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 먹는 대마법사 119화
119. 마법이 재밌는 이유(4)
“예? 그, 그게…….”
그중 기획조정처의 한덕술이 가장 먼저 정신을 차리고는 힘겹게 입을 열었다. 하지만 할 말이 입안에서만 맴돌 뿐,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무슨 문제가 됩니까?”
“그…….”
한덕술이 어버버 거리고 있을 때 누군가 손을 번쩍하고 들었다. 샤프하게 생긴 중년인으로 누가 봐도 교수처럼 생긴 인물이었다. 상혁이 물끄러미 쳐다보자 옆에 서 있던 이창엽이 말했다.
“경제학과 학과장 박문열 교수입니다.”
학과장들도 지금 이 회의에 참석한 상태였다. 어떻게 보면 상혁이 처음으로 한국대를 이끌어 나가는 모든 사람들과 대면하는 자리였기 때문에 교수진까지 자리한 것이다.
상혁은 고집스러운 인상을 한 학과장을 보며 말했다.
“박문열 학과장님. 말씀하실 게 있으십니까?”
“예. 저희 한국대가 언제부터 연예기획사나 제작사를 겸업하기로 한 것인지 궁금해서 손을 들었습니다.”
교수진과 학교를 실질적으로 운영하는 행정처는 늘 묘한 대립각을 세웠다. 교수들과 학생들이 대학을 구성하는 가장 기본적인 구성원이었으나 그들이 필요한 모든 비용이 행정처를 통해 결재되었기 때문이다.
교수의 연구비나 활동비, 혹은 연봉까지도 행정처에서 관리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늘 데면데면한 관계가 바로 교수진과 행정처였다.
그 행정처의 수장이나 다름없는 상혁이 부임하자마자 하는 소리가 대학교에서 오디션을 벌이겠다고 하는 것이니 교수진이 반발한 셈이다.
“우리 학교에 예대는 없습니까?”
상혁은 학과장에게 묻지 않았다. 상혁은 한덕술을 쳐다봤다. 전 이사장이던 최만금이 실각한 지금 실질적으로 행정처를 이끄는 것이 그라는 것을 한눈에 알아봤기 때문이다.
단, 첫 만남에서 한덕술은 상혁에 의해 완벽하게 제압을 당했기 때문에 상혁이 지금처럼 편하게 부려도 그는 반발할 생각도 하지 못했다.
“이, 있습니다.”
“그런데 뭐가 문제죠?”
상혁은 학과장을 쳐다봤다. 예술대학이 있으니 오디션을 개최하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뜻이다.
“비용이 문제면 회장님께 받아 오겠습니다. 제게 학교를 맡기셨으니 그런 비용 정도는 주시겠지요.”
혹시 비용 문제인가 싶어 상혁이 자리에 앉은 대학의 중역들에게 말했다. 그러자 그들의 표정이 묘하게 변했다.
상혁이 그 말을 하자 비로소 상혁이 회장의 조카라는 것이 그들이 머릿속에 떠오른 것이다.
젊디젊은 새파란 낙하산.
이사장이라기보다는 차라리 신입생이 더 어울릴 것 같은 새파랗게 어린 상혁이 이사장으로 내려온 것에 대해서 다들 은연중에 상혁을 무시하고 있었을 것이다.
세상 물정 하나 모르게 생겼으니까.
하지만 상혁의 뒤에는 SG그룹의 백성철 회장이 있다.
그는 단칼에 학교에서 지지를 받던 최만금을 날려 버리고 그 자리에 스무 살짜리 조카를 앉혔다. 그런데도 그들이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한국 최고의 대학.
한국대를 지금의 자리에 놓은 건 교수진이나 행정처의 직원들이 일을 특출나게 잘했기 때문이 아니라 SG그룹에서 나오는 지원금 때문이란 걸 이 자리에 있는 모두가 다 알고 있었다.
그러니 이사장의 힘이 그토록 강력했던 것이다.
