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 먹는 대마법사 124화
124. 어디든 쥐새끼는 있다(4)
“후후후후…….”
한 올도 빠져나오지 않도록 금발을 뒤로 넘긴 올백 머리에, 테가 없는 안경을 쓴 남자가 소파의 팔걸이를 손가락으로 작게 두드리며 나지막한 웃음을 흘렸다.
그런 그의 앞에는 TV가 있었고, 그 안에서는 사만다 허드의 공개 기자회견이 한창이었다.
그것을 보며 알 수 없는 웃음을 한참 흘리던 남자, 윌리엄 글레이저는 안경을 벗어서 옆에 살포시 내려놓았다.
“살아 있었구나, 사만다.”
목소리는 마치 잃어버린 애인을 찾은 듯 가련했지만 두 눈에서는 광폭한 살기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렇게 화면 속 사만다를 뚫어져라 쳐다보던 윌리엄은 리모컨으로 TV를 껐다.
“그것도 저리 멀쩡하게 살아 있을 줄이야. 분명 실험에 들어간 것 같았는데. 실험 직전에 구한 건가, 아니면 살아남은 건가.”
토독, 토독.
윌리엄의 머릿속으론 꽤 복잡했다. 죽었어야 할 여자가 버젓이 살아 있었고 이제는 TV에 당당하게 얼굴까지 드러냈기 때문이다.
그것도 자신과 자신의 가문에 대해서 모를 리가 없는 여자가 말이다.
“겁먹은 비루한 똥개처럼 평생 숨어 다녀도 모자랄 것을.”
윌리엄은 피식 웃었다. 하긴, 그러니까 감히 자신에게 버림받았다고 그걸 다 폭로하겠다면서 협박했을 것이다.
그런 당돌함이 마음에 들어 몇 번 가지고 놀았지만 역시나 그게 거슬렸다.
“이 세상에는 오르지 못할 투명한 유리 천장이 있다는 것을 도저히 받아들이지 못하니 저런 것이겠지.”
윌리엄은 자신이 특별한 존재라고 생각했다. 다른 일반인들과는 다른 특별한 혈통에 특별한 목적을 가지고 태어난 사람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렇기에 그는 태어나자마자 최고의 교육을 받으며 최고의 환경에서 성장했고, 지금은 미국의 한 축을 이끌어 나가며 더 나아가서는 미국이 이끌어 나가고 있는 세계 질서의 일부분을 담당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 자신과의 사랑이라니.
평범한 여자치고는 야망도 꿈도 컸다. 그렇기에 폐기 처분 결정이 난 것이었지만 말이다.
“제법 머리는 썼다 이건가.”
윌리엄은 그가 한 번도 눈여겨본 적이 없었던 동아시아의 한국이라는 작은 나라에 사만다가 살아 있다는 것에 처음으로 그 나라에 흥미를 품었다.
그곳에 있는 한 덜떨어진 놈에게 엘릭서 프로젝트를 맡겨 놓았지만, 그 프로젝트가 실패했다는 소식에 그 나라에 대한 모든 기대를 포기했던 윌리엄이다.
그곳에서 사만다가 자신의 생존을 알렸다. 그러니 그때처럼 은밀하게 그녀에게 손을 쓴다는 건 윌리엄으로서도 무리였다.
그녀도 바보가 아닌 다음에야 그에 대한 어느 정도의 대비는 해 놓았을 것이고, 자칫 문제가 커졌다가는 곤란한 상황에 처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슬슬 차기 대선도 준비해야 하니 잡음이 나와선 좋을 게 없겠지. 그리고 더블아이에서 실종이 여러 건 일어났던 것도 사만다 때문이었나?”
윌리엄은 흥미롭다는 듯 턱을 쓰다듬었다. 사만다가 어쩌면 살아 있을지도 모른다는 추측은 하고 있었다.
엘릭서 프로젝트가 실패했지만 그 이후 실종자들에 대한 어떠한 뉴스 기사도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만약 그대로 프로젝트가 실패했다면 무연고자들 위주로 진행했던 인체 실험의 증거 또한 어디선가는 흘러나올 것이라고 짐작했던 그다.
폭발한 미군 기지 내 연구소와 반도체 공장 창고는 분명히 누군가가 손을 쓴 흔적이 역력했고 그렇다면 증거를 확보한 그쪽에서 당연히 먼저 치고 나올 것이라 예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그래서 한국에 더블아이 소속의 정보원들을 다수 파견하였는데 그들 모두가 실종됐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제 발로 경찰서에 찾아가 자신들이 정보원이란 것을 밝히며 자수한 후 발작을 일으키며 백치가 됐다.
시차를 두고 보낸 정보원들도 모두 다 그 꼴이 났다. 마치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말이다.
“한국에 뭔가가 있어.”
그리고 그들의 위치를 추적하기 위해 달아 놓은 위치추적기에서도 말도 안 되는 일이 일어났다. 위치추적기의 위치가 불과 한 시간 만에 300km를 이동하는 등의 현상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더블아이 측에서는 아주 고도의 첨단 기술로 위치추적기의 신호 장치 자체를 교란하면 그런 현상이 일어날 수 있다고 의견을 내놓았고 그에 윌리엄은 확신했다.
