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 먹는 대마법사 125화
125. 어디든 쥐새끼는 있다(5)
“이, 이사장님.”
집 앞에서 상혁을 기다리고 있던 이창엽은 이 시간에 집에 돌아오는 상혁을 보고는 놀라서 그를 쳐다봤다.
상혁은 그런 그에게 손을 슬쩍 들어 올렸다.
“일찍부터 나와 계시네요.”
“안에 계시는 줄 알았는데…… 나가 계셨던 겁니까?”
이선호와 오승택에게는 밤에 다녀올 곳이 있다고 미리 말을 해 두었다. 그런데 이창엽이 전혀 모르고 있었다는 건 그 둘이 상혁의 소재지에 대해서 입을 다물었다는 뜻이다.
어떻게 보자면 이창엽이 왕따 아닌 왕따를 당하고 있는 셈이지만 그는 조금도 위축되거나 실망한 기색이 없었다. 마치 이럴 줄 알았다는 듯 의연하게 대처하고 있었다.
“잠시 볼일이 있어서.”
“예.”
전혀 믿는 눈치가 아니었다. 하긴, 이제 아침 8시이니 상혁이 일호, 일영과 함께 들어오는 모습을 보면 그 누구도 믿지 않을 것이다.
그런 이창엽의 마음을 읽은 상혁을 피식 웃고는 대문을 밀었다.
“자.”
뽀르르!
초아가 머리카락을 헤집고 날아오르며 나무 찰싹 달라붙었다. 천생이 풀의 정령인 초아는 이사 오고 난 뒤 마당에 있는 나무를 가장 좋아했다.
살랑살랑.
초아는 어디서든 살 수 있었지만 가장 좋아하는 건 바로 나무였다. 나무 속으로 초아가 슥 사라지자 기분이 좋은 듯 나무가 나뭇잎을 팔랑거리는 듯했다.
“오셨어요?”
“예.”
“아침상 차려놨어요. 드세요.”
오승택, 오승환 형제의 어머니인 김경자가 손을 씻으며 상혁을 맞았다. 그런데 상혁을 보는 눈이 묘한 것이 그녀도 뉴스를 본 모양이었다.
“뉴스 보셨습니까?”
“네. 뉴스에 온통 그 이야기뿐이더라구요.”
상혁에 의해 치매가 진행되는 속도가 현저하게 느려진 김경자는 가끔 망각했지만 건망증이 조금 심한 정도의 모습만 보이며 일상생활이 가능해졌다.
궁금한 기색이 가득한 김경자에게 상혁은 쓰게 웃었다.
“그런 사이 아닙니다.”
“저도 알고 있어요. 두 사람이 그런 사이가 아니라는 건요. 그냥 잘 어울리겠다 싶어서. 그런 게 가장 예쁠 나이잖아요?”
정신적으로는 일흔 살인 상혁이 그걸 모를까. 하지만 단지 정신적으로 일흔이다 보니 20대인 사만다가 여자로 느껴지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거기에 사만다에 대한 흥미는 이성으로서가 아니라 짝퉁 엘릭서를 주입하고도 살아 있는 연구대상에 대한 흥미가 더 강했다.
“뭐…….”
“아이고 내 정신 좀 봐. 알아서들 잘하실까. 그냥 부러워서 하는 소리라고 생각하세요. 젊은이 부러워서.”
김경자는 자신이 너무 깊이 끼어들었다고 생각한 것인지 얼른 없던 일로 하고서는 웃으며 자신의 방으로 쏙 들어갔다.
멍한 표정을 지은 상혁은 뒷머리를 긁적인 다음 식탁에 앉았다.
소복하게 담은 쌀밥에 된장찌개, 잘 구운 생선과 김치, 그리고 김까지.
아침으로 먹기에 딱 부담 없는 정갈한 한 상이 김을 모락모락 피워 냈다. 그걸 보자 지난 밤에 소비한 에너지를 깨달은 듯 몸에서 음식을 넣어 달라고 아우성을 치는 것이 느껴졌다.
