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 먹는 대마법사 104화
104. 입성 준비(4)
“원탁? 그거 영국 아니야?”
“아, 아닙니다. 최초 결성은 영국이 맞지만 미국으로 세계 패권이 옮겨 간 후 영국에서 넘어온 가문과 미국 내 세력을 불린 가문들이 결탁해서 새로운 원탁을 결성했습니다.”
상혁은 머릿속으로 그림을 그렸다. 그러고는 간단하게 결론을 내렸다.
“사이즈가 보통이 아니네.”
엘릭서 프로젝트는 미국을 다방면에서 지배하고 있는 다섯 가문이 추진하고 있는 프로젝트였다. 그들은 통칭 스스로를 원탁이라 불렀다.
원탁의 기사.
아서왕과 그 기사들로 이뤄진 그 원탁이 맞았다. 그것을 본떠 미국의 그림자 속에서 암약하는 그 가문들이 이번 인체 실험의 배후였다.
‘그냥 가문이 아니야. 적어도 다섯 왕국이라고 보는 게 맞겠어.’
상혁은 빠르게 견적을 냈다. 카터는 다섯 가문이라고 했지만 조금만 생각해 보면 그들이 벌이고 있는 일의 스케일은 단순히 일개 가문의 수준에서 해결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가나안으로 따지면 다섯 왕국.
그 정도의 규모를 가진 이들이 모여서 이번 인체 실험을 단행했다고 봐야만 한다.
미국이라는 세계 최강대국의 그림자에서 암약하고 있는 다섯 가문이라면 그 정도 규모로 봐야 한다.
‘못 할 것도 없지.’
상혁은 자신의 목표를 그 다섯 가문으로 잡았다. 자기네들이 불로장생하겠다는 걸 말리는 건 아니다. 능력이 있으면 당연히 그런 꿈을 꿀 수 있는 법이니까.
하지만 그걸 위해 불특정 다수의 희생을, 그것도 인체 실험을 강행한다?
자신에게 안 들켰으면 모를까 상혁이 그걸 알게 된 이상 상혁은 그놈들을 자신을 인체 실험한 마법사와 동등한 쓰레기로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거슬렸다.
힘을 가진 자의 번거로움은 이런 눈에 거슬리는 것들을 그냥 두고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아예 힘이 없다면 모를까 힘이 있는데 눈에 거슬리는 것을 참는 건 힘을 가진 자의 미덕이 아니다.
‘힘이 있으면 깽판도 치고 그래야지.’
돈을 써야 시장이 굴러 경제가 돌아가는 것처럼 힘을 가진 자도 힘을 써야 한다. 그래야 세상이 발전도 하고 빈자리를 다른 이들이 채우면서 세상이 굴러간다.
궤변이지만 상혁에게는 아니었다. 힘이 없는 자에게나 궤변이지 힘을 가진 자는 아무리 궤변이라고 해도 자신이 생각하는 것도 곧 상식인 법이니 말이다.
“그, 그럼 이제 제발 악몽을, 머릿속의 악마들을…….”
카터는 자신이 알고 있는 다섯 가문에 대한 모든 정보를 토해 냈다. 그 정도로 카터는 완벽하게 무너진 상태였다. 수면이란 게 이렇게 사람에게 중요하다는 것을 카터를 보면서 새삼 느낄 수 있었다.
“그래. 없애 주마.”
상혁은 카터의 머리 위에 손을 얹었다. 카터의 두 눈에 희열이 맺혔다. 드디어 이 고통에서 해방될 수 있다는 기대감이 눈빛으로 드러난 것이다.
꾸욱.
“힙노시스.”
그리고 그런 희망을 짓밟는 것이 카터 같은 권력의 개가 된 이들에 적합한 최후가 될 것이다. 상혁은 최면 마법에 카터의 두 눈의 초점이 풀리자 귓가에 입을 가져다 대고는 부드러운 목소리를 냈다.
“넌. 이대로 네가 왔던 곳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그곳에서.”
상혁의 입가에 가느다란 미소가 맺혔다.
“화려하게 순직한다.”
“화려하게. 순직한다.”
카터는 풀린 눈으로 그렇게 중얼거리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잠시 후 눈빛이 원래대로 돌아온 카터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까맣게 모르는 모습이었다.
“가 봐.”
“예.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카터는 자신이 사지로 걸어 들어가는지도 모르고는 감사하다며 인사를 한 뒤 떠났다.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은 상혁은 어깨를 으쓱했다.
“감사하긴. 내가 감사하지.”
* * *
“에이전트 카터!”
철컥!!
CIA가 카터를 감금해 놓았던 병원에서 카터가 사라진 뒤 일주일이 지나서야 카터는 CIA 요원들에 의해 꼬리가 잡혔다.
일주일간의 행적을 완벽하게 감추면서 자신이 괜히 공작국 에이스가 아님을 증명한 카터는 CIA 요원에 의해 체포되어 안가로 끌려와 존 베리 앞에 무릎이 꿇려졌다.