엘릭서 프로젝트의 정보가 유출된 것이다.
‘대체 어디서?’
그 때문에 글레이저 가문은 전수검사에 나섰다. 엘릭서 프로젝트는 비밀리에 원탁과 그들과 깊게 관련된 정·재계 소수만이 알고 있는 프로젝트였다.
그런데 그 프로젝트를 알고 있었다는 건 그 내부에 변절자가 있었다는 소리다.
하지만 조사를 시작한 지 꽤 시간이 흘렀지만 아무런 증거도 나오지 않았다. 그런 와중에 사만다가 살아 있다는 것을 공식적으로 밝힌 것이다.
사람들의 이목을 잔뜩 끌어 윌리엄의 공격에 대비하기 위한 대중의 관심이라는 방패막을 착용한 채로 말이다.
“SG그룹의 백상혁.”
사만다는 자신이 한국에 내한한 이유가 그녀가 연애 중이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그리고 그 대상은 한국의 대기업인 SG그룹의 백상혁.
백성철 회장의 조카로 밝혀진 백상혁이 바로 열애설의 주인공이었다.
윌리엄은 재밌다는 듯 눈으로 호선을 그리며 씩 웃었다.
“재밌네. 연애라. 사만다. 날 잊지 못하고 엉엉 울던 게 아직도 기억이 나는데 말이야.”
사만다는 윌리엄의 소유물이다. 그런데 그런 사만다가 자신의 뜻대로 죽지 않은 것도 모자라 가짜 열애설로 백상혁이란 아시아 원숭이 놈을 입에 담았다는 것에 윌리엄을 불쾌하게 만들었다.
“수상쩍긴 하니까. 우리 일을 방해한 게 SG그룹인가, 아니면…….”
윌리엄은 백상혁의 얼굴을 톡톡 두드렸다.
“이놈일까?”
놀랍게도 윌리엄은 백상혁을 SG그룹과 떼어 놓고 별개의 존재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뭐가 돼도 좋다는 듯 히죽 웃은 윌리엄은 자리에서 일어나 수트의 상의를 주섬주섬 챙겨 입었다.
“노발대발하고 계실 아버지나 진정시키러 가 볼까나.”
사만다 허드가 한국의 TV에 나왔다는 건 글레이저 가문의 가주인 프랭크 글레이저의 귀에도 금세 들어갈 것이다.
그렇게 되면 어차피 불려 가서 된통 깨질 거, 미리 가서 대충 혼나고 오겠다는 윌리엄의 얼굴에는 나태 밖에 담겨져 있지 않았다.
그의 눈이 생기를 띌 때는 두 가지밖에 없었다.
거대한 권력으로 이 세계 질서를 휘두른다는 희열과 사람을 굴복시켜 자신의 체스 말로 쓸 때.
윌리엄은 히죽 웃었다.
“조만간 만납시다. 미스터 백.”
* * *
오싹.
상혁은 그 순간 등줄기에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그 때문에 마법을 캐스팅하다 말고 상체를 쭉 펴서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어떤 놈인지 모르겠는데, 실현 불가능한 소원을 빈 모양이네.”
누군가 상혁을 벼르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럴 때마다 마나는 미리 상혁에게 이런 식으로 신호를 보내 주었다.
그러나 그 누구도 자신의 그 목적을 달성하지 못했다. 가나안에서의 상혁은 그리 성격이 좋은 마법사가 아니었기에 도전자를 절대로 내버려 두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건 지구도 마찬가지다.
“스읍.”
상혁은 두 눈을 감고 마나를 흡수하는 데 집중했다. 그러자 토양에 넓게 흩뿌려 둔 물이 습기가 되어 토양 속으로 스며들었고, 오염 물질을 끌어당긴 채 오수가 되어 뚝뚝 떨어져 내렸다.
그리고 그게 미리 파 둔 배수로를 통해 지하를 흘렀고 그 배수로는 땅굴 밖으로 이어졌다.
“한 번 더.”
18헥타르는 평수로 따지면 무려 55,000평이나 되는 어마어마한 넓이의 땅이다. 하지만 5서클에 올라 더 이상 오수로는 마나를 쌓지 못하게 된 상혁에게는 그리 넓은 땅이 아니었다.
마법은 서클 하나가 올라갈수록 할 수 있는 게 원래 이렇게 복리식으로 많아지는 법이었으니 말이다.
스으윽!!
그렇기에 상혁이 18헥타르의 오염된 토양을 정화하는 건 매우 빠르게 해결됐다. 아예 땅굴을 파고 땅속으로 들어간 덕에 외부의 시선도 신경 쓸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팍, 팍, 팍!
앞에서는 기계나 다름없는 일호와 일영이 지칠 줄 모르는 기세로 땅을 파 나갔고 중간중간 상혁이 디그를 사용할 때마다 마치 포크레인 서른 대가 와서 동시에 판 것 같은 넓게 땅이 파였다.
