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 먹는 대마법사 118화
118. 마법이 재밌는 이유(3)
고도의 훈련을 받은 글레이저 가문의 정보요원들이었지만 마법 앞에서 그들이 받아 온 훈련과 정신력은 빛이 바랬다.
상혁이 펼친 마법 한 방에 알고 있던 모든 것을 다 실토한 것이다.
“캔슬.”
스르륵.
상혁은 일영에게 펼쳤던 매혹 마법을 캔슬시켰다. 그러자 일영을 보며 사랑의 세레나데를 부르던 마지막 요원이 눈을 까뒤집고는 옆으로 쓰러졌다.
“그러니까 나 때문이 아니라는 거네.”
사만다 허드.
상혁은 글레이저 가문이 여기까지 온 것이 사만다 허드 때문이란 사실을 깨달았다. 얼마 전에 친 사고가 결국 이렇게 귀결이 된 것이다.
상혁은 일영에게 놈들을 감시하라는 명령을 내린 후 위층으로 올라갔다. 상혁이 올라오자 모두가 긴장한 표정으로 거실에 앉아 있었다.
“마스터. 명대로 모든 분들을 모셨습니다.”
“잘했다.”
일호가 고개를 꾸벅 숙였다. 일호는 상혁의 기분을 헤아리고 상혁이 명령을 내리지 않아도 알아서 움직였다.
그렇기에 거실에 모인 이들 중 이창엽을 마크하느라 자리를 비운 이선호만 빼고 모두가 자리했다. 그중 안색이 가장 창백한 건 바로 사만다 허드였다.
조금 전 벌어진 일을 일호를 통해 전부 다 전해 들었다는 뜻이다.
“표정을 보니 들은 모양이야. 그렇지?”
상혁의 말에 사만다의 고개가 아래로 꺾였다. 할 말이 없을 것이다. 자신의 경솔한 행동이 민폐를 끼친 셈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건 은혜를 원수로 갚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죄송해요. 저 때문이에요.”
사만다는 솔직하게 자신의 잘못을 인정했다. 그리고 성인이라면 응당 자신의 잘못에 책임을 질 줄 알아야 한다는 것에 따라, 사만다는 상혁에게 말했다.
“그동안 신세 많이 졌어요. 그걸 꼭 갚아야 하는데. 살아남을 수 있다면 꼭 갚도록 할게요.”
사만다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녀는 챙길 짐도 별로 없었다. 있다면 상혁이 얼마 전에 사다 준 옷가지 정도가 그녀의 짐의 전부였다.
“어딜 간다는 거지?”
“저 때문에 벌어진 일이니까요. 글레이저는 다시 사람을 보내올 거예요. 그리고 언젠가는 저를 찾아낼 테구요. 그러니까 여러분께 피해를 끼치느니 제가 나가는 게 맞아요.”
원래부터 그랬어야 했다. 사만다는 그런 후회의 눈빛으로 상혁을 쳐다봤다. 이 먼 타국에서 기적적으로 목숨을 구한 것도 모자라 그 은인들에게 피해를 줄 뻔했다.
그래서는 안 된다.
글레이저의 힘은 겨우 이 정도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버티고 또 버티다 보면 살아날 구멍이 뚫릴 것이라는 근거 없는 믿음은 이제 버려야 한다. 자신을 구해 준 생명의 은인인 상혁이라면 방법이 있을 것 같다는 근거 없는 믿음에 이곳에 있었으나 더 이상은 아니다.
“제가 다른 곳으로 글레이저 가문을 유인할게요. 어차피 제게만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니까 제가 나가면 여기까지는 그 피해가…….”
덥썩.
김경자가 그런 사만다의 손을 붙잡았다. 상혁 덕분에 제정신으로 있는 시간이 길어진 김경자는 상혁을 바라봤다.
비단 김경자뿐만이 아니었다.
오승택, 오승환 형제까지 상혁을 쳐다봤다.
“선생님. 한 번만 이 아이를 도와주세요.”
김경자는 상혁에게 고개를 꾸벅 숙였다. 김경자에게 상혁은 아들뻘이었지만 그녀는 단 한 번도 상혁에게 그렇게 편히 대한 적이 없었다.
은인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반대로 김경자는 사만다와 가장 많은 시간을 보냈다. 어딜 나갈 처지가 안 되는 둘이다 보니 그간 정이 많이 쌓인 것이다.
사만다는 한국말을 하지 못했고 김경자도 영어를 할 줄 몰랐다. 하지만 두 여자는 여자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많은 것을 나누었다.
김경자가 사만다를 지켜 달라며 상혁에게 고개를 숙일 만큼.
“저, 전 괜찮아요. 제가 여기에 있으면 괜히…….”
스윽.
상혁은 손을 들어 올렸다. 상혁은 사만다를 쳐다보며 팔짱을 꼈다.
“애초에 무언가 착각하는 게 있는 것 같은데.”
“네?”
“내가 댁을 엘릭서니 뭐니 말도 안 되는 실험에서 구한 순간, 댁은 내 전리품이야.”