“아. 벌써 다 먹었네?”
한 숟갈 먹는다고 생각했는데 정신을 차려 보니 한 그릇을 모두 다 비웠다. 집밥의 위력이 이렇게 무섭다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 상혁은 그릇을 챙겨 자리에서 일어났다.
상혁이 많이 먹는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음식은 더 있었다. 상혁이 그렇게 또다시 2라운드를 시작하려는 순간 상혁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하아.”
탁.
손에 들고 있던 수저를 내려놓은 상혁은 인상을 찌푸리면서 중얼거렸다.
“밥 먹을 때는 개도 안 건드린다던데.”
밥그릇 앞에 앉은 개를 건드리면 그때의 개는 주인도 문다. 그런데 상혁은 개보다 훨씬 더 사납고 성격 더러운 마법사였다. 이런 집밥을 즐기려는데 자신의 감각에 걸려 기분을 잡친 놈들에게 상혁의 눈빛이 사나워졌다.
“쥐새끼들이 어디서 이렇게 기어 나오는 거야?”.
자신의 평온을 훼방한 그놈들은 쥐새끼였다. 상혁이 일영에게 말했다.
[한 놈만 잡아 와.]
[예, 마스터.]
일영의 기척이 사라졌다. 그와 동시에 상혁은 이쪽 집을 쳐다보고 있던 기척들이 놀라서 사방으로 흩어지는 것이 느껴졌다.
“기자인가?”
나지막하게 중얼거린 상혁이 일어나 마당으로 나갔다. 그러자 잠시 후 대문 밖이 시끄러워졌다.
[무, 무슨 일입니까?]
[이거 놔! 지금! 당신! 사람 때린 거야! 어? 폭행죄와 재물손괴죄로 고소하기 전에 이거 놔!!]
당황한 이창엽의 목소리와 일영에게 붙잡혀 오고 있는 놈의 목소리였다. 상혁이 염력 마법을 사용해 손가락을 까닥한 뒤 집을 슥 쳐다보고는 손가락을 튕겼다.
“사일런스.”
침묵 마법.
힘들게 아침을 한 김경자와 오승환이 아직 집 안에 있었다. 게다가 괜히 동네 시끄럽게 해서 좋을 것이 없었기 때문에 침묵 마법을 걸어 둔 상혁의 눈에 대문이 저절로 끼이익 하고 열리는 것이 들어왔다.
“들어와.”
“예, 도련님.”
일영이 당황과 분노가 반반 섞인 얼굴로 손을 풀려고 안간힘을 쓰는 남자의 멱살을 붙든 채로 들어왔다. 그 뒤를 이창엽이 따라 들어와서는 상혁에게 물었다.
“이, 이사장님. 지금 이게…….”
“지금 제게 물을 게 아닙니다.”
일영이 남자의 품속에서 지갑을 꺼냈다. 그리고 그 안에서 명함을 꺼내서는 이창엽에게 건넸다. 이창엽은 명함을 보고는 두 눈을 크게 치켜떴다.
“기자…….”
“제가 사는 곳. 누가 더 알고 있습니까?”
“회장님과 비서실장님 외에는 모르십니다.”
백이현과 백도현에게도 흘러 들어가지 않았다는 소리다. 그렇다는 건 어디선가 샌 것이다. 상혁은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이창엽을 빤히 쳐다봤다.
그 정도도 생각해 내지 못한다면 김대엽은 등신을 상혁의 곁에 붙인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이창엽의 표정이 변했다.
“그렇다면 비서실 내에…….”
“기자들에게 흘리진 않았을 겁니다. 하지만 두 형님이라면 모르죠. 그러니까 이제 알아보면 됩니다.”
상혁은 일영에게 눈짓을 했다. 그러자 일영이 잡고 있던 멱살을 놓았다. 기자가 늘어난 자신의 셔츠를 손으로 누르면서 일영을 죽일 듯이 노려봤다.
“지금 이게 무슨 짓입니까. 이거 언론탄압입니다. 예? 기자를 폭행하신 거라구요.”