그걸 그들은 기억해 냈다.
그러자 다들 몸가짐이 조금 조심스러워졌다. 하지만 몇몇 고지식한 교수들은 아니었다.
“한국대는 학문의 요람이지 놀이터가 아닙니다. 오디션은 방송사나 콘텐츠 제작사에서 해야 할 일이지 한국대를 개방하여 굳이 교내에서 할 필요가 없는 행사입니다.”
“학문의 요람이라. 그럼 하나 묻죠.”
상혁은 자신의 말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신념을 밝힌 교수에게 말했다.
“최고의 대학인 한국대에서 1년에 열리는 학회나 세미나가 몇 건이나 됩니까?”
그러자 한덕술이 옆에서 대답했다.
“150건 정도가 됩니다.”
1년이 365일이니 학회나 세미나가 150건 열린다는 건 최소 2, 3일에 한 번씩은 그런 학회나 세미나가 열린다는 뜻이다.
한국대에서 열린 것이니만큼 그 권위는 의심할 여지가 없다. 몇몇 학회는 해외에서도 저명한 교수들을 발언자로 초빙하기까지 한다.
그런 세미나와 학회는 그것이 열리는 대학교의 권위와 영향력을 증명한다. 그렇기에 그렇게나 많은 학회와 세미나가 열리는 것이다.
“그건 되고, 오디션은 안 되고. 기준이 뭡니까?”
“그건…….”
“예술대학은 우리나라 예술계에서 역할을 할 예술가를 길러 내는 곳입니다. 그런 곳에서, 할리우드에 진출할 수 있는 최고의 배우를 배출한다는 건 최고의 성과입니다. 안 그렇습니까?”
“예대 학부장인 최강원 교수입니다.”
이창엽이 옆에서 예대 교수들이 모인 곳을 가리키며 그중 학부장을 지목했다. 상혁의 말에 예대 교수들이 술렁이는 것이 훤히 보였다.
한국대 예대는 다른 분과 대학에 비해 은근히 무시 받는 경향이 없지 않아 있었다. 전통의 학문을 공부하는 다른 분과대학이나 공과 대학에 비해 예술대학이 무시당하는 경향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걸 상혁이 꼬집고 나왔으니 그들이 감격하는 건 어찌 보면 당연했다.
지금껏 그 어떠한 이사장이나 총장도 예술대학을 다른 곳보다 더 귀하게 여겨 준 이는 없었기 때문이다.
“세미나, 학회? 좋습니다. 거기서 나온 논문들로 지표도 올라가서 세계 대학 순위 올라가는 거? 다 좋습니다. 그런데.”
상혁이 눈을 가늘게 좁혀 떴다.
상혁은 주드 포터를 부를 합당한 이유를 만들기 위해 이런 수고를 하고 있었다. 이왕 하는 거, 확실하게 나중에라도 나올 말을 사전에 막아 두는 것이 나을 것이다.
‘백성철이 나를 이곳에 보낸 건 백도현과 백이현 때문일 테니까. 그 이유를 알아내는 데 또 태클 걸지 못하게 확실하게 눌러 줘야지.’
누가 우위에 있는지, 서열을 정하는 건 비단 짐승들만이 하는 행위가 아니다. 이런 집단에서는 반드시 서열이 명확하게 정해져야만 한다.
돈과 권력으로.
상혁은 혹여라도 나중에 자신의 행보에 이들이 걸리적거리는 일이 없게 하도록 확실하게 눌러 줄 생각이었다.
“예술대학에서 학회를 할 수도 없고, 세미나를 할 수도 없고. 그러니 주드 포터의 오디션이라면, 제2의 사만다 허드를 뽑는 오디션이라면.”
상혁이 예대 교수들을 보면서 어깨를 으쓱했다.
“대한민국 최고라는 한국대의 명성에 걸맞은 행사가 아니겠습니까? 안 그래요, 최강원 교수님?”
“마, 맞습니다.”