상혁은 손가락을 곧추세웠다. 그러고는 손가락으로 자신의 머리를 톡톡 두드렸다.
“난, 내 걸 빼앗기지 않아. 상대가 누구라고 할지라도.”
감히 그 누가 있어 마법사의 소유물을 건드린단 말인가. 누군가 그런다는 건 마법사에 대한 선전 포고다.
마법사란 족속은 자신의 것에는 대단히 민감했기 때문이다.
“아…….”
사만다의 볼이 붉게 물들었다. 상혁의 말을 곡해 한 모양이었다. 오승환이 그런 사만다를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상혁을 쳐다봤다.
‘멋있는데?’
오승환의 뒤에 후광처럼 빛을 발하고 있는 혼령이 빛을 반짝거리며 의지를 표현했다. 상혁은 갑자기 혼령이 빛을 발하는 걸 보면서 잠시 고개를 갸웃거린 뒤 사만다에게 마저 말했다.
“그러니 멋대로 나간다는 건 꿈도 꾸지 말도록. 여차하면 댁을 써먹을 생각이니까.”
사만다는 백도현이 저지른 추악한 범죄의 증인이자 증거물이다. 동시에 엘릭서가 몸속에서 흐르는 귀중한 실험체를 그냥 내보낼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마스터.”
대충 내부의 상황이 정리된 듯하자 일호가 핸드폰을 상혁에게 내밀었다. 그걸 본 상혁은 피식 웃은 뒤 핸드폰을 거꾸로 사만다에게 내밀었다.
“한국어, 읽나?”
“아직요. 그런데.”
사만다는 핸드폰을 건네받고는 두 눈을 부릅떴다. 한국어로 적힌 기사라서 알아볼 수 없었지만 그곳에 떡하니 주드 포터의 얼굴이 나와 있었기 때문이다.
“한국에 들어온 모양이군. 제2의 사만다 허드를 찾을 오디션을 열겠다면서 말이야.”
상혁은 주드 포터의 기사를 보고는 곧바로 그의 속셈을 눈치챘다. 오디션은 미끼다. 글레이저를 안심시킬 미끼.
하지만 사만다를 찾으러 온 것이다.
“아…….”
사만다의 두 눈이 붉어졌다. 자신이 뭐라고, 자신을 찾으러 그 위험을 감수하며 그가 한국에 왔단 말인가.
상혁은 사만다를 쳐다본 뒤 핸드폰 액정 속 주드 포터의 사진을 보며 말했다.
“버텨라. 그러면 만나게 해 주겠다.”
상혁의 말에는 미사여구가 없었다. 그는 직설적이고, 딱 자기 할 말만을 했다. 그렇기에 멋 따위는 하나도 없었다. 그러나 사만다는 왜 그 말이 그렇게 믿음직스러운지 알 수 없었다.
그렇기에 사만다는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상혁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 * *
“일호.”
“예, 마스터.”
상혁은 일호에게 과제를 내주기로 했다. 과연 일호가 현재 어느 수준인지를 가늠하고, 성장성을 점검해 보기 위한 일환이었다.
상혁조차도 설명할 수 없는 기적이 일어났으나, 그 기적을 분석하고 설명하는 건 마법사의 의무다.
그리고 마법사는 기록으로 그 모든 것을 증명한다.
성장형 서번트인 일호의 모든 것을 기록하고 그 원리를 찾아내는 건 마법사인 상혁에게 있어 큰 즐거움이자 사명이다.
“주드 포터와 사만다 허드, 그리고 글레이저 가문. 어떻게 해결하는 것이 좋을까?”
“음…….”
일호의 잘생긴 얼굴이 고민으로 물들었다. 상혁은 그 얼굴이 진짜 사람의 감정을 담았다는 데 두 번 놀랐다.
‘인공 생명체, 호문클루스.’
연금술의 궁극은 호문클루스다. 호문클루스란 인공 생명체로 신의 영역이라 여겨지는 창조의 영역이다.
그러나 그 경지는 신화 속의 경지일 뿐, 그 어떠한 마법사나 연금술사도 생명체를 창조하는 것은 실패했다.
그렇기에 일호는 기적이다.
“사만다 허드를 미국으로 돌려보내야 합니다.”
잠시 후 일호는 결론을 내놓았다. 상혁이 흥미로운 표정으로 일호를 쳐다봤다.
“왜지?”
“두 가지 때문입니다. 하나, 사만다 허드가 공식 석상에 모습을 드러냄으로써 글레이저 가문과 SG의 백도현을 반목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반목?”
“예. 글레이저 가문은 엘릭서 프로젝트란 명목으로 사만다 허드를 죽이고자 했습니다. 그리고 백도현은 엘릭서 프로젝트가 진행되는 한국의 총책임자였습니다.”
“그렇지.”
“그런데 마스터께서 그 계획을 망치셨고, 죽었어야 할 사만다를 살렸습니다. 그러니 사만다 허드가 살아 있다는 것이 알려지면 글레이저 가문은 백도현에게 그 이유를 물을 겁니다.”
