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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 먹는 대마법사-106화 (105/249)

쓰레기 먹는 대마법사 106화

106. 신입사원(1)

백성철은 김대엽에게 보고를 받았다. 백성철이 회장직에 오르고 김대엽이 그의 비서실장이 된 후 최근 들어서는 사실 김대엽이 직접적으로 백성철에게 보고를 할 만한 사안이 그리 많지 않았다.

거의 대부분의 것들이 김대엽의 선에서 끝났기 때문이다.

백성철은 SG그룹의 오너로서 그룹의 방향을 지정하는 중요한 업무를 보는 데만 해도 하루가 부족할 지경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건 김대엽이 백성철에게 직접 보고할 수밖에 없는 사안이었다.

“진상규명?”

“예. 미국 측에서 저희 SG 쪽으로 은밀하게 의사를 타진해 왔습니다.”

“도현이가 하던 일이 잘 안 된 모양이군.”

백성철은 눈썹을 흔들면서 푸흐흐하고 웃었다. 백도현이 미국과 결탁해 무슨 꿍꿍이를 벌이고 있다는 건 진작에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 내부까지는 파고들지 않았다. 백도현이 어디까지 하는지 보고 싶었기 때문이기도 하고, 백도현이 실패를 하면 자신에게 연락이 올 것이란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백도현이 왕세자면 자신은 왕이다.

그러니 일단 왕세자를 거쳐오는 것이 맞는 절차였다.

“무엇 때문에?”

“근래에 미국에서 극비리에 CIA가 오산기지를 통해 입국했습니다. 저희가 파악하기로는 특수 작전을 수행하는 요원이었는데, 그쪽에서 내부 문제가 일어난 것으로 파악하고 있습니다.”

“내분이다?”

“예.”

백성철은 턱을 쓰다듬었다. 세계 최강국 미국이지만 그 안에서 크고 작은 문제가 일어나지 않는 건 아니다. 최강대국이라고 해도 결국 사람이 그것을 운영하기 때문이다.

“클클클. 미국이 체면 좀 상했겠어. 다른 곳도 아니고 CIA가 외국 출장을 와서 내분을 일으켰으니 말이야.”

“사상자가 쉰 명 이상 발생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습니다.”

“꽤 많군.”

“예. 근 일주일간 CIA의 움직임이 분주하더니 결국 사고가 터진 것으로 파악하고 있습니다.”

CIA 내부에서 일어난 일인데 SG그룹에 진상규명을 도와달라고 하다니. 백성철이 그 생각을 하자 김대엽이 기다렸다는 듯 말했다.

“금번 CIA 내부 분열 사건의 전후 사정을 파악해 달라는 요청입니다.”

“전후 사정이라. 그래서 대가는?”

“SG와 말럼 사이에서 벌어지는 특허 분쟁 소송에서 미국 법원이 SG 손을 들어 주겠다는 의견입니다.”

“그건 당연한 거고.”

백성철은 인상을 팍 찡그렸다. 대한민국이 아닌 미국에서는 SG가 운신이 자유롭지 못했다. 외국 기업이기 때문인 것도 있었고 SG에 버금가는 공룡 기업들이 즐비했기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말럼은 SG와 세계 시장 1위를 놓고 수년간 박 터지는 싸움을 하고 있는 회사였다.

SG전자와 말럼은 세계 시장의 패권을 두고 치열하게 충돌하고 있고, 특허 분쟁 등으로 상대의 발목을 붙잡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미국 정부가 제안한 특허 분쟁은 무려 규모가 1조 원에 달하는 거대한 배상금이 걸린 재판이었다.

그 재판에서 이기는 쪽이 향후 5년간의 시장 점유율 전쟁에서 우세를 점할 수 있다고 점쳐지고 있었기 때문에 SG전자에도 중요한 재판 중 하나였다.

“진상규명을 넘어서 원인 규명이 가능하다면 국방성을 통해 SG전자의 보안폰 1천만 대를 향후 10년에 걸쳐 구매하겠다는 계약서를 쓰겠다고 합니다.”

“좋군.”

군이나 정보조직에서 쓸 수 있는 특수 보안이 걸린 보안폰 1천만 대. 그걸 10년에 나눠서 구매하겠다는 건 매년 100만 대 이상의 수출 계약이 이뤄진다는 점이다.

