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 먹는 대마법사 128화
128. 형 대접을 받고 싶으시거든(3)
SG전자가 SG그룹이 새롭게 발견한 먹거리이자, SG그룹을 세계 최대 반도체 기업으로 만들어 준 분야라면 SG건설은 SG그룹의 근간이자 전통을 상징하는 회사였다.
토목과 건설.
전통 산업 중에서도 큰돈이 움직여야만 하는 SG건설은 SG그룹을 대한민국 1위 그룹으로 만드는 데 혁혁한 공을 세운 회사였기에 백이현이 그런 SG건설의 사장직을 수행하고 있다는 건 SG건설이 여전히 SG그룹의 주요 산업 중 하나라는 것을 뜻한다.
그리고 백이현은 그런 SG건설의 왕이었다.
“이거 봐라.”
상혁은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마자 그렇게 말하면서 피식 웃었다. 분명 이곳은 지구였다. 신분제가 철폐되고 자유민주주의가 도입된, 그런 자유로운 나라.
하지만 상혁은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는 순간 다시 조선으로 돌아온 듯한 느낌을 받았다.
‘머리 좀 썼네.’
경복궁도 그렇고 가나안의 왕궁도 그렇고 이 왕이란 존재들은 늘 자신이 다른 일반인들과는 다르다는 것을 느끼고 싶어 하는 족속들이다.
그리고 그건 자본주의의 왕인 SG건설의 백이현 역시 마찬가지였다.
도열한 경호원들은 마치 왕을 지키는 근위대 같았고, 그 뒤에 기립한 비서들은 궁녀들이었다. 마치 사열하듯 상혁을 기다리고 있는 그들이었다.
‘백성철과는 또 완전히 다른 유형이네.’
백이현은 과시하기를 좋아하는 성격이다. 그게 딱 지금 이곳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여기저기 값비싼 그림들은 보나 마나 하나에 수억은 호가할 것 같았고 인테리어 자체가 회사가 아니라 마치 어딘가 궁전에 들어온 것 같은 느낌이었다.
부스럭.
그런 곳을 상혁은 손에 고기를 싼 봉지를 달랑거린 채 걷고 있었다. 키득거리며 상혁이 웃었다.
“저건 얼마나 합니까?”
상혁은 아예 비서에게 그림 하나를 콕 짚어서 물었다. 그러자 비서가 보이지 않는 식은땀을 흘리며 대답했다.
“정선 이재 선생의 그림으로 경매에서 15억에 낙찰된…….”
“그림 한 장에 15억? 형님이 저런 걸 좋아하십니까?”
그럴 리 없다. 호방하고 남자다운 것을 좋아하는 척을 하는 백이현이다. 그러나 그 속내는 구렁이 같은 놈이다. 저것 역시 보여 주기의 일환이지 백이현은 그림이건 조각이건 1도 관심이 없을 것이다.
“사모님께서 그쪽으로 조예가 깊으십니다.”
“아, 형수님.”
아나운서 출신에 미대를 졸업한 재원으로 알려진 백이현의 아내다. 나이 차이가 15살이나 나 한때 인터넷을 뜨겁게 달군 커플이기도 했다.
27살에 결혼한 백이현은 아래에 딸 하나와 아들 하나가 있었는데 그 딸의 나이가 스무 살로 상혁과 동갑이라고 했다.
똑똑똑.
천장까지 통째로 뚫어 만든 거대한 문 앞에 상혁이 섰다. 그러고는 왕에게 고하듯 비서가 문을 두드리자 문이 곧바로 열렸다.
“비서실장 유원태라고 합니다. 안에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상혁은 유원태를 보는 순간 얼굴을 살짝 찡그렸다.
백이현의 비서실장.
지금껏 상혁이 보아 온 비서실장들은 전부 다 이 바닥에서 굴러먹을 대로 굴러먹은 노회한 사람들이 주를 이뤘다.
하지만 유원태는 많이 봐줘야 서른 중반.
백이현의 비서실장을 하기에는 지나치게 젊은 나이다.
거기에 한 가지 더 거슬리는 것이 있었다.
‘저놈, 사람 죽여 본 눈빛인데.’
사람이 사람을 죽인다는 건 살겁을 뒤집어쓴다는 소리다. 그렇게 한 번 손에 피를 묻힌 자는 어떻게든 그것이 몸에 표식으로 남는다.
다른 이들을 알아보지 못하지만 살인자끼리 서로가 서로를 알아보는 이유가 그래서다.
상혁이 유원태를 보자마자 피 냄새를 맡은 것도 그 때문이다. 야만과 원시의 가나안에서 살아남은 상혁이었기에 느낄 수 있는 것이기도 했다.
‘비서실장이라기보다는 딱 정보 길드나 암살 길드 애들 느낌이 나는데 말이지.’
상혁 정도의 수준에 이르게 되면 그냥 보고 느끼는 것이 근거가 없는 결론으로 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백상혁입니다.”
부스럭.
상혁은 고기 봉지를 든 손을 내밀었다. 그러자 고기 냄새가 훅하고 풍겨 올라왔다. 마늘과 고기가 섞인 냄새가 자욱하게 퍼졌다.
