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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 먹는 대마법사-111화 (110/249)

쓰레기 먹는 대마법사 111화

111. 왕따(1)

“흐, 흐흐흐흐.”

상혁은 우스꽝스러운 웃음을 흘리며 손을 뻗어 과자를 입 안에 넣고 씹었다.

와사삭, 와사삭.

“으음. 맛있다. 회장님이 드시는 거라 과자도 고급인…….”

“상혁 씨. 그거 집 앞에도 있는 로마바케트에서 파는 과잔데요.”

“역시. 사람 입맛은 다 거기서 거기네요.”

이선호는 황당하다는 눈으로 상혁을 바라봤다. 예전부터 느껴온 것이지만 상혁은 참 종잡을 수 없는 사람이었다.

언제는 숨 막힐 정도의 위압감을 드러내며 절대자처럼 느껴지더니, 지금은 또 방구석에서 배나 벅벅 긁고 있을 백수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이야. 오랜만에 보니까 재밌네요.”

“백성철 회장을 만나러 왔다는 건 잊지 않으셨죠?”

“이제 대충 한 시간 남았네요.”

상혁은 시계를 보고는 씨익 웃었다. 상혁의 말대로 백성철 회장은 출근 시간이 한 시간이 지났음에도 회장실에 들어가지도, 그렇다고 상혁을 부르지도 않았다.

‘거기에 회장에게 보고를 해야 할 회사 중역들도 하나도 나타나지 않았다.’

이선호는 백성철 회장이 매일 아침 전사의 회사 중역들을 불러 현안을 보고 받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그 때문에 매일 아침마다 회장실 앞이 문전성시를 이룬다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하지만 오늘은 단 한 명도 이 응접실을 빙자한 대기실에 나타나지 않았다.

“너무 과자를 많이 먹었나? 이러다 점심에 입맛에 없겠네요.”

상혁은 실없는 웃음을 지으며 텅 빈 과자 그릇을 손가락으로 탱 소리가 나게 두드렸다. 상혁은 한 시간 동안 정말 이곳이 자신의 안방인 것처럼 굴었다.

“에이. 다 흘렸네.”

과자 부스러기를 툭툭 털어 낸 상혁이 자리에서 일어나 기지개를 쭉 하고 켰다. 이선호가 그런 상혁을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지만 상혁은 그저 싱긋 웃기만 했다.

“왜요.”

“전 상혁 씨만 믿고 있겠습니다.”

“그러시라니까. 나 아니었으면 지금 그렇게 앉아 있지도 못해요. 흠. 그나저나 아침부터 과자랑 주스를 많이 마셨나. 화장실 좀 다녀오겠습니다.”

“네, 그러시죠.”

이선호는 얌전히 고개를 끄덕였다. 상혁이 저러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을 것이다. 지금껏 상혁은 의미 없는 행동을 한 적은 없었다.

“따르겠습니다.”

“화장실까지? 됐어. 기다려.”

“예, 도련님.”

일호와 일영이 상혁의 만류에 멈춰 섰다. 그것을 보며 이선호는 재차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상혁에게서 저들이 마법 생명체란 것을 들었기 때문에 보이는 것이지 그게 아니었다면 영락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해야지.’

이선호는 살짝 풀어진 마음의 고삐를 다시 죄었다. 상혁이 풀어진 모습을 보인다고 해서 자신까지 방심하면 안 된다는 것을 상기한 것이다.

저런 불가해한 능력을 갖춘 것은 자신이 아니라 상혁이다. 그러니 자신은 상혁을 믿고 상혁을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하면 된다.

‘백 회장을 상대로 협상이라. 백도현을 만나는 것만 해도 감지덕지하던 때가 있었는데.’

자신의 과거를 떠올린 이선호가 피식하고 웃었다. 그때는 백도현을 만나는 것도 힘들었다. 하지만 이제는 백 회장을 만나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다.

‘예전에 다하지 못했던 내 일에 대한 책임을 질 수도 있겠군.’

상혁을 따르면 그게 가능해진다. 이선호는 허리를 곧게 폈다. 여벌의 목숨이다. 그 목숨을 상혁을 따르는 데 쓰기로 했다. 이선호는 자신이 가는 길에 자신이 미처 다하지 못했던 책무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길 것이라 확신했다.

또각또각.

그때 밖에서 하이힐 소리가 들렸다. 이선호가 고개를 갸웃거릴 때 문밖에서 대화 소리가 들리더니 누군가 문을 열었다.

그 순간 이선호의 눈이 커졌다.

“선배님?”

들어온 여자가 이선호를 보고서는 반가운 표정을 지었다.

* * *

‘예상은 했지만 더 유치하군.’

상혁은 자신의 예상대로 한 시간 동안이나 코빼기도 보이지 않는 백성철을 떠올리고는 빙긋 웃었다.

대개 자신의 위세를 보여 주기 위해 찾아온 이들을 일부러 오래 기다리게 함으로써 감정적으로 흔드는 클래식한 방법이었다.