“국장님.”
존 베리는 완전히 초췌해진 카터를 보면서 턱을 쓰다듬었다. 지난 일주일간 진행하려던 작전이 카터의 실종으로 인해 모두다 올스톱된 상태에서 다시 품으로 돌아온 에이스였다.
과연 그가 어디로 갔던 것일까.
“어디에 갔다 온 거지?”
존은 그런 카터에게 물었다. 카터는 수염이 시커멓게 자라 있었고 눈 밑이 검었지만 평온한 표정으로 존에게 말했다.
“악몽을 떨쳐 냈습니다.”
“……에이전트 카터. 자네는 지금 국장인 내 명령을 무시하고 무단으로 자네가 있어야 할 장소에서 이탈했지. 자네가 겪고 있는 정신적인 불안증세를 감안한다고 하더라도 중죄를 저지른 셈이야.”
일주일간 공작 국장인 그가 기껏 한국까지 들어와 놓고서는 허송세월만 했다. 그로 인해 발생하는 피해는 천문학적이다.
그렇기 때문에 존은 이 문제를 그냥 넘어갈 수 없었다.
“자백제라도 놔야 진실을 털어놓을 셈인가?”
CIA의 자백제는 사람의 정신을 혼미한 상태로 만든다. 한 번 사용하면 육체에 부담이 크게 가기 때문에 잘 사용하지 않았지만 카터의 지난 일주일간의 종적은 그 무엇보다도 중요했다.
미국의 안보에 직결될 수도 있는 사실을 카터는 많이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껏 작전을 수행하면서 죽었던 이들이 제정신을 좀 먹고 있었습니다. 정말 끔찍하고 고통스러운 날이었습니다. 한시도 잘 수 없었으니까요.”
수면제나 안정제도 소용이 없었다. 상혁의 악몽 마법은 육신이 아니라 영혼에 직접 영향을 끼친다. 그러니 아무리 육체에 수면제나 안정제를 놔도 강제 각성 상태가 유지됐다.
“하지만 전 안정을 되찾았습니다. 그 어느 때보다도 머릿속은 고요합니다.”
“내가 물어본 건 그게 아니야. 에이전트 카터. 지난 일주일간 어디 갔었고, 누굴 만났지?”
대한민국은 미국의 우방이었다. 하지만 미국보다는 중국과 러시아에 더 가까운 최전방이었다. 머리 위에는 북한이라는 리틀 로켓맨을 이고 있는 대한민국은 첩보전의 아사리판이었다.
중국과 러시아, 그리고 북한까지 두 눈을 시퍼렇게 뜨고 정보원들이 돌아다니는 곳이었기 때문에 혹여라도 카터에게 조금이라도 변절의 기색이 보이면 그를 처단해야 한다.
“누굴 만났는지는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제 악몽을 사라지게 해 준 사람이니까. 어디 갔는지도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그 순간 카터의 기질이 바뀌기 시작했다. 평온함을 유지 중이던 그의 머릿속에 상혁이 말한 순직이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순직.
업무 중 사망을 뜻하는 순직이란 단어가 머릿속에 맴돌자 카터는 그 순간 자신이 순직해야 한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눈앞의 존 베리가 자신의 상사인 공작국의 국장이란 것도 카터는 신경 쓰지 않았다. 오로지 하나. 자신은 여기서 죽어야만 했다. 그것만이 개죽음이 아니라 순직이라는 생각이 그의 뇌리를 지배했다.
“에이전트 카터.”
“국장님. 저랑 같이 순직하시죠.”
“뭐?”
존 베리가 이상함을 느끼고는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했다. 하지만 그보다 카터가 더 먼저였다. 존 베리의 눈이 탁하고 풀렸다.
“어느새.”
존 베리의 배가 피로 물들었다. 카터는 손에 소음기가 장착된 권총을 들고 있었다. 분명 들어오기 전에 샅샅이 몸수색했건만 대체 어디서 저 총이 났단 말인가.
하긴 그게 뭐가 대술까.
존 베리는 공작국의 든든한 기둥이었던 카터가 마치 세뇌당하기라도 한 것처럼 자신에게 총을 쏜 순간 일이 글러 먹었음을 깨달았다.
그는 이런 죽음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적에게 죽는 것이 아니라 미쳐버린 부하에게 총을 맞아 죽는 죽음.
“이건 아니네.”
픽!
덜커덕.
존 베리의 고개가 뒤로 넘어갔다. 그런 그의 이마에 핏줄기가 주륵 흘러내렸다. 그리고 그날 CIA의 공작국은 50명으로 구성된 요원 중 30명이 현장에서 사망했다. 서른 명이란 희생을 내고서야 카터의 머리에 총알이 박혔고 그렇게 공작국은 큰 피해를 입은 채 본토로 복귀할 수밖에 없었다.
CIA가 한국 땅에서 큰 피해를 입었다는 소식은 국정원부터 시작해 미국의 동향에 두 귀를 기울이고 있는 중국과 러시아의 귀에도 들어갔다.