그랬다.
상혁은 일호가 정보를 받아들이고, 판단한 뒤 결론을 내는 프로세스가 자신과 비슷하다는 것에 흥미를 드러내며 고갯짓을 했다. 계속해서 말하라는 뜻이었다.
“SG의 황태자인 백도현은 글레이저 가문이라고 해도 물러서지 않을 겁니다. 아마 서로가 서로에게 프로젝트 실패의 책임을 돌릴 것이 뻔하니까요.”
사고가 터지면 책임자를 찾으려고 하는 건 만국 공통이다. 엘릭서 프로젝트도 마찬가지다. 아마 서로 책임을 묻기 위해 헐뜯으려 할 것이다.
사만다 허드는 그 시기를 당길 것이다.
“두 번째는?”
“주드 포터를 이용한다면 글레이저 가문이 마스터에게 접근해 올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만다 허드를 미국으로 복귀시키려면 주드 포터와의 협력이 필수다. 하지만 그를 이용해 글레이저 가문과 접선한다는 건 의외다.
“그래서?”
“백도현과 백이현이 초조해질 겁니다.”
“글레이저 가문과 내가 손을 잡았다고 생각하게 만들어서?”
“그렇습니다.”
글레이저 가문의 저력은 백도현이 가장 잘 알았다. 그렇기에 백도현은 엘릭서 프로젝트라는 비윤리적 생체 실험을 승인하면서까지 그들과 손을 잡으려 한 것이다.
그런 상혁이 글레이저 가문과 모종의 관계를 맺는 것 같은 제스처를 보인다?
백이현과 백도현은 상혁에게 글레이저 가문이라는 거대한 배경이 생기는 걸 원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어떤 식으로든 움직일 것이고, 성급하게 움직인 만큼 빈틈을 드러낼 것이란 것이 일호의 의견이다.
물론 글레이저 가문이 상혁에게 접근하는 이유는, 주드 포터를 통해 사만다와 엘릭서 프로젝트와 상혁이 무슨 연관성이 없는지 알아내기 위해 접근하는 것이겠지만 말이다.
그러나 그 진실을 백도현과 백이현이 알아낼 방법은 없다.
짝짝짝.
상혁은 감탄을 숨기지 않고 손뼉을 쳤다. 일호는 가만히 고개를 숙였지만 눈에서는 부정할 수 없는 기쁨의 빛이 흘렀다.
영혼의 마스터인 상혁이 자신을 칭찬해 주는 것에 순수한 기쁨을 느낀 것이다.
“대단해. 그 정도까지 생각할 줄이야.”
상혁은 일호를 아주 높게 평가했다. 이 정도라면 웬만한 천재 이상이다. 일호가 태어난 것이 얼마 되지 않았다는 것을 고려하면 더더욱 그러했다.
“좋아. 일호. 네 의견에 따르도록 하지. 앞으로도 이런 의견이 있다면 가감 없이 내어놓도록.”
“예. 마스터를 위해서라면.”
학습하고 발전하는 서번트 일호. 상혁은 자신에게 절대적인 충성을 바칠 일호의 모습에 먹지 않아도 배가 든든했다.
“주드 포터와 자연스럽게 만날 수 있는 자리가 필요하겠군.”
“그럼 오디션을 이용하시는 건 어떠십니까?”
“오디션?”
상혁의 눈이 살짝 커졌다가 원래대로 돌아왔다. 그거다. 오디션이라면 주드 포터와 자연스럽게 만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하지.”
“예, 마스터.”
* * *
상혁이 차에서 내리자 대학교 행정처가 모여 있는 새천년홀이 멈춰 선 듯한 침묵이 흘렀다.
상혁을 보고 생각보다 훨씬 느리다는 것에 놀라는 사람들 반, 상혁이 기획조정처 처장인 한덕술에게 보여 준 모습과 최만금을 밀어냈다는 것에 반감을 품은 사람들이 반이었다.
우려와 반감을 품은 시선을 받았지만 상혁은 표정 하나 변하지 않았다.
저벅, 저벅.
상혁이 누군지 모르는 학생들이 상혁을 힐끗거렸다. 자신들과 비슷한 나이에 수행원을 대동한 상혁은 눈에 띌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그 수행원이 일호와 일영, 눈에 확 들어오는 선남선녀였기 때문에 더더욱 그러했다.
그러나 한 가지는 확실했다.
상혁이 첫날 보여 준 모습의 임팩트가 당장이라도 반기를 들 것 같았던 이들을 찍어 누를 정도로 압도적이었다는 것만큼은 말이다.
어쨌거나 첫 출근을 한 상혁은 곧바로 행정처의 주요 간부들을 불러 모았다. 그러고는 팔짱을 낀 채 사람들 앞에 서서는 인사만 까닥한 뒤 곧바로 본론을 밝혔다.
“주드 포터의 오디션. 제2의 사만다 허드를 찾는다는 거. 우리 대학에서 후원하도록 하죠.”
행정처의 간부들이 순간 당황해서는 입만 금붕어처럼 벌린 채 뻐끔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