문제는 그런 게 상혁에게는 하나도 통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꽤 당황해하고 있겠지.’

다른 사람도 아니고 무려 백성철이다. SG의 총수이자 대한민국 재계의 왕이나 다름없는 백성철을 만나러 와서 상혁처럼 군 사람은 없을 것이다.

‘지금쯤이면 느꼈겠지. 자신의 방법이 나한테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백성철도 바보가 아닌 다음에야 비서들에게 모든 것을 보고 받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도 깨달을 것이다. 자신의 조카에게 그런 수는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말이다.

저벅.

그때 화장실 입구에 커다란 덩치를 가진 경호원이 와서는 입구를 막았다. 상혁이 눈썹을 슬쩍 찌푸리자 그 뒤로 익숙한 얼굴이 들어왔다.

“백도현?”

“아주 이름을 찍찍 부르는구나. 어린놈이.”

백도현이었다. 그가 나타났다는 건 백성철이 왔다는 소리다. 상혁이 입가에 미소를 머금자 그런 그를 백도현이 못마땅하게 쳐다봤다.

“오셨습니까, 형님?”

백도현이 다 들었다는 것을 알면서도 상혁은 능글맞게 이죽거리며 백도현에게 꾸벅 인사를 했다. 나이가 어리다는 게 이럴 때는 상대방을 놀려먹을 수 있다는 것에 상혁은 아주 만족스러웠다.

“듣기 싫다. 대체 너 같은 놈을 회장님께서 왜 회사로 들이시는지 모르겠군. 그저 돈이나 몇 푼 쥐여 주고 말면 될 것을.”

백성철은 상혁이 백도현과 백이현을 견제하는 칼이 되기를 바란다. 그렇다면 상혁 역시 백도현과 백이현을 백성철을 견제할 칼로 써먹지 않을 필요는 없다.

상혁이 씩 웃었다.

“이현 형님이 계실 때는 그러시지 않더니. 왜 저를 미워하시는 겁니까?”

“이곳은 복마전이다. 너 같은 어중이떠중이가 낄 곳이 아니야.”

백도현은 상혁을 경계하고 있었다. 자신이 추진했던 모든 일이 알게 모르게 상혁과 관련이 되어 있다는 것을 안 순간부터였다.

상혁에게 의문점은 확실하게 없다는 것을 파악했다. 하지만 그는 상혁이 괜히 싫고 꺼려졌다.

“저도 압니다, 형님.”

“그걸 안다면 조용히 나가거라. 네가 지낼 곳과 평생 쓸 돈은 내가 책임져 주지.”

상혁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건 안 될 것 같습니다. 고작 그 정도 먹으려고 이 판에 낀 건 아니라서.”

“욕심이 과해.”

백도현은 숨이 막힐 정도로 신중한 스타일이다. 그런 백도현이 직접 상혁에게 떠날 것을 종용하고 있다는 건 그가 그만큼 코너에 몰렸다는 뜻이다.

‘엘릭서 때문이겠군.’

엘릭서 프로젝트를 단독으로 승인하고 협조하기로 한 것은 백도현의 뜻이다. 그걸 대가로 백도현이 받아 내기로 했던 것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게 실패하면서 백도현은 지금 궁지에 몰려 있었다.

‘능구렁이 같은 회장이 그걸 모를 리 없겠고.’

짐짓 아무것도 모르는 척하면서 여자나 후리고 다니는 백성철 회장이지만 그가 그룹 내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을 모를 리 없다.

애초에 백도현이 자신을 넘으려는 것을 경계해서 상혁을 들이기로 한 양반이 백도현의 동향에 대해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을 리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상혁은 이런 백성철과 백도현의 복잡한 관계를 이용하면 된다.

“절 써먹으시죠.”

“……뭐?”

“원래 검은 검집에서 뽑지 않았을 때 가장 무서운 법입니다. 전 아직 뽑히지 않은 검이고요. 뭐, 검 자루를 누가 쥐는 건 아직 정해지지 않은 게 아닙니까.”

“…….”

백도현의 눈이 커졌다. 그것까지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백도현은 스스로를 자책했다.

‘바보같이. 시야가 좁아져 있었다. 이걸 생각하지 못하다니.’

왜 자신이 상혁과 굳이 대척해야 한단 말인가. 상혁은 이 그룹 내에 어디 발붙일 곳 하나 없는 처지다. 그런 상혁을 자신이 감싼다면?

인상을 쓰고 있던 백도현의 표정이 풀렸다. 그걸 보면서 상혁은 속으로 감탄했다.

‘뱀 같은 놈.’

머릿속에서 계산이 끝난 것이다. 상혁이 한 말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하자 태도를 곧바로 바꾸는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백도현의 입에서 한층 부드러워진 음성이 흘러나왔다.

“하긴. 우리 둘이 친하게 지내지 말란 법은 없겠지.”

“바로 그겁니다.”

도움이 된다면 어제까지 원수였던 사람의 손도 잡을 수 있는 것이 백도현이다. 상혁은 백도현이 머릿속으로 수없이 계산하는 것을 보며 빙긋 웃었다.

