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쓰레기 먹는 대마법사-121화 (120/249)

쓰레기 먹는 대마법사 121화

121. 어디든 쥐새끼는 있다(1)

부우우웅!!

척!!

기지 정문을 묵직한 마이바흐 한 대가 통과하자 위병이 절도 있게 군례를 올렸다. 리바인 대위는 그 근처에 있다가 위병을 향해 다가가서는 물었다.

“누구야?”

“자, 잘 모르겠습니다!”

“몰라? 그런데 왜 통과시켰어.”

“사령관 지시로 72마2489 차량을 통과시키라는 명령이 일찍 내려왔습니다.”

평택에서 사령관 지시로 용산에 올라온 리바인 대위는 안 그래도 기분이 별로 좋지 않았다. 군 정보사 소속인 자신을 스튜어드쯤으로 취급하는 사령관의 행태 때문이다.

“민간차량 같은데 이 이른 아침에 사령관과 약속이 잡혔다고?”

리바인은 의심스럽다는 듯 턱을 긁적였다. 그러고는 본부 건물로 걸어갔다.

“아침부터 그 게으른 사령관이 빠릿빠릿하게 움직이는 걸 보면 그만큼 중요한 인사라는 뜻인데. 군 출신은 아닌 것 같고. 사령관이 줄을 대고 있는 곳에서 사람이 온 건가?”

정보사 소속인 그의 감이 무언가 있다고 외치고 있었다. 오후에 평택 방문을 앞두고 있는 사령관이 무리해서 아침에 약속을 잡았다는 것 자체가 상대에게 스케줄을 맞췄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어제 사령관을 모시고 내려갈 헬기를 타고 평택에서 용산에 와야 했던 리바인이기 때문에 더욱 확신했다.

그는 주변을 휘휘 둘러보는 척하며 본부 건물 뒤편의 주차장 쪽으로 향했다. 본부에 차를 댈 만한 곳은 그곳밖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근처에 간 리바인은 수풀 뒤에 슬쩍 몸을 숨기며 주차장을 염탐했다.

묵직한 마이바흐 주변을 경호원으로 보이는 듯한 이들이 지키고 있었다. 그런데 움직일 때 보이는 모습을 보아하니 그냥 보통의 경호원은 아니었다.

‘최소 군 출신들.’

미군기지임에도 불구하고 경호원들은 한 치의 방심도 없이 주변을 경계하고 있었다. 그렇게 경호원을 살피던 리바인의 눈이 살짝 커졌다.

경호원들이 라펠에 꽂은 작은 배지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글레이저 가문?”

* * *

댄 에이브라함은 군 엘리트 출신이다.

미국 육군사관학교인 웨스트포인트를 졸업했고 1985년부터 제18 공수군단, 제4보병사단, 태평양 육군 사령관 등 굵직한 직위를 거쳐 주한미군 사령관에 취임했다.

4성 장군인 그는 야망이 큰 남자였는데, 전역 후 정계에 들어갈 목적으로 군인이라기보다는 정치인에 가까운 행보를 보였다.

글레이저 가문은 그런 그의 야심을 일찍이 알아보았고, 그런 그를 후원하여 돈독한 관계를 형성했다. 말이 돈독한 관계이지 사실상 댄 에이브라함은 글레이저 가문의 가신이나 다름없었다.

그렇기에 그는 드물게도 긴장한 얼굴로 자리에 앉아 있었다.

“더블 아이의 요원들이 실종되었다, 그 말씀이십니까?”

“예. 그래서 댄 사령관의 도움을 요청하기 위해 온 것입니다.”

글레이저 가문의 더블 아이는 미 CIA와 FBI 출신들을 다수 고용해 의심할 여지가 없는 실력파들로만 구성된 정보조직이다.

물론 정부 기관인 CIA와 FBI의 방대한 규모와 조직력에는 손색이 있었지만 글레이저 가문의 영향력을 바탕으로 더블 아이는 빠르게 성장했다.

그런데 그 더블 아이가 한국에 파견이 되었고, 그들이 임무에 실패한 채 실종됐다?

