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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 먹는 대마법사-116화 (115/249)

쓰레기 먹는 대마법사 116화

116. 마법이 재밌는 이유(1)

상혁의 눈에는 권태와 나태만이 가득했다. 그 눈과 마주한 사람은 자연스레 위축이 될 수밖에 없는 눈이었다.

고작 신입생 정도로 보이는 겉모습이지만 그런 상혁을 보고 누구냐고 물을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상혁이 이미 자신의 입으로 다 밝혔기 때문이다.

‘새로 온 이사장.’

그 말 한마디면 끝이다. SG의 자금이 없으면 한국대는 길바닥에 나앉아야 한다. 그런 상황에서 무려 회장의 조카가 이사장으로 온 것이다.

권태와 나태를 두 눈에 한가득 머금고.

“제 말 안 들리세요?”

상혁은 자신의 말에 아무도 대답을 하지 않자 한 번 더 물었다. 그러자 정신을 차린 한덕술 처장이 머뭇거리면서 나왔다.

“혹시 백상혁 이사장님 되십니까?”

“그런데요.”

상혁의 눈에 짜증이 약간 서렸다. 그 짜증을 마주한 한덕술은 왈칵 겁이 났다. 그 눈을 마주한 순간 미디어에서 주로 다루는 재벌의 그 모습이 튀어나올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그러자 한덕술은 자신의 처지를 깨달았다.

‘난 한낱 부나방에 불과했구나.’

최만금 전 이사장에 대한 의리?

우리가 없으면 이 학교를 운영하는 데 문제가 생긴다?

그런 게 눈앞의 상혁에게는 하등 고려의 이유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깨달은 것이다. 상혁은 자신을 마치 길가에 기어가는 개미처럼 보고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제, 제가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자연스레 한덕술의 입에서는 그 말이 자신도 모르게 흘러나왔다. 저런 상혁 앞에서 안 된다고 할 깜냥이 그에게는 없었다.

“그러세요.”

상혁은 고개를 까닥였다. 안내하라는 뜻이다. 그러자 한덕술은 무언가에 홀린 것처럼 이사장실로 상혁을 안내했다.

‘하.’

이창엽은 그 모습을 뒤에서 지켜보면서 속으로 헛웃음을 지었다. 딱 봐도 한덕술은 한 성깔 해 보이는 듯한 얼굴이었다. 그런데 그 관상이 상혁 앞에 서자 사정없이 깨진 것이다.

‘다른 사람이 된 것 같군.’

상혁은 본사 주차장에서 봤을 때와는 마치 다른 사람이 된 것만 같았다. 상혁의 스탠스는 간단했다.

‘남이 날 왕따시키기 전에 내가 남을 왕따시키면 되는 거잖아.’

그렇게 말한 상혁은 돌아선 순간 기도부터 시작해 모든 것이 바뀌었다. 이창엽은 상혁이 연기하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이따금 그 눈과 마주칠 때마다 자신도 모르게 어깨가 굳는 것이 느껴졌다.

오만하고 광오한 재벌.

상혁은 그 연기를 너무나도 찰떡같이 잘하고 있었다. 그러니 그 눈빛 한 번에 무언가 수작을 부리는 것이 역력해 보였던 행정본부의 꽤 직급이 높아 보이는 사람이 자신도 모르게 직접 나선 셈이다.

기선 제압을 제대로 해 버렸다.

‘대체 뭐지?’

그럴수록 이창엽은 상혁에 대한 궁금증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자신의 상식으로 재단해서는 안 된다는 것은 알았지만 대체 그 끝이 어느 정도일지 궁금해졌다.

그렇게 상혁은 주변에서 쏟아지는 시선을 거리낌 없이 맞받아쳤다. 그런 상혁을 김태양과 그 휘하가 호위했다.

그들에게 둘러싸인 채 걷는 상혁은 그 자체만으로도 이 학교를 점령하기 위해 온 점령군처럼 보였다.