보안폰 100만 대면 현재 기준으로 SG전자의 1년 매출의 10퍼센트를 차지한다. 고정적으로 매년 10퍼센트의 수익이 보장된다는 셈이니 SG에게는 군침이 도는 먹잇감이다.

“알겠다고 해. 국정원 애들 동원해서 알아봐.”

“예. 국정원에 그리 전해 놓겠습니다.”

백성철 회장의 말이다. 국정원에서는 백성철 회장의 말을 무시하지 못한다. 매년 국정원장으로 SG그룹의 장학생이 임명되기 때문이다.

그건 정권이 교체돼도 변하지 않았는데 그 뜻은 백성철과 SG그룹이 사실상 여, 야를 가리지 않고 대한민국 정계에까지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뜻을 의미한다.

“그건 마무리됐고. 하나 더 있다고 했지?”

김대엽이 직통으로 백성철 회장에게 보고할 안건은 두 개였다. 김대엽은 고개를 끄덕인 뒤 바로 입을 열었다.

“상혁 군에 대한 조사 결과입니다.”

“어디까지 자세하지?”

“국정원 특급 기밀 수준입니다.”

“좋아.”

백성철은 말하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진 백상혁에 대한 것을 백상혁 본인보다도 자세하게 조사하고 정보를 수집하기 위해 삼 주나 되는 시간이 필요했다. 그 결과가 지금 김대엽의 손에 들린 것이다.

20년이란 세월을 3주 만에 종합해서 요약했다는 것 자체가 SG그룹의 정보력이 어마어마하다는 뜻이었다.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20대 여성 한 명이 있는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여자?”

“예. 서울에서 잠시 온양으로 돌아가 어릴 때부터 거주하던 집 근처에 살았던 여성으로 파악됩니다.”

“얼마나 긴밀하지?”

백성철은 흥미를 보였다. 사람의 목에 목줄을 채우는데 가장 손쉬운 방법은 가족 문제나 연인 관계를 이용하는 법이다.

그러나 상혁에게 가족은 없다. 그렇다면 남은 건 이성 관계뿐이다.

“10년 전 성운 도련님께서 돌아가시기 전까지 왕래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해당 여성의 가정에 여러 번 방문하기도 했으며 병문안도 갔던 것으로 파악하고 있습니다.”

“병원?”

스윽.

백성철은 김대엽이 건네는 서류를 죽 읽어 내려가고서는 다시 돌려주면서 풀썩 웃었다.

“SG온양공장 근로자. 급성백혈병 증상으로 입원? 도현이랑도 얽혀 있는 건가?”

“예. 제 추측으로는 상혁 군이 백도현 사장과 원활하지 않은 관계를 구축하게 된 이유가 이 여성 때문으로 추측하고 있습니다.”

“도현이와 상혁이라…….”

백상혁은 백성철이 두 아들들을 견제하기 위한 칼잡이다. 그러니 상혁이 백도현과 사이가 좋지 않다는 건 백성철에게 있어 귀찮은 일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기도 했다.

백성철은 김대엽을 쳐다봤다.

“그 여자. 이름이 뭐지?”

“전아영입니다.”

“입사시켜. 본사로 불러들여서 SG전자 파운드리 사업부에 넣어.”

반도체 공장의 근로 피해자인 전아영을 회장이 직접 불러 공장에서 일어난 일에 대해 사과하고, 그런 그녀를 본사로 입사시킨다는 건 공장에서 벌어진 일에 확실하게 책임을 지겠다는 것처럼 외부에는 보일 것이다.

하지만 전아영을 백도현의 파운드리 사업부로 배치시켜 곧 입사할 상혁과 백도현의 관계를 파국으로 만들겠다는 백성철의 치밀한 계산이 깔린 것이다.

“예. 회장님.”

김대엽은 두말하지 않고 곧바로 고개를 숙였다.

* * *

전아영은 누가 봐도 적응이 안 된다는 표정을 지은 채 백화점 1층에 들어섰다. 그녀가 백화점에 온 이유는 간단했다.

[출근 전에 옷 한 벌 깨끗한 걸로 사 입고 가. 아빠랑 엄마가 돈이 없는 것도 아니고. SG전자 본사에 출근하는 첫날인데. 알았지?]

