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 먹는 대마법사 109화
109. 신입사원(4)
전아영은 정신이 없었다. 자신이 언제 화를 냈는지도 이제는 잊었다. 갑자기 짠 하고 나타난 상혁 때문이다.
“안 마셔?”
“마, 마실게요.”
전아영은 카페로 자리를 옮겼다. 상혁이 그러자고 했기 때문이다. 조진만을 떠밀어 보낸 상혁은 전아영을 마주 보고 앉았다.
“서울에는 웬일이지?”
상혁은 전아영에게 물었다. 온양에 있어야 할 전아영이다. 그런 전아영이 서울로 온다는 말은 듣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런 전아영을 백화점에서 볼 줄이야. 그것도 하필이면 자신이 가는 그날에 말이다.
“그, 서울로 취직하게 됐어요.”
“취직?”
“지난번 공장에서 사고 때문에요. 피해 보상 중 하나로 SG그룹에서 입사를 권유했거든요.”
“SG? 누가.”
상혁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전아영이 SG그룹의 계열사에 취직하게 되었다니. 그리고 그게 하필이면 왜 지금이란 말인가.
상혁은 무언가 냄새를 맡았다.
‘구린내가 나는데.’
악의적인 의도가 다분했다. 그 누군가는 전아영을 이용하기로 한 것이다. 상혁의 머릿속에 두 명의 얼굴이 떠올랐다.
‘백성철. 백도현.’
자신이 전아영과 꽤 친밀한 관계라는 것은 조금만 조사해 보면 나온다. 그렇다면 아직 별다른 관계가 형성이 안 된 백이현이나 아군으로 분류하고 있는 백정연이 전아영을 서울로 불렀을 리 없다.
‘백도현은 그럴 필요가 없지.’
또 백도현은 제외다. 상혁과 백도현의 관계는 좋지 않다. 그런 백도현이 굳이 전아영을 서울로 불러 올릴 필요가 없다. 만약 전아영을 이용해 먹으려고 했다면 상혁과 떨어진 곳에 전아영을 뒀을 것이다.
그렇다면 남은 것은 한 명.
‘백성철.’
상혁은 백성철이 자신으로 하여금 백이현과 백도현 두 아들을 견제하기를 바란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전아영을 일부러 서울로 부른 것이리라. 백도현이나 백이현의 밑으로 보내기 위해. 그리고 백성철이 머리를 쓸 줄 안다면 전아영이 갈 곳은 뻔했다.
“파운드리 사업부?”
“어, 어떻게 아셨어요? 하긴. 저 반도체 공장 다니는 거 아셨죠? 그쪽에서 난 사고라 그쪽으로 간다고 하더라구요. 회장님이 직접 지시하셨다고 해요.”
상혁의 추측이 사실이다. 그런 상혁의 눈빛이 차가워졌지만 전아영은 잔을 매만졌다. 사실 전아영은 기대된다기보다는 불안한 감이 더 컸다. 그런 와중에 서울에서 상혁을 만나자 반가울 수밖에 없었다.
고향 사람을 먼 타지에서 만난 듯한 기분이랄까.
“그런데 오빠는 여기 왜 있어요?”
전아영은 상혁이 자신의 비밀을 알고 있다는 것을 안 후부터 상혁을 오빠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그게 틀린 표현은 아니었기 때문에 상혁은 잔을 기울여 한 모금 마신 뒤 말했다.
“나도 SG 들어가거든.”
“SG요?”
전아영의 얼굴이 밝아졌다. 그때 상혁이 전아영에게 아무렇지 않은 듯 말했다.
“나, 백성철 회장 조카야.”
전아영이 그냥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곧이어 고개를 팩 치켜들었다. 뒤늦게 자신이 들은 내용을 이해한 것이다.
전아영이 상혁을 쳐다봤다.
“……네?”
“우리 아버지가 백성철 회장 동생이었대. 어릴 적에 사고가 난 거라 곧바로 보육원에 갔거든. 그래서 모르고 있다가 이제 안 거야. 그래서 나도 SG로 간다.”
상혁은 태연하게 전아영의 귓가에 폭탄을 때려 박았다. 상혁의 말이 거짓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은 전아영이 잔을 꽈악 움켜쥐었다.
“그럼 아까 백화점에서 그런 것도…….”
“어. 내가 회장 조카라 그래.”
백화점에서 상혁의 한마디에 어디론가 전화가 가더니 백화점의 임원이 쪼르르 내려와 고개를 조아렸다. 그리고 상혁의 한마디에 전아영은 부담스러운 사과까지 받았다.
그 때문에 설마 하고는 있었지만 그 설마가 진짜라니. 이 무슨 드라마 같은 일이란 말인가.
“그, 그, 그.”
“그리고 널 본사로 부른 것도, 파운드리로 널 보낸 것도 바로 그 회장이야. 내 큰아버지였어야 할 사람. 그리고 파운드리 사업부에는 그놈이 있고.”
“그놈이라면.”
“백도현.”