사령관은 그런 일이 있었다는 것도 방금 들었기 때문에 머릿속이 어지러웠다.

“국정원이나 기무사에 발견된 게 아닙니까?”

“그렇다면 저희가 모를 리 없겠지요.”

글레이저 가문은 최근 모종의 이유로 다수의 인력을 한국에 파견했다. 눈앞의 남자는 그때 사령관을 찾아왔던 글레이저 가문 직속이었기에 그가 거짓말을 할 리는 없었다.

“실종이라…….”

“마지막으로 신호가 닿은 위치는 바로 이곳입니다.”

자신의 이름을 마틴이라고 밝힌 사람은 이름 외에 다른 어떠한 것도 밝히지 않았다. 댄이 주한미군 사령관이고 4성 장군이라고 해도 그는 댄에게 필요 이상의 정보를 주지 않았다.

그러나 댄은 불만을 가지지 않았다. 그 때문에 그가 가리킨 지점을 본 댄은 턱을 쓰다듬었다.

“구기동. 이 포인트라면 청와대 바로 뒤편이 아닙니까.”

“맞습니다.”

“그렇다면 청와대 쪽에서 나선 것일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주변에 수방사와 제1경비단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미국의 많은 군사 전문가들은 한국의 저력을 과소평가하곤 한다. 주변에 중국, 일본, 러시아와 북한 등의 강력한 경쟁자들이 포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최우선 견제 상대는 러시아와 중국이고 한국은 그런 미국의 주요 거점일 뿐이라고 생각하는 전문가들이 많았다.

하지만 그들은 현실을 전혀 모르는 쭉정이들일 뿐이다.

“혹여나 그럴 리 없다고 생각하실까 봐 노파심에 말씀드리는데, 제아무리 더블 아이라고 해도 한국, 특히 청와대 주변이라면 위험했을 겁니다.”

그런 걱정을 담아 댄이 마틴에게 말했다. 마틴은 그 말을 듣고 조용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미 청와대에 동의를 구했습니다.”

“예?”

“청와대에 동의를 구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댄은 입을 살짝 벌렸다. 청와대가 어딘가. 아무리 미국에 우방과 혈맹이라는 이름으로 의존하고 있는 작은 나라인 대한민국일지라도 청와대는 한 나라의 국가수장이 있는 곳이었다.

반면 글레이저 가문은 미국을 대표하는 어떠한 공신력이 있는 세력이 아니었다.

그런데 청와대의 동의를 구했다?

‘과연 글레이저인가.’

국가권력에도 커넥션이 있다는 사실에 댄은 속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글레이저 가문의 손을 잡은 이유가 바로 저들의 끝없는 영향력 때문이다.

정계와 권력으로 연결된 글레이저 가문의 커넥션은 제3세계의 어느 독재 군부까지도 연결되어 있었다.

그러니 그들의 도움이라면 정계에 입성하는 건 더 이상 꿈이 아니었다.

댄이 그런 쓸데없는 꿈에 빠져 있을 때 마틴이 재차 입을 열었다.

“군을 보내 확인해 주십시오.”

“알겠습니다. 그런데, 그럼 실종된 인원은…….”

마틴의 눈가에 냉기가 스쳐 지나갔다.

“글레이저는 실패자는 용납하지 않습니다.”

죽이라는 소리. 댄은 그 말을 듣고는 등줄기가 서늘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건 댄이 그 상황에 처했다고 해도 글레이저 가문이 그렇게 나올 것이라는 소리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댄은 그런 부정적인 생각을 떨쳤다.

‘실패하지 않으면 되는 일이지.’

지금껏 단 한 번도 실패가 없던 군 엘리트의 길이다. 그렇기에 댄은 자신의 미래에는 실패라는 두 글자가 새겨지지 않을 것임을 확신했다.

“그러죠. 대신…….”

“국방성에서 댄 사령관님을 호출한다는 건 무마하도록 하겠습니다.”

미군기지에서 큰 화재가 일어났고 엘릭서 프로젝트가 진행되던 연구소가 불탔다. 그 침입자에 대해서는 아직 오리무중이었지만 그로 인해 본국에서는 댄을 호출하여 그 책임을 묻겠다고 했다.