최강원은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예술대학의 교수들은 평생을 책만 잡아 왔던 다른 여타 학부의 교수들과는 다르게 현업들이 많았다.
그렇기 때문에 몸으로 부딪히면서 배워 온 이들이 많아 교수들에게 은근히 무시를 당하던 찰나에 절호의 기회가 온 것이다.
연예란을 뜨겁게 달군 주드 포터의 오디션.
그걸 한국대에서 할 수 있다면, 예대에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일이다.
무엇보다도 한국 예대 출신들의 연예인들이 그 오디션에 뽑히기라도 하면, 그래서 제2의 사만다 허드가 된다면 그건 더할 나위 없는 한국대의 영광이다.
뭘 유치했느니, 어떤 논문이 나왔느니 같은 걸로 자기네들이 예산을 더 가져가야 한다면서 매년 복마전을 펼치는 그 꼴을 안 봐도 되는 셈이다.
최강원은 한 번 더 고개를 끄덕였다.
“이사장님 말씀이 옳습니다. 그런 오디션은 저희 한국대에서 추진해야만 합니다. 방송사나 제작사 오디션은 어떤 특정한 소수에게만 기회가 돌아가지만, 저희가 추진하면 꿈이 있는 모두에게 공평한 기회가 될 테니까요.”
최강원의 말에 상혁은 씩 웃었다.
“자. 그럼 결론은 나왔네요. 또 안 된다고 하실 분?”
상혁이 그렇게 묻자 교수들 중 몇이 손을 들었다. 용납하지 못하겠다는 듯 고지식한 표정을 지은 채였다.
상혁은 피식 웃으며 그 교수들에게 말했다.
“한 분씩 이사장실로 오시죠. 다른 분들은 일들 하시고. 예.”
한덕술은 교수들이 아무것도 모른 채 상혁을 따라가는 것을 보면서 고개를 내젓고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어리다고 무시해서는 안 돼. 그 눈은…….’
자신을 쳐다보던 그 눈을 잊을 수 없었다. 자신에게 쓸모가 없다면 언제든 폐기처분하겠다는 그 냉정한 눈빛은 결코 20대의 눈빛이 아니다.
호랑이 새끼도 결국 호랑이었다.
그리고 한 시간 뒤.
한덕술은 바깥에 나갔다가 이사장실에 들어갔던 교수들이 한 곳에 모여 멍한 표정으로 허공을 응시하고 있는 것을 보고는 혀를 내둘렀다.
‘역시, 이사장님이시군. 저 깐깐한 교수들을 저렇게 만들어 버리시다니.’
* * *
상혁은 마지막 교수가 나가고 난 뒤 어깨를 으쓱했다.
깐깐한 교수들?
그들을 굴복시키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학문의 요람이라고 주장하는 이 한국 최고의 대학교 교수들은 마탑의 마법사들과 그 자부심이 비슷했기 때문이다.
자기들이 대단한 마법사다.
뭐 이런 자부심.
하지만 그런 교수들이나 마법사나 약점은 똑같았다.
돈.
마법사들이 자신들의 실험에 막대한 자금이 필요해 마탑에 들어왔듯, 그건 교수도 마찬가지다. 그들도 제 부와 명성을 위해, 혹은 학문적 성취를 위해 한국대에 필요에 의해서 들어왔기 때문이다.
그러니 그들은 상혁을 절대로 이길 수 없다.
마탑주였던 상혁도, 이사장인 상혁도 그들에게 필요한 자금줄을 한 손에 꽉 쥔 상태이기 때문에 교수들을 굴복시키는 건 몇 마디면 간단했다.
절반, 절반의 절반, 절반의 절반의 절반.
다른 말이 필요 없었다.
상혁은 자신의 말에 반박을 늘어놓을 때마다 다음 분기 연구 지원금을 반씩 계속해서 깎았다.