그리고 그 위에 워터 마법으로 넓게 습기를 흩뿌리고, 윈드 마법으로 습기의 흡수를 빠르게 만든 뒤 오수를 흡수하게 만들어 그 습기를 다시 물줄기로 만들어 땅굴 속을 흐르게 만든다.
상혁은 그걸 흡수하면 되는 셈.
어차피 이걸 흡수한다고 해서 마나량이 늘어나는 건 아니지만 소모된 마나량을 보충해 주기에는 더할 나위 없는 기회였기에 상혁은 게걸스럽게 흘러가는 오수 속에 손과 발을 담그고 마나를 흡수했다.
55,000평이나 되는 토양을 정화하는 데 걸린 시간은 반나절.
밤을 꼬박 새우고 다음 날 새벽이 될 때까지 마나를 흡수한 순간 초아가 상혁의 머리카락을 잡아 뽑을 것처럼 쥐고는 흔들었다.
뚝!
공중에서 마나석과 마정석 열 개가 뚝 하고 떨어졌다. 퀘스트가 완료된 것이다. 상혁은 기분 좋은 표정으로 마나석을 손가락으로 집어서는 들어 올렸다.
“라이트.”
반짝!
라이트 마법으로 마나석을 비춰 본 상혁은 입맛을 다셨다. 안타깝게도 이번에도 1서클 수준의 마나석이 나왔기 때문이다.
그나마 기대할 건 마정석이다.
“마정석 10개.”
10개 분량 정도면 마나석 7개 정도의 값어치는 할 것이다. 개당 담긴 마나량이 정화를 거치면 마나석보다 적어 쓸 만한 서번트나 골렘을 만들기는 애매하지만 말이다.
“아티팩트는 만들 수 있겠지.”
유용한 아티팩트도 당장 상혁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만 해도 열 가지가 넘는다. 상혁이 기뻐하자 일호와 일영이 다가와 상혁을 축하했다.
“축하드립니다, 마스터.”
“감축드립니다.”
“감축은 옛날 말이고. 어쨌든 고맙다.”
어울리지 않게 사극 톤으로 말한 일영이 고개를 갸웃했다. 어쨌거나 퀘스트로 완료한 상혁이 기지개를 쭉 켰다.
“돌아가자. 좀 자야겠어.”
“정리하겠습니다.”
“됐어.”
상혁이 손가락을 튕기니 심장 고리에서 마나의 탈력감이 느껴지고 눈에 보이지 않는 마법이 발현됐다.
“나가자.”
3서클의 에어로 봄을 지연시켜 놓은 상태로 상혁은 밖으로 나왔다. 일루젼 마법이 여전히 유지 중이었기에 상혁은 차에 탄 뒤 다시금 손가락을 튕겼다.
퍼엉-!!
우직, 우직, 우지지직!!
안에서 공기를 응축시켜 터뜨리는 마법이 터지자 안쪽부터 파 놓은 땅굴이 흔들거리더니 무너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삽시간에 뿌연 연기만 만들어 놓은 채 땅굴이 사라지자 상혁은 손가락을 한 번 더 튕겼다.
“출발해.”
“예, 마스터.”
상혁을 태운 차가 출발했다. 일루젼 마법은 그대로였다. 대신 차가 사라진 뒤로 바람이 불어와 땅에 남은 타이어 자국까지 없앴다.
그리고 잠시 뒤.
평택기지 안에서 군용차들이 우르르 쏟아져 나오더니 무너진 토굴 앞에 도착했다. 땅속에서 진동이 느껴졌으니 그들이 놀라서 튀어나오는 것은 당연했다.
하지만 그들을 반기는 것은 이미 무너져 흔적조차 보이지 않게 된 토굴과 흙먼지뿐이었다. 결국 미군 조사단은 싱크홀 때문에 진동이 느껴진 것이라고 정리를 한 뒤 넘어갈 수밖에 없었다.
완전범죄.
완벽하게 흔적을 모두 지우고 퀘스트까지 완료한 상혁은 그대로 서울로 돌아와 차량이 많아지는 지점에서 일루젼 마법을 풀었다.
“이사장님.”
일호가 백미러로 상혁을 쳐다보면서 말했다.
“복귀하신다면 아마 여러 애로 사항이 있을 것 같은데 어떻게 대처하시겠습니까?”
“열애설?”
“예.”
이미 언론은 난리가 나 있는 상태일 것이다. 하지만 상혁은 아예 핸드폰을 꺼놨다. 그렇기 때문에 SG그룹의 연락도 모두 다 씹고 있는 상태였다.
“일호야.”
“예, 마스터.”
“적당히 데이트 코스 하나 짜 줘. 가짜라고는 하지만 그런 분위기는 내야지. 그래야.”
상혁이 창에 비치는 자신의 얼굴을 쳐다봤다. 자신의 입꼬리가 슬쩍 올라가 있었다.
“덫에 쥐새끼들이 걸리지 않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