그러나 유원태는 눈 한 번 깜박이지 않았다.
“이쪽으로 오시지요.”
유원태가 들어가자 안에서 기다리고 있던 경호원들이 다가왔다. 그들의 손에는 검문 장비가 들려 있었다. 유원태가 상혁에게 양해를 구했다.
“들어가시기 전에 검문 한번 하겠습니다.”
상혁은 히죽 웃었다. 왕을 알현할 때 몸에 지니고 있는 위험물건에 대해서 검문하고 검색하는 것은 당연한 절차다.
백이현은 자신을 진짜 왕으로 생각한다는 뜻이다.
“왜요. 내가 형님을 해칠 무기라도 들고 왔을까 봐?”
“아닙니다. 그저 절차상 필요한 일이니 협조 부탁드립니다.”
유원태는 상혁이 백성철의 조카임을 알고 있음에도 표정 한 번 바뀌지 않았다. 백이현의 명령만이 중요하다는 전형적인 충복의 자세.
상혁은 피 냄새가 짙게 나는 이놈이 백이현을 하늘처럼 떠받들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백이현이 암흑가를 후원하는 건가? 이 정도면 후원이 아니라 사실상 주인이 백이현일지도 모르겠군.’
알려져 있지 않던 정보다.
상혁이 조금 더 SG그룹 내 파고들 시간적 여유가 있었다면 모르지만 상혁이 알아낸 정보의 범주 안에 이런 건 없었다.
‘이상할 일은 아니지.’
음지에서 활동하는 자들은 대부분이 양지를 희망한다. 그렇기에 그들은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이들의 개가 된다.
언젠가 자신들도 양지로 나아갈 수 있기를 바라며 양지의 높은 곳에 있는 이들과 전략적 제휴를 맺는 것이다.
명색이 전략적 제휴지 사실은 종속 관계다.
그리고 가나안에서 힘깨나 쓴다는 귀족들은 전부 다 이런 놈들을 하나씩 자신의 영지 내에 거느리고 있었다.
영주로서, 귀족으로서 차마 그 체면 때문에 할 수 없는 것들을 그들을 통해 시키거나 법적으로 금지된 사병을 불법적인 방식으로 늘리기 위해서다.
그러니 백이현이 피 냄새나는 놈들의 실질적인 주인인 것도 이상한 건 아니다.
‘이곳이라고 해서 주먹이 필요하지 않은 건 아니니까.’
돈이 전부인 세상이라고 해도 주먹의 필요성은 사라지지 않는다. 아마 백이현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저놈들도 다 피 냄새나는 놈들이네.’
상혁은 검문 장비를 들고 있는 놈들도 전부 다 피 냄새가 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니까 여기까지가 백이현의 진짜 친위대란 소리다.
이중으로 경비를 해놓은 것을 보면 백이현은 호방한 척하면서도 보신주의자이자 과시적인 성격이란 것을 알았다.
그럼 상혁은 한번 건드려 보기로 했다.
“싫다면요?”
“예?”
유원태가 처음으로 반문했다. 설마 상혁이 싫다고 할 줄은 몰랐다는 뜻이다. 하지만 금세 평정심을 되찾았다.
‘백이현에게 들은 게 많은 모양이군.’
백이현에게 상혁이 백성철 앞에서 보인 것 등 많은 것을 들은 모양이다. 그리고 당장 로비에서 태연하게 고기까지 구워 먹고 올라온 상혁이니 만만치 않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표정이 유원태의 얼굴에서 드러났다.
“그럼 들어가실 수 없습니다.”
“그래요?”
“예.”
유원태는 이쪽의 절차를 따르지 않는다면 그 누구도 백이현을 만날 수 없다면서 가슴을 쭉 폈다. 그러자 상혁은 어깨를 으쓱였다.
“하는 수 없지. 빈손으로 갈 수도 없으니 하십시다.”
상혁이 먼저 두 손을 들었다. 그러자 유원태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상혁은 유원태에게 고기가 든 봉지를 건넸다.
“내가 심혈을 기울여서 구운 겁니다. 형님이랑 같이 먹으려고. 그러니까 잘 들고 계세요.”
“예.”
백이현의 친위대가 상혁의 몸에 금속탐지기를 들이밀었다. 그 친위대의 얼굴에도 상혁을 어려워한다는 등의 표정은 일체 찾아볼 수 없었다.
상혁이 백성철의 조카라는 것을 알고 바짝 얼어붙었던 한국대의 교원들과 비교하면 차이가 날 수밖에 없었다.
그 정도로 백이현이 휘하의 이 친위대들을 완벽하게 사로잡았다는 뜻이다. 상혁은 이들이 백이현이 죽으라고 하면 망설임 없이 죽을 것이라는 것도 알 수 있었다.
‘그놈에게 무슨 매력이 있다고.’
백이현의 매력을 보지 못한 상혁이었기에 의문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어쨌거나 잠시 후 금속탐지기가 훑고 지나갔지만 아무런 소리가 나지 않았다.