일주일 전에 갑작스레 전아영은 SG본사 비서실로부터 전화를 받고는 믿을 수 없는 제안을 받았다.

백성철 회장이 이번 SG공장에서 일어난 일에 깊은 유감을 표한다며 보상이 될 수 있을까 모르겠지만 직접 전아영을 SG본사로 불러 사과한 뒤 SG전자 본사로 입사시켜 주겠다는 제안이었다.

지금껏 사과 한마디 없고, 전아영이 보호자 모르게 입원을 한 뒤에도 사과 한마디 없던 SG그룹이었지만 그 강력한 유혹에 전아영과 부모는 고민했다.

사과를 안 한다는 것도 아니고, 말도 안 되지만 사장이 아닌 회장이 직접 하겠다는 소리에 믿어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거기에 SG공장이 아니라 SG전자 본사로의 입사였다.

안 그래도 하나밖에 없는 딸이 공장에서 힘들게 일을 한다는 것에 걱정이 컸던 전아영의 부모는 장고 끝에 전아영이 서울로 갔으면 좋겠다는 의사를 내비쳤다.

SG전자.

대한민국의 모든 취업생들, 아니 직장인들이 가기를 손꼽아서 바라는 꿈의 직장이자 신의 직장은 전아영도 꿈꿨던 곳 중 하나였다.

그러나 서울로 상경하는 대신 곧바로 취업하는 걸 선택했던 그녀였지만, 이 달콤한 유혹은 견딜 수가 없었던 것이다.

거기에 비서실에서는 전아영의 치료를 위해 SG병원과도 연계를 해 그녀가 무료로 최고의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하겠다는 제안도 했다.

급성백혈병.

놀랍게도 전아영은 그 난치병으로부터 고비를 넘기고 회복이 되고 있었지만 부모 마음이란 것에 원래 그랬다.

돌다리도 두드려 보고 건너가고 싶은 마음.

상혁의 마법으로 인해 차도를 보이는 전아영이었지만 전야영의 부모는 되도록 전아영이 서울로 올라가 서울에 있는 병원에 치료받기를 바란 것이다.

모든 것이 전아영을 위해 완벽하게 설계가 됐기 때문에 전아영은 그러겠다고 제안을 승낙했고 서울로 상경했다.

원룸을 구해 계약하고 첫 출근 전 옷을 사기 위해 들린 백화점.

전아영은 휘황찬란한 강남 백화점의 위용 앞에 자신도 모르게 주눅이 들었다.

“이게 서울이구나.”

태어난 후부터 나고 자란 곳이 온양의 시골이었다. 물론 7080처럼 서울과 지방의 격차가 미친 듯이 나는 그런 시대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그녀에게는 낯설 수밖에 없었다.

천안이나 나가야 번화가가 있고 시내 느낌이 났는데 강남은 그 천안 시내보다 몇십 배는 더 사람이 많고 화려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본의 꽃이나 다름없는 백화점은 그런 화려하고 사람 많은 곳 중에서도 정점을 찍었다.

1층의 명품관부터 조심스럽게 훑어보던 전아영은 자신이 살 수 없는 가격대임을 금방 자각했다. 하지만 그런 그녀의 눈에 남자 마네킹이 딱 들어오자 전아영은 그 자리에 멈칫하고 멈춰 섰다.

“상혁 오빠한테 잘 어울릴 것 같은데.”

자신도 모르게 그렇게 중얼거린 전아영은 퍼뜩 정신을 차리고는 고개를 휘휘 내저었다.

“뭐, 뭐야.”

고개를 가로저은 전아영은 상혁에게 인사 한번 못하고 서울에 올라왔다는 사실에 전화기를 만지작거렸다.

“문자라도 할까?”

상혁은 자신의 은인이다. 물론 상혁은 그 사실을 부인했지만 전아영은 자신이 그날 어딘가로 실려 가면서 봤던 것이 사실이란 것에 아주 조금의 의심도 하지 않았다.

자신의 첫사랑이자 자신의 목숨을 구해 준 은인.

급성백혈병이 더 이상 진전되지 않는 것도 상혁이 자신을 구해 줬기 때문이라고 그녀는 철석같이 믿었다.