공장에서 일한 전아영이 백도현을 모를 리 없다. 상혁이 재벌이라는 것을 알고 흔들리던 전아영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럼 내가 오빠 때문에 파운드리 사업부로 발령이 난 거란 말이에요?”
“그래. 회장은 내가 백도현과 한 판 붙기를 바라거든.”
“자기 아들인데 왜…….”
“권력은 원래 그런 법이니까.”
전아영은 바보가 아니다. 그녀는 상혁이 하는 말을 듣고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것인지를 눈치챘다. 그녀는 도구로 이용을 당한 것이다.
백도현과 백상혁, 그 사이에서 싸움의 부싯돌이 되어 줄 그런 도구.
전아영의 눈이 세모꼴로 변했다.
“하, 내 인생 진짜.”
전아영은 매만지기만 하던 커피를 한숨에 들이켰다. 얼음이 달그락거리자 전아영은 잔을 탕하고 내려놓았다.
“공장 다니다가 죽을 뻔한 것도 서러운데 이제는 그룹 권력 다툼에 도구로 쓰이고 진짜.”
전아영은 상혁을 째려보면서 말했다.
“커피가 아니라 술이 땡기네. 술이.”
19살인 전아영의 입에서 나올만한 말은 아니다. 하지만 상혁은 그런 전아영을 보면서 피식 웃었다. 그냥 당황하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분노하는 것이 마음에 들었다.
‘적어도 마냥 이용만 당하다가 버려지지는 않을 성격이네.’
그렇다면 쓸 만하다.
“그래서. 내가 뭘 하면 될까요?”
전아영이 상혁에게 물었다. 전아영은 상혁이 마시고 있던 잔마저 가져간 뒤였다. 상혁이 멀뚱하니 전아영을 쳐다보자 전아영이 잔에 담긴 음료를 자신의 컵에 부으면서 말했다.
“지금 내가 쓸 만하다고 생각했잖아요.”
“너?”
“눈으로 다 보이는데 뭐. 내가 그냥 어린애는 아니란 걸 알았을 거 아니에요. 공장에서도 그러더라구요. 나 보고 어리다고 대부분 반쯤은 깔보고 무시하는 거. 그때야 비위만 좀 맞춰 주면 됐지만.”
전아영은 얼음을 입에 넣고 와득 씹었다. 상혁의 눈에 이채가 흘렀다.
“여기선 그건 안 되겠죠. 라인이라는 게 괜히 있는 거 아니잖아요. 그리고 대단하신 회장님이 내가 오빠 라인이라고 생각한 거고.”
“…….”
“그렇다면 다른 건 물 건너갔네. 그냥 월급이나 따박따박 받으면서 엄마 아빠가 원하도록 SG 다닌다고 목에 힘이나 주면서 살다가 시집이나 가려고 했는데요.”
전아영은 피식 웃었다. 짧은 시간이라고는 하지만 그 온양의 공장 안에서도 온갖 정치와 파벌은 횡행했다. 거기서 배운 것이 많은 그녀다.
거기에 최근에는 회사에서 거의 버림받기까지 했다. 그러니 그녀가 지금 상혁의 앞에서처럼 변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살려면 오빠한테 붙어야 할 것 같아서요. 그래서, 내가 뭘 하면 되는데요?”
상혁이 씩 웃었다. 마음에 들었다. 어차피 당할 일이라면 전아영처럼 들이받으려고 의지를 불태우는 것이 훨씬 더 나았다.
수동적이면 절대로 자신의 앞에 주어진 운명을 바꾸지 못한다.
운명을 바꿔 온 대마법사로서, 전아영은 합격점이다.
“아무것도 모르는 척이나 하고 있어. 사람을 보낼 테니까.”
* * *
“와…….”
사만다는 할 말을 잃고 자신도 모르게 입을 떡 벌렸다. 아침에 상혁이 말한 여자가 눈앞에 떡하니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사람이 존재할 수 없다고 단언한 사만다지만 눈앞에 그 증거가 있었다. 상혁이 그런 여자를 모두에게 소개시켰다.
“일영. 내 경호원이 될 사람이다. 다들 인사해.”
“일영입니다. 앞으로 자주 뵙게 될 테니 잘 부탁드립니다.”
일영이 고개를 꾸벅 숙였다. 일영의 외모와 늘씬한 몸은 경호원이 아니라 모델을 연상케 했다. 그리고 그게 일영의 가장 큰 장점이었다.
적의 방심을 유도할 수 있다는 것.
누군가를 지켜야 되는 입장에서 적의 방심을 유도한다는 건 경호의 확률을 더 높이는 일이다. 게다가 이 지구에는 없는 골렘이기도 했다.
“자, 잘 부탁드립니다.”
오승환이 자신도 모르게 말을 더듬었다. 상혁은 그럴 만한 나이라고 생각하며 밖으로 나섰다. 그러자 일호와 일영, 오승택과 이선호가 상혁의 뒤를 따랐다.
“오승택. 동생 관리 잘해야겠어.”
“죄송합니다.”
“탓하는 게 아니잖아?”
