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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 먹는 대마법사-110화 (109/249)

쓰레기 먹는 대마법사 110화

110. 신입사원(5)

보이지 않는 긴장감.

상혁은 로비에 들어서면서 자신을 바라보는 로비 안내석의 직원들과 가드들의 시선을 느끼고는 그런 날선 감정을 느끼며 씨익 웃었다.

‘옛날 생각이 나네.’

상혁이 대마법사 시절 장거리 이동마법이 된다는 이유로 사신으로 참으로도 많이 여러 귀족들과 왕족들을 보러 다니곤 했다.

그러면 그럴 때마다 이런 시선들을 느껴왔다.

긴장, 호기심, 궁금 등등.

키타이온의 사신이라 불렸던 상혁이다. 그런 상혁의 무명과 전공에 그를 궁금해하던 이들이 보내던 시선과 지금 저들이 보내오는 시선이 크게 다르지 않았다.

“상혁 씨를 쳐다보는 눈들이 참 많군요.”

이선호가 옆에서 작게 속삭였다. 이선호가 느낄 정도이니 사실상 이 건물의 모두가 상혁을 궁금해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새로운 권력자의 등장이니까요.”

“권력을 주겠습니까?”

“남들의 눈에는 그것도 큰 권력이겠죠.”

말을 하는 이선호도, 대답하는 상혁도 그런 권력 구도의 냉엄함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다. 비록 상혁이 백성철의 조카라고는 하지만 동생의 아들이니 자신의 직계 핏줄은 아닌 셈이기 때문이다.

그런 상혁에게 백성철이 큰 자리를 내어 줄 리 없다.

“어떤 자리를 원하십니까?”

“글쎄요. 별로 간섭 하지 않을 자리?”

“그런 자리가 있겠습니까?”

“없겠죠.”

상혁은 지금 폭풍의 눈이다. 설령 상혁이 청소부가 되더라도 그런 상혁을 놓고 온갖 구설수들이 떠돌 것이다.

어딜 가든 상혁은 폭풍의 중심이 될 수밖에 없다. 백이현이나 백도현에게 깨지고 사람들의 눈에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지 않는 이상 SG의 핏줄인 상혁이 견뎌야 할 사람들의 관심이기도 했다.

“이러다 뉴스에도 나오시는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베일에 감춰져 있다가 갑자기 나타난 백성철 회장의 조카, 백상혁.

그 백상혁에 대한 소식은 이미 증권가에서는 찌라시로 돌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상혁에 대한 소문이 퍼진다면 경제부 기자들이 관심을 가질 것이다.

부모를 일찍 여의고 자신이 재벌인 줄 모르고 살아오다 SG에 입성한 풍운아.

하지만 이 세상에 이유 없는 뉴스는 없다.

“백성철에게는 거래 때 제시할 협상안이 하나 늘었으니 첫발이 나쁘지 않군요.”

“상혁 씨를 이용할 것이라 보십니까?”

“뉴스로 써먹기 좋다면서요. 다른 뉴스를 덮을 만큼 뜨거운 화젯거리가 될 테니까요.”

“아.”

이선호의 눈이 커졌다. 그는 경탄의 눈으로 상혁을 쳐다봤다. 마법사라는 믿을 수 없는 존재인 상혁의 정치 감각이 자신보다 뛰어나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정계에서는 늘 암투가 벌어진다.

그리고 그 암투에서 밀린 쪽에서 감시망이 뚫린 사이 그곳을 통해 세간을 시끄럽게 할 뉴스가 터지곤 한다. 그럴 때마다 그 뉴스를 덮기 위해 터지는 것이 연예인의 스캔들이다.

복잡한 셈법에 따라 연예인들이 희생당하는 셈이지만 그걸 이상하다며 꼬집고 나오는 사람은 정계에도, 재계에도 아무도 없었다.

그리고 상혁도 마찬가지다.

“백성철은 저를 백이현과 백도현을 견제할 칼로 써먹을 겁니다. 그러니 영양가 없는 자리를 주진 않겠죠.”

“견제라. 쉽지 않으실 겁니다.”

“마법산데요?”

상혁이 피식 웃었다. 이선호는 그런 상혁의 표정을 보고는 입가를 꿈틀거렸다. 마주 웃어 주기에는 자신은 상혁의 전속 변호사란 자각이 있었기 때문이다.

“백도현의 약점은 쥐었습니다. 거기서 더 파면 굵직한 것들이 딸려오겠지요. 예를 들면 사만다 같은.”

“글레이저 가문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위험하실 수도 있습니다.”

“조만간 미국도 한번 가야겠어요.”

사만다를 언제까지 붙잡아 둘 수는 없는 노릇이다. 마침 그녀를 애타게 찾는 소속사 사장이 있다고 하니 그쪽에 적당한 때 넘겨주면 된다.

물론 어디까지 이쪽에 대해서 밝히느냐는 차차 해결해야 할 문제다.

‘원탁. 다섯 개의 가문. 지구도 복잡하긴 매한가지군.’