그걸 막기 위해 댄은 글레이저 가문의 도움을 받기로 한 것이다.

“알겠습니다. 한번 애들을 보내 확인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이만.”

마틴은 할 말이 끝나자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섰다. 다른 사적인 교류는 나누지 않겠다는 단호한 의사 표현이었다.

그런 마틴의 태도에 속이 뒤틀렸지만 댄은 그걸 겉으로 티 내지 않았다. 그리고 그가 사라지자 댄은 인터폰을 눌러 장교를 호출했다.

“파울로 중사, 뭐 하고 있지?”

“훈련 중입니다.”

“훈련은 무슨. 그냥 놀고 있겠지.”

장교는 딴청을 피웠다. 댄의 말이 맞았다는 뜻이다. 댄은 버럭 하는 대신 장교에게 말했다.

“파울로 중사 불러. 할 일이 있다고. 그 일을 성공적으로 완수하면 본국으로 귀환하는 걸 6개월 앞당기겠다고 해 보지.”

“예, 사령관님.”

* * *

나우 호텔은 남산 중턱에 위치한 특급 호텔이다.

가장 비싼 프레지덴셜 스위트가 1박에 3,000만 원을 호가하며 미 대통령이 방한 시 이곳에 묵은 것으로 유명해졌다.

그곳에 주드 포터가 머무르고 있었는데, 상혁은 로비에 들어서자마자 곧바로 그를 알아볼 수 있었다.

“미스터 백?”

“백상혁입니다. 주드 포터 씨.”

“반갑습니다.”

주드 포터는 환하게 웃으며 상혁의 손을 잡고 위아래로 흔들었다. 상혁은 그런 그를 보며 그가 퍽 숙달된 연기자란 것을 알 수 있었다.

오디션은 핑계다.

일호를 통해 상혁은 주드 포터에게 사만다의 운을 띄웠고 그렇기에 그가 곧바로 만나자고 답신을 보내온 것이었다.

그런데 그런 티를 하나도 내지 않았다.

‘주변에 보는 눈을 의식하고 있는 모양이군.’

상혁은 고개를 돌려 일영을 쳐다봤다. 그러자 일영이 고개를 꾸벅 숙이고는 뒤로 슬쩍 빠졌다.

‘일영을 보냈으니 감시자 걱정은 없겠군.’

“이쪽은 최강원 교수님입니다. 예술대학을 맡고 있는 분이시죠. 오디션에 큰 역할을 하실 겁니다.”

“최강원입니다.”

최강원도 주드 포터와 인사를 나누었다. 최강원은 바짝 긴장한 상태였다. 예술대학에 온 기회를 놓치지 않고 싶다는 일념으로 가득 차 있었기 때문이다.

“미리 룸을 예약해 놓았습니다. 가시죠.”

상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후 고풍스럽게 꾸며진 룸이 딸린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이 나왔다. 지배인의 안내를 받아 자리에 착석한 후 주드 포터가 말했다.

“음식은 조금 이따가 서빙해 주세요. 그 전에 대화 좀 나누려고 하니까요.”

“예, 알겠습니다.”

지배인은 순순히 고개를 숙이고는 조심스럽게 문을 닫았다. 이런 목적으로 찾는 손님이 한둘이 아니라는 뜻이다. 주드 포터와 상혁, 그리고 최강원만이 서로 마주 보고 앉았다.

“미스터 백은 한국대 이사장이라 들었습니다. 맞습니까?”

주드 포터는 이야기를 풀어 나가기 위함인지 상혁에게 질문했다. 상혁은 빙긋 웃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백성철 회장님이 제 아버지의 형님이 되십니다.”

“오!”

SG그룹의 백성철 회장의 이름은 외국에서 비즈니스를 하는 사람들이라면 모를 수가 없는 이름이다.

그렇기에 아는 척을 한 주드 포터가 최강원에게 오디션에 대한 질문들을 하며 분위기를 부드럽게 만들었다.