일영의 외모는 그녀가 마법 생명체란 것을 알고 있는 오승택이 봐도 가슴이 때로 철렁할 정도다. 그러니 동생이 혹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그러나 그 상대는 골렘.
사랑에 빠질 수 없는 여자다. 그러나 오승택은 부드럽게 웃었다. 동생은 그렇게 나약하거나 어리석지 않았다.
“동생을 믿는군.”
“아버지도 함께 계시니까요.”
“그럼 됐다.”
상혁이 차에 올라탔다. 오승택이 운전대를 잡고 차례대로 올라탔다.
“조금 좁습니다.”
“내일부터는 안 나오시니까요.”
“험험.”
이선호는 상혁을 위해 회사에 함께 가고 있었다. 상혁의 전속 변호사가 된 이상 첫 출근하는 상혁에게 법적으로 조언이 필요하다면 해 주기 위함이다.
그렇게 출발한 차는 한 시간을 달려 강남에 도착했다. 상혁의 집에서 강남은 출근 시간에 지옥 같은 교통체증이 있는 구간이다.
“대중교통이 나을 수도 있겠군.”
상혁은 혀를 내둘렀다. 서울의 교통체증이 심하다는 건 말로 듣기는 했지만 직접 경험해 보는 건 오십 년 만이다.
주차장으로 접어든 차가 바리케이드에서 딱 막혔다. 오승택이 다가온 가드에게 말했다.
“백상혁 도련님이십니다.”
흠칫
오승택이 백상혁이라고 말하자 가드가 흠칫 놀라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상혁의 소문이 전사에 파다하게 났다는 뜻이다.
상혁은 차가 지나간 뒤에도 가드들의 시선이 따라붙는 것을 느끼면서 불편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동물원의 원숭이가 된 기분입니다.”
“인기인의 비애이니까요.”
“확, 중독시켜 버릴까 보다.”
옆에서 깐족대던 이선호가 입을 다물었다. 중독에서 벗어났다고 몸이 가벼운 모양이다. 대신 그만큼 상혁을 기껍게 생각한다는 뜻이었기 때문에 상혁이 장난스레 웃었다.
“조심하세요.”
“예, 도련님.”
“윽.”
벅벅
이선호의 도련님 소리에 상혁이 팔을 긁었다. 그 모습에 이선호가 피식거리면서 웃었다. 이선호는 그런 상혁을 보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전혀 긴장하지 않으셨군.’
상혁이 긴장한다는 것이 머릿속에서 잘 그려지진 않았다. 하지만 이 SG그룹은 상혁에게 있어서는 범의 아가리가 될 수도 있는 곳이었다.
‘상혁 씨라면 어떠한 난관도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자신의 목숨을 구해 준 상혁이다. 이선호는 상혁 덕분에 여벌로 얻은 목숨이니 상혁을 믿기로 했다. 그렇게 자동차를 지상 주차장에 세웠다.
“일호.”
“예, 상혁 님.”
일호는 그간 열심히 새로운 지식을 습득했다. 서번트라면 불가능한 일이지만 일호는 발전했다. 서번트의 발전을 의도한 적이 없는 상혁에게 일호는 가장 믿을 수 있는 심복이자 중요한 연구 대상이기도 했다.
“지식 습득은?”
“수월하게 이뤄지고 있습니다.”
일호는 이제 전자기기도 능숙하게 다뤘다. 대신 문제가 하나 있다면 일호는 스마트폰의 지문인식을 하지 못했다.
지문이 없기 때문이다.
그건 신분을 위조해서 만들어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대한민국 사람은 전부 다 주민등록 시에 열 손가락의 지문을 찍는다.
그러나 그 문제는 나중이다.
“날 보좌하는 건 너다.”
“예.”
“일영은 일정 반경 이내로 접근하는 자들을 파악해서 보고하도록.”
“예, 도련님.”
일영이 고개를 끄덕이자 풍성한 머리카락이 휘날렸다. 그런 일영의 모습은 멀리서도 눈에 띄었다.
오죽하면 출근하느라 바쁜 남자들이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돌려 일영을 쳐다봤을 정도다.
“좋군.”
잘 생기고 예쁜 일호와 일영이다. 이 둘이라면 자신에게도 쏟아지는 시선을 분산시킬 수 있을 것이다.
“오승택.”
“예.”
그리고 그 둘은 오승택의 존재감도 거의 완벽하게 지워 주었다. 오승택이 살짝 불만스러운 표정이지만 그게 오승택에게는 더 나았다.
“넌 다녀올 곳이 있다.”
“제가요?”
“그래. 내가 알려 준 곳으로 가라. 그리고 그곳에 가서 사람을 만나거든 전해라. 우환을 모두 없애 주겠다고. 나에게 오라고 말이다.”
“음…… 예.”
선문답 같은 상혁의 말이었지만 오승택은 반문하지 않고 고개를 숙였다. 상혁에게 다 계획이 있음을 믿었기 때문이다.
상혁은 그렇게 오승택을 보낸 뒤 높은 본사 건물을 올려다보고는 씩 웃었다.
“자, 신입사원 납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