화를 나눈 것인지 궁금해서라도 부를 것이다. 상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쪽은 입단속에 철저하지. 네 쪽은…….”

이 안에서 있었던 모든 일을 말하는 것이다. 백이현이 말끝을 흐리며 우려하려고 하자 상혁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네 명입니다. 어렵지 않지요.”

“이창엽. 김대엽 실장 사람으로 알고 있는데.”

“그러니까 형님. 의심받지 않으려면 말입니다.”

상혁이 손목을 빙빙 돌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한테 한 대만 맞읍시다.”

“어?”

쫘악!

상혁의 손바닥이 냅다 백이현의 뺨을 후려쳤다.

* * *

상혁이 백이현의 뺨을 후려쳤고, 그것 때문에 경호원들이 뛰어들어와 상혁을 끌어냈다.

이 소식은 재빠르게 SG 전사 내에 퍼졌다.

다른 것도 아니고 로열패밀리들 간의 다툼이었기 때문에 내부 인트라넷은 대체 그 둘이 무슨 일로 싸운 것인지에 대한 궁금증으로 터져 나갈 지경이었다.

오죽하면 누군가 그 사실을 기자에게 알려 기자가 회사 이름과 상혁과 백이현의 이름을 다 가린 채 기사를 썼을 정도.

사만다 허드와의 열애설에 이어 이번에도 화제의 중심에 선 상혁은 히죽거리며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거. 손맛이 죽였는데.”

백이현은 얼굴 살이 좀 있었다. 거기에 해를 많이 봐서 그런지 딱 때리기 좋게 고동빛으로 얼굴이 잘 익어 있었다. 거기에 적당한 기름기까지 더해지자 정말 손맛이 끝내줬다.

물론 갑자기 때렸기 때문에 백이현이 황당한 표정을 지었으나 화를 내진 않았다. 상혁이 이렇게 돌발 행동을 한 이유를 머리로는 이해했기 때문이다.

[다음번엔 내가 하지. 꼭.]

그래도 맞은 게 억울했는지 다음번에는 자신이 하겠다고 한 백이현이지만 그에게 그럴 기회는 주어지지 않을 것이다.

“다음은.”

“잠실의 에스랜드입니다.”

“사만다 허드.”

“예.”

상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백이현의 뺨을 갈기자마자 상혁은 곧바로 에스랜드로 가야만 했다. 잠실의 에스랜드는 SG그룹 산하의 놀이공원 중 한 곳이다. 서울 안에 있었기 때문에 늘 사람들로 넘쳐 나는 곳이었다.

그곳에 상혁이 사만다와 가는 이유는 간단했다.

“적절히 궁금증은 풀어 줘야지.”

사만다와의 열애설 때문에 궁금해하는 사람들에게 적당히 미끼를 던져 주기 위함이다. 더불어 사만다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을 놈들에게 보여 주기 위해서 기도했다.

이제 그들이 신경 써야 할 것은 사만다가 아니라 SG도 있다는 것을 보여 주기 위함이다.

“그건 사실입니까? 백도현이 모리조를 만난다는 거.”

“예. 그쪽 비서실에서 나온 정보입니다.”

이창엽이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상혁의 비서가 된 후 처음으로 무언가 도움이 될 만한 일을 했다는 생각 때문이다.

엘리트 코스를 밟은 비서인 이창엽이지만 상혁의 몇 안 되는 수행원들은 너무나도 그 능력들이 뛰어나 꿔다놓을 보릿자루가 된 듯한 느낌을 받던 이창엽이다.

“왜죠.”

“그것까진 모르겠습니다. 아마 미국 공장과 관련된 일이 아닐지…….”

상혁은 그게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글레이저 가문을 견제하기 위함인가?’

백도현은 한국 내 엘릭서 프로젝트의 추진 책임자다. 그런데 상혁이 끼어들어 엘릭서 프로젝트가 완전히 망가졌다.

그 결과 백도현과 글레이저 가문 간의 협조는 끊겼다.