거의 맨바닥에서 사만다 허드를 소유한 기획사를 일굴 정도로 경력이 많다고 하더니 사람들과 이야기를 풀어 나가는 방법이 예사롭지 않았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주드 포터는 지속적으로 상혁 쪽을 쳐다봤다. 상혁은 그런 그에게 그저 웃어 보이기만 했다.

점점 그런 횟수가 늘어나자 아무리 눈치가 없는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이상한 기류를 눈치챌 수 있었다. 업계 현장에서 잔뼈가 구른 최강원도 마찬가지였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적당한 때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화장실 좀 다녀오겠습니다. 두 분께서 이야기 나누고 계시지요.”

오디션에 대한 세부적인 논의는 나중에 실무자들끼리 나눠야 하겠지만 대략적인 건 이야기를 다 나눈 후였다.

그가 일어서서 나가자 주드 포터의 눈빛이 바뀌었다.

“사…….”

“잠깐.”

하지만 상혁은 그의 입을 막았다. 대신 그 자리에서 손가락을 튕기자 상혁을 중심으로 1서클 마법인 쇼크가 주변을 싹 훑었다.

파직, 파지직.

그러자 방 안에 있던 전자기기들이 매캐한 연기를 내뿜으며 터졌다. 그중에는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의 작은 기계들도 있었다.

도청 장치들이었다.

“이건…….”

“이제 됐습니다. 사만다 허드. 그녀의 소재가 궁금하신 것 아닙니까?”

주드 포터의 눈이 커졌다. 자신은 상상도 못 할 방법으로 상혁은 그를 감시하던 장비들을 무력화시켰다. 그러고는 놀란 마음을 진정시킬 새도 없이 사만다 이야기를 꺼내자 주드 포터의 눈이 돌아갔다.

“맞습니다. 혹시…….”

“제가 보호하고 있습니다.”

“아, 역시. 다행입니다. 정말 다행입니다.”

주드 포터는 하느님께 감사 인사를 올렸다. 그녀가 무사하다는 것에 주드 포터는 무릎 꿇고 절이라도 올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역시 글레이저 가문이 더러운 수작을 부렸던 겁니까?”

글레이저 가문이 아니라 원탁이라 불리는 미국의 배후에 암약하는 거대한 집단이 도사리고 있었지만 상혁은 그저 고개만 끄덕여 보였다.

“그럴 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렇게 말렸는데 결국…….”

주드는 고개를 툭 떨궜다. 자신이 그녀를 말리지 못한 것에 대해 심적인 죄책감을 느낀 모양이다. 상혁은 그런 그에게 말했다.

“내가 보호하고는 있는데. 당신을 글레이저 가문이 감시하고 있다는 것도 알고 있는 것 같았고. 사만다를 찾는다고 해서 뭐 어떻게 할 겁니까?”

주드는 고개를 들어 상혁을 쳐다봤다. 그는 혼란스러운 듯했다. 사만다를 찾아야겠다고만 생각했지 그 이후까지는 마땅한 답이 나오지 않은 모양이었다.

“일단 미국으로 돌아가서…….”

“글레이저 가문의 안방으로 제 발로 돌아가시겠다? 좋다고 달려들 것 같은데요.”

“그럼…….”

“딱히 별 계획이 없었던 것 같은데, 그럼 내 말대로 하는 게 어떻겠습니까?”

주드가 말을 멈추고 상혁을 쳐다봤다. 상혁은 그를 보면서 입을 열었고 주드는 한마디도 놓치지 않겠다는 듯 집중해서 상혁의 말을 들었다.

그리고 상혁의 말이 끝났을 때.

“그, 그렇게 해도 정말 괜찮겠습니까? 사만다가 아니라 이사장님이 곤란해지실 텐데…….”

주드는 상혁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상혁은 괜찮다는 듯 어깨를 으쓱했다.

“감사합니다. 그렇게만 해 주신다면야 저와 사만다는 이사장님에 대한 은혜를 평생 잊지 않고 살아갈 겁니다.”

주드가 그 자리에서 상혁을 향해 무릎을 꿇고 아예 절을 올렸다.

^직^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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