‘패배자.’

상혁이 이런 모습을 보이면 사람들은 무의식에 상혁이 승리자고 전 이사장이 패배자인 것 같은 이미지를 심어 줄 것이다.

전 이사장이 인격자라 따르는 사람이 많기에 운영하는데 초반 애로 사항이 많을 것이라 예상한 것이 보기 좋게 깨졌다.

어수룩한 모습을 보였다면 모를까 권태와 나태를 드러낸 상혁의 눈 밖에 쉬이 나고 싶어 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똑똑똑.

이사장실에 도착한 한덕술은 조심스럽게 문을 두드렸다. 그러고는 옆으로 비켜섰다.

[들어오세요.]

“…….”

안에서 묵직한 최만금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지만 상혁은 문을 열지 않았다. 대신 빤히 한덕술을 쳐다봤다.

한덕술은 그런 상혁의 눈빛에 감히 고개를 들지 못했다. 속에서는 상혁에게 맞서야 한다고 소리치고 있었지만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태생적으로 초식동물로 태어난 자와 태생적으로 포식자로 태어난 자의 차이였다.

남의 돈을 받고, 남이 시키는 일만 하면서 살아온 한덕술은 포식자의 눈을 한 상혁에게 감히 대들 수 없었다.

“뭐 하세요?”

“예. 예?”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반항은 상혁의 눈빛을 못 본 채 하는 것뿐이다. 하지만 상혁은 굳이 그를 콕 집어서 불렀다.

“이창엽 씨.”

“예, 도련님.”

상혁이 부르자 이창엽은 자신도 모르게 긴장해서는 바로 대답했다. 군기가 바짝 든 이등병이 된 것만 같았다.

“누굽니까?”

김대엽은 상혁에게 이창엽을 붙여 주었다. 그렇다는 건 이창엽이 상혁을 도울 수 있도록 그가 웬만한 전반적인 정보는 다 가지고 있다는 소리다.

그런 자신을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이용하는 상혁의 모습에 이창엽은 감탄했다.

“한덕술 기획조정처 처장입니다.”

“위치는요?”

“최만금 전 이사장의 오른팔입니다.”

“꽤 높으신 분이셨네.”

한덕술은 침을 꿀꺽 삼켰다. 마치 자신이 발가벗겨지는 듯한 기분이었다. 상혁이 그런 그에게 말했다.

“모시던 분을 보내는 길까지는 보고 싶지 않다? 그게 처장님의 의리인 모양이죠?”

“…….”

“그럼 내려가서 짐 싸세요.”

“……!”

한덕술이 고개를 치켜들었다. 상혁은 그런 한덕술을 따분한 눈으로 쳐다봤다. 그제야 눈이 마주친 상혁은 한덕술을 보며 말했다.

“의리 지키시겠다면서. 그럼 방 빼셔야지. 의리를 지키려면 확실하게.”

그러면서 상혁은 문손잡이를 슬쩍 쳐다봤다.

“아니면 확실하게. 월급 주는 사람 말을 들으셔야지.”

어쭙잖게 방해하지 말고 확실히 노선을 정하라는 뜻이었다. 한덕술은 상혁의 말에 일언반구도 할 수 없었다. 생각해 보니 자신을 대체할 만한 인력이 SG에 없을 리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덕술의 가족에게는 돈을 벌어 올 사람이 한덕술밖에 없었다.

“아닙니다.”

한덕술의 눈빛이 바뀌었다. 조금 전까지 직원들을 호도하던 그의 모습은 더 이상 찾아볼 수 없었다.

달칵.

한덕술의 태세 전환은 빨랐다. 전 이사장에 대한 인간적인 의리는 있지만 가족을 외면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한덕술이 문을 열고 들어가자 최만금이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차분한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백상혁 님 맞으십니까.”