처음에는 반발하던 교수들도 자신들이 받을 지원금이 원래와 비교도 안 되는 수준으로 줄어들자 입을 다물기 시작했다.
돈으로 자신들을 협박하고 압박하려 하냐는 교수들도 마찬가지였다.
상혁은 그들은 돈으로 협박해도 됐다.
“내 돈, 그리고 회장님의 돈, 그 돈 마음대로 쓰겠다는데 뭐 문제라도?”
한국대학교는 정부 자금에 의해서 운영되는 곳이 아니다. SG그룹 호주머니에서 모든 돈이 나오기 때문에 돈줄을 쥔 자가 절대적인 권력을 휘두른다.
결국 그들은 괜히 상혁에게 대들었다가 지원금만 반 토막의 반 토막이 된 채 울상을 짓고는 굴복하는 수밖에 없었다.
“이 비서님.”
“예.”
“깎은 연구 지원금, 적당히 올려 주세요.”
“예?”
상혁이 이창엽을 쳐다봤다. 못 알아듣느냐는 표정이었다. 그걸 본 이창엽은 퍼뜩 정신을 차리고는 고개를 꾸벅 숙였다.
“원활하게 협조하는 모습을 보인다면 그리하겠습니다.”
“예. 그러시죠. 협조는…….”
상혁은 그들의 목줄을 쥐었다. 아마 그들은 깎여 나간 지원금에 망연자실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상혁이 그걸 조건부로 무효로 해 준다고 하면 그걸 다시 돌려받기 위해 적극적으로 협조할 것이다.
“백도현 사장과 백이현 사장. 그쪽이랑 관련된 일에 대해서 알고 있다면 적당히 정보 넘기라고 하세요.”
흠칫.
이창엽은 상혁에게서 백도현과 백이현의 이름이 나오자 흠칫했다. 그걸 보고 상혁이 빙긋 웃었다.
“왜 이러실까. 회장님이 날 여기로 보낸 게 뻔한데. 모른 척 그만하시죠.”
자신이 비서 겸 감시라는 걸 안 것부터 시작해서 자신이 왜 한국대 이사장을 맡게 된 것인지. 상혁의 심계는 이창엽이 감히 짐작하지 못할 정도란 것을 그는 뼈저리게 느꼈다.
상혁 앞에서는 괜한 수작이 먹히지 않는다.
이창엽은 그런 상혁에게 경외를 느끼며 고개를 숙였다.
“예. 그리 처리하겠습니다.”
“일호.”
“예, 도련님.”
상혁이 손가락을 까닥하자 일호가 고개를 꾸벅 숙였다. 상혁은 일호를 올려다보면서 말했다.
“주드 포터는?”
“오승택 씨가 관찰하고 있습니다. 호텔에 머무르고 있다고 하던데, 별다른 움직임은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컨택해.”
“예. 그리고 도련님. 최강원 교수와 동행하실 것을 추천드립니다.”
“예대 교수?”
“예. 명분이 오디션 추진이니 주드 포터를 만나시려면 최 교수를 대동하시는 게 쉬울 것 같습니다.”
사만다 허드에 대한 건 이창엽도 모르는 일이다. 그렇기에 일호는 민감한 단어는 빼면서 상혁에게 말했고 상혁은 알아들었다.
오디션이란 걸 명분으로 삼았으니 주드 포터를 만날 때도 그가 이쪽을 신뢰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뜻이다.
일호의 조언이 합리적이었기에 상혁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 비서님. 최 교수랑 점심 한 끼 하자고 연락해 주세요.”
“예. 어디로 모시면…….”
“모시긴 뭘. 학식으로 불러요. 그쪽도 오디션에 사활을 걸 모양이던데요.”
“학…… 식이요?”
“네. 학식.”
학부장을 학생 식당에서 만나겠다고 한 상혁은 태연하게 자리에서 일어나 이사장실을 나가 버렸다. 이창엽은 도통 종잡을 수 없는 상혁의 뒷모습을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역시, 이상한 도련님이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