그것도 내부 분열로 인해 엄청난 피해가 났다는 소식에 쾌재를 불렀고 그렇게 한국 땅에서 미국과 중국, 러시아가 벌이는 정보전이 한층 더 활발해졌다.
그러나 그건 어디까지나 그 세계에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일반인들이 알지 못하는 세계의 일은 그 세계의 일이고, 일반인들의 세계는 또 다르게 돌아가고 있었다.
바로 상혁을 중심으로 말이다.
“여기. SG로봇테크연구소의 소장님이신 이화수 박사님.”
“반갑습니다.”
백정연의 소개로 만난 이화수 박사는 젊은 나이에 공학 박사를 따고 그 외로 다른 박사 학위를 취미 삼아 딴 천재다.
미국에서 공부하던 그를 백성철 회장이 다보스포럼에 참가하기 위해 미국에 갔다가 직접 스카우트를 해서 데려온 것으로 유명했다.
“예. 저도.”
상혁은 그에게서 비슷한 동류의 냄새를 맡았다. 진리를 위해 탐구하는 마법사, 그리고 허락되지 않은 신기술을 위해 매진하는 과학자.
이 둘은 달랐지만 또 비슷했다.
그 때문에 편안한 기분이 된 상혁은 이화수와 서슴없이 대화를 나눴고, 둘 사이의 만남을 주선하기 위해 자리를 만든 백정연은 낙동강 오리알처럼 두 눈을 굴렸다.
‘무슨 소리가 오가는 거야?’
당최 무슨 소리가 오가는지 백정연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녀도 공부라면 모자람 없이 했는데 이화수 박사의 말은 그중 10퍼센트 정도 알아듣는 것이 고작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녀가 놀란 건 상혁이다.
‘고시생이라면서.’
그런데 상혁은 이화수와 무리 없이 대화를 이어 나가고 있었다. 그냥 대화가 아니라 전문지식이 동원되어야 하는 토론이었는데도 말이다.
그렇게 한 시간을 쉴 새 없이 대화를 나누며 상혁은 눈을 빛냈다.
‘진짜다.’
눈앞의 이화수는 진짜였다. 그는 SG로봇테크연구소의 소장으로 말 그대로 로봇과 관련된 기술을 개발하는데 국내 최고의 권위자였다.
인공지능을 탑재한 로봇 관련한 기술 몇 개를 특허 신청을 내었으며 작년에는 세계 최초로 문을 열고 차에 탄 뒤 차를 운전하는 로봇을 만든 것으로도 유명했다.
그런 그를 상혁이 SG에 본격적으로 입성도 하기 전에 만난 이유는 간단했다.
‘확실하게 믿을 수 있는 경호원 하나 옆에 둬야지.’
마법사가 가장 취약해지는 순간은 바로 캐스팅을 할 때다. 그렇기 때문에 마법사들은 그 취약점을 보완하기 위해 메모라이즈, 더블 캐스팅 등의 방법을 고안해 냈지만 그것으로는 부족했다.
검에 오러를 불어넣고 달려드는 기사라는 족속은 그 정도로 막아 낼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같은 기사가 아니라면 기사를 막아서는 건 고작 더블 캐스팅으로는 불가능했다. 그렇기 때문에 상혁은 적극적으로 자신의 보신을 위해 마법을 사용했다.
인간형 골렘.
육중하고 거대한 골렘은 그 덩치를 유지하는 것 자체가 비효율의 극치였다. 그렇기 때문에 가디언으로는 쓸만해도 호위병으로는 많은 문제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만든 것이 인간형 골렘.
골렘과 서번트의 가장 큰 차이점은 골렘이 전투에 특화되었기에 몸이 단단하고 힘을 세게 만드는 데 집중을 했다면 서번트는 생활밀착형이라는 소리였다.
그리고 골렘은 그 뼈대의 소재에 따라 능력이 차이가 난다.
같은 마나석으로 만들었어도 나무로 만든 골렘과 쇠로 만든 골렘의 기능에는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는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 상혁은 골렘의 뼈대로 로봇 외골격을 사용하기로 마음먹었다.
“소문이 무성한 새로운 도련님이라고 해서 걱정이 많았습니다만, 기술에 이렇게 해박하시니 앞으로 SG의 미래가 기대되는군요. 한 기 보내드리겠습니다.”
어차피 상혁이 원한 건 첨단 기술이 들어가 있지 않은 그저 로봇의 뼈대일 뿐이다. 그것도 물론 값이 나가기는 하지만 그 대가로 로열패밀리와 안면을 틀 수 있으면 이화수에게도 나쁜 건 아니다.
무엇보다도 상혁은 이화수에게 자신이 그냥 큰아버지 빽으로 떨어지는 낙하산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했으니 말이다.
“그럼 부탁 좀 드리겠습니다.”
“예.”
상혁과 이화수가 악수했다. 이제 SG에 입성할 거의 모든 준비가 끝났다.