하지만 손가락이 움직이지 않았다.

문자라니.

상혁의 전화번호는 알고 있었지만 한 번도 연락을 주고받은 적이 없었다. 부끄러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적어도 자신이 서울로 올라온 것 정도는 알려 주고 싶었다.

고마운 사람이었으니까.

고맙다고 제대로 말도 못 하고 선물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전아영은 자신의 통장 잔고를 떠올려 보고는 비장한 표정을 지었다.

“사자.”

전아영은 명품관으로 향했다. 이탈리아에서 유명한 명품 브랜드다. 명품 브랜드에서 일하는 직원은 직원들도 왠지 모르게 고급스러워 보였다.

검은 바지에 하얀 셔츠, 그리고 손에는 장갑을 끼고 태블릿을 든 입구의 직원이 안으로 들어가려는 전아영을 붙잡았다.

“저, 고객님?”

“예?”

“여기 전화번호를 입력하시고 대기하셔야 합니다.”

“아.”

가게에 들어가는 것도 대기를 해야 한다니. 전아영은 창피함에 얼굴을 붉게 물들이며 전화번호를 태블릿에 입력했다.

그런데 그때 그 직원이 전아영에게 물었다.

“제품의 가격이 좀 비싼데. 괜찮으세요?”

가격이 비싸다. 전아영도 당연히 그걸 알고 있었다. 명품이니까. 그래도 살 마음을 하고 온 건데 이걸 왜 자신에게 묻는 것일까.

“네, 사려고 왔는데요.”

“아, 네.”

묘하게 건성으로 대답하는 직원의 태도에 전아영은 기분이 약간 상했다. 하지만 그녀는 이게 서울깍쟁이 때문일 것이라고 스스로 생각하고는 뒤에 가서 줄을 섰다.

수군수군

하지만 전아영의 묘한 불쾌함은 더욱 더해져만 갔다. 자신에게 비싼데 괜찮냐고 물은 직원이 다른 직원에게 가서는 뭐라고 수군거리더니 전아영이 있는 쪽을 슬쩍 보고는 다시 웃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아영은 일단 참았다. 무엇인지도 모르고 화만 낼 순 없으니까. 게다가 그녀는 아직 백화점의 화려함에 기가 눌린 갓 스무 살이었다.

그렇게 줄이 줄어들었다. 전아영이 들어갈 차례가 됐다. 그때 전아영에게 불쾌감을 줬던 직원이 나와서는 전아영에게 말했다.

“정말 가격이 비싸거든요. 괜찮으시겠어요?”

다시 입가에 묘한 미소를 머금고 물어보는 직원이었다. 전아영이 괜찮다고 하려는 찰나 그 직원이 전아영에게 말했다.

“고객님, 잠시만요.”

그러더니 뒤에 있던 다른 사람을 먼저 들어가게 하는 것이 아닌가.

“저기요. 제가 먼저 줄 서서 기다리고 있었는데요?”

전아영이 이렇게 말하자 직원이 다가와서 미안한 척을 하면서 말했다.

“그러셨구나. 조금 전에 와서 확실히 사겠다고 하신 분이라서요.”

“그럼 저는……!”

“이제 들어가시죠. 제가 안내해 드릴게요.”

누가 보더라도 전아영을 의도적으로 무시하는 태도였다. 하지만 전아영은 일단 참았다. 상혁의 선물을 사기 위해 온 곳이기 때문에 금방 사고 나갈 생각이었기 때문이다.

“이 제품은 589만 원짜리로…….”

직원은 묘하게 웃음기 섞인 목소리로 전아영에게 물건을 굳이 가격과 함께 설명하기 시작했다. 몇백만 원, 몇천만 원짜리의 향연. 전아영은 점점 기가 죽었다.

“저쪽 제품은 897만 원짜리로 이번 이탈리아에서 공수한 신상품이며…….”

다시 한번 괜찮냐고 묻는 직원의 질문에 전아영은 점점 더 기가 죽었다. 돈에 기가 눌리는 느낌이다. 하지만 전아영은 마지막으로 용기를 내 직원에게 말했다.

“저기, 바깥에서 보이던 모자 하나 보여 주세요.”

“그거요? 387만 원짜린데…….”

직원의 건방짐이 정점을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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