최만금은 말쑥한 차림새에 인자해 보이는 인상을 지닌 60대 남성이었다. 상혁은 그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백상혁이라고 합니다. 그간 이사장직을 맡느라 수고 많으셨습니다.”

백성철은 최만금을 직접 발탁하여 이사장 자리에 앉혔다. 그리고 그는 백성철의 바람대로 한국대를 세계 유수 대학의 반열에 올려놓았다.

그리고 최만금은 평판도 나쁘지 않아 그가 이사장직에서 물러난다는 것만으로도 직원들끼리 뭉치려는 기색을 보일 정도였다. 그래서 백성철은 자신이 아니라 백상혁을 내세워 최만금을 쳐 내려고 했다.

‘대체 왜일까.’

상혁의 앞에 커피 한 잔이 놓였다. 최만금이 직접 내린 커피였다. 주변을 물리고 최만금과 독대한 상혁은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입에 맞으십니까?”

“커피는 다 똑같죠.”

상혁의 말에 최만금이 너털웃음을 지었다. 커피는 다 똑같다. 저 말이 맞았다. 언제부터 사람들이 커피 맛을 따지기 시작했는데 최만금은 모른다.

“인수인계 준비는 다 마쳐 놓았습니다. 제가 없더라도 순차적으로 이뤄질 수 있도록 만들어 놓았으니 살펴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이사장의 일은 외부에서 바라보는 것보다 훨씬 더 많고 어려웠다. 대학 내의 교직원들과 조율할 것도 많고 정부 부처, 특히 교육청과 만나는 일이 잦았기 때문이다.

만약 SG의 든든한 자금력이 아니었다면 훨씬 더 바빴을 것이다.

“그만두시면 무엇을 하실 생각이십니까?”

“노년을 즐기려고 합니다.”

“이제 60대이신 걸로 알고 있는데.”

예전의 60과 지금의 60은 다르다. 오죽하면 사회적인 합의로 60대를 노년이라 부르는 것을 재고하려는 움직임이 보이고 있었으니 말이다.

“누가 받아 주겠습니까.”

“왜요. 훌륭히 한국대를 반석 위에 올려놓으셨는데.”

“반석 위라.”

최만금의 얼굴이 짧게 회한이 스쳐 지나갔다. 아마 그가 한국대를 위해 발로 뛰었던 그 시기를 주마등처럼 떠올린 것이리라.

“그럴지도 모르겠군요. 무엇이 남았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냥 남아서 일을 계속하시죠.”

“예?”

최만금의 눈이 커졌다. 그는 당연히 자신이 학교를 나가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상혁은 어깨를 으쓱했다.

“전 학교 운영에 대해서 아는 게 없습니다. 회장님이 시키시니까 왔지요. 그런 제가 이사장님보다 잘 운영하겠습니까?”

“그럼…….”

“전 학교나 다녀 볼 생각입니다. 이래 봬도 대학을 못 나와서.”

상혁은 피식 웃었다. 대학 생활이라. 한 번도 바란 적 없었다. 하지만 상혁이 대학을 직접 다녀 보기로 한 것은 방금 즉흥적으로 내린 결론이었다.

“어쨌든 명목상으로는 제가 이사장인데, 한국대가 어떤지 가장 빠르게 알 수 있는 건 직접 다녀보는 것 아니겠습니까?”

최만금은 상혁을 빤히 쳐다봤다. 상혁의 말이 진짜인지 아닌지를 가늠하기 위해서였다. 상혁은 씩 웃었다.

“제 제안, 어떠십니까.”

“회장님도 알고 계십니까?”

“한국대 운영에 대한 몫은 제게 있습니다만.”

“한번 여쭤보십시오. 회장님께서 바라실지.”

최만금과 백성철 사이에는 분명히 무언가가 있었다. 상혁은 그것을 눈치챘지만 내색하지 않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뭐, 그래 보겠습니다.”

“회장님은 절대로 허락하시지 않을 겁니다.”

“제가 어리긴 해도 허락이 필요한 나이는 아닌지라.”