“이렇게 된 김에 형님, 파운드리 사업부에 제가 아는 사람이 하나 갔습니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전아영이다.

그것을 백도현도 알고 있었다. 백도현은 그런 상혁을 보면서 눈에 이채를 띄었다. 상혁이 전아영과 꽤 친분이 있다는 건 그도 알고 있었다. 자신의 공장에서 급성백혈병으로 쓰러진 것이 바로 전아영이었기 때문에 그녀에 대한 조사가 이미 끝났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런 전아영을 상혁이 직접 신경 쓴다?

약점이 될 수도 있다.

그렇게 생각한 백도현의 표정이 더 풀어졌다. 상혁과 손을 안 잡을 이유도 없다. 그리고 상혁의 약점까지 자신이 잡고 있었다. 그렇다면 상혁과 손을 잡는 것이 이득이다.

‘라고 생각하겠지. 다 읽힌다, 이놈아.’

전아영을 고졸에 공장 출신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내릴 수 있는 결정이다. 전아영이 어디까지 해낼 수 있는지는 봐야 하지만 그런 방심이 전아영을 잡은 물고기가 아니라 방류한 물고기로 만들 것이다.

‘네가 약점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비수가 되어 네놈을 찌를지도 모르겠지.’

SG그룹 해체 작업.

자신의 부족함과 열등감을 권력욕에 미쳐 자신의 동생을 죽인 패륜아 백성철 회장이 이끄는 SG그룹은 존재 자체가 이 세상에 하등 도움이 되지 않는다.

감히 자신의 부모님을 죽인 백성철 회장이 이끄는 SG그룹은 곧 끝날 것이다.

‘그 시작은 너다. 백도현.’

상혁은 그렇게 생각하며 눈을 빛냈다. 그때 계산을 다 끝낸 백도현이 손을 내밀었다.

“사촌끼리 잘 지내자꾸나.”

“예, 형님.”

상혁과 백도현이 두 손을 굳게 맞잡았다.

* * *

“제 안방처럼 있었군.”

“죄송합니다, 회장님.”

김대엽은 자신의 잘못이 아님에도 백성철에게 고개를 숙였다. 보고를 받은 백성철은 너털웃음을 터뜨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니. 자네 잘못이 아니야. 오히려 이렇게 그놈의 성정을 확인했으니 이득이다.”

“써먹을 만하시겠습니까?”

상혁을 말함이다. 백성철이 준비한 무대를 상혁은 멋들어지게 망쳐 버렸다. 비서들은 거침없이 나오는 상혁 앞에서 꼼짝도 하지 못했고 백성철은 괜히 한 시간만 회사에 늦게 온 셈이 되어 버렸다.

“기대 이상이야. 중졸이라고?”

“고등학교는 검정고시로 나온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 놈이 이럴 수 있나? 아니면 SG의 피가 흐르기 때문인가?”

SG그룹의 핏줄이란 것을 상혁이 그 전에 알고 있었다는 사실은 밝혀지지 않았다. 그런데도 상혁은 비서들을 마치 수족처럼 부렸다.

백성철의 비서들이 상혁을 보면서 자신들도 모르게 상혁이 하라는 대로 하고 있을 정도로 상혁은 사람을 부리는 것이 능숙했다.

로열패밀리란 것은 원래 그래야 하는 법이다. 그게 SG그룹이라면 사람을 부리고 다루는 것이 수족처럼 자연스러워야 한다.

그런 점에서 상혁의 존재는 백성철에게 있어 의문투성이였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어쨌든. 칼로 써먹을 수 있겠어.”

“예. 그럼 부르겠습니다.”

김대엽은 대기실로 갔다. 잠시 자리를 비웠다던 상혁이 돌아와 있었고 백이현과 백도현이 서로 마주 보고 앉아 있었다.

둘 사이에서 불편한 기류가 흘렀지만 김대엽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상혁 도련님. 회장님께서 부르십니다.”

“예.”

상혁은 자리에서 일어나 회장실로 들어갔다. 두 번째 들어와 본 회장실이다. 상혁이 들어오자 백성철이 히죽 웃으면서 의자를 돌려 앉았다.

“좀 늦었다.”

“괜찮습니다. 편하게 있었습니다.”

“그래. 첫 출근이지. 어디로 가고 싶은지 생각한 곳이 있더냐?”

백성철이 물었다. 상혁은 눈만 동그랗게 뜨고 멀뚱히 백성철을 쳐다봤다. 전혀 생각해 보지 않았다는 상혁의 표정이 백성철이 껄껄거리며 웃었다.

“SG의 이름을 달고 살아가는 첫날인데. 아무런 생각이 없구나.”

“내일을 보고 살 정도로 녹록했던 삶은 아니었습니다.”

“까부는구나. 나는 네 나이에 더했다.”

상혁의 말을 콧방귀 한 번으로 찍어 누른 백성철이 상혁에게 말했다.

“한국대로 가라. 오늘부터 네가 이사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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