“귓구멍이 막힌 건가, 아니면 머리가 나쁜 걸까.”
기자가 당황한 눈으로 상혁을 쳐다봤다. 상혁의 기도가 한순간에 뒤바뀌었기 때문이다. 삼류 인터넷 언론사의 연예부 기자인 이명청은 입술을 파르르 떨었다.
‘무슨 눈이…….’
한심하다는 듯 자신을 쳐다보는 상혁에게서 느껴지는 기운이 마치 조폭들의 보스와 마주한 것 같았기 때문이다.
딱 한 번 접대와 향응을 받기 위해 갔었던 강남 룸살롱에서 우연히 마주친 조폭 보스가 딱 저랬다.
옆에 있기만 해도 피가 흐를 것 같은 느낌.
하지만 이명청은 이름처럼 멍청했다.
“배, 백상혁 씨. 나, 당신 얼굴 봤습니다. 그러니까 제 카메라 부수고 제 동료들 폭행한 거, 경찰에 신고하면 시끄러워질 겁니다.”
권력자나 유명인들이 기자들을 귀찮아 하고 싫어하는 이유는 그들이 시끄럽기 때문이다. 알 권리라는 포괄적인 해석이 가능한 것으로 기자들은 막무가내로 달려들곤 하기에 귀찮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시끄럽다고 그냥 반쯤 죽여 놓자니 보는 눈들이 있었다.
이명청은 이번에도 그럴 것이라 굳게 믿었다. 그는 출처를 모를 곳에서 어제 대한민국을 떠들썩하게 만든 스캔들의 당사자인 백상혁의 주소를 받았고 실제로 이곳에 와서 백상혁을 만난 최초이자 유일한 기자다.
‘웬만하면 손을 내밀 거야. 그러면 단독으로 인터뷰해서 내면…… 특진에 보너스까지!’
그 누구도 따내지 못한 백상혁과의 인터뷰다. 그게 가능할 것이라 믿은 이명청이지만 상혁은 그를 보면서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그러니까 당신, 귓구멍이 막힌 건지 멍청한 건지 모르겠다고.”
“말이 너, 너무 심한 거 아닙니까!”
“아니, 그렇잖아. 조금 전에 내가 이 비서랑 한 이야기를 못 들었나? 내가 사는 곳은 백성철 회장과 김대엽 비서실장밖에 모른다고.”
“그게 이거랑 무슨 상관…….”
상혁은 혀를 끌끌 찼다. 이건 귓구멍이 아니라 그냥 멍청한 놈이었다. 사람의 말귀를 이렇게까지 해 줘도 못 알아듣는 것을 보면 말이다.
“넌 SG그룹의 회장과 비서실장밖에 모르는 정보를 알고 왔다는 거지.”
“그, 나, 나도 모르는 곳에서 받은…….”
“그건 그거고.”
이명청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상혁이 하는 말을 그제야 알아들은 것이다. 일영이 다시 이명청의 멱살을 잡았다.
“끌고 들어와. 어디서 알아낸 건지 이메일이건 전화번호건 마지막 한 글자까지 떠올리게 해 줄 테니까.”
상혁의 오른쪽 눈에 오색 서기가 차올랐다.
* * *
[일진 네트워크란 곳에서 보낸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일진 네트워크?”
상혁은 고개를 갸웃했다. 이명청의 원활한 협조 아래 상혁은 박선웅을 통해 이명청에게 보낸 신원미상의 제보자를 찾았다.
그런데 처음 들어 보는 곳이었다.
“뭐 하는 곳인데?”
[회사 전산 시스템을 유지 및 보수해 주는 곳입니다.]
“유명한 곳이야?”
[영세한 곳입니다. 자본금이라고 해 봤자 10억 정도에 회사 직원도 10명 미만인 소기업입니다.]
“그런 곳에서 내 주소를 알아냈다?”
상혁은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누군지는 몰라도 상혁의 주소를 알아내 기자들에게 뿌린 놈은 꽤 신중한 놈인 듯했다.