서로가 서로에게 책임 소재를 미뤘기 때문이다. 그러나 백도현 홀로는 글레이저 가문이 벅차다고 느꼈을 것이고, 그래서 모리조에게 손을 내밀었을 것이다.

‘글레이저 가문의 정적.’

미국의 정치 명문가 중 한 곳이 글레이저라면 그곳의 대표적인 정적이 바로 모리조 가문이다.

“언제, 어디서 만나는지도 알아봐 주세요.”

“예, 이사장님.”

이창엽은 씩씩하게 대답했다. 밥값을 했다는 뿌듯함 때문이다. 상혁을 감시해야 한다는 최우선 목적을 잊은 것 같았지만 말이다.

부아아앙!!

“어, 어?”

그런데 그때 상혁이 탄 차 옆으로 두 대의 검은 승합차가 거세게 속도를 높이더니 에워쌌다. 그러더니 앞뒤로 검은 세단이 딱 붙어서는 상혁의 차를 에워쌌다.

“이사장님!”

오승택과 이창엽이 놀라서는 상혁을 쳐다봤다. 이건 습격이다. 그때 상혁의 핸드폰이 위잉 하고 울렸다.

“형님?”

백이현의 전화였다. 상혁이 백이현의 전화를 받자 그가 느릿한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말했지? 내 걸 건드리는 거 싫어한다고. 그런데 로비가 많이 더럽더라고.]

백이현이다. 조금 전 자기 사장실에서 백도현의 비밀을 알려 주며 자신에게 협조하라고 했던 백이현인데 사람을 보낸 것이다.

‘미친놈인가?’

상혁이 순간 고개를 갸웃했지만 이건 실제상황이었다.

[그래서 그 값만 좀 받아 내려고. 그 차. 좀 망가뜨려도 되지?]

차만 망가뜨리겠다는 것이다. 상혁이 로비에서 불판에 고기를 구워 먹었다고. 협조는 협조고, 이건 이거라는 듯한 백이현의 말에 상혁이 피식 웃었다.

[반항하지는 마. 그냥 차만 부수고 끝낼 거니까. 괜히 나섰다가 사람 다치면 슬프잖아. 그렇지?]

그러면서 동시에 자신이 상혁보다 우위에 있다는 것을 심어 주기 위함인 것 같았다. 일종의 힘자랑인 것이다.

경거망동하지 말라는 경고인 셈이다.

“형님.”

[응, 동생.]

주변 상황만 아니라면 정겨운 사촌끼리의 통화라고 착각할 것이다. 상혁이 그런 백이현에게 말했다.

“형님 대접을 받고 싶으시거든 형님답게 구시죠.”

[응?]

“한 번은 그냥 넘어가 드리겠습니다. 형님이시니까. 대신 여기 있는 애들은 형님 대신 벌 좀 주겠습니다. 그걸 보고 명심하세요. 형님 대접도 이 이상 없다는 것을요.”

[흐흐흐흐. 믿는 구석이 있는 모양이네. 한번 해 봐.]

백이현이 그렇게 말하고는 뚝 하고 끊었다. 오승택이 긴장한 표정으로 말했다.

“저희 차를 갓길로 몰고 있습니다. 어떻게 할까요.”

국도가 아닌 자동차 전용도로다. 주변에 쌩쌩 나다니는 차 외에는 없다는 뜻이다. 그러니 이렇게 과감하게 나왔으리라.

상혁이 키득거리며 웃었다.

“가자는 대로 가줘. 그리고 일영아.”

“예, 마스터.”

“치워. 죽이진 말고.”

“예.”

이창엽은 설마 하는 표정으로 상혁과 일영을 쳐다봤다. 일영이 예상외의 실력을 갖추고 있다는 것은 알았다.

하지만 이런 위급 상황은…….

‘위급인가?’

상혁의 표정을 본 이창엽은 혼란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상혁은 지금 이 순간이 재밌다는 듯 웃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상혁이 탄 차가 네 대의 차에 둘러싸인 채 갓길에 멈춰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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