“그럼, 이만.”

최만금은 자리에서 일어나 꾸벅 인사를 하고 나갔다. 그가 나가고 난 뒤 상혁은 곰곰이 생각했다.

‘학교에 대한 애정은 진짜다. 그런데 또 순순히 나가려고 하고 있지. 백성철은 나를 이용해 최만금을 치우고 싶어 하고.’

그렇다면 최만금은 상혁의 우군이 될 수도 있었다. 적의 적은 아군이니 말이다.

하지만 그 전에 상혁은 최만금이 무엇을 자신에게 숨기고 있는지를 알아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이사장님, 말씀은 잘 나누셨습니까?”

“그럭저럭이요.”

이선호가 들어왔다.

“이사장은 이 학교를 아끼고 있습니다. 하지만 백성철 회장과 트러블이 있었던 듯하네요. 무슨 일인지 알 수 있겠습니까?”

“한국대를 키워드로 한번 찾아보면 나오지 않을까요.”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는 변호사다. 상혁이 전속 변호사인 그를 함께 대동한 이유는 그가 똑똑하기 때문이다. 이선호라면 상혁이 궁금한 것에 대한 힌트라도 어디선가 알아 올 수 있을 것이다.

그는 그냥 책상에만 앉아서 서류 놀음만 하는 그런 변호사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면 난…….”

상혁의 오른쪽 눈에 서기가 서렸다

상혁은 자신의 시야가 육안과는 또 다른 차원으로 접어드는 것을 느끼면서 다른 사람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마나의 흔적을 쫓아 수인을 맺었다.

“최만금의 비밀에 대해서 알아볼까? 패밀리어.”

상혁의 시야 위로 다른 시야가 덧씌워졌다.

* * *

“어? 또?”

상혁은 퇴근 시간을 지켜 주었다. 내일 출근 시간에 맞춰서 오라고 했기 때문에 흥신소 사무실로 이용하고 있던 곳으로 김태양은 퇴근했다.

살던 집의 보증금과 퇴직금을 부어서 마련한 사무실에서 김태양은 먹고 자고 했다.

그런데 오늘 김태양의 눈에 걸리적거리는 것이 들어왔다.

“무슨 미행을 저딴 식으로 하냐.”

김태양의 사무실이 있는 건물 아래 누가 봐도 수상하게 잠복하고 있는 차량이 또다시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김태양이 지켜보고 있자 차가 헤드라이트를 켜고 주차장을 떴다.

그때 촉이 왔다.

“쓰읍…….”

김태양은 자신의 10년식 구형 소나타에 올라탔다. 그러고는 천천히 눈에 띄지 않을 정도의 거리를 유지한 채 그 차를 따라갔다.

“코쟁이들이 누굴 미행하길래 저렇게 며칠씩이나 시간을 끌어?”

게다가 차가 같은 것만 뺀다면, 움직임을 보니 프로였다. 사무실 주차장에서야 김태양이나 되니까 매번 같은 차가 있다는 것을 안 것이지 다른 사람 같았으면 모를 것이다.

대한민국 안방에서 돌아다니는 타국의 정보요원들.

그들을 미행한 김태양은 매복 차량이 웬 서울 동네의 좁은 골목길로 접어드는 것을 보고는 골목 앞에 차를 세워두고 내렸다.

“……집?”

웬 2층짜리 주택이 있었다. 그런데 그 안까지 차로는 들어갈 수 없어 차에서 내린 코쟁이들이 차에서 내려 서로 쑥덕대는 모습이 들어왔다.

“잠깐만. 여기가…….”

김태양은 문득 이상함을 느끼고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 지도 앱을 켜 현 위치를 확인한 순간 김태양은 헛기침을 내뱉었다.

“쿨럭.”

동시에 김태양은 속으로 말했다.

‘미친놈들.’

코쟁이들이 찾아간 곳은 바로 상혁이 머무는 집 앞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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