일진 네트워크라는 쭉정이를 통해 자신의 정체를 한 번 더 숨긴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 찾아봤습니다. 그런데 이 회사, 오래전에 SG그룹에서 만든 것으로 파악되는 회삽니다.]
“SG?”
[예. 설립 연도가 1990년대인 걸 보니 꽤 시간이 지나서 별다른 정보는 남아 있지 않습니다만.]
“냄새는 난다는 소리네.”
[예, 그렇습니다.]
상혁은 인상을 살짝 찌푸렸다. 왜 이명청 같은 삼류 언론사 기자들만 온 것인지 깨달은 것이다.
“우리 반응을 보겠다는 속셈인 것 같은데. 확실한 건 별로 호의적인 건 아니라는 소리야.”
상혁의 능력을 시험해 보겠다는 것처럼 이명청 같은 놈들만 보낸 것을 보면 정확했다. 백이현인지, 백도현인지, 그도 아니면 제삼자인지 박선웅이 찾아낸 정보가 끊기면서 막막해졌다.
그때 이창엽이 돌아왔다.
“알아낸 게 있습니까?”
비서실에서 오너 패밀리의 개인 정보가 새 나간 사건이다. 비서실에서 중대하게 다룰 수 있는 문제였기에 상혁이 이창엽을 쳐다봤지만 그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전원 혐의점이 없습니다.”
“비서실의 결론입니까?”
“비서실장님께서 직접 진두지휘하셨습니다.”
비서실 내에 정보를 유출한 자가 있다면 김대엽에게는 큰일이다. 하지만 못 찾아냈다는 말에 상혁은 눈을 가늘게 좁혀 떴다.
“비서실장 본인은요?”
“예?”
“이 정보를 바깥에 흘린 사람이 비서실장이면 어떻게 하냐는 뜻입니다.”
“비, 비서실장님이 그러실 리가…….”
상혁은 턱을 괴었다. 이창엽의 말을 들으니 더욱더 확실해졌다. 상혁의 주소를 유출한 것은 김대엽이다.
하지만 여기서 이제 ‘왜’라는 의문이 남는다.
‘거기서부터 알아 가면 쭉정이를 보낸 놈을 특정할 수 있을 터.’
김대엽과 상혁은 같은 편이 아니다. 백성철의 필요에 의해 상혁을 말처럼 부려 먹고 있을 따름이다. 그런 와중에 백성철의 심복인 김대엽이 상혁의 개인 정보를 빼냈다?
‘백이현과 백도현이 알아내고자 했다면 못 알아낼 정도의 정보는 아니야. 사람 하나 붙이면 되는 간단한 일이니까.’
아니면 사람을 써 전입신고를 한 구기동 동사무소에 돈 몇 푼 쥐여 주고 알아내면 되는 간단한 일이다.
하지만 그 둘 중 상혁에 대해서 더 궁금해하는 사람은 누굴까.
‘백도현은 신중하지. 그러니 이런 식으로 먼저 이를 드러낼 놈이 아니야. 그렇다면.’
백이현.
호탕하고 사람 좋은 척을 했던 백이현이 김대엽이 흘린 콩고물을 주워 먹은 것이다. 그렇다면 김대엽의 행동도 말이 된다.
‘상잔.’
백성철의 목적은 자신의 회장직을 공고하게 만들기 위해 두 아들과 상혁을 상잔시켜 힘을 빼는 것이 목표다.
김대엽은 아마 그런 백성철의 뜻에 따랐을 것이다.
“어디든 쥐새끼는 있군. 정말로.”
상혁은 이창엽을 쳐다봤다. 그러고는 그에게 말했다.
“SG건설로 가겠습니다. 아무래도 백이현 사장이 제게 하고픈 말이 있는 모양입니다.”
아쉬운 놈이 먼저 움직일 수밖에. 하지만 일어서는 상혁의 두 눈에 시퍼런 귀광이 이글거렸다.
‘나를 건드린 게 얼마나 큰 실수인지 알려 주지.’
가만히 있던 마법사의 코털을 건드린 그 대가를 톡톡하게 치러 줄 생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