사람이 모이는 곳이면 늘 어딜 가나 원탁처럼 일반인들은 모르는 비밀스럽지만 강력한 권력을 휘두르는 단체가 있는 법이다.

하지만 상혁은 별로 겁이 나진 않았다.

그저 귀찮을 뿐이다.

‘망할 놈의 파이브 로드를 해체하는 것도 십 년이나 걸렸는데.’

가나안에서 이미 그걸 겪어 보지 않은 것이 아니다. 가나안에도 당시 삼왕자를 도와 마법으로 무명을 떨치던 상혁 앞에 나타난 것이 파이브 로드라는 놈들이다.

다섯 명의 군주들.

그들은 왕국의 기둥이라 불리는 다섯 개의 각기 다른 사업 분야를 책임지고 있는 가문이었는데, 그들은 자신들의 힘을 내세워 삼왕자가 왕위에 오르지 못하도록 물 밑에서 협잡질을 하며 파벌을 이용해 정치적으로, 군사적으로 공격했다.

과연 숨겨진 권력이란 무서운 법이어서, 삼왕자는 꽤 고생을 해야만 했다.

수백 년간 존재하면서 힘을 기른 숨겨진 권력들이 가진 힘이 왕국 전체를 휘두를 정도로 컸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놈들을 분쇄한 것이 바로 상혁이었다.

키타이온의 사신.

상혁이 그런 별호로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린 이유는 파이브 로드의 주력부대를 그곳에서 상혁이 홀로 분쇄하고 파이브 로드를 아예 해체시켜 버림으로써 얻게 된 별명이기도 했다.

‘5서클이면 충분하진 않지만 얼마든지 귀찮게 해 줄 수는 있지.’

물론 그 귀찮은 게 상혁이 당하지 않아서 귀찮은 것이라고 하는 것이지 당하는 입장에서는 복장이 터질 정도일 것이다.

그러니 그중 하나인 글레이저 가문이 위험하느냐?

‘수틀리면 골렘으로 쓸어버리지 뭐.’

일영 같은 골렘 백 기. 백 기도 부족하다면 이백 기를 쏟아부으면 된다. 어디에서 튀어나오는지도 모를 골렘들에 의해 글레이저 가문이 쓸려 나가는 건 미국 정부가 나서도 말리지 못할 것이다.

과격하지만 그것도 염두에 둘 필요는 있었다.

하지만 상혁은 명색이 대마법사에 문명인이다. 대화도 없이 그런 일을 벌이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상혁 스스로가 베일 뒤의 가려진 권력과 다를 게 무엇이란 말인가.

“뭐, 어디로 가면 되죠?”

“저도 그건 잘…….”

이선호도 말끝을 흐렸다. 그도 SG 본사는 처음이다. 변호사 일을 하면서 SG와 그리 좋은 관계를 이어 온 것은 아니기 때문에 괜히 적진에 온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가서 물어보면 되겠죠.”

상혁은 피식 웃었다. 그냥 나오기만 했는데도 자신이 누구인지 다 아는 눈치다. 그런데 그걸 백성철은 몰랐을까?

기선 제압이다.

“저기.”

“예. 무슨 일로 오셨나요?”

데스크 쪽에 앉은 직원이 친절한 얼굴로 상혁을 보면서 웃었다. 제법 연기를 잘했지만 상혁은 그녀의 눈이 잘게 떨리는 것을 보았다.

긴장한 것이다.

애먼 사람을 놀리는 건 상혁의 성미에 맞지 않았다. 상혁이 빙긋 웃으며 말했다.

“백상혁입니다. 백성철 회장 조카 되는 사람이고요. 오늘 회사에 나오라고 하셔서 나왔는데.”

상혁이 눈길을 슥 돌렸다. 미리 무슨 합을 짜 두기라도 한 것인지 데스크를 총괄하고 들어가는 사람을 관리하는 것으로 보이는 남자가 일어서려고 했기 때문이다.

상혁은 그를 보면서 말했다.

“유치하게 위에서 뭐 한 번 건드려 보라고 했다거나. 들여보내지 말라거나. 그런 건 아니겠죠? 뒷감당들 어떻게 하시려고.”

멈칫.

상혁은 대놓고 으름장을 늘어놓았다. 그러자 그 남자가 퍼뜩 제자리에 멈춰 섰다.

SG에 다니는 월급쟁이들에게 상혁 같은 로열패밀리는 불가침의 영역이자 감히 넘볼 수 없는 산이다. 상혁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콧방귀를 푹 끼고는 여직원에게 말했다.

“문 열어요.”

“네, 네…….”

거침없는 상혁의 아우라에 눌린 여직원이 게이트를 열었다. 상혁은 게이트를 넘었다. 출입증이 없으면 넘지 못하는 SG 본사의 게이트를 그냥 훌떡 열어 버린 것이다.

“많이 해 보셨습니까?”

이선호가 뒤에서 놀란 듯 상혁에게 물었다. 상혁이 남자를 말로만 제압한 것이나 미리 다 알고 있었다는 것처럼 구는 것이 이런 상황을 한두 번 겪어 본 것이 아닌 듯싶었기 때문이다.