아무것도 없다는 뜻.
그러자 유원태가 상혁에게 다가와 고개를 꾸벅 숙였다.
“번거롭게 해 드려서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그게 이곳의 법이라면 따라야죠. 전 손님인데.”
상혁은 사람 좋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하지만 상혁을 안내한 비서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까 전 상혁을 로비에서부터 봤던 그에게는 저 모든 것이 연기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유원태는 모른다.
“그런데요.”
“예.”
“위험한 게 발견이 안 됐는데도 위험할 수 있으면요?”
“예?”
유원태가 고개를 갸웃하려는 순간 상혁에게서 의념으로 움직이라는 명령을 받은 일영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일영은 누가 보더라도 화려하게 생긴 미녀였기 때문에 그런 일영에게 무시무시한 괴력이 있을 것이라 그 누구도 상상하지 못한다.
텁.
뻐억-!
그 때문에 일영의 손에 너무나도 쉽게 친위대 둘의 머리가 붙잡혔고 그 둘은 일영의 힘에 서로 박치기를 하고는 눈이 풀려서는 쓰러졌다.
그것을 보고 다른 친위대 둘이 달려들어 일영을 붙잡았다. 하지만 일영은 그들의 힘을 우습다며 조롱하기라도 하듯 양손으로 각기 한 명씩을 제압해 찍어누른 뒤 공중으로 뛰어올라 양발 차기로 또다시 둘을 썩은 고목처럼 넘어가게 만들었다.
쿵, 쿵.
콰직!
일영이 금속탐지기를 들고는 그대로 허벅지에 대면서 그걸 꺾었다. 상혁은 유원태를 보며 어깨를 으쓱했다.
“사실 뭐 딱히 무기가 필요한 건 아니라서.”
유원태의 눈이 커지고 숨이 거칠어졌다. 설마 자신들의 안방이나 다름없는 이곳에서 상혁의 경호원이 저렇게 움직일 것이라고는 상상하지 못한 것이다.
거기에 실력이 예사롭지 않았다.
나름 고르고 골라서 실전 경험과 깡이 좋은 이들로 엄선을 한 것인데 그 넷이 숨 한두 번 내쉴 시간에 뻗었다.
상혁은 유원태에게 말했다.
“뭐, 그냥 그렇다고요. 감히 회장님 조카인 저한테 금속탐지기를 들이밀어서 기분 나빠서 그런 게 아니라.”
유원태는 자신이 방심했음을 깨달았다. 상혁이 줄곧 말을 잘 들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상혁이 숨긴 발톱을 유원태는 보지 못했다.
“형님, 저 왔습니다.”
상혁은 유원태를 뒤로 한 채 제 손으로 문을 열었다. 그러자 왕좌처럼 생긴 커다란 의자에 떡하니 앉아 있던 백이현이 웃는 낯으로 일어섰다.
“오랜만이야, 동생.”
“일찍 찾아뵀어야 하는데, 조금 늦었습니다.”
상혁은 백이현에게 넉살 좋게 웃어 보인 후 곧바로 손에 들고 있던 봉지를 풀었다.
“형님께서 바쁘시다고 해서 이 동생, 로비에서 한 발자국도 안 움직이고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고기가 너무 맛있더라구요. 형님도 식사 안 하셨죠?”
회의는 거짓말이다. 백이현은 당연히 점심도 든든하게 먹었다. 하지만 백이현은 웃는 낯을 유지한 채 고개를 끄덕였다.
“고기 좋지. 고기 가져온다는 소식 듣고 내 끝내주는 위스키도 하나 준비해 뒀거든. 한잔할까?”
“일 안 하셔도 됩니까?”
“일이야 내일 해도 되는 거지. 응? 동생이 왔는데 이 형님이 시간 좀 못 뺄까. 으하하핫.”
백이현이 화통하게 웃었다. 하지만 상혁은 그 순간 백이현의 눈이 미묘하게 자신의 어깨를 넘어 뒤로 간다는 것을 느꼈다.
뻗은 친위대와 부서진 금속탐지기, 그리고 굳은 유원태까지.
상혁은 기감으로 그가 그것을 훑었다는 것을 깨달았지만 내색하지 않고 오히려 더욱더 환하게 웃었다.
“그거 좋지요. 저희 둘이서만 한잔할까요?”
“그럼.”
백이현이 그렇게 말하자 상혁이 고개를 돌려 일호와 일영, 이선호와 이창엽에게 말했다.
“나가서 기다려.”
“예, 이사장님.”
이창엽이 대표로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그들이 문을 닫고 나가자 백이현이 웃으며 찬장으로 가 비싼 위스키 한 병을 들고 와서는 수정으로 된 마개를 뽑았다.
호박빛의 액체가 크리스털 잔에 찰랑거리며 차올랐다. 백이현이 잔을 들어서는 상혁에게 건네고는 남은 한 잔을 들었다.
“건배.”
“건배.”
구밀복검(口蜜腹劍). 웃으며 배에는 칼을 숨기다.
각자 다른 칼을 숨긴 상혁과 백이현이 웃으며 크리스털 잔을 기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