당연했다.

“원래 삼대가 놀기만 해도 먹고 살 정도의 부잣집은 그 문지기도 왕처럼 구는 법이니까요. 그럴 때면 슬쩍 알려 주기만 하면 됩니다. 내가 누군지요.”

“하. 보면 꼭 예전부터 SG의 로열패밀리로 살아오신 줄 알겠습니다.”

“그러니까요.”

상혁은 빙글거리며 웃었다. 그게 하도 능글맞아서 이선호는 더 이상 물어볼 용기를 잃었다. 어차피 물어도 저렇게 비슷하게 대답할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와우. 줄 기네.”

상혁을 쳐다보는 눈이 더 많아졌다. 사람들이 엘리베이터 앞에 줄을 서 있었기 때문이다. 엘리베이터가 8대나 됐지만, 이 건물에서 일하는 사람을 출근 시간에 한 번에 나르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그 때문에 길게 늘어진 줄 앞에서 휘익 하고 휘파람을 분 상혁의 눈에 사람의 줄이 서 있지 않은 엘리베이터 한 대가 떡하니 눈에 들어왔다.

“저기로 가죠.”

“저건, 회장 전용 엘리베이터 아닙니까?”

이선호가 설마 하는 표정으로 상혁을 쳐다봤다. 상혁이 거침없는 스타일이란 것은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 설마 첫날부터 사고를 칠까.

“설마 첫날부터 사고를 치겠냐는 표정으로 보시는데.”

상혁이 이선호에게 말했다.

“이미 사고는 예전에 쳤습니다. 그리고 SG나 되는 회사가 엘리베이터가 부족해서 이 이른 아침에 저걸 그냥 둔다는 게 말이나 됩니까?”

줄이 조금 긴 것도 아니고 엄청 길었다. 저 엘리베이터를 타다가 지각하는 사람도 분명히 나올 것이다. 이 무슨 비효율이란 말인가.

상혁은 태연하게 회장 전용 엘리베이터로 가서는 버튼을 꾹 눌렀다. 그러자 위에서 엘리베이터가 내려오더니 상혁 앞에 섰다.

“저기요. 안 타시나요들?”

상혁은 그곳에 냉큼 올라탔다. 그러고는 자신을 쳐다보는 직원들을 향해 상냥한 목소리로 외쳤다.

하지만 쉬이 움직이는 사람은 없었다. 저건 무려 회장 전용 엘리베이터다. 백이현이나 백도현도 저걸 타진 않는다.

백성철의 권위 때문이다.

“흐음. 우리 회장님이 무섭기는 한가 보네.”

피식 웃은 상혁은 아무도 타지 않자 어깨를 으쓱하고는 엘리베이터의 닫힘 버튼을 눌렀다. 그러자 엘리베이터는 아무 데도 서지 않고 정확히 회장실이 있는 층에 딱하고 섰다.

상혁이 도착한 순간 엘리베이터 앞에 처음 보는 비서가 서 있었다. 긴장한 기색이 역력한 그 비서는 상혁을 보고는 허리를 구십 도로 숙였다.

“백상혁 님.”

“네.”

“회장님께서는 아직 출근 전이십니다. 저쪽에서 기다려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긴장한 기색이 역력한 비서는 누가 보더라도 신입, 혹은 막내 정도로 보였다. 다른 비서들은 자기가 하기 싫은 일을 막내에게 떠넘긴 것이다.

벌벌 떠는 비서를 힐끗 본 상혁은 대기실로 향했다. SG를 총괄하는 백성철에게 결재, 혹은 보고를 하기 위해 하루에만 수십 명이 방문하기 때문에 이런 대기실이 있는 모양이었다.

그리고 그곳에 자리를 잡고 앉은 상혁이 이선호를 돌아보며 말했다.

“뭐 하세요?”

“예?”

“편하게 쉬세요. 아마…….”

상혁은 손목의 시계를 힐끗 내려다봤다.

“두 시간 뒤에나 회장님이 부르시겠네요.”

“왜요?”

“왜긴요. 버릇없는 조카 앞에서 기강 세우시려고 하는 거죠.”

이선호는 눈을 크게 떴다. 그러고 보니 백도현을 상대로 할 때도 SG에서는 이런 전략을 자주 썼다. 협상 장소에 일부러 늦게 해서 상대를 격분하게 만들어 빈틈을 만들어 내는 전략을 써먹은 것이다.

그게 다 회장인 백성철부터 시작된 것이었다.

“일호.”

“예, 도련님.”

일호는 기다렸다는 듯 들고 온 가방에서 만화책을 꺼내 상혁에게 건넸다. 상혁이 가나안에 가기 전까지 재밌게 보던 만화책이었다.

대기실에서 태연하게 만화책을 꺼낸 상혁은 자신을 어이없이 쳐다보는 이선호의 눈에 아차 싶은 표정을 지었다.

“맞다. 길게 기다릴 거면 마실 것도 필요하겠죠? 거기 비서님. 마실 것 좀 가져다주세요. 간단하